18C 독일의 염쇄철학을 대표하는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떨어져 있을 때의 추위와 붙으면 가시에 찔리는 아픔 사이를 반복하다가 결국 우리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라고 말했다.
현대인에게 "고독"은 이른바 "절친"이다. 많은 사람들은 고독한 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데 이것은 마치 오래두고 가깝게 지낸 친구와 함께 있는 것 같다. 무엇이 우리가 서로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었을까..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겐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었다. 모자람이 없다는 것이다. 16세기 르네상스 시절엔 고고한 문학이나 천상의 예술작품은 일부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리고 대중은 그것을 감히 부러워하지 않았다. 조금 다른 예이긴 하지만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추노"를 보면 그것은 꼭 중세시대 유럽의 얘기만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국적을 넘어서서 사람들은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공유한다. 손바닥만한 TV하나만 있어도 지하 단칸방에서 조차 앤디워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500원짜리 엽서 뒷면엔 피카소의 작품이 그려져 있다. 지구 반대 편의 단란한 가족이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모습도 볼 수 있고 남극의 위대함도 대중의 것이다. 지금의 대중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국정에 참여하고 그 힘과 권위는 엄청나다. 대중의 힘이란 것이 너무 가변적이긴 하지만 중요한건 어던 조직과 단체도 어떤 심리적공동체나 이익집단, 경제, 정치단체도 대중을 무시하지 않는다. 교회들까지도.. 하물며 대중에 의해 생사가 결정되는 연예인은 말할 것 없다.
그래서 그것이 우리를 외롭게 한다. 무언가 모자람을 느꼈다면, 부족함을 느낀다면 상대방을 필요로 하게 될 텐데... 너와 나는 더 이상 부족한 것도 아쉬운 것도 없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더욱이 우린 '상대성', '주저하는 것이 없는 세치 혀', '거친 몸짓', '인스턴트식품', '모바일커뮤니티', '인터넷의 익명성, 독단성, 일방향성'과 '손 안의 또 다른 세상: 스마트폰'으로 중무장하고 있지 아니한가... 이러한 것이 가시가 되어서 서로를 상처 내고 덧나게 한다. 부족함이 없는 너와 내가 너무도 다르다고 하는 '제한사항', '상처'를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같은 배를 탈 필요는 없는 것이다. 크고 작은 배는 어디에든 있을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면서 서로를 배척할 수 있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의 관계를 유지시키는 어떤 '조건들' 속에서만큼은 관계들이 견고하게 유지된다. 그리고 그 조건은 사회가 유지되기에 필요하고 충분한 조건이다. 때문에 결국 우린 사회속에서 끝없이 함께 한다. 그 든든한 망루와 같은 '조건'들 속에서...
아무 조건이 없는 관계는 없다. 심지어는 혈육관계도 생태적인 조건들을 가지지 않은가... 조건들이 아니라면 우린 언제나 고독하다. 그 고독이 때로는 나를 그리고 너를 자유롭게 한다. 너와 나를 숨막히도록 목조르는 그 조건들로부터....
몸에 딱 맞는 옷처럼 적당한 고독은 너와 나의 몸에 마음에 그렇게 젖어든다.
2010. 3. 27
written by 碩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