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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속의 지우개

네명키우는... |2010.06.01 23:49
조회 1,560 |추천 0

웬 영화제목이냐고?

아니다... 나의 현실을 말하는 거다.

바로 최근의 일은 우리집마당에서 일어났다.

금요 기도회 가기전 차를 기다리다가 시간이 남아 무료해서

하은이, 하빈이랑 마당에서 장난삼아 체조를 했다.

컴컴한 밤이고, 아무도 오가는 이가 없어 달밤에 체조흉내를 내었다.

양손을 자유롭게 쓸려니 가방이 거추장스러워 옆 소방호스위에다

얹어놓고 스트레칭 삼아 놀다가 차가 오는 바람에 애들이랑 탔다.

 

교회 도착, 내리려고 보니 가방이 없다~!

이런.... 마당에 두고 내린 것.

아무리 집앞이라 하나, 거기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마당이 아닌가.

족히 10분안쪽이 흘러버렸으니 마음이 급했다.

가방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란 법도 없고,

지갑이랑, 개인소지품이 다 들었는데...

급한대로 5층 엄마 전화번호를 눌렀다.

경산 시댁에 가 있단다.

다른집 전화번호는 모른다.  빨리 아는 집으로 연락해달라고 부탁해놓고 기다리는데.... 기도가 절로 나왔다.

이런 건망증을 어찌하면 좋을지...

다행히 얼마 후 7층 엄마가 내려가 가방을 찾았단 소식을 들었다.

근 한 10분사이에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든지, 보았더라도 무심히

넘겼든지, 아뭏튼 하나님 은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좀 부끄럽지만, 냄비는 서너개, 찻주전자는  3개

째 태워먹었다.   후라이팬 태워먹은것 빼고도....

아줌마세월 13년에 그 정도면 평균이라며 동급인 아줌마가 위로하는 말을 감안하더라도, 예전의 내가 아님을 나도 알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내머리속의 지우개가 작동되고 있다.

 

헌데, 그 지우개는 정말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은 안 잊어버리고,

안 잊어먹어야 할 비밀번호라던가 중요한 날이나 살림살이는

잘 잊어먹으니 어쩌면 좋을지...

 

믿든, 안믿든 처녀시절엔 제법 총명했다.ㅣ

성경 겨우 두번통독했을 때인데도, 어디 말씀이 어디쯤 나오는지

감이 탁탁 잡히고 상황에 맞는 말씀을 잘 찾아내기도 했다.

주일학교 교사시절에 영남 성경고시에 애들 내보낼때는

가르치면서 나도 절로 공부가 되어 왕들이름하며, 그 업적하며, 요절까지 머리에 쏙쏙 암기가 됐었다.

 

그런데.....

아무리 애를 많이 낳아도 그렇지...

첫애낳고부터 그 증상이 시작된 건 맞다.

왜 여자들은 산고를 겪고나면 건망증이 생기는 걸까.

그 정확한 이유를 의학적으로 잘 모르지만, 아마도 사람속에서

사람이 나오는 그 기막힌 과정속에서, 극심한 고통과 해산의 수고속에서 뇌속에서 뭔가 일이 벌어졌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전화번호부를 보지않아도 번호를 척척대던

사람이 근 20년 가까이 쓰는 은행계좌번호를 아직도 봐야한단 말인가.  식구들 주민등록번호 외는 건 아예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냥 의료보험증 보든지, 등본 떼보면 되지 그걸 굳이 외우려고 하는 자체가 에너지 낭비인 것 같아서...

살다보면 그보다 더 급하고 기억해야 일이 천지인데, 가끔 필요한

주민등록번호까지 어찌 외고 다닌단 말인가.

 

아줌마들은 다 나같이 그런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전 우리집에 놀러온 친구는 애가 셋인데도,

저희부부까지 다섯명 주민등록번호를 다 외고 있었다.

내가 놀라워하자, 그냥 외워지던데...이런다.

