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서야 박정희 실체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파렴치한 저런 인간이 대한민국의 대툥령이었다니..
그러니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이 이러하지 않을까?
있어서는 안될 정말 파렴치한 대툥령...박정희...
강연 내용
반갑습니다. 굉장히 많이 나오셨네요. 날짜를 잡고 보니 야구를 하는 날이네요. 저는 야구를 잘 보지 않습니다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몇 분 계시겠나 했는데 이렇게 많이 오시다니 놀랍습니다.
참고로 저는 당원이 아니며 앞으로도 특별한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당원은 아마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국민참여당을 하시는 분들이 워낙 저와 함께한 분이 많으시고 그분들과의 인간적인 관계를 차마 저버릴 수 없어서 당원은 아니지만 국민참여당 내 참여정책연구원의 이사라는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김진태 위원장과는 오랜 친분이 있고 최근 국민참여당 대구시위원장을 맡아 고군분투하시는데 제가 뭔가 도움이 될까 하다가 오늘 이렇게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야구도 안 보고 여기 오신 여러분들을 재밌게 해드려야 하는데 사실 경제가 어렵습니다. 신문에 경제 면이 있지만 대부분 경제 면은 제목만 보고 잘 안 봅니다. 제일 재미없거든요.
제가 한겨레신문에 경제이야기라는 코너를 2년 전부터 싣고 있습니다. 경제에 대한 교육을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좀 재밌게 해보자라는 취지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문학, 역사 등등의 이야기와 함께 경제를 재밌게 (소개)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어렵습니다. 한 100회까지는 연재하고 짤려야 하지 않겠나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오늘 바로 101회 째 연재를 했습니다. 신문에는 번호 없이 실리고 제가 원고를 넘길 때 번호를 매기는데 어제 101회를 보냈습니다. 혹시 지나가다 훑어 보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진태 위원장과의 (강연)이야기 때 오늘 강연 제목을 ‘한국경제 어디로 가는가’ 로 잡았는데요. 범위가 굉장히 크고 넓습니다. 다 이야기 하기는 힘들 것 같고 여러분의 질의 응답을 통해 보충하려고 합니다. 오늘 강연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으나 한 시간 정도 이야기하고 30분 정도 질의 응답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한국경제는 제가 볼 때 크게 봐서 3단계에 있다고 봅니다.
1단계는 60년대 박정희 정권 때의 관치 경제 혹은 통제 경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극좌파들이 만든 사회주의 경제 체제하고는 완전히 다릅니다. 대표적으로 소련과 중국이 사회주의 경제 체제로 몇 십년을 성장하다 포기하고 자본주의로 급 선회하였습니다. 현재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딱 둘, 북한과 쿠바입니다. 사회주의 경제 체제는 명령 경제이고 정부가 일일이 지시합니다. 시장이 하는 역할은 거의 없고 최소의 역할만 합니다. 이 사회주의 경제 체제는 초반에는 고 성장을 합니다. 북한도 60년대까지는 남한보다 더 발전했었습니다. 남한보다 먼저 지하철을 만들 정도였지요. 그런데 70년대 오면서 남한과 북한의 경제 역전이 일어나는데 그 이유는 독재 때문입니다. 독재는 초기에는 자원을 동원하고 모으는데 유리할 수 있으나 독재 때문에 자율성과 창의력을 끌어낼 수 없어서 시간이 갈수록 높은 수준의 경제 성장은 이루어내지 못합니다. 그러니 몰락할 수 밖에 없죠.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한 개방 개혁 체제로 러시아 베트남 등은 고성장하고 있습니다. 북한 같은 경우는 빨치산 정신, 일종의 주체성이 너무 강해선지 이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10. 4 남북공동 선언을 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으로 넘어 갈 때 저는 관심있게 지켜 보았습니다. 육로로 38선을 넘어 가셨는데 잠시 멈칫하시더니 그냥 넘어가시더라구요. 그때 뭔가 땅을 짚어 본다든가 손을 댄다든가 정도의 제스처를 더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보다 수 십년전 김구 선생이 38선을 넘을 때 아주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사진을 남기셨거든요. 38선을 베고 죽을 지언정 민족을 가를 수는 없다고 비장하게 말씀을 하시면서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으셨습니다.
