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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MT 문화

바뀌었으면. |2010.08.07 18:55
조회 3,037 |추천 2

“마셔라, 마셔라. 쭉쭉쭉쭉쭉~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쭉~”

원형으로 빙 둘러앉은 선배들이 입을 모아 우레와 같은 구호를 외칩니다. 소량의 술에도 뱃속이 쓰리고 울렁거리지만 파도 같은 분위기에 휩쓸려 쭈뼛쭈뼛 술잔을 비워냅니다. 그리곤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곧바로 안주를 집어 먹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은 처음으로 술을 먹는 풋내기의 모습을 떠올리셨지요? 이런 풍경, 오티에선 익숙한 풍경이랍니다.

  

언제부턴가 지갑에 꽂혀있던 주민등록증. 이 주민등록증만 있으면 세상 어느 곳에서건 ‘어른’대접을 받지만 아직 낯설기만 한 신입생이 많습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어 맨 처음으로 가지는 공식적, 사회적 모임이 신입생 O.T(Orientation의 줄임말)입니다.

 

빙 둘러앉아 원을 만든 후, 돌아가면서 ‘안녕하십니까. 무슨무슨학과 일공학번 누구누구입니다.’라는 딱딱하고 천편일률적인 자기소개를 합니다. 신입생과 재학생이 말 그대로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대면’을 끝내면, 신입생은 재학생의 전화번호를 받아내야 합니다. 웬만해선 1년‘씩’이나 나이가 많은 선배가 신입생에게 전화번호를 묻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신입생이 지켜야할 예의이자 의례적인 절차입니다.

 

그렇게 서로 합의하에 전화번호를 주고받으면 밥 한 끼 먹는 정도의 관계가 일차적으로 성립됩니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신입생은 대개 선배로부터 밥 한 끼의 약속을 수월하게 따내지만, 다소 소극적인 신입생의 경우 그 약속을 얻어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맺은 얕은 인연은 게임을 통해 더욱 다져집니다.

 

원으로 둘러싼 중앙에 과자안주와 술과 음료수, 종이컵이 놓이고 신입생들은 ‘경주마 게임’, ‘야! 임마 게임’, ‘텔레토비 게임’, ‘딸기 게임’ 등 들어본 적도, 해 본 적도 없는 게임에 급속도로 적응해야 합니다. 적응이 느리면 벌칙으로 술을 마셔야 하기 때문이지요.

 

술이 아직 낯선 신입생은 벌주로 음료수를 마실 수도 있습니다. 대학생 음주문화가 큰 사회적 문제가 되자, 요즈음은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많이 쇠퇴했습니다. 선배에게 직접 물어보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티에서 신입생이 음료수를 선택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분위기에 휩쓸려서 마시지도 못 하는 술을 과섭취하는 신입생은 오늘 날 여전히 존재합니다.

 

남학생의 경우, 술 대신 음료수를 마시면 ‘남자가 술도 못 하냐.’는 식의 모욕적인 시선이 따르고 대체로 여학생보다 벌주의 강도가 더 심합니다. 세숫대야 같은 커다란 술잔(?)에 술을 몇 병씩이나 비우곤 그걸 마시라고 강요하는 연장자이자 다수에 의해 하는 수 없이 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H대에 다니는 새내기 남학우는 요즘 그러한 술자리 문화 때문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선배들의 강요로 세 병 분량의 술을 한꺼번에 들이켜야 했고, 그로 인해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정신을 잃었다는 이유로 또 한 번 그는 선배들로부터 쓴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사진출처:http://japan.moyiza.com/257102

 

