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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병인 아버지를 떠나려는게 잘못일까요

할머니미워 |2010.10.05 18:35
조회 776 |추천 1

 

안녕하세요 서울에 사는 20대 중반여성입니다.

판을써보기는 처음이네요. 그냥.. 친한 언니/동생 이라고 생각하시고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한번쯤 생각해보고 리플 부탁드려요..

 

길이 굉장히 깁니다.

요약본은 이것만 읽으셔도 되요

 

6살 부모님 이혼-> 엄마와 초2까지 동거-> 서울 아빠에게 보내짐-> 아빠는 매일술/주식/담배-> 학창시절 불우함(주정으로 매일 쫓겨나길 반복하고 알바하며 집세/생활비/등록금/아빠 술값감당)-> 고2때 쫓겨난 이후로 아빠와 연락끊고 지냄->지금 20대 중반 올해 초 암 말기 라고 연락옴-> 현재 직장등등을 무시하며 병간호를 하라고 괴롭힘

 

 

어려서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습니다.

전 당시 6살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유는 아버지의 폭력(직접 사람을 때리진 않았지만 죽이겠다고 칼로 협박하거나 물건을 때려부수고 가스관을 끊어놓고 같이 죽자거나..뭐 이런것들이요)과 도박빚, 술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기억이 생생하진 않지만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이 있지요.

추운겨울 속옷만 입은채로 밖으로 쫓겨나 밤을샜던 기억입니다.

엄마는 저와 2살터울인 제 동생때문에 약 5년을 참고 사시다가 이혼을 결심했고

이혼후 전라도에 터를 잡았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 아빠랑은 연락도 한번 없지 지내다가 엄마는 저희를 키우기 힘들다며 서울할머니댁 앞에 저희를 두고 사라졌고 엄마를 너무 좋아했던 저는 엄마에게 버려졌다는 식의 생각때문에 엄마를 미워하기 시작했어요.

 

서울에서의 생활은 힘들었습니다.

저희 할머니는 보통의 할머니처럼 포근하고 자상한 할머니가 아닙니다.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6년정도를 할머니랑 같이 살았지만 따뜻하게 한번 안아주신적도 없으니까요. 할머니와의 스킨쉽이란 가족사진을 찍을때라던지.. 남들한테 보일때 손을 잡는게 전부였어요. 남들한테 보여지는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었죠.

중학교 입학전까지는 아빠도 일을 열심히 하셔서 검소하긴 하지만 경제적으로

힘들진 않았습니다. (할머니도 재산이 좀 있으셨구요)

아빠는 식자재유통업과 주식을 같이 하셨는데 어느날 부터인가 주식에 집착하기 시작하셨고 중학교 입학후에는 영업을 거의 안하시고 하루종일 집에서 담배를 피며 주식을 하셨죠.

그러는 사이에 아빠와 할머니가 경제적인 이유로 다툼이 있었고 (이유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할머니댁에서 나와 아빠,저,동생 이렇게 살게 되었네요.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갔고 아빠의 술과 담배 빚까지 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는 등록금과 급식비 등등 사소한 준비물까지 준비 못할정도였고

(돈 뿐만이 아니라 항상 술에 취해있는 아빠때문에 얘기를 할수가 없었습니다.

준비물이라던가 때문에 말을 붙이면 신세한탄으로 이어져 학교도 못가기 일쑤였어요)

중학교 3학년때부터는 동생과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세/아빠의 밀린술값/학교등록금 등을 해결했습니다. 정부지원을 받는 방법을 알아봐서 아빠한테 서류를 가져가면

자존심 때문인지 내앞에서 찢어버렸고 관할 동사무소로 찾아가면 어린 내가 아닌 보호자가 찾아와야 된다며 거절했습니다.

폭력은 없었지만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고 매일 눈물이었습니다.

그나마 버틸수 있던 이유는 착한 남동생과 엄마는 버린 우리를 아빠는 힘들어도 끝까지 함께 해주고 있단 생각때문이었고 중학교 이전까지는 힘들지 않았기에 우리 가족이 더 노력하면 다시 그때로 돌아갈수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나아지지 않는 아빠의 술주정, 빚독촉.. 점점 심해져 새벽에 연락을 받고 지구대나 응급실로 가는경우도 많았고 매일 술만 마시다 보니 건강이 안좋아져서 갑자기 쓰러지는 아빠때문에 학교를 못가는 일도 잦았습니다.

직접적으로 저랑 동생을 때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죽어야 된다며 벽돌에 머리를 박는것처럼 자학을 한다던가 제가 화가나서 대들면 엄마랑 똑같다며 욕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쯤 아빠는 저와 동생에게 집을 나가란 소릴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술을 마시고 나가지 않으면 본인이 죽겠다며 협박했고 그럴때면 저랑 제 동생은 각자 친구집에 가서 몇일을 생활하고 일주일정도 지난후 아빠가 미안하다며 다시 들어오라는 전화에 들어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를 받아준 아빠라는 생각때문에 우리가 없으면 아빠가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가출이나 다른 생각은 하지도 못했구요. 그런상황에서도 허튼길로 빠지지 않고 술담배도 배우지 않고 공부도 나름 상위권 유지하며 고등학교 졸업까지만 마쳤어요.

대학은 붙었지만 등록금 걱정에 처음부터 포기했습니다.

사실 제 앞가림 하느라 동생은 제대로 돌봐주지 못해서 고등학교 중퇴를 막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검정고시 따고 군제대를 마쳤구요...