그 친구가 특별한 건지, 내가 예외인지는 모를 일이다.

 

언젠가는 시어머니 생신날을 깜박한 적도 있다.

추석지나고 5일째 되는 날이 생신이라, 음력으로 하면 10월에 주로 걸리길래, 막연히 10월생각하고 9월 어느날, 평소와 다름없이 있는데, 저녁무렵에 어머님이 애들아빠 폰으로 전화를 하셨다.

그 때 애들아빠는 피곤한지 잠깐 누워있었고 내가 받았다.

~~어머니, 웬일이세요?

~~어,,, 갸 있냐?

~~네, 잠깐 잠들었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다....

 

별 말씀 없고 그냥 전화는 끊어졌다.

할 말 있으시면 집전화로 하시면 될 걸 아들이 보고싶으셨나....

대수롭잖게 여기고 깊은 밤, 잠이 막 들려는 찰나!

섬광같이 머리에 스치는 이것은!!

 

벌떡 일어나 달력을 보니

오호라 통재로고....

그 날이 음력으로 엄니 생신인 것이었다!

그 해는 음력으로 해도 9월이었던 것.

 

벌써 야심한 시각이니 어쩌지도 못하고

잠든 애들아빠를 두들겨 깨웠다.

자기도 몰랐냐고...   오늘 엄니 생신인데....

괜히 아들 낳아도 소용없다고, 엄마 생일도 모르는 아들이

어디있냐고 자는 남편을 애궂게 불효자식만들어놓고

발을 동동 굴려도 이미 차는 떠난 것~~!

 

하루종일 연락이 없으니, 저녁때나 되면 오려나 싶어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그래도 만만한 아들한테 살짝 전화한 것인데

눈치코치 없는 며느리가,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어머니, 웬일이세요... 했으니, 울 엄니가 무슨 할 말이 있으셨겠나..

성질이 대쪽같은 무서운 엄니같았으면

호통이라도 치셨을텐데, 맘씨 고운 울 엄니는 그만 기가 막혀

말씀을 잊으신게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왜 전화했냐고 묻는 며느리앞에서 딱히 말씀도 못하시고, 그냥 끊었을적에는.... 아이고,,,, 같이 사는 아주버님이라도 전화를 주시던지...

 

내가 겪어보니 울 시댁은 철저히 남성주의라

내가 안 챙겨드리면 엄니 생신은 아무도 신경을 안쓴다.

아들도 모르고, 아버님은 더더욱 모르시고....

 

해마다 케이크를 꽂아도 아버님은 오늘 뭔데...하는 표정이시니

어머니 생신을 내가 안 챙기면 누가 챙기냔 말이다.

그런데, 하나뿐인 며느리가 종일 소식도 없다가 그냥 지나쳤으니...

아마 밤에 주무시면서, 내 팔자야~~ 하시지 않았을까.

 

불켜고 달력확인하고, 시계는 11시를 넘었고 혼자 가슴을 치다

그 다음날  아침에 전화를 드렸더니 엄니는 그냥 웃으셨다.ㅣ

 

생일은 지나서는 안한다고 하지만, 그 다음날 저녁에 온식구가

케이크 대신 고기 사갖고 가서 먹은 기억이 난다.

 

그리하여, 내 머리속의 지우개가 날로 왕성해지는 것을 막고자

그 다음해부터는 아예 새해달력 받으면 검은 싸인펜으로 중요한날을 표기하고 있다.

 

애들 김밥싸는 날도 잊어먹을까 싶어 꼭 달력에 표해놓고...

한번은 교회선교원 다니는 하경이 도시락을 안 씻고 보낸적도 있다.

일단 씻어 마르면 아침에 바쁠까봐 하루전에도 넣어놓곤 하는데

어느날 딱 가방보니 벌써 도시락이 있는거다.

내가 언제 씻어서 벌써 넣어놨냐 ... 이러고 그 다음날 보냈더니

점심시간에 안 씻은 도시락이 그대로 공개된 거다.

