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기권 대학에 다니는 1학년 휴학생입니다.
곧, 군대가는데.. 가기 전에 한번 제 사연 좀 써볼까해서 써봅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께서 이혼하셨고 아버지와 살다가 집안 형편 때문에 어쩔 수없이 경북 문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렇게해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할머니와 동생 이렇게 셋이서 살게되었습니다. 집은 방하나에 부엌이 붙어있는 집이였습니다. 그것도 제집이 아닌 빌린 집이였지요.
저는 정말 철부지가 없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나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일은 돕기는 커녕, 피시방에서 돈을 펑펑 써댔습니다. 집안환경때문인지 어렸을 때의 버릇은 잘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고1 때 였습니다.
계속 철부지 없게 행동하던 저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할머니께서 밭 일을 하시다 쓰러지셨다고 하시더군요.
그 날 이후, 조금씩 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중2때까지 나누기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저는 공부란 걸 조금씩 하게 되었고, 나름 할머니께 최대한 예쁜 모습으로 정말 멋지게 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여기서 부터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이런건가 하고 느끼게 된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때는 고3 8월, 한참 수능 공부에 목매야 할 시기에 할머니께서는 집에서 자꾸 앓으셨습니다. 전 주말에도 학교를 가야 함으로 어떻게 할머니와 같이 병원을 못 가서 할머니께
말로만 병원을 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말로 하셔도 병원비 때문인지 가시질 않으시더군요. 전 불안했습니다. 밤마다 기침을 하시는 할머니가 너무나 걱정이 되었지요.
그래서 동네 아저씨께 부탁까지 하며 할머니를 병원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뜻하지 않는 통보를 받게 되었지요.
밑에 쓴 글은, 제가 할머니 병원에 계실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에 있던 글입니다.
(비록 반 말이지만, 고칠 순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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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선고를 알게된 날
사형선고와 다를 바없는 시한부..
의술로 치료 못한다고, 암이 전이되는 속도를 보고..
오래 살아봐야 석달이라니..
만약 내가 그런 소릴 들었다면 벌써 포기했겠지..
나를 죽여달라고.. 뭣하러 더 사냐고..
근데, 할머니는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해도 내 걱정부터 하더라?
대학은 어떻게 가야할 것이며, 앞으로 생활은 어떻게 할것이냐..
이러시는데, 내가 할머니 옆에 있을 수 있었을까?
자기는 아파서 먹지도 못하고..먹은게 없는데 토하고..
그래도 내 앞에서는 울지도 않고..
할머니가 얼마나 불쌍했으면 할머니 옆에서 머리 숙이며 눈물만 흘렸겠냐?..
그런 내게 머리를 쓰담아 주시니..
#서울 암센터에 할머니를 보낸 날
내가 문경으로 갈 때 막 내시경 받고 마취에 덜 깬 상태여서..
내 인사를 재대로 못봤던지..
내가 전화해서 할머니 괜찮냐고 물으니까, 언제 내려갔냐고 그러더라..
할머니 앞에선 안울기로 약속 해놓고선..나란 놈도 참 한심해..
결국 울기만 해서, 할머니 옆에 못 있으니까 병원에서 쫒겨난거 아니냐고 ..
만약 지금 나에게 최고의 저주나 행운이 있다면..
할머니의 병이 나에게 옮거나 할머니의 암이 치료 되는 것이겠지..
난 아직 하늘을 믿으니까, 기적이라는 걸 믿으니까..
할머니 없는 난, 생각도 못해봤어.
할머니의 나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시기엔 아닐 꺼라 생각했지 ..
세상은 너무 공평하기에 너무나 불공평해..
이제 느끼겠더라, 어느 누구에게도 죽음은 온다는거..
하지만 때가 아닌 때에 죽음이 온다는거..
이제 막 행복을 보실 차례인데..
결국은 죽도록 일만 하시다가 속만 새까맣게 타고 ..
암 말기래 .. 병원에 처음 갔을 때 벌써 손도 못 댈 정도였다고 하니까..
왜 아프다고 말을 안하시냐고..
괜히 내가 더 죄 짓는 것 같고..
나에게 어머니같은 존재가 아닌 어머니지..
내가 해줄 수 있는건 최대한 해드리고 싶은데..
내게 그런 능력이 있어야지..
