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중에 딴생각 하는거 악취미 아냐?]
샤워를 마치고 나온 승주를 향해 볼맨 목소리가 던져진다.
[....미안...]
[요새 너 이상하다. 돌아가는 시간도 빨라졌고...설마..나 말고 또 있는거야?]
우빈의 빈정임에 울컥한 승주가 머리수건을 집어 던진다.
[ㅋ...아닌가? 그럼 다행이지만]
짖꿎은 농담을 던지듯 우빈은 슬며시 윙크하며 샤워실문을 열었다.
[....비참하다. 한 승주...너 지금 뭐하는 거냐?....다른 녀석 이름이나 외쳐대는 남자품에 안겨서....]
승주는 매번 느끼는 허탈함과 자신의 무능함에 눈물이 흘렀다.
차 우빈을 만나면서 매번 늘어나는 자신의 초라함.
거절하지 못하고 이끌려 들어오는 자신의 나약함.
관계 후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그의 공허함...
알고 있다.
어차피 처음부터 알고 시작된 관계
그것을 받아들인 자신이 지금은 원망스러웠다.
유 신 현....
우빈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이.
그리고, 우빈이 죽도록 증오하는 아이.
그들의 관계엔 어느새 '유 신현'이란 이름이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승주는 서서히 이런 관계에 지쳐가고 있는 자신을 통솔하지 못하고 있었다.
[룸 서비스 불렀으니까 밥먹고 나가자]
[갈께]
[한 승주! 너 왜 이래?]
우빈이 승주의 손목을 휘어 잡는다.
[피곤해서 그래. 그만 쉬고 싶어]
승주는 우빈의 팔을 뿌리치듯 거부하며 호텔을 빠져나갔다.
승주의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던 우빈은 젖은 몸을 닦지도 않은채 침대위로 털썩 주저 앉는다.
[뭐야....진짜....]
우빈의 몸에서 흘러내린 물방울들이 금새 시트로 베어나오고 있었다.
승주는 택시를 잡으려다 그냥 걷기를 선택한다.
우빈의 차를 타고왔기 때문에 택시를 이용해야 했지만, 외각에 위치한곳이라 좀처럼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머리를 식히기엔 새벽의 산보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혼자야?]
[어? 건영? 왜 나와 있어?]
[나도 이제 막 온거야. 얼마나 걸어온거야? 코끝이 빨갛다?]
[음....한 1시간 정도? 뭐...도중엔 택시를 타긴 했지만...미안...오늘]
[들어가자. 감기 걸리겠다.]
건영은 승주의 다음말을 막아서듯 서둘러 맨션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머뭇거리던 승주도 열려진 문을 향해 몸을 숨긴다.
그리고 그 둘이 들어선 맨션의 불이 켜질때쯤 길 모퉁이에서 차 한대가 시동을 걸어 그곳을 빠져 나갔다.
그는 다름아닌 우빈이었다.
[너... 괜챦아?]
쇼파에 반쯤 몸을 눕힌 승주를 바라보며 건영이 걱정스레 묻는다.
[...뭐가?...]
[힘들어 보여.... 마음은 주지 않는게 좋아. 그곳에 오는 사람들 진심 아니니까]
[알아... 그 정도쯤은]
승주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듯 힘겹게 쇼파에서 일어섰다.
건영과의 대화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건영은 승주의 의도를 알아차린듯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서는 승주를 묵묵히 지켜보기만 할뿐....
[ ' 정말... 알고 있는거냐?...']
승주의 눈빛이 변해 있음을 느낀건 얼마전 클럽바에서 둘의 대화 모습을 보고 난 후 였다.
그의 푸념을 경청하는 승주의 눈빛
그의 행동 하나하나 따라 붙는 시선
돌아오지 않는 그의 시선에 안타까워 하는 눈동자.
그리고 .... 그를 향한 미소.....
"덜컹"하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승주의 마음이 그대로 들어나 보이고 있었다.
사랑 한다고...사랑하고 있다고....
승주는 그를 향해 온몸으로 전하고 있었다.
자신의 눈에 또렷이 보이는 그의 고백이.... 그 녀석에겐 전해지지 않았다.
단순한 섹스 파트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관계.
건영은 그런 그를 어느날 부터인가 질투하고 있었고, 그 마음은 증오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승주를 사랑하는건 아니다.
4년동안 같은 지붕아래서 동고동락 했기에 가족과도 같은 사이...아니...고아인 자신에겐 승주가 형이고 동생이었다.
그의 연예대상이 남자이건, 여자이건 상관 없었다.
그 또한 바이 였으니까...
어쩌면 자신의 환경에 영향을 받은것일수도 있다고 혼자서 미안해 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느낌이 좋지 않다.
그 남자의 모든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
거북하고 추악하다.
이런 증오심을 일으키는 원인또한 불분명하다.
그러나 이상하리 만치 그에 증오심은 하루가 지날수록, 승주의 모습이 지쳐갈수록 더 증폭되고 있었다.
[차. 우. 빈....]
건영은 마시던 맥주캔이 형체가 알수 없을만큼 힘을 주어 찌그러 뜨린다.
승주는 캄캄한 방안을 우두커니 서 있다.
머리속엔 하나의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 끝내야 한다....']
힘없이 주저 앉은 승주의 어깨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주체할수 없는 눈물이 ....
[' 어떻게?...어떻게....끝을 내야 한단 말인가....어떻게...']
상대를 사랑하는 감정이 생겨나는 순간 그 관계는 끝인것이다.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열심히 노력했는데...듣지 않으려...보지 않으려...애썼는데...마음이...마음이 내 이성을 이탈해 버렸다.
그렇게 승주의 흐느낌은 오래도록 끝나지 않았고, 방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의 소리에 건영은 더 많이 아파하며 괴로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