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날씨란 정말 예측 불가이다. 구름이 꽉 꼈다가도 갑자기 맑아지고, 비가 내리다가 갑자기 더워지고.
파리의 날씨도 변덕스럽기로 유명한데, 아침엔 먹구름이 꼈다가 점심 먹을 때 쯤 되니 또 해가 쨍쨍하고,
집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별 계획 없이 온 파리라 아야미에게 어디 가면 될까? 하고 물어보니 아야미 왈
"그냥 걸어다니다 보면 다 나와."
네넴!!
파리는 생각보다 작은데, 유럽에서는 굉장히 큰 도시에 속하지만 사실 서울과 비교 했을 때
매우 작다는 생각이 든다. 10분 정도 걷다보면 다음 지하철 역이 나올 정도로 역과 역사이의 간격이
좁으므로 지도를 보면 그냥 다 걸어다닐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걸어다닐 수 있다.
다리가 좀 아파서 말이지, 마음만 먹는다면 걸어서도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제 산 일주일 패스권을 본전 뽑을 때까지 쓰기 위해 난 걸어서 15분 거리도
지하철을 탔다. 내가 도착한 날은 화요일인데 이 일주일 패스권은 무조건 일요일에 끝나기 때문에
5일간 지하철을 15번은 타야지 본전을 뽑는 것이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22유로가 4만4천원이
되어버린 시점에 여행을 한 나로서는 무조건 많이 쓰고 봐야 했다.
노트르담 성당을 다녀온 후 우린 소르본 대학교를 향했다. 소르본 대학교에서는 데모가 한창이었는데
이미 휴업을 한 지 한달이 넘었다고 한다. 데모의 이유는 정부의 새로운 교육정책 때문이라나 뭐라나.
프랑스의 국립학교는 학비가 거의 제로에 가까운데 무엇이 바뀌길래 이렇게 휴업까지 하면서
데모를 하고 있나 싶었다. 물론 소르본 대학의 외관은 굉장히 중세시대스러웠는데 한 건물이 너무 커서
"와, 정말 무식하게 크네!"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판테온)
소르본 대학교에서 조금만 이동하면 판테온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르네상스의 주역들을 모신 곳이라고 한다.
난 사실 르네상스의 주역들이 누구인지도 모를 뿐더러 들어가도 분명히 별 생각없이 한번 쉭 둘러보고
나올 것이 뻔하므로 외관에서만 보았는데 판테온에서 바로 보는 거리 풍경도 활기차고 맘에 들었다.
슬슬 배가 고파진 우리는 어디서 점심을 먹을까 하다가 어느 때처럼 고민만 실컷 하다 결국 가는 곳은
승리의 맥도널드!! 화장실도 있어! 쉴 수도 있어! 영어도 통해!
파리까지 와서 맥도널드 먹냐고 할 수 있겠지만 먹고 싶은 걸 어떡해.
"내가 파리까지 와서 맥도널드를 먹는구나... 부다페스트에서 어디 나가면 뭐 먹지? 고민만 하다가
맥도널드 행인데. 결국 파리에서도..."
(맥도널드에서 아야미와 나)
아야미와 나는 한번 수다가 시작되면 끝이 없는 타입이라 한번 자리를 깔면 나가기가 참 힘들다.
"우리 지금 한시간 반째 휴식인걸?"
"이래서 안 돼... 기억나? 우리 교토에서 만났을 때 쯔지리(교토의 유명한 파르페집)에서
3시간 수다 떨었잖아! 사람들 줄 서서 기다리는 지도 모르고!"
1년 전 교토에서 오후 1시에 기상해서 2시에 아야미를 만나 쯔지리에서 3시간을 보내고,
신사 하나 들렀더니 6시. 교토는 전에도 와봤다며 결국 쯔지리에서 수다 3시간과 신사에서 30분 정도
보내고 쇼코언니 집에 가서 오코노미야끼 해먹은 기억이 떠올랐다.
여유로워도 너무 여유로웠던 나의 1년 전 일본 여행. 기상 시간 평균이 10시였으니 말 다 했지 뭐.
맥도널드를 나와 산책하는 기분으로 거리를 걸으니 그 거리 끝에 룩셈부르크 공원이 있었다.
파리인들의 쉼터라는 데 정말 들어가 보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나른한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아직 3월인지라 무성한 푸르름은 없었지만 충분히 공원의 분위기는
상상했던 여유있는 파리지엔느들의 휴식처였다.
(여기는?! 룩셈부르크 공원)
(여기도 룩셈부르크 공원!)
(맑은 하늘과 어울렸다.)
3월 말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유럽의 날씨는 우리나라 날씨의 2월정도로 추운데
둘 다 멋부린다고 봄옷을 입고 나왔다가 이러다가 동태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아야미집에 돌아가서
조금 쉬다가 다시 나갈 생각으로 돌아왔다. 한번 들어와 앉으니 엉덩이를 뗄 수가 없다.
시계를 보니 벌써 7시! 이미 완전히 해가 졌다. 그리고 더 문제는!
7시면 파리의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 날에 나의 파리 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가려고 했던 에펠탑을 보러 갔다.
역에서 내리자 마자 흑인들이 "원 유로!!"를 외치며 나에게 달라붙기 시작하는데
여기가 파리인 지 아프리카 어느 곳인지 모를 정도로 에펠탑 기념품을 팔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엄청 큰 규모에 흠짓 놀랐다. 조명이 예뻐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와"하며 감탄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에펠탑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서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돈을 아낀다는 일념에서 계단으로 정상까지 오르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몇 유로 아낀다고 저 고생을...'
아래에서 에펠탑을 우러러 보는 것으로 대만족했다.
(예쁜 에펠탑)
"아야미! 한국 음식 해줄테니까 뭐 먹고 싶은지 말해봐!"
"꺄! 불고기 먹고 싶어!"
"고추장 있어?"
"물론! 샀지! 다 있어. 일본에서 다 가져 왔어."
사실 헝가리에 와서 한국음식을 단 한번도 먹지 못 해서 몇번이고 고추장을 사려고 했지만
다들 있다고 하는 아시아 마트를 못 찾아서 사지 못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고추장을 보니
새빨간에 얼마나 예쁘던지... 항상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음식을 만들어 줄 때는 불고기를 만드는데,
가끔씩 왕창 실패 할 때가 있어서 수시로 간을 봐야한다.
(내가 만든 불고기!!!)
다 완성하고 나서 접시에 담고 새하얀 쌀밥과 함께 먹는 순간!
정말 경험해 보지 못 하고는 절대 알 수 없는 행복함이 마구 마구 밀려왔다.
내가 만든 불고기이지만 입에서 살살 녹는다. 물론 이 대작에 아야미도 대만족!
기분 좋은 산책 후의 맛있는 저녁밥. 파리의 두번째 밤, 또 시작되는 우리의 수다.
내일 어디를 갈지 계획도 없이 마치 파리에 살고 있는 사람인 듯 또 거리를 걷겠지.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행보다는 이렇게 내가 힘들 땐 쉬고,
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추고,
보고 싶은 만큼 마음껏 볼 수 있는 여행이 참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