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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의 글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퍼왔습니다. 읽어보셔요

내연녀 때리던 60대, 말리던 남자에 맞아 숨져

(울산=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길거리에서 50대 내연녀를 때리던 60대 남자가 의협심 강한 20대 남성에게 맞아 숨졌다.

울산남부경찰서는 12일 길거리에서 내연녀를 폭행하던 60대 남자를 말리다 때려 숨지게 한 혐의(폭행치사)로 김모(28)씨를 입건, 조사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달 7일 오전 2시50분께 울산시 남구 신정동 신정시장 인근 간선로 옆 인도에서 내연녀인 이모(56)씨의 복부를 발로 차던 정모(61)씨의 뺨을 2차례 때렸다.

김씨에게 뺨을 맞은 정씨는 뒤로 쓰러지면서 머리를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경찰은 김씨가 "여자가 길거리에서 폭행당하는 것을 보고 참다못해 정씨를 제지했으나 술에 취한 정씨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때렸으며, 숨질 줄은 몰랐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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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취한 60대, 내연녀 발길질하자
뺨 때렸는데 뇌진탕… 끝내 숨져



12일 울산 남부경찰서 형사과 사무실. 폭행치사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던 김모 씨(28)는 “폭행을 말리려고 했을 뿐인데…. 그렇게 쉽게 숨질 줄은 몰랐다”고 말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 씨가 이 사건에 연루된 것은 지난달 7일.
중국집 주방 보조로 일하고 있는 그는 일을 마친 이날 오전 2시 50분경 담배를 사기 위해 울산 남구 신정동 신정시장 근처를 걷다 중년 남자가 비슷한 나이의 여성을 발로 차 넘어뜨리고는 마구 폭행하는 장면을 봤다.

평소 의협심이 강했던 김 씨는 곧바로 뛰어가 말렸다. 하지만 이 남자는 계속 발길질을 했다. 화가 난 김 씨는 손바닥으로 이 남자의 뺨을 두 차례 때렸다.

술에 취한 그 남자는 곧바로 땅바닥으로 넘어지면서 뒷머리를 다쳐 119를 통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서 그는 며칠간 혼수상태에 있다 같은 달 19일 숨졌다.

숨진 사람은 정모 씨(61)로 밝혀졌다. 정 씨에게 폭행당한 사람은 내연녀인 이모 씨(57)였다. 경찰은 이 씨를 상대로 인상착의를 수사해 최근 김 씨를 붙잡았다.

김 씨는 경찰에서 “폭행당하고 있는 여성을 돕는다는 게 그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찰은 김 씨를 폭행치사 혐의로 입건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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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피해자분과 피해자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고개숙여 사죄드립니다.
뺨 두 대 가 그렇게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습니다.

이번사건이 생긴 후로 며칠 동안은 피해자분이 그렇게 심하게 다치신 줄도 모르고 평범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경찰 분들이 직장으로 찾아왔을 때에도 그렇게 되셨을꺼 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 하였고 조서를 꾸미고 나온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니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제발 꿈이기를 바랬습니다.
솔직히 그냥 여자분이 맞든지 말던지 지나갈껄 하고 후회도 많이 하였고 파출소로 신고를 했어야됐는데 그러기에는 너무심한구타에 여자분이 돌아가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말리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때 갑작스런 아버지의 사망으로 유복하진 않았지만 오순도순 즐거웠던 가정이 깨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마저도 집을 나가셨습니다.

자고 일어나보니 누나와 저만 덩그러니 있었고 며칠동안에는 쉰밥과 김치로 버텼습니다.

며칠이 지난후 일가친척들이 몰려와서 저희를 맡지않으려 서로 미루다가 고성까지 오고가던중 고모께서 선뜻 내가 맡는다며 저희를 키워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고모댁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우리가 생활할곳이라며 고모집이아닌 냉장고 하나만 들이면 누울공간도 없는 쪽방에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생활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소년소녀가장으로 등재 되었고 수급비는 고스란히 고모손에 들어갔습니다.

매일 누나를 불러들여 집안일을 시키고 고모집 막내아들은 매일 밤마다 이유없이 저희에게 폭력을 행사하였습니다.
맞는게 너무 두려워서 친구집에서 자기도 했지만 자고 온 다음날은 더더욱 폭력이 심해졌습니다.

쌀이 없어 밥을 굶을때가 많았고 반찬은 항상 쉬어빠진 김치 하나였습니다.
생각한 끝에 누나와 함께 신문배달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보급소에서도 어리다는 이유로 앞으로 굴러라 엎드려뻗쳐라 등등 고문이 심해 그만 둘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없는 설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때가 겨우 초등학교 2학년때입니다.

저는 다짐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반듯이 성공하고 말겠다고 저희를 괴롭혀온 친척과 주변사람들이 저희를 우러러 보게끔 반듯이 성공하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이 악물고 온갖 구박과 폭력을 이겨내며 살던중 어머니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저희를 도저히 못 잊어서 밤마다 맨발로 뛰쳐나가고 환청과 환영까지 보이고 들린다며 굶어도 같이 살자면서 저희를 데리고 어머니가 생활하시는곳에 가보니 남자어른과 갓난아기가 있었고 가스렌지도 없어 버너에 밥을 지어야 할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도 마냥 좋았습니다. 어머니가 옆에 계시니 그냥 마냥 좋았습니다.
새아버지께서도 가난하긴 하지만 너무 착하신분이셨고 저희를 잘 돌보아 주셨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할때쯤 새아버지께서 일을 하시다 5층높이에서 떨어져서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고 가난하던 집안은 더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누나는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며 돈을 벌어야겠다며 학업을 중단하였고 저도 중학교 졸업만한 후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중화요리점에서 그때부터 일을 하게 되었고 몇년후 여자친구도 생겼습니다.
힘들때마다 저를 위로해 주었고 제 사정을 알고도 결혼을 약속 할 만큼 착한여자...

