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3세 여자랍니다.
남친이랑 사귄지는 1년 반 됬어요!
평소에 꽤나 자상한 남친인데, 유독 이번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혼자 알기엔 쬐끔 아까워서
이렇게 판을 쓰게 되었어요~
며칠전의 이야기인데요.
제가 원래는 잘 안 체하는 튼튼 체질인데, 이상하게 지난 주말동안 계속 체해서 드러누웠었어요.
첫날은 그냥 좀 많이 먹어서 체했나보다, 하고 남친이 중지 손가락을 따줬어요.
근데 당시엔 좀 괜찮은 것 같다가 나중에 밤에 자려는데 너무 배가 아파서 잠도 못자겠더라구요.
그래서 잠을 설친 저는 다음날은 복통이 더 심해서 완전 드러누웠어요.
계속 배가 울렁울렁, 꿀렁꿀렁, 그리고 머리는 울리고 어지럽더라구요.. 자꾸 토할 것 같은데 또 안하고..
이런 제가 걱정이 되었던 남친은 제 증상을 지식인에 쳐보더니
이건 식중독으로 엄청 체한 거거나, 아님 장염이라는 거에요! (두둥...저는 장염이 무섭게 다가왔어요ㅠㅠ.)
원래 나름 튼튼해서 감기도 잘 안 걸리는 저인데 도대체 왜 주말에 그렇게 끙끙대며 누워있어야했는지..
어쨌든 남친이 그러면서 이것은 고칠려면 죽만 먹거나
아님 하루종일 물만 먹고 배를 비워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저에겐 정말 배가 아픈 것 만큼이나 고통스런 일이었죠..
먹는게 삶의 낙인 저에게서 음식을 뺏어가다니!!!
하루종일 굶으면 (그런 적도 없지만) 전 분명히 흐느적흐느적 파김치가 되어 아무것도 못하고 널부러져있을텐데..
그래서 제가 절대 그러긴 싫다고 때를 썼는데 남친이 어거지로 죽을 끓여서 저에게 맥였어요...
네, 진짜 억지로 맥였어요.-_-
정말 맛이 없더라구요. 아니, 맛없는 게 아니라, 종이죽 먹는 것처럼 무미했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그냥 아무것도 안 넣은 흰죽만 먹기 싫었던 저는 빡빡 우겨서 죽에 반찬을 챙겨 먹었답니다.
남친은 그냥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거기까지는 봐주었죠.
암요, 음식에 대한 집착에 한해선 남친이 저를 이길 수가 없거든요.ㅎㅎㅎ
그런데 죽을 먹고 좀 이따가 또 배가 너무너무 아파서 미칠 것 같은 거에요.
그래서 남친이 '거봐라, 아무것도 안 먹거나 죽만 먹으랬더니 억지로 반찬 먹어서 그런거다' 이러면서
열손가락과 양쪽 귓볼까지 (으흑) 다 따버렸어요.
그러고선 자꾸 트름이나 방구나오면 참지 말라면서 배 쓰다듬어주고.. (네..뭔가 민망하지만 참 자상한 남친이죠?^^;;)
그 다음날...또 다시 복통에 잠을 못 이루고 또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저는 완전 쾡해져 있었는데..
남친이 오늘 하루는 정말 아무것도 먹으면 안된다고 못을 박더라구요.
아님 먹더라도 그냥 흰죽. 그냥 아무것도 안 넣고 반찬도 없는 흰죽만 홀짝홀짝 먹으라고...
저는 이날은 아예 반항(?)할 힘조차도 없어서 그냥 남친이 하는데로 하자, 라고 생각했죠.
근데 하루종일 안먹으니까 복통에 추가해서 머리가 빈혈이 오는 거에요.
이건 뭐 일어나기만 해도 머리가 띵 하면서 앞이 새하얘지고...
이런 저를 보면서 남친이 너무 안타까웠던지 마침내 뭔가 비장한 표정을 하고는 스페셜 죽을 끓여주겠대요.
평소에 요리를 자주 잘 하는 남친이라서 저는 아픈 와중에도 아싸 가오리를 속으로 외쳤죠.
죽이면 어때. 흰죽만 아니면 돼! 하는 심정..?ㅎㅎ
그리고 한참을 부엌에서 뚝딱거리던 남친이 들고나온 죽...
뭔가 평범한 죽보다 누런 색을 띄고 있던 죽..
그저 배고픈 맘에 한입을 떠먹은 저는 정말 겉으론 살짝 움찔했지만 속으론 정말 온갖 생각이 다 들었어요.
뭐지, 이 미지의 맛은...?
도대체 뭘 넣어서 어떻게 끓이면 이런 미스테리한 죽이 탄생하는 거지?
달면서, 텁텁하면서, 니글니글하면서, 짭짤한 그 맛!!
으으... 아직까지도 혀가 받았던 그 문화(?)쇼크가 잊혀지지가 않네요.
그때 사진을 찍어놨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아팠던 몸이라 그럴 정신은 없었어요.
남친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맘에 죽은 한 반그릇정도 먹었는데, 도저히 그 이상은 못 먹겟더라구요.
나중에 남친이 '뭐야, 맛없어?' 하면서 남은 죽을 맛보더니
자기도 '욱'하면서 '이건 먹을 게 못되' 이러더라구요.=_=
(뭐야, 아픈 환자한텐 반 그릇이나 먹여놓고!! 자긴 맛도 안본거였어!?)
뭐, 며칠동안 간병해준게 고마운건 사실 너무 고마운 거니까요.
제가 '아니야~ 먹을만 해~'라고 했는데,
남친이 '그래? 나 엄청 많이 끓여서 앞으로 한 7그릇은 더 나올텐데' 라는 말에 헉...-0-
저도 모르게 '아니야 ^_^ 그냥 오빠 말대로 물만 마시고 하루종일 굶을께'라고 해버렸답니다.
(지금 에서야 생각하게 된건데 혹시 이게 절 자진해서 굶게 만들려고 한 제 남친의 교묘한 작전??)
그 죽을 더 먹었다간........ㅠㅠ 전 영원히 장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스멀스멀~
결국에 그 죽은 다 버렸죠. (남친에겐 너무 미안하지만 남친도 그 맛이 정상이 아님을 인정했어요.ㅋㅋ)
나중에 알고보니 제가 단걸 워낙 좋아하니깐
제가 좋아하는 걸 넣으면 흰죽보다 맛있게 먹겠거니, 하고 만든 거였대요.
그래서 넣은 재로가: 누룽지, 우유, 미숫가루, 물엿, 잣, 소금.......................;ㅁ;
뭐야 이건!!!!!!!!!!!!!!!!!!!!!!!!
전 사실 이 재료 얘길 듣고 한번 더 (더 큰)쇼크에 빠졌었답니다...
오묘한 맛의 정체를 밝혀낸건 기쁘지만 정말...다시는 먹고 싶지않은,
멀쩡한 사람도 체하게 만들 남친의 엽기죽이었답니다.
뭐, 별것도 아닌 얘긴데 엄청 길어졌네요... 근데 전 뭔가 웃겨서 ㅋㅋㅋㅋ
만약에 다 읽으신 분 있다면 감사감사해용~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