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주는 침대에 잠들어 있는 우빈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조용히 그곳을 빠져 나왔다.
[도망갈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 그럴수 있겠어?]
[가자. 승주야... 나...지친것 같아... 그림자로 살아가는것도...아무렇지 않게 사람을....어쩌면...이미....끝난건지도 몰라...하....]
말끝을 흘려버린 우빈의 목소리는 차츰 작아졌고, 승주가 그를 바라봤을땐 이미 깊은 잠속으로 떨어진 후 였다.
그의 눈가에 한 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알수 없는 대화들...
술에 취한 우빈은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렸고, 뜻모를 단어들을 이따금씩 토해냈다.
승주는 택시에 몸을 실었고, 마지막 그의 목소리를 생각해 냈다.
....신현....
아마도 도련님의 이름인듯 했다.
그가 사랑한다고...죽이고 싶을 정도로 갖고 싶어한 사람. 또한 증오한 사람.
그동안 무슨일이 있었던 거지?
왜 그렇게 두려움에 떠는건데?
무엇이 널 도망갈수밖에 없는 궁지로 몰고 있는건데?
....그 아이가 열쇠인가?
모든것은 그 시간을 거점으로 새롭게 시작되고 있었다.
모두가 알수 없는 미궁속을 서성이고 있을때, 마치 일상 생활인양 그 움직임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것의 큰 파동을 전혀 알수 없었다.
그 파동을 느끼기엔 그들은 너무 어렸고,.... 또한 순수했으니까
* 오피스텔 *
[지금 뭐라고 했지?]
[그만하고 싶어]
침대에 겨우 몸을 기댄 신현의 얼굴을 말없이 응시하는 여자.
그 침묵은 한 동안 깨지지 않았다.
의자에 몸을 기댄채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그녀는 생각을 정리하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사뭇 남성으로 착각하기 쉬운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못들은 걸로 하자.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고]
[!! 누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자 신현의 손이 그녀를 잡는다.
[...입 다물어. 지금 그말...아무한테도 하지마]
그녀는 신현의 손을 뿌리치며 문을 향해 걸어나갔다.
[내가 여기 있는거...죽은거라고 그랬쟎아. 감정도 없이 살아가는거...죽은거라고...꼭두각시 인형이라고]
[그걸 받아들인건 너야.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기꺼이 그로 살겠다고...니가 원했쟎아]
그녀는 신현의 물음에 등을 보인채 말을 이어나갔다.
[여전히 넌 살아가는 의미조차 없는거 아니었어?]
[있어. 나...살고 싶다고]
[???]
신현의 대답이 들려옴과 동시에 그녀의 놀란 두눈이 그를 향한다.
[지금...뭐라고 했어?]
[나 살고 싶은 이유가 생겼어. 나 자신으로...나 유 신현으로 살고 싶다고]
그녀는 다리에 힘이 빠진듯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미친놈...그게....말이돼?.....이제와서...]
딱 10년이다.
10년 동안 봐왔던 신현은 그저 움직이는 싸움로봇일뿐...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상처 투성이가 되어서도 고통조차 못느끼는듯 태연했던 어린 아이...
죽어있던 그의 눈이...삶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 신현의 집*
[안, 안녕...]
[어? 사기꾼 호모!]
[!....]
거침없이 뱉어내는 서현의 단어들에 현주의 온몸이 당혹감에 어쩔줄 몰라한다.
[뭐야? 불결하게...]
[미, 미안해..]
집앞을 한동안 서성이던 현주는 불꺼진 캄캄한 신현의 방을 몇번이고 올려다 본 후 막 돌아서던 중이었다.
[...오늘도 그냥 가려구?]
[어?...그게...]
서현은 벌써 몇일째 집앞을 서성이다 한참 후에 돌아서는 현주를 마주했다.
[바보아냐? 오빠 집에 없다니까 왜 오는건데?]
[...언제쯤 돌아오는거야?]
[모른다고 했쟎아. 이제 오지마!]
[부탁할께! 무사한거지? 아픈건 아니지?]
돌아서 가던 서현의 등뒤로 현주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말...둘이 사귀는 거야? 남자끼리?]
[.....]
[이상하지 않아? 말이 된다고 생각해? 있을수 없는 일이야..우리집...우리 아빠 무슨일 하는지 알고 있는거야?]
[그게...중요해?]
[중요해!! 우리한텐...아직 우리나라에선 중요해...기회쟎아. 이쯤에서 정리하면 간단한거야. 어차피 오래가지 못할거야. 잘 생각해봐...오빠 감정이...진짜 어떤건지...그리고...진짜라면 이렇게 헤메게 두지 않지 않나? 벌써 우리오빤 정리 끝냈는지도 모르쟎아?]
서현은 그렇게 말하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성큼 들어가 버렸다.
현주는 다리에 힘이 빠진듯 그곳에 주저 앉았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핸드폰
그 어디에도 찾아볼수 없는 신현의 흔적...
알고 있는 사람도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무슨 큰 비밀에 쌓여있는듯 그저 쉬쉬거리며 조용히 넘어가 주길 바라는 사람들 처럼...
내가...어쩌면 좋을까?
신현...내가 널 찾을수 있을까?
넌 지금 어디에 있는거야?......왜 아무런 말도 없이....
마주잡은 두손등 위로 현주의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