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첫번째 썼던 글에 폭발적인(?) 반응 감사드립니다. 태어나서 인터넷에 뭔가 올려봤던 것 중에 저 정도 조회수나 추천수를 받아보기는 처음인것 같네요. 이번 글도 따뜻한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
일단 어제 글을 쓰고나서 코넬 대학교 한인동문회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현재 답장을 기다리고있는 중이에요. 좋은 소식이 날아왔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리고 Roland 할아버지껜 혹시 친구분의 full name을 아시냐는 이메일을 하나 보냈죠. 제가 썼던 답장 첨부합니다.
(해석)
켈러씨께,
혹시 친구분의 full name을 아시는지요? 아마도 친구분께서 주신 이름은 full name이 아닐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미국에서 공부할때는 Yoon Chang이라는 이름을 쓰고 Cheol은 사람들이 발음하기 힘들어 했기 때문에 중간 이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한국 이름의 대부분은 세음절로 되어있기 때문에 친구분도 같은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코넬 한인 동문회에 한번 연락을 취해 그분의 신상정보가 있는지 알아보고 꼭 친구분을 찾으실 수 있게 열심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정말 친구분을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에 대해 기억나시는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친구들과 모여서 네덜란드-브라질 전을 보고있는데 (브라질 지못미 ㅠㅠ) 답장이 날라왔습니다. Roland씨가 어떤분이신지는 전혀 모르지만 제 답장이 얼마나 반가웠고 친구분을 찾으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얼마나 기뻐하고 계신지 눈에 선해서 참 또한번 가슴이 따뜻해지더라구요.
(해석)
당신의 답장이 얼마나 고마운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와 저는 매우 친한 친구였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코넬 한인 동문회에서 소식을 기다리는 것에 가장큰 기대를 걸고있습니다.
그는 외국인들에게 자신을 장양 이라고 소개했으며 저 또한 그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Yang에서 a 발음이 길었습니다). 그와 1966년 가을에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았을 때 그는 코넬 대학원생이었습니다. 엔지니어링 석사 공부를 하고있었던 것 같은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이야기했듯이 그의 어머니는 풍문여고의 선생님이셨습니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그곳에서 영어를 가르치셨고 그래서 그와 저는 1959년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몇년동안 매 주말을 함께 보냈고 매우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신문기사를 하나 첨부합니다. 기사 밑에 있는 사진은 그 당시 촬영되었으며 제 어머니가 이승만 대통령 오른쪽에 서계십니다. 제 부모님은 두분 다 한국어를 잘 하셨습니다.
서울에 있는 그의 집 주소로 종종 편지를 쓰곤 했는데 지금은 주소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당시 동암동 으로 불리던 그곳은 현재 권농동이라 불린다고 알고 있습니다.더 도움이 될만한것이 없나 다시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얼마나 당신의 도움이 고마운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Roland
아래는 이메일에 함께 첨부되어왔던 신문기사와 사진입니다. 신문기사의 내용은 Roland할아버지의 부모님께서 외교관의 수행군인으로 한국에 오셨으며 그 어머니께서 한국에서 원어민 강사로 풍문여고에서 영어를 가르치시며 한국말도 잘하셔서 수업이 인기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에서 왼쪽에서 세번째 서계신 분이 아마도 그 어머니가 아니신가 싶네요.
현재까지 상황은 많은 진전은 없었습니다만 조만간 동문회에서 연락이 오지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그당시 유학생활을 하신분이 많지 않을것으로 생각하여 신문사에도 요청을 해놓은 상태입니다. 롤란드할아버지께는 또 답장을 드렸구요, 여기저기서 소식을 기다리는 동안 그당시 이야기를 좀 더 듣고싶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두 할아버지의 50년에 걸친 우정, 두 분 꼭 다시 만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글 올릴 때 쯤에는 좋은 소식 가져다 드릴 수 있었음 좋겠네요! 이 글 읽어주시는 여러분께서도 많은 응원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