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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고소하기 위해 변호사를 찾습니다..

혈안 |2010.09.26 01:41
조회 781 |추천 2

이전에 글들을 몇개 올렸었는데
다들 소설쓰지 말라고 난리더군요;;
정말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썼습니다.
작은 관심 감사드립니다..


어릴적 저희 가정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잦은 도박과
부모님의 갈등은 저희 형제에게
커다란 상처가 되기엔 충분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부모님의 별거로 인해
제 남동생과 저는 친 할머니댁에 들어가 살게 되었고
정말 듣기 힘들 정도의 욕설들로 보낸 나날들은
곧 가출로 이어졌습니다.

동생을 그 집에 남겨두고 온다는데에 죄책감이 너무 컸지만
너무 어리고 생각이 짧았던 저는
당장 제 살길에만 급급해 몇달 내내 친구들 집을 옮겨 다니며
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고등학교때 들어서는 자취방을 잡고
학교 생활을 하다가 고등학교 마칠 무렵
다시 아버지와 함게 살게 되었습니다.

몇년내내 부모님과 연락은 하고 지냈지만
자주 만나지는 못했었습니다.
가끔 제가 몸이 아플때에도 부모님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만 바빴고
병원은 친구들의 의료보험증을 빌려서 가거나
아파도 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한번은 몸이 너무 아파 어머님께 연락했지만
아버지에게 연락하라고 해서
아버지께 연락 드렸고 아버지께서는 친할머니께
연락하라고 했지만 친 할머니께 들은 말씀은
주말저녁엔 응급실이 비싸니
그 다음주 월요일까지 참아보란 얘기였습니다.
결국 전 급한마음에 방학때 받았던 비상연락망에 있던
반장녀석에게 부탁해서 병원을 가게 되었죠
그땐 위염판정을 받은걸로 기억합니다.

 

그 다음엔 자주 숨이 가쁘고 어지러워서
MRI에 CT촬영등 여러 검사를 받아봤지만
스트레스성이란 진단만 받았을 뿐입니다.

 

그렇게 몇달 몇년이 지나고 대학교는 생각지도 않고 있었지만
어쩌다 전문대 수시로 합격하게 되어
친할아버지께서 등록금을 보태주셨습니다.

대학교 1학기만 마친채 알바를 하며 군입대를 준비하다가
군입대 전 제 생일에 맞춰 어머니께서
등초본을 떼어오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입대후 혹시 건강에 이상이 생길지 모르니
그 전에 보험을 몇개 들어두자는 말씀을 하시구요.
(저희 어머니는 보험 회계사이십니다.)
알고보니 보험은 이미 제가 고등학교 때 쯤부터
제 앞으로 들어둔 보험이 있었고 그때 떼어간 서류들로
보험료 지급자만 어머니 앞으로 돌려둔 걸로 알게 됐습니다.

 

입대전까지 어떤 검사를 해도 나오지 않던 병이
입대후 11개월만에 암 중기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병이 크게 진행이 되진 않은 상태라서
6개월동안 항암치료와 수술로 다시 나아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군인 신분이라서 군병원에 있는동안
치료비는 전앤 국방부에서 나오게 되었고
어머니께서 중간중간 들려서 이것저것 입원확인서 등등
떼어가서 보험료를 2~3천만원 정도 받았다고 어머니께 들었습니다.

 

수술 후 곧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되었고
전 다시 자취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제가 몸이 아픈 상태이니
다시 친가에 들어가 병원비 생활비 등등을 받아오란 얘기였고
아버지께서 월 15만원짜리 언덕 높이 위치한 자취방에 보내주신 후
재활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퇴원한 저는 몸이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굳이 이렇게 돈을 받아야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구요

그러다가 친가에서 돈을 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어머니께서 다시 어머니와 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새아버지도 소개 받게되고
어머니의 원룸방에서 넒은 아파트로 동생과 함께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께서 제가 다시 복학할 것을 요구하셨고
전 대학 등록금을 벌기위해 새아버지와 함께
도로공사 하청업체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도 이 일을 해보시고 난 후에
정말 여자도 할 수 있는 일이니 제가 나가서 일을 하란 얘길
들어서 나왔던 것인데 일은 정말 너무나도 힘이 들었습니다.