그 여자가 바로 첫사랑이자 현재 제 아내입니다.

저와 누나가 일을 함으로써 밥숟갈을 덜게 되었고 어느 정도 여유도 생겨 2칸짜리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누나와 같이 방을 쓰기엔 서로가 너무 불편할꺼 같아서 제가 남자이니 나가서 살겠다고 해서 그때부터 혼자 살아왔습니다.
집으로 생활비를 보내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던중, 청천병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어머니께서 눈이 점점 어두워지신다며 헛소리도 하시고 며칠씩 집을 비우고 들어오기를 반복하신다는것 입니다.
안과에 모시고 가봐도 아무이상이 없다는 말만 들어서 결국 정신과로 모시고 가보니 정신분열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아무리 진료를 받자고 해도 자신은 미친게 아니라며 거부하셨습니다.

도저히 어쩔도리없이 3개월쯤 지났을때 어머니께서 아예 눈이 안보이신다는 말에 놀라서 대학병원에 억지로 모시고 가보니 뇌종양너무 커서 시신경을 누르고 있어서 그렇다며 울산에서는 수술을 할 수가 없으니 부산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새아버지돈과 제돈을 합쳐 수술을 무사히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수술이 늦은 바람에 시력이 많이 안 좋으시고 아직도 환청이 가끔씩 들리신다고 하십니다. 수술 후 피해망상이라는 정신병이 생겨 몸이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그렇게 여러고비를 넘기는동안 여자친구와 돈이 없어 결혼식은 못 올리고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사글세 방에서 시작한 살림이라 어려웠지만 꿈같이 행복한 나날이었습니다.

3년전 아이도 태어났습니다.
아마 이때가 내생에 가장 행복한 날이었던거 같습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아들을 바라보며 이젠 자식앞에서도 당당해지고 싶은 생각에 주방보조로 지원하게 되었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요리사자격증을 공부하며 정말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또한번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알던 누나의 이혼소식이었습니다.
동생이 걱정할까봐 항상 행복하다고 거짓말을하며 10년을 버텼답니다.

누나는 처음부터 새아버지밑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매형집에서 반대를 엄청 심하게 해서 어렵게 결혼을 했는데 결혼한 후 매형이라는 사람이 이유없는 의심과 폭행으로 10년을 괴롭혔답니다.

그러면서 흉터들을 보여주는데 정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습니다.

이혼을 요구해도 절때 안된다며 집명의를 자기어머니이름으로 돌려놓고는
그제서야 누나에게 이혼을 해줄테니 맨몸으로 나가라고 했답니다.
어떻게든 벗어나고픈마음에 누나는 정말 십원한푼없이 이혼을 하게 되었고 혼자살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갓난아기였던 이복동생이 군대를 가게 되었고 어머니 아버지 두 분만 계시니 너무 쓸쓸하시고 외로우시다는 말에 부모님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저희가 너무 어렵게 사니 들어오라 하신걸 알고 있습니다.

들어오니 혼자 사는 누나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나도 같이 살자며 설득해서 아주 작은 집이지만 현재 아버지 어머니 저 그리고 제 아내와 아들 이렇게 6명이서 서로 부대끼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사랑스런 아내와 아들이 보이고

안방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커피한잔 하시며 담소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고

누나방에선 노래소리가 들리고

정말 제가 꿈에도 그리던 완벽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일년도 보내지 못하고 저의순간적인 판단착오로 이런사건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여지껏 살면서 많은 폭력에 노출이 되어서인지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것이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습니다.

피해자분을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

자살이란 단어가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죄송합니다.

글로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피해자분과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머리숙여 사과드립니다.

제가 힘들게 이룬 가정이 소중하듯이 피해자분의 가정도 소중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기에 정말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분께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사건이후 한달뒤 갑자기 찾아온 형사들 손에 이끌려 경찰서로 간 저에게 그때 제가 때린 피해자분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때 믿을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았고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피해자가족분들께 정말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막힐 일이고 제가 큰 상처를 드렸습니다.

저의 어떠한 사과의 말을 전하여도 용서가 되지 않을것을 알고 있습니다.

너무도 죄송스럽고 또 죄송스럽고 그저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말이 없습니다.

또한 아프신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지내실지, 아이를 키우며 시부모님들을 모시며 힘들게 살고 있는 제아내는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합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질듯아픕니다.

현재 어머니께서는 몸이 안 좋으셔서 이번일은 아직 모르고 계십니다.

아내는 당장 내일이라도 어찌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밤마다 눈물로 지새웁니다.

고인이되신 피해자분 그리고 유가족분들께 매일매일 죄송해 하며 제가 저지른 이번일에 많은 반성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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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글은 제동생이 유치장에 들어가기전 작성 해놓았던것입니다.
누나로써 제동생의 잘못은 그 누구보다 더 알고있지만 선처를 구해봅니다. 죄송합니다.

서명하기 눌러주세요 이것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죄송스럽습니다.

누나로써 할수 있는건 계속 피해자 가족분들을 만나서 정말 진심으로 사죄하는거와

여기에 글올리는 것뿐입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큰까페나 사이트를 잘 알지 못합니다.

혹시 이런 사이트를 아시면 주소를 댓글로 달아 주세요.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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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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