 

고생한 이야기는 2박3일을 해도 모자르겠지만.. 너무 길어지니 이만 줄이구요.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정말 아빠랑은 더이상 살수 없다고 결심하고 고시원으로 들어갔고 제 동생과 그 작은 방에서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살았습니다.

중간에 아빠한테 여러번 연락이 왔지만 무시했어요. 나름 독립후 너무 힘들어 음성메세지 남긴거 듣고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났지만 지금 들어가면 죽도밥도 안되고 또 아빠 술값이나 갚으며 지내야된다는 생각에 마음 독하게 먹었구요.

알바하면서 보증금 200 마련해서 작은 방하나 구했구요. 그렇게 살다 지금은 방2개 월세로 살고있습니다.

올해 초 아빠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암말기라구요. 찾아갔는데 꼴이 이만저만이 아니더라구요. 병원도 못가고 고시원에서... 손발이 다 부어서 신발도 못신고 몸은 앙상한 뼈만 남았더라구요.

내가 너희한테 해준건 없지만 그래도 아빠라면서 우리집으로 들어오겠다고 하는데.

사실 싫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아빠한테서 나왔단 사실을 부정할수 없어 집으로 모셨구요.

(저희 집은 많이 좁고 저는 주 6일제 직장에서 일해요.. 아침 9시에 출근해서 퇴근해 집에가면 10시~11시가 되구요)

중간과정은 많이 생략되었지만. 경제적인 상황때문에 할머니와 연락을 하게됐고 암센터에 입원한 후에 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병원에 불려다녔습니다.

출근전/퇴근후로요. 말로는 너무 늦었으니 오지마라 하시고선 다음날 또 전화하셔서 양말/ 사과나 과일등등 가져달라 하셨지요. 제 직장얘기를 아무리 해도 똑같았습니다. 직장에서는 윗분들에게는 말을 해놓았지만 수개월동안이나 지각하거나 일찍퇴근하는 저를 보는 동료직원들은 말이 많아졌구요. 회식이나 워크샵등도 빠지다 보니 윗분들도 이제 싫어하는 눈치입니다. 할머니는 내년이면 80을 바라보시지만 아직 정정하시고 사교적인 모임이 굉장히 많으세요.. 교회나 모임등을 나갈때 제가 병원에 없는게 항상 불만이셨죠.

항암치료를 2차까지 받으시고 상태가 아주 많이 호전되어 스스로 걸을수 있는 정도까지 되신후 퇴원하셔서 지금은 할머니댁에 계십니다. 할머니댁은 저희 집에서 전철로 1시간 40분정도 거리입니다. 마찬가지로 매일 부르려고 노력하시죠. 저도 이제 힘드니 매일 안가려고 노력하구요.

저는 직장이있으니 그나마 거짓말도 조금 하면서 지냈는데.. 문제는 제 동생입니다.

10월 중 제대를 앞두고 말년휴가를 나왔는데.. 아예 할머니댁에서 생활하며 아버지를 병간하길 바라세요.

제동생도 제대후 계획이 있을것이고 당연히 어느정도 신경쓰겠지만 아무것도 안할수는 없음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는데도 막무가내시구요....

 

할머니 댁에서 생활하라고 하는 이유는

첫째 아빠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고 둘째 아빠 다리를 주물러 달라는 것입니다.

아빠가 젊었을때부터 혈액순환이 안좋으셔서 실제로 저희가 같이 살때도 잠자기 전엔 거의 한시간씩 다리를 주물러드려야 주무셨습니다. 건강이 안좋아지니 더 심해지셨고 시도때도없이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시지요.

제 생각으로는 첫번째 이유는 집에 누군가 사람이 있기만 하다면 (할머니댁에는 할머니/ 고모(아빠의 동생)/큰아빠(아빠의 형) 이 지내고 있습니다.) 119를 부를수 있고 비상상황에 가족이 병원으로 모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네가 가까운곳에 종합병원이 있지도 않고 엎고 뛴다거나 택시를 이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두번째 이유로 제동생을 잡아두려고 하시는데...

사실 막 제대한 남자가 다리를 주물러 드려야 해서 묶여있어야 하는것을 이해할수 없습니다. 지금 말년휴가를 나와있는데 겨울옷이나 신발이 없어( 있는대도 안신는것이 아니라 정말 외투나 신을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나 제동생이나 모두 각자벌어 각자의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먹는것이나 입는것에 크게 흥미가 없는 제동생은 입대전에도 청바지1/티1/잠바1/신발1 이런 생활이었어요.. 문제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제가 챙겨주지 못했네요) 그 돈을 마련하고자 할머니, 아빠와 상의 끝에 일일알바를 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할머니 모임나가시는 시간을 피해서요. 그렇게 시작한 첫날이 오늘이었는데..

아침 10시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아빠 다리에 쥐가 났으니 제 동생에게 연락하여 와서 주무르라고 하랍니다. (할머니의 입장과 아빠의 입장이 똑같았어요)

전 동생편을 들면서 문자는 보내보겠으나 이미 알바를 나간 상태이니 어렵겠단 식으로 말씀드렸구요. 할머니가 화가나서 소리지르고 화내시고는 끊으셨네요.

 

 

얘기가 너무 길었네요.

사실... 전 후회됩니다. 올초에 처음 연락이 왔을때 그냥 연락하지 말걸.

결심했던것처럼 모르는척 살걸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얼굴도 보고 했는데 막상 떠나려니 불효인것 같고 또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아빠가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수 있나 하는 생각에 화가 납니다.

톡커님들이 저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궁금해요..

 

털어놓고 나니 그래도 마음은 후련하네요.

 

추천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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