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에 샤워한번하고 거실에서 돗자리깔고 자다가 문득 첫사랑이 생각나서 글한번 올려봅니다....
바야흐로 고2떄였습니다..
제가 인천부평에 살던떄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서울로 이사왔지만요..
제 옆집에는 저보다 4살많으신 형님과 그형님 가족분들이 지내셨죠..
그렇게 옆집과 지낸사이도 정작 7년이 다돼어갔죠..
그 형님이랑 정도 많이 들고 친하게 지내다가 언제부터 이사갈지도 모른다는얘기를 했습
니다... 저는 설마라고 생각했지만 3개월이내에 결국 다른지역으로 이사가게돼었습니다...
정말 아쉬웠고 의지했던 친형님같은분이었는데 속으로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이사를 가고 일주일뒤에 제 옆집에는 한 어머니뻘돼시는 아주머니와 아주버님이 이사를
오셨습니다.. 저는 그떄 고2올라가는 시기였고 입시 스트레스로 머리가 너무 아팠습니다..
그러다가 다음날이 돼고 학교갈준비를 하고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처음보는 여고생이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서있었습니다.
저는 누구지.라고 생각하고 옆에서 같이 기다렸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엘리베이터 거울로 그 여고생을 차마 남자인지라 힐끗 보
게돼었습니다. 정말 아리따웠습니다. 마음이 설렌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모든 혈이 치솟는느낌이었고 백지장같았죠. 말한번 걸어볼까. 4번생각하다가 결국 실패했
습니다. 엘리베이터는 내편이 아니었습니다. 아쉬운마음을 접고 학교로 가서 수업을 했습
니다. 계속 그 여고생이 생각나서 집중이 안돼고 멍만 떄렸습니다.
성격이 소심하고 수줍었던 터라 바보같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날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서 어머니한테 물어봤습니다.
혹시 옆집에 여고생 사는지... 그러니 어머니는 옆집 아주머니 아주버님 딸이라고 했습니
다. 전 너무나 떨리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다음날도 엘리베이터앞에서 그 여고생을 마주치게돼었습니다. 저랑 준비시간이 비슷한
거같았습니다.그런데 저는 바보같이 1달가량을 말한번 못해보고 엘리베이터만 같이 타면
서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고 나오고 반복하게돼었습니다.
그 여고생은 얼마나 저를 바보같이 생각했을가요.. 2달이 지나고 어머니와 옆집 아주머니
는 정말 친한사이가 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한테 여고생 이름좀 알아봐달라고 부
탁했습니다. 지금생각하면 정말 한심하고 멍청이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저한테 `` 옆집 딸래미 너랑 동갑이더라~ 이름은 세나래 ~`` 이렇게 말하셨습니
다. 저가 혼자 짝사랑했던 여고생이름이 세나 김세나 정말 이뻤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입시준비로 그냥 잊자고 잊자고 했지만 정말 잊을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봐왔던 여자중엔 최고의 이상형에 가까웠습니다. 도저히 안돼겠다 싶어서
저는 크게 마음 한번 먹고 엘리베이터에서 인사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놓칠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등교준비를 하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그 여고생이 또
있었습니다. 이번엔 꼭 인사하자... 생각했습니다. 엘리베이터는 12층에서 멈추고 문이 열
렸습니다. 마침 엘리베이터안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여고생과 저는 뻘쭘하게 엘리베이터안에서 서있었습니다. 저는 이떄다 싶어서 안녕~
세나야~ 옆집살지? 너 맨날 이시간에 학교가나봐~
이렇게 몇마디가 더 나왔습니다.
그러니 세나는 응 안녕~ 맨날 같이 타면서 인사도안해주고 이제야 해주는구나. 넌 어디학
교야? 제눈을 마주치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순간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터질
거같았습니다. 저는 한번더 용기내서 응 난 인천제일고다녀 너는 어디학교다녀? 물었습니
다. 세나는 웃으면서 난 부광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동안 엘리베이터는 1층에왔고 서로 헤어졌습니다.
마지막에 그 여고생이 저한테 해준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럼 나중에 저녁에 볼
수있으면 또 보자~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고 급하게 가봐야한다고
뛰어가는것이었습니다.그렇게 하루하루 인사하고 웃어주는정도 사이까지 발전하게돼었습
니다. 5달정도가 지나고 그 여고생은 저한테 엄청난말을 했습니다. 우리 떡볶이 먹으로 가
자~ 배고프다.. 내가 사줄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너무 좋고 내생애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응~ 나도 돈있어 같이 먹으러가자~ 말했습
니다. 가는데 전 너무 떨렸습니다. 그 여고생은 저와는 달리 무척 활발하고 발랄한 성격이
었습니다. 그걸 못맞춘 저는 얼마나 한심했는지... 그떈 미쳐몰랐습니다.