남쪽만 먹겠다는 이승만의 단정 시나리오에 어떻게 보면 김구 선생이 이용당하신 거죠. 반탁 통치에 힘을 합치면서 좌파는 청산 되고 결국은 분단까지... 김구 선생이 이 남북분단을 막으려고 남북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948년 4월 쯤 이 38선을 넘으셨습니다. 5월 단정선거에 임박해서 너무 늦은 감이 있죠. 재밌는 것은 이 회의를 4김회담이라고도 부르는데 남측 대표에 김구, 김규식, 북측 대표에 김일성, 김두봉 등 공교롭게도 모두 김씨 성을 가진 이들이 회의에 참석을 했습니다. 대동강 쑥섬에서 회담이 진행 되고 성명은 발표했으나 정세에 영향은 못 미치고 결국 선거를 치루게 되는데 김구 선생을 비롯한 양심적 우파들은 출마를 하지 않게 되고 그대로 국회가 구성되어 국회 간선을 통해 이승만이 당선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만약 김구, 김규식이 그때 보이콧이라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출마하고 당선해서 국회에 들어갔다면 이승만에 대한 견제 세력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있다가 또 하기로 하고요.
다시 박정희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930년대에 중국에 만주국이라는 일본이 만든 허수아비 국가가 세워집니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이가 황제에 즉위하긴 하나 실질적인 통치는 일본군부에서 합니다. 이 만주국의 경제 방식이 통제 경제 방식인데 극우지요. 시장을 무시하고 국가가 개입하고 통제 하며 재벌과 유착하는 경제 체제인데 히틀러나 무솔리니등도 이것을 채택하고 실험했었습니다. 만주국을 통치하던 실세는 ‘니끼 산스께’라고 불리는 관동5인방이였는데요. ‘끼’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사람이 2(니)명, ‘스께’ 라는 이름의 사람이 3(산)명 인데서 그 명칭이 유래했습니다. 그 중 기시 노부스께라는 인물이 지금의 산업자원부나 통상부 같은 곳의 젊은 관료였습니다. 이 기시 노부쓰께라는 인물은 같이 일했던 도조 히데끼 같은 인물이 전범으로 처형될 때도 처형되지 않고 살아남아 나중에 자민당을 창당해서 자민당의 아버지, 일본 보수정치의 원조로 활약하게 됩니다. 그 외손자가 아베 신조 총리로 극우 보수주의자이면서 한국을 업신여기고 침략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지요. 일본에서 친한파라고 불리는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극우이면서 속으로는 한국을 업신여깁니다. 식민지 시절 덕분에 니들이 지금 잘 살고 있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사실 일본의 좌파들이 감옥 가고 고문당하면서까지 전향을 거부하며 한국을 이해하는 사람들입니다.
만주국이 이런 사람들의 통제 경제 방식을 기본으로 일본에 의해 통치되었다는 사실을 왜 이야기 하냐하면 박정희가 젊을 때 이런 만주국에서 3년을 보냈다는 점에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젊을 때의 경험은 정말 중요하고 오래 가거든요.
박정희는 구미 보통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반장까지 했습니다. 똑똑했죠. 대구사범학교를 5년 다녔는데 현재의 사대부중입니다. 이상하게 제가 사대부중을 다닐 때는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 학교를 나왔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박정희는 여기서 학과 공부는 60여명 중에 60여 등을 할 정도로 꼴찌였는데 교련과목은 앞에서 시범을 보일 정도로 잘했다고 합니다. 100명이 입학하면 중간에 사상교육 같은 거에서 천황에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든가 을지문덕 같은 위인전을 읽었다는 이유로 1/3은 졸업하지 못하고 2/3 정도가 졸업하는데 박정희는 그 중 거의 꼴찌로 졸업하긴 합니다. 졸업 후 문경 초등학교의 선생이 되는데 그 시대에는 굉장히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이였습니다. 4년 동안 선생을 하다가 그만두고 만주군관 학교에 23살 나이로, 나이를 속여 요즘 위장전입을 하듯 서류를 위조하고 진충보국이라는 혈서까지 써서 입학을 합니다. 군관학교에서는 우수했습니다. 1등으로 졸업해서 금시계도 타고 특전을 받아 일본육사 3학년에 편입해서 졸업을 하고 첫 발령을 만주로 받습니다. 1년 근무하고 해방을 맞았으니 3년을 만주에서 보낸 것이지요. 그 때 만주국의 통제 경제가 머리에 박혔고 이 통제 경제의 가장 큰 특징이 고속 성장입니다. 히틀러나 무솔리니도 경제적으로는 고속 성장에 완전 고용도 이루었습니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하고 관치 경제 정책을 도입한 것은 젊은 날 만주국에서 경험한 이것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28살에 만주에서 해방을 맞은 박정희의 감회는 씁쓸했을 것입니다.
