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세계 4대 성인이다. 그는 고타마 싯타르타나 예수처럼 종교의 창시자도, 소피스트처럼 최초의 철학자도 아니다. 그가 세계 4대 성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인 자연철학에서 인간중심의 철학으로 사고를 전환하고 탐구한 최초의 인물이자, 세속적인 것들을 배제하고 진정한 진리를 탐구한 철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은 후대 사람들에게 진정한 성인으로서 모범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위대한 성인, 소크라테스는 그의 제자 플라톤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흔히들 어떤 사람이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우리는 그를 기림과 동시에 그에 대한 사실을 왜곡하게 된다. 그래서 먼 훗날 역사의 평가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마저도 소크라테스에 대해 진정한 평가를 내린 이는 드물다. 소크라테스에게는 그 어떠한 저서도 없으며 우리가 탐구하는 그에 대한 자료는 모두 그의 제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어찌 보면 그의 가장 훌륭한 제자였던 플라톤이, 그의 훌륭한 문장력으로 만들어낸 매력적인 환상일지도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현명했던 인물이라고 평가 받는 소크라테스, 그는 당시에도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의 친구는 델포이 신전에서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 있는 자는 없다’라는 신탁을 받고 그것을 소크라테스에게 알려준다.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소크라테스는 당대의 현명하다고 알려진 인물들을 찾아가 자신보다 지혜로운 자를 찾아내어 신탁에 반박하려했다. 하지만 자신이 지혜롭다고 믿는 사람을 찾아가보았으나 실은 그들이 지혜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한다는 바로 그 조그만 점에서 그 사람보다는 내가 더 지혜가 있다’라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는 시간의 흐름이나 장소와 상황에 얽매이지 않는 보편하고 참된 진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진리를 찾기 위해 그는 무엇인가 알고 있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대화는 주로 상대방이 정의를 내리면 소크라테스가 ‘부정 변증법’을 이용하여 그 정의를 파괴해 버리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무지를 가장하며 정의를 내리지는 않았다. 이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을 부정당한 사람은 심한 모욕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후에 재판을 받게 되는 원인들 중 하나에 해당된다.
소크라테스의 부정적인 변증법은 다른 이를 좌절시켜버리기도 한다. 플라톤의 저서인 ‘메논’에서는 덕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지만 젊은 제자 메논 역시 소크라테스의 부정 변증법에 의하여 자신이 내린 모든 정의를 부정당해 버리고 만다. 메논은 후에 이렇게 말한다. “나는 셀 수도 없을 만큼 자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덕에 대해 많은 연설을 해왔으며, 내가 생각하기에는 매우 훌륭한 연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덕이 무엇인지 한마디도” 감히 얘기할 수 없을 것같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혼란에 빠뜨린다는 얘기를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당신이 마력과 주문을 써서 단지 나의 넋을 빼앗아, 나를 완전히 혼란에 빠뜨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덕이 무엇인지 한마디도 감히 얘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메논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마치 자신이 돌보아주어야 할 제자를 스스로 망쳐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대화법을 아기를 낳도록 도와주는 산파술과 비교하여, 자신의 대화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낳도록 도와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다른 여러 대화편을 보면 그는 태어나는 생각들을 차례대로 질식시켜 버린다. 이 산파는 마치 낙태 전문가 인 듯싶다.1)
그의 보편적 진리의 탐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런 진리를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진리는 상대적일 뿐이라고 그는 말하는 듯하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장군, 말 장수, 구두장이 등 많은 사람들과 용기에 대하여, 말에 대하여, 구두에 대하여 그것들이 무엇인가를 주제로 대화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무엇 하나 깨닫지 못하고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만 알게 된다. 소크라테스에 의해 혼란에 빠진 그들은 용기, 말 그리고 구두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 전까지 용기를 가지고 전쟁에 임했고, 구두를 만들고 수선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잘 길들여진 말을 팔아왔다. 그것들이 무엇인지 정의 내림으로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고 그들과 나눈 대화는 마치 소크라테스 자신이 남들보다 말을 잘한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 같다.
그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진리는 인간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듯하다. 진리에 대한 파괴이자 모든 창조적 생각을 짓밟은 그에게 어찌 보면 사형은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우리에게 ‘모른다’를 일깨워주는 것이 아닌 변화하는 가치, 창조하는 가치에 대해 그는 논했어야했다. 그는 환상 속에 있는 절대적 무언가를 원했지만 결국 그 세상에 남은 가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의 환상은 그의 제자 플라톤에 의해 철저히 우상화되었고 왜곡되었다.
앞에서 살펴봤다시피 그의 진리를 탐구하는 자세와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알아가려는 점은 누구보다 뛰어나며 열정적이다. 하지만 그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는 끊임없는 부정으로 인한 생각하는 자의 의지력 상실과 사고의 차단, 그리고 실용적이지 못한 헛된 진리의 추구를 고려해보면 그의 명성과는 분명 괴리가 있다. 이제 우리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다시 한 번 평가를 내릴 때이다.
1) I.F. 스톤(1999), “소크라테스 철학의 비밀1”,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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