더 일찍 맞춰줄걸...하고... 그날 저녁 저와 여고생은 문화의거리 근처쪽 떡볶이 집에 갔습
니다. 서로 얼마나 배고팠는지 4인분은 시켜서 먹었던기억이 납니다.
같이 가면서 여고생은 야 남자가 왜이렇게 소심해.. 여자 손도 좀 잡아보고 나 깡패한테 잡
혀가면 어떻게 할거야? 묻는것이었습니다.. 순간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마디했습니다. 나 안소심한데.. 대담한데.. 손줘 잡아줄게.. 이렇게 말하고
덥썩 그 여고생 손을 꽉 움켜잡았습니다. 그날 마침 첫눈이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봤던 그 여고생은 정말 순수하고 청순했습니다. 저는 꿈만같았습니다. 고백이라도 해
보고싶었지만 결국 자신감부족이었던지 그떄 한번 해볼걸... 차이더라도 해볼걸...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2말까지 그 여고생과 함꼐 많은 추억을 보냈습니다. 같이 노래방도
가고 시험끝나면 맛집도 찾으러 다니고 그때는 정말 잊을수없는날들이었습니다. 봄날이
오고 고3이 돼었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 여고생과 함꼐했던 몇달
은 1주일 같았습니다. 그런데 고3이 돼고 언제부턴가 엘리베이터 앞에 그 여고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처음에 많이 피곤해서 늦게 나오는줄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다음날도 그
다음다음날도 여고생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지못했습니다. 저는 너무 궁금해서 어머니에게
혹시 세나 요즘 뭐하는지 물어봐줄수있어요? 부탁했습니다. 어머니는 알고있는듯이 저에
게 사실.. 세나 외국으로 유학갔어 근데 너한테 절대 말하지말라고 부탁했어.. 세나가 세나
어머니한테 절대 애기하지말라고 했데.. 그떄 저는 절망적이었고 죽고싶었습니다. 모든게
허황된 꿈이었던거같았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그게 진짜냐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어머니
는 진짜라고 미안하다고 말하셨습니다. 나의 첫사랑이자 이상형이었던 그 여고생을 다시
만날수 없다고 생각하니 미칠거같았습니다. 그렇게 1주일을 마음고생하다가 제 마음을 정
리했습니다. 어쩔수없지... 인생이 뭐 그런거지.. 이렇게 생각하고 입시공부에 매진하게돼
었습니다. 그 여고생은 캐나다로 유학갔던것이었습니다. 저한테 미안한 마음은 있었는지
캐나다 토론토에서 편지한통이 와있었습니다. 전 그때생각했습니다 . 아직도 날 생각하고
있구나... 좋았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저는 답장을 바로 해줬습니다. 그렇게 서로 한달에 2
번 고3말까지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서로 볼수는 없어도 편지로라도 소식을 알수있어서
좋았습니다. 고2때의 몇달간 여고생과의 추억의 이야기도 주고받으면서 회상했습니다.
결국 저는 고3 학기를 다 마치고 대학을 갔습니다. 대학 원서쓰는기간에도 편지는 계속 주
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저희부모님이 서울로 이사를 가야할거같다고 저가 서울쪽에 대학
을 가게돼어서 거리가 멀다고.. 꼭 가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기전 2월쯤
저희는 서울로 이사를 가게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여고생의 편지는 12월크리
스마스까지 오고 더이상 안오는것이었습니다. 내가 이사가면 이제 편지는 어떻게 주고받
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편지 한통만 더 오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하지만 그뒤로 한통
도 안왔습니다. 무슨일이 있는지 걱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희가족은 이사를 가게돼
었고 그 여고생과의 연락은 끊기게돼었습니다. 어떤 시도도 해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지금 22살이 돼있지만 그때의 첫사랑을 기억하면 너무도 가슴아프고 아쉬웠습니다. 고백
이라도 했으면 좋았을텐데... 풋풋하고 순수했던 시절 고2... 첫사랑의 그 여고생 아직도 생
각납니다.. 그래서 저는 한달에 1번씩 인천 제가 살던 곳을 지나가곤합니다. 혹시라도 그
여고생이 보이진않을지... 첫사랑은 다 가슴아프다고하는데.. 아직도 그 여고생이 생각나
는거보면 제 인연은 아니었을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