할머니 간병 간다고 해놓고 질질 울기나 해서 결국은 쫒겨나고..
할머니, 앞으로 남은 시간..
고통과 좌절만이 있겠지만요..
전 저대로 하나뿐인 할머니 이구요..
아버진 아버지대로 하나뿐인 어머니 입니다..
앞으로 말 밖에 해드릴 수 있는게 없습니다..
그 고통속에서 저를 생각해 주신 것..정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를 위해 포기 하지 안으시는 할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이 철부지 이 만큼 키워주셔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결국은 은혜를 갚지 못하지만, 저도 나이를 먹고 늙고
또 늙어서 보란듯이 당당히 할머니 앞에 서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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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 드리는 짧은 글
평생 잊지 않겠어요.
돌아가시면서까지 저희를 걱정해주신 것 너무너무 고마워요.
하지만 그에 비해 전 아직 아무것도 해드리질 못했네요.
윗글 처럼 잘해주기로 약속했으면서.. 결국은 아무것도 못해주고..
도대체 전 생각이 있는 놈인지 모르겠네요.
할머니께서 눈감으시던날, 전 정말 졸렸습니다.
전날 날을 세서 그런지 몰라도, 또 할머니께서 일부로 절 재우고
할머니께서 눈감으시는걸 보여주지 않기 위해 재웠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전, 꼬박꼬박 졸면서 할머니 옆에서 간호를 했고..
할머니는 토할 기색으로 절 보셧죠..
토하시지는 안았지만, 큰 한숨을 내쉬며, 기계음이 일정하게 나는걸 들었어요..
단지 할머니께서는 한숨만 내쉬었는데...
그 한숨이 영혼을 뱉는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초종을 저혼자 지켜봤고, 또 그래서인지 저한테는 여운이 계속 납니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좋았던 일들, 좋지 안았던 일들이 마구마구 떠오르고
그러면서 또 추억에 잠기며 할머니를 회상하면 더 마음이 아프고 평생을
고생했다는 생각이 들면 한쪽 맘 구석이 썩는 것처럼 점점 더 아파옴니다.
아직 고맙다는 말.. 전해주지 못했고 ... 사랑했다는 말.. 전하지 못 했는데..
결국은 불효군요.
할머니께서는 병원에 계시는 동안 돈을 꾸깃꾸깃 모으셨죠.
그러면서 나중에 써야된다며 조끼 안주머니에 돈을 집어 넣으셨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조끼 주머니를 뒤지니까 돈이 나오더군요.
그리고 사진 2장..제 사진과 동생 사진 말이예요.
돈 뒤에 감춰진 제 사진을 보며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혹시 모르겠군요. 너무나 아프신 나머지 말씀도 못하시는 할머니께서
저한테 돈얘기를 한것이.. 그 돈일지도 모른다고..
저한테 그러셨잖습니까? 대학은 어떻게 다닐것이냐고..
돈은 있냐고.. 동생은 학교를 어떻게 다닐 것이냐고..
설마 아직도 걱정하시고 계신다면, 그런 걱정 하지마세요.
아버지가 잘해 주십니다.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아프신 몸으로
나오지도 안는 목소릴 내쉬며 말씀하신 것..정말 죄송하고
정말 미친듯이 정신이 흐릿멍텅해 지는걸 느꼈습니다.
가장 고통스럽게 죽는것이 불타 죽는 것이고,그다음은 사지가 뜯겨
죽는 것이고, 그 다음이 암이 걸려 죽는거란 걸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습니까.. 제게는 결국 그 어떤 축복도 불행도
오지 않았어요. 단지 작은 축복이라면 할머니께서 고통 받고 계시는
그 암 고통이 보다 짧은 기일 이였다는 정도..
어른들이 그러시더라구요.
2일 이면 다른 암환자 보다 고통 덜 받고, 돌아가신 거라구..
죄송해요. 죄송해요, 대신.. 할머니 밑에서 큰 것.. 보답하겠습니다.
철 없는 민주 제가 철 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 또한 그 누구보다
더 훌륭하게 크겠습니다. 할머니.. 자주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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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참.. 그리고 제 글을 읽어 주신 여러분께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은요, 자식이 죽는 날까지 평생 살지 못합니다.
인생은 한번이라잖아요. 까지꺼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