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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남자 (시애틀 Pike Place Public Market)

쾌락여행마... |2010.10.19 13:14
조회 281 |추천 0

 

 

 

시장은 삶을 보는 가장 현저하고 적나라한 공간이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이나 북미의 시장들도 하나같이 생활의 활력을 뿜어낸다.

그것은 마치 이제 막 잘라낸 물고기의 단면을 떠오르게 한다.

비늘이 반짝거리는 물고기를 횡으로 잘라내면 드러나는 팔딱팔딱거리는 장기들;

아주 튼튼하고 파란 생명력을 연상시킨다.

시장은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싱싱한 살이며, 피이고,

세포들이 원초적으로 펼쳐지는 현장이다.

 

 

내가 시애틀의 퍼블릭 마켓을 찾은 날은 바람이 몹시 불었다.

아마도 시장의 상징이거나 어떤 기념일을 위한 것일 듯한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다양한 돼지 동상들이 곳곳에 서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퍼블릭 마켓의 깃발들이 일제히 쓸려간다.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었던 탓에 피부에 온통 닭살이 돋는다.

다소 을씨년스러운 날씨와 비교적 한적해보이는 시장 입구

(실제로 안에 들어가보니 전혀 딴 판이었다)에 반해

화려한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마구 쓸려다니며 춤추는 모습은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사실 시애틀은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부는 날이 많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같은 감성적인 영화들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시애틀에 대한 로망을 심었지만,

-게다나 스타벅스 1호점이 있는 도시라니,

어쩐지 커피향 가득한 깊은 풍미의 연갈색 이미지도 떠오른다-  

시애틀을 방문했던 여러 친구들은

딱히 이거다,할 두드러지는 볼거리는 없는 도시라며 입을 모았다.

이렇게 재미없는(?) 시애틀에서, 사람들이 그래도 공통으로 꼽는 특별한 장소들이 있다면

그 대표격인 것이 바로 퍼블릭마켓이다.

정확한 이름은 파이크 플래이스 퍼블릭 마켓 Pike Place Public Market.

어부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어시장이 

1차 생산자들이 직접 자신들이 잡고 경작한 생선이며, 작물 등을 파는 곳으로 발전하였고,

이제는 향신료, 꽃, 각종 그릇, 잡화 등도 판매하는 대형 만물상이 되었다. 

저녁 6시를 넘기기 전에 문을 닫는다.

 

 

 

 

 

 

 

마켓 초입에서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느 가게에서 켜 놓은 음악과 합치고 뒤섞여 노래라기 보다는 소음에 가까운 것처럼 들리지만;

-게다가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까지 함께 버무려졌다-

그와는 상관없이 노래하는 아저씨는 곧고 씩씩하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더 크게 노래를 부른다.

사람들은 그의 모자에 동전 몇 개를 던져주었다.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마켓 안으로 들어서자 한가해보였던 입구와는 달리, 시애틀 주민들과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워낙 북적거려서 발 딛고 들어설 틈이 없을 정도다.

가방을 짊어지고 봉지, 바구니 같은 것을 든 사람들이 과일을 산다.

꽃을 사고, 빵을 사고, 그들의 아이들에게 줄 쿠키를 산다.

저녁 식사 자리 한켠에 켜둘 향초도 사고,

누군가는 생일 파티를 위해 커다란 연어와 이름을 알 수 없는 다른 생선 사이에서

고민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생활을 사고 있다.

시장에 이렇다할 아름다운 풍경 같은 게 있을리 만무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저 사람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어떤 온유함 같은 게 드러난다는 거다.

그곳의 사람들도 그랬다.

내가 나고 자란 대전에 촌스러운 태평동; 늙은 태평시장-

된장을 팔고, 상추를 팔고, 떡볶이를 파는 사람들의 말투와 손은 억척스러웠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그들의 표정은 참 온유했다.

더운 날 손에 부채를 들고 허공에 한번, 몸에 한번, 느릿느릿 스윽스윽 움직이면서

파리도 쫓고 몸에 땀도 식힌다.

태평시장이라는 말은 태평하다는 표현에서 왔을까,

꼭 그 부채같은 표정이다.

그때나, 지금의 이 사람들은. 

 

 

누군가 큼지막한 생선을 한마리 구입할 때마다

생선을 파는 점원은 큰 소리로 생선 이름을 외치며 가게 안쪽으로

족히 7~10미터는 됨 직한 거리로 생선을 휙 던진다.

이때의 생선 크기란 게 거짓말 조금 보태면 초등학생 몸 만하고,

담백하게 말하지만 성인 허벅지만한 크기인데,

이들이 만들어 내는 퍼포먼스가 아주 전문적이고 일품이어서

퍼블릭 마켓에서 단연 최고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래서 생선가게 앞은 생선을 살 것인지 여부와는 상관 없이 항상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제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갈 요량으로 퍼블릭 마켓을 나오려는 즈음 노인 한명을 보았다.

우선, 이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팔고 있는지 몰랐다.

좀 자세히 보니 향초나 아로마 오일 같은 것이었는데,

그 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노인이 장사를 하는 모양이다.

다른 가게의 상인들은 물건을 더 팔기위해, 혹은 천성적으로,

활짝활짝 웃으며 인사도 하고, 농담도 던지는데 반해

왜인지 몰라도 이 노인은 웃음 한번 보여주지 않고

관심을 갖는 손님들의 질문에도 묵묵부답인 거다.

오히려 노인은 마법사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잘못된 주문에 걸려 알지도 못하는 곳에 떨어져버린

비운의 주술사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노인이 참 오랫동안 말이 없다.

관심을 갖던 사람들도 물건을 사지 않고 지나간다.

사실, 물건을 하나 더 팔고 덜 팔고가 그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가 파는 것은 향초나 오일 따위가 아닐 수도 있다.

그도 역시 사람들이 시장에서 만들어내는 삶의 싱싱한 현장을 관찰하려는 지도.

  

 

 그곳에서 말도 없이 그가 나이든 시간을 팔고 있다.

 

2006년 Sea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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