창피... 교회집사님이 선생님이신데 부끄러워 민망해죽는줄 알았다.

 

애들 안 잊어먹고 사는 것만 해도 감사지 뭐....

건망증에 길치라 한번 갔던 길도 아리송하고

지하철에서 깜박하고 한두정거장 더 가는 것도 다반사고

택시비 아끼느라 모르는 새댁이랑 같이 타놓고

그 새댁이 먼저 내리는데, 난 똑같이 요금나눈다고 반을 그 새댁을 주고, 조금 더 가서 내가 내릴때 기사한테 요금 다 주고, 그러고도

합승해서 아낀줄 착각하다가 그 다음날 되어서야 계산잘못해서

택시비 더 쓴 걸 아는 우둔함까지....

빨리 내려야되는데 동전 수북히 손에 쥐어주며 얼른 가라고 말하는 나를 잠깐 쳐다보던 그 새댁은 나를 속으로 얼마나 머리나쁜 아줌씨라고 놀렸을까....

 

비록 900원밖에 안되는 돈이었지만(그땐 기본이 1800원)

잔머리 잘못 굴린 바람에 구만원 날린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친구랑 그 얘기하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난 이렇게 산다우~~

놀려도 어쩔 수 없고~~

애 낳고 건망증 생긴 아줌마들은 동감할런지 몰라도

아직 쌩쌩한 아가씨들은 코웃음칠런지 몰라도,

그대들도 결혼해서 애 낳아봐~~

차인표 마눌님 신애라가 옛날에 토크쇼나와서 하는 말이

애 낳고 달라진 점은 건망증이 생겼다더니,

예쁘고 똑똑한 그녀에게도 피해갈 수 없었던 건망증이 나한테는 안오리라고 누가 장담할 쏘냐.

 

내 머리속의 지우개로 인하여 피해를 최대한 줄이려면

달력에 동그라미 크게 해놓고, 요즘엔 휴대폰에 일정 알림기능이 있으니 그것도 이용하고, 메모하고....

 

아주 중증인 사람들은 자기손에 폰을 들고도

없다고 온 집안을 헤매고 냉장고나 전자레인지안에서 전화기를

발견한다고 하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말씀보고, 생각해서 묵상하고, 기록하고

외워보기도 하고, 찬양도 크게 부르고 박수도 크게 치고

뭐든지 적극적으로 열심히 하다보면 뇌도 팍팍 돌아갈 것.

 

우리집 막내 하빈이가 벌써 시편 23편 앞부분을 더듬더듬

외우는 걸 보면 나도 질쏘냐.

언니가 몇번 읽는 걸 듣고서도 그 정도인데,

명색이 어른이 되서 애만도 못해선 안될것이다.

 

나는 노력할 것이다.

비록 식구들 주민등록번호를 다 못 외운다고 해도

말씀이라도 줄줄이, 찬양이라도 줄줄이 입에서 나오도록 익히고

연마하여 나이들어서도 꼬장꼬장하게 할말 다하고 기억다하는

아줌마가 되기로.

 

식구들 생일은 아직 저장이 되고 있으나, 친구들 생일까지는 내 용량밖인 모양이다.  마음은 있으나 언제든지 지켜지지 않는다.

어떤해는 내가 내 생일도 모르고 아침나절 보내다가

미역국 먹었냐는 친구전화받고서야 안 적도 있다.

그 친구는 아직도 생일날, 결혼기념일 같은 날 꼭 전화를 해주는데

난 한번도 갚지를 못했다.

이 맘때인데 싶으면 벌써 지나가 버렸고...

섭해서 삐질 친구 아니니 만만해서 그냥 또 지나치고...

 

내년부터는 친구들 생일도 달력에 적어놓을까보다.

팍팍한 세상에 문자라도 하나 날리면 좋지 않을까....

 

내 머리속의 지우개는 이제 그만~

지혜와 명철로 덧입혀질찌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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