그는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을 ‘코끼리’로 비유했습니다. 자신이 마치 밀렵꾼(술을 강요하는 선배)들로부터 쫓기는 코끼리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선배들의 요구에 못 이겨 반강제적으로 가입한 운동 동아리 모임을 가지면서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고문’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D대의 한 여학우는 오티에서 게임을 하다가 벌칙으로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그는 평소 술을 마셔본 적이 없어 술을 잘 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술잔에 입술만 갖다 대고 말자, 한 선배로부터 ‘선배가 주는 술에 감히 입만 대고 말아?’라는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옆에 있던 다른 선배들이 ‘술을 잘 못 마신다, 이해해 달라’고 말하여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러한 대변이 없었다면 신입생이 제 입으로 ‘제가 술을 잘 못 마시니 양해 바랍니다.’라는 말을 할 수가 있었을까요? 그 여학생은 아마 선배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그러한 항변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며, 억지로라도 술을 마셨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빠, 형, 언니, 누나와 같은 말이 사라지고 ‘선배님’이라는 말이 쓰이는 오티, 엠티의 세계에서 신입생과 재학생의 관계엔 어쩔 수 없는 위계질서가 작용합니다. 자기소개를 제외하면 신입생이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선배는 한없이 여유롭고 후배는 한없이 경직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하관계가 ‘너 술 마셔!’라고 직접적인 강요를 하지 않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강요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눈에 보이는 강요는 게임 그 자체일 수도 있습니다. 게임에서 탈락한 두 명의 남녀에게 가해지는 벌칙인 ‘러브샷’은 술자리에서 볼 수 있는 그 대표적 예입니다. 그 것에도 단계가 있어서 1단계는 팔을 서로 교차하는 식이고, 2단계는 포옹하듯이 상대방의 등 뒤로 팔을 올리는 등 벌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킨십이 발생합니다. 보는 사람도, 그것을 행하는 사람도 모두 웃고 있지만 과연 모든 이들이 그 게임을 반기고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 학과를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니?’, ‘평소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니?’와 같은 사교적인 대화 없이 무작정 게임을 하고, 벌칙으로 스킨십을 한다면 그 집단에 속하는 구성원 간에 형성되는 친밀도는 단 1%에도 미치지 못 할 것입니다. 그래도 게임하면서 얼굴을 익히자는 취지의 ‘러브샷’은 앞으로 언급할 벌칙들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무릎 위에 앉아서 술 마시기, 두 사람이 빼빼로의 양쪽 끝을 먹어서 짧게 남기는 게임(가장 길게 남기면 또 다른 벌칙을 수행해야 한다), 두 사람이 모나미 볼펜의 양 쪽 끝을 각각 물고 한 사람이 입으로 볼펜대를 입으로 돌려서 두 개로 분리시키는 게임 등, 이 게임을 수행하는 이들은 생면부지의 신입생끼리일 수도 있고, 선후배지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게임이 서로 친해지는 것에 과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게임을 주도하는 자도, 그 게임에 참여하는 자도, 이와 같은 의문을 가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자들 중에서 당당하게 그 곳을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신입생은 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웃고 떠들면서 게임을 받아들이다 보면, 그 것이 성추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볍게 간과하게 됩니다.

 

 

실제로 지난 1월 29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취업포털사이트 ‘커리어(www.career.co.kr)’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4명 중 1명꼴로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주된 가해자는 ‘선배’(78%)였고 당시 상황으로는 ‘술자리’(66.7%)와 'MT·OT' (44.6%), 순으로 꼽혔습니다. 성추행의 유형(복수응답)으로는 ‘성적인 농담’(78%), ‘과도한 신체접촉’(72.3%)과 ‘외모나 몸매 비하발언’(46.9%) 순으로 많았으며 심지어는 '성관계 요구'(14.1%)까지 올라와 있어 그 심각성을 짐작케 합니다.

 

반면, 많은 이들이 당연시여기는 술시중 강요가 11.3%의 비율을 차지하여 적잖은 수가 술시중 강요를 성추행으로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추행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과반수가 '그냥 참고 넘겼다(66.5%)'고 대답했으며, 그 이유로는 '가해자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66.9%)'라고 응답하여 왜곡된 대인관계의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2001년 전체 대학의 87%가 성폭력의 정의, 적용범위, 피해자 권리 확보 및 비밀유지의 의무, 담당기관(상담소) 설치, 상담소 업무, 성폭력대책위원회와 징계위원회 운영, 사건처리에 관한 규정 등을 담고 있는 관련 조항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오티나 엠티처럼 과에서 독립적으로 진행하는 행사의 경우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성폭력규제학칙을 현실에 적용하여 사전에 미리 예방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특히 오티나 엠티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게임에 있어서는, 경직된 분위기를 깨트리는 ICE BREAKER 정도로 사용해야하며 그것이 주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게임을 할 시에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거북한 내용은 배제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건전한 프로그램을 선별해야 합니다.

 

또한 성추행과 성폭행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차단하기 위해 남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는 여학생과 남학생의 숙소를 엄격히 구분해야 하며, 적절한 양의 술을 마셔서 비이성적인 행동이 나오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술을 강요하지도 받지도 않는, 심리적으로 압박이 없는 편안한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도록 모두의, 특히 선배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신입생은 술자리 문화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런 신입생들이 제일 먼저 술자리 문화를 접하는 곳이 오티입니다. 엠티는 ‘Membership Training’의 줄임말이지만 요즈음엔 우스갯소리로 ‘마시고(M) 토한다(T)’고들 표현합니다. 오티 역시 Orientation의 약자로, 말 그대로 대학생활에 대한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동기들 간의 우애를 다지기 위해 마련한 행사입니다.

 

그러나 음주문화와 놀이중심으로 치우쳐진 까닭에 그 의미가 쇠퇴했으며 왜곡되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문제들이 야기되었으며 성(性)과 대인관계로의 왜곡에 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성폭력규제학칙이 현실화되어 불건전한 음주문화를 예방하는 것도 꼭 필요하지만, 위계질서를 앞세워 강요를 정당화하는 기존의식에 대한 반성도 중요합니다. 선배들이 후배를 아랫사람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존중하며 예의를 지킬 때 가장 폭넓고 깊은 친목과 교류가 증진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오티와 엠티의 진정한 의미역시 되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추천수2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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