아직 몸은 회복도 덜 된 상태에서 매일 아침 다섯시에 나가
저녁 여덟시가 넘도록  햇빛도 피할 곳 없는 자리에
고속도로의 소음 매연은 있는데로 먹어가며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새아버지께선 어머니께 쌓인게 얼마나 많은건지
매일같이 저에게 욕을 해댔습니다.
새아버지도 아드님이 있는걸로 아는데 그 아들분에겐
단 한마디의 잔소리도 못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릴적에 가출해서 잔소리 하면 또 나갈까봐 그런다나..


전 정말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했지만
다시 학교 생활을 한다는 생각으로 참고 지냈습니다.

중간중간에 어머니께서 호출해서 어머니 고객분들에게
같이 인사를 하러 가게 되었는데
저를 상품삼아 내놓고 제가 무슨 병에 걸렸는데
보험료를 얼마 타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이런 말씀들을 하시더군요
전 보험료가 그렇게 많이 나온줄도 몰랐는데..


나중에 제가 직접 서류만 확인한 급액이 1억 2천이 조금 넘었습니다.
다른 회사에선 또 얼마나 지급되었는지 모르구요.

그 돈으로 차를 바꾸고 집을 바꾸신건지..


옷은 항상 몇십만원 짜리에 몇십만원짜리 악세사리를 매번 바꿔가며
하고 다니시더군요.. 저는 몇년 내내 같은 옷만 입고 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복학을 한 후에도 생활비는 커녕 밥값도 없어서
주말엔 항상 아르바이트를 해야했습니다.
방학때면 다시 도로공사에서 일을 하고..

 

졸업 직전에 새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심한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겪다가 다시 혼자 나와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도로공사에서 일하다 다쳤을 때 인격적 모욕을 당한적도 있었고
집에서 어머니께 아프다고 말씀 드렸더니
곧 있으면 손님 오시는데 아픈 모습 보일거 같으면 나가 있으라느니..
과연 이게 가족인가 싶더군요..

 

집을 나오고 난 후엔 건축업에 일을 하며 친구들이 모여 사는집에
달달이 월세를 내가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가끔 어머니께 연락을 받았는데 동생 등록금을 보태라더군요
저도 그 만신창이 몸을 이끌고 제 등록금을 벌고
주말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했는데..

지금 하고 있는 분야에 게신 분들 말씀으로는 이쪽으론 전망이 없으니
자격증 공부 해보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저도 정말 그러고 싶지만 지금 당장 생활비에
공부를 할 시간조차 없는 제가 힘들뿐입니다..

 

이젠 몇주라도.. 아니면 며칠이라도 좀 쉬고 싶습니다..
병원에 있는 내내 회사에 저를 핑계삼아 여행을 다녔던 어머니..
제가 아프다고 친구들에게 소문내며 술을 얻어아시고 다니던 아버지..

 

어머니께서 타갔던 그 고액..
제가 보험료를 낸 건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요?

가족이면서도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상품처럼 여겨지며 자기가 필요없다 싶을땐

항상 네 아버지에게 가버리라던 말을 하시던 어머니..

사실 그런 사람이 제가 아팠기 때문에 탄 돈으로

행복하단 사실이 저릴 더 미치게 만듭니다..

 

어릴때부터 같이 살지 않아서 가족간의 정이란게 없는건지..


이젠 잠시 쉬면서 자격증 공부도 하고
다시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고 싶습니다.

제가 직장을 잡고 난 후에 동생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고 싶구요..
제 인생의 목표는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부디 조언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http://blog.naver.com/rockpill

 

이전에 올렸다가 삭제된 글..

http://blog.naver.com/rockpill/40071559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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