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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008 - am 02:32

 

 

 

 

 

Pentax Super program

kodak 200

Photographed by J

 

 

 

am 02:32. 눈이 내리던 4월의 새벽이었다.

남자를 만났다.

잘못 나온 자리라는 걸 알았다.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했을 때부터 쉴 새 없이 웃음이 터지고

흘려 없어질 농담에 즉각적으로 맞장구를 치는 모양새를 보며

어쩐지 처세에 능한 족속들은 비위가 상하기 마련이라고

표정 같은 건 숨길 줄 모르는 뻣뻣한 얼굴로

이런 자리에 끌고 나온 친구의 옆구리만 찔렀다.

 

통 연락이 없어 잘 지내는 줄로만 알았던 남자가

파국과 다툼에 시달리다 백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옆좌석에 앉은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황급하게 엑셀을 밟던 친구였다.

 

어, 안녕, 늦은 시간인데 미안하다 야- 하는,

밥은 먹었어 여기 김치찌개가 끝내주는데, 하는

밝고 환하고 요만큼의 빈틈도 없이 따스한 목소리에

순간 눈이 부셨다.

 

지나치게 경쾌한 인사였다.

잘못 나온 자리라는, 기분이 들었다.

 

 

날 버려 두고 둘이서 마신 소주가 도합 여섯 병.

포크를 잡는 손가락과 웃을 때 보이는 꼬부라진 입꼬리,

동그랗게 떠지는 눈꺼풀 같은 것들이

상처 입고 버림 받은 사람의 그것은 아닌데,

괜시리 새파란 얼굴로 핸들을 잡던 녀석을 적잖이 비웃어가며

이 나이에 대리기사 노릇은 하기 싫다고, 친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조용히 일어나 벗어둔 가방을 고쳐 메었을 때였다.

 

 

가지 말아 주라. 

 

 

눈처럼 차가운 손가락이 팔목을 휘감았다.

그 바람에 휘청 하고 발을 두어번 잘못 디뎠다. 눈이 마주쳤다.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이 투명하게 부풀어 올랐다.

 

 

가지 말아 주라, 나,

혼자 있잖아.

 

 

분명한 발음이었다. 소주 냄새 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손목이 아플 만큼 사력을 다해 잡고 놓지 않는 손에서

어디에서도 느껴 보지 못한 절박함이 묻어났다.

 

 

너, 이렇게 필사적으로, 이런 손으로

그여자를 잡았었니,

마음이 쿵. 하고 한조각 떨어져 나갔다.

 

 

am 02:32. 눈이 내리던 4월의 새벽이었다.

남자를 만났다.

잘못 나온 자리라는 걸 알았다.

나는 그에게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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