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수술을 하시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께서 돌아겼습니다.
딸래미 저 하나고.
외가 친가 쪽에서 어린 아빠를 대신해 저를 키우신다고 하셨지만
저희 아빠, 꿋꿋하게 저를 책임 지셨습니다.
물론, 힘들었습니다.
아빠 담배 한 개피 살 수 없을 정도로 돈도 없었고.
( 그 당시에는 보험 따위 없었어요. 두번의 암 수술 비용 입원비 모두 싸그리 냈지요.
할머니한테 들은 말로는 저희 아빠, 낮에는 공장, 밤에는 경비일로 하루에 잠을
제대로 자는 시간이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제 어린 기억에
아빠가 담배 필 돈이 없어 담배각에 있는 담배재를 털어
종이에 싸서 피시던 것이 기억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 몸에 안 좋은 짓이지만 (담배 자체가 안 좋지만)
저는 어릴 때 할 수 있는 거라곤
담배재 모아 아빠 스트레스 풀 수 있도록 담배를 만드는 것 밖에 없었어요.
끽해봐야 담배종이에 들은 담배재, 바닥에 떨어진 꽁초의 담배재. 모으는 정도 였지만
담배, 엄청 안 좋은 거 알아요.
그치만 어린 제 마음엔 밥도 제대로 못 드시고
바쁘실 땐 일주일 중에 5일을 집에 들어오시지 못하는
아빠의 최고의 선문이라 생각했어요.
(그때 당시 담배는 몸에 나쁜 것, 이런 거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냄새는 진짜 싫었지만 나의 하나 밖에 없는 아빠가 담배를 좋아했으니까.)
어렸을 때라 일 때문에 집에 못 들어오시고.
밤 늦게 들어 오시는 아빠를 원망했습니다.
저는 너무 어렸거든요. 무서웠고. 외로웠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겐 혼자 집 지키는 것이 무서웠으니까요.
솔직히 지금은 이해 합니다.
아빠가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하신 이유가 저 때문인지 알거든요.
고 2때 새 어머니가 들어오셨고
그 새어머니가 좋았던 이유는 단 하나,
우리 아빠를 저보다 더 사랑하는 느낌이 들어서 였습니다.
(사실상 주변에서 선이 많이 들어왔지만
저는 철이 없었는지 어쨌는지 새어머니 라는 것 자체를 싫어했거든요)
제가 20살이 되고 아빠 머리에 흰 머리가 생길 때부터, 그렇게 엄하신 우리 아빠가
서글서글하게 변했을 때부터, 아, 우리 아빠 나이를 드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없이 커 보이던 우리 아빠가 작아 보이던 그 순간....
진짜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 돌아가신 이후로 저는 엄마 보고 싶다고 운 적 없습니다.
사고 쳐서 아빠한테 맞아 죽을 뻔 해서 운 적은 있어도.
엄마 보고 싶어서 운 적은 없거든요.
엄마 보고 싶어 울면 우리 맘 여린 아빠 저 보다 더 울거 아니까.
어떡하면 좋을까요.
저 혼자 살기도 막막합니다.
22살 때 제 힘으로 혼자 독립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전세집 얻어 살고 있습니다.
저 집에 가기 싫어요.
어느 집이나 당연하겠지만...
나이가 먹으면 아버지들 당연히 돈도 많이 못 벌게 되고 힘들잖아요?
(짤리거나 월급 삭감)
새 엄마는 그런 우리 아빠를 구박합니다.
진짜 너무 화나요.
진짜 아, 울컥 눈물이 나올 정도로 화가 나고 짜증나요.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새 어머니 제가 가끔 서울가서 자는 것도 싫어 합니다.
대놓고 싫어하진 않지만 눈에 보여요.
한 번은 제가 예전 제 방에서 잔다고 했더니
'니가 왜 자?'
라고 물었으니까요.
저는 어쩌면 좋을까요.
솔직히 피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가질 않아요.
서울에 가면 새 엄마 아빠 싸우는 모습 밖에 보질 못 하니까.
나 편하자고 그거 피하고 있습니다.
스무살 때부터 스물 두살까진 꽤 돈을 많이 벌었고
제가 일하는 세계에선 조금 유명했던지라 돈도 많이 벌어
저희 아빠 큰 돈은 벌지 못해도 떵떵 거리며 새 엄마와 같이 살았는데.
(그땐 엄마편을 들었어요. 아시잖아요? 핏줄이 핏줄편 들면 핏줄 아닌 사람은 더 서럽습니다.
우리 새 엄마 저를 사랑한다는 생각은 많이 안 들었지만 저희 아빠를 사랑한다는 느낌은 들엇거든요.
지금은... 솔직히 안 들지만 )
저도 돈 많이 못 벌고.
아빠도 많이 나이가 드셔서 많이 못 버시고.
저만 보시면 경상도 남자라 대놓고 미안하다 말씀 못 하시지만
술 드시곤 항상 제 손을 잡고 우시는 우리 아빠.
저는 어쩌면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