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무너지는 것들 옆에서- 고정희

정다은 |2010.06.24 01:17
조회 106 |추천 0

 

 

  

내가 화나고 성나는 날은 누군가 내 발등을 질겅질겅

밟습니다 내가 위로 받고 싶고 등을 기대고 싶은 날은

누군가 내 오른뺨과 왼뺨을 딱딱 때립니다 내가 지치고

곤고하고 쓸쓸한 날은 지난 날 분별없이 뿌린 말의 씨

앗, 정의 씨앗들이 크고 작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힙니다. 오 하느님, 말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정을

제대로 다스리기란 나이를 제대로 꽃피우기란 외로움을

제대로 바로 잡기란 철 없는 마흔에 얼마나 무거운 멍에

인지요.

나는 내 마음에 포르말린을 뿌릴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따뜻한 피에 옥시풀을 섞을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오관에 유한낙스를 풀어 용량이 큰 미련과 정을 헹굴

수는 더욱 없으므로 어눌한 상처들이 덧난다 해도 덧난

상처들로 슬픔의 광야에 이른다 해도, 부처님이 될 수

없는 내 사지에 돌을 눌러 둘 수는 없습니다.

- 무너지는 것들 옆에서, 고정희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