심훈은 ‘그날이 오면’에서 한강이 춤추고 라며 표현을 했었는데 박정희는 실의에 가득 찼을 것입니다. 이제 군인으로써 출세 좀 하나 했는데 그만 국내로 돌아오게 되죠. 당시 박정희의 셋째 형인 박상희는 구미에서 동아 일보 지국장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도 한 좌파로 동네에서는 존경받는 인물이였습니다. 만약 박정희 집안에서 대통령이 나온다면 박상희 일거라고 말을 했을 정도니까요. 그런 형 덕분에 박정희는 좌익을 합니다. 남로당에 가입을 하고 군사 부장까지 올라갔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러다 여순반란사건, 제주도 4.3사건이 벌어지고 단정 반대 데모가 곳곳에서 일어나니 이승만 정권은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고는 군대 안에 좌파를 색출하는데 이 때 박정희도 특무대장 김창룡 앞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박정희는 그 때 아주 협조적으로 감방에 갇혀있는 수백 명의 동지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남로당 인사를 찾아내서 죽이는 데 공을 세웁니다.
인간은 그러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아는 박종철 열사는 친구 박종훈의 행방을 묻는 물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불지 않고 결국 죽습니다. 그 박종훈은 지금 한나라당 경기도에서 모 지구당 위원장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박종철 열사가 이것을 알면 어떨까요? 고문 끝에 못 견뎌서 불었다면 지탄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런데 박정희는 마치 기회를 잡은 것처럼 배신을 한 거죠. 5.16 쿠데타 때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고는 술 먹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돌격 명령을 내리는 데 그 돌격 명령도 일본말로 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술 취하면 일본 군가를 부르질 않나 국민들은 양주 먹으면 잡아 가면서 자기는 시바스리갈 마십니다. 친일, 반민족, 독재, 인권유린, 헌법 수시로 고치기, 사생활까지 박정희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런 나쁜 인간이 없을 정도입니다. 하나도 배울게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이렇게 형편없는 인간이 경제 성장을 잘 시킨다는 게 이게 가능한 일인가 너무 의아하죠. 국민들이 박정희 때 경제 좋았다, 민주주의 때문에 경제 망쳤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저도 나름 좀 공부했습니다.
1960년대 이후 통제 경제를 관치 경제라고 부릅니다. 초기 고성장을 합니다. 박정희 정권 때 연평균 9%의 성장률을 기록합니다.
박정희 고성장의 정체는 통화 남발, 개발입니다. 개발해서 땅값 올리고, 돈 막 찍어내서 물가 올리고. 하는 일이라고는 온데 기공식, 준공식 참석해서 테이프 끊고 전국 파헤친 거 밖에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 땅값 오르고 비싸서 욕 엄청 먹었습니다. 5년 동안 연 평균 2.4% 올랐습니다. 박정희 때는 연 평균 33% 올랐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오른 비싼 땅값이 수십년 우리 발목 잡고 애 먹이고 있습니다. 수출해야 하는 나라에 비싼 땅값은 치명적입니다. 땅값이 비싸니까 공장 부지 비싼 건 당연하고 , 임금 오를 수밖에 없죠, 전세 대란에 교통지옥, 도시 계획은 할 수도 없습니다. 박정희는 한국 경제를 망친 장본인이다 이렇게 봐야 합니다.
눈앞의 경제 성장에만 급급해서 그런 식으로 하니까 결과는 서민들이 다 짊어지고 있습니다. 경제 잘 못한다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은 땅값 상승에 대해 책임이 아주 미약합니다. 김영삼은 그 전에 노태우가 만든 법 덕을 좀 봤고 김대중 때는 IMF 덕을 보긴 했습니다만 민주 정부는 책임감 있게 경제를 운영했습니다. 땅값을 올린 것은 4명의 독재 정권, 박정희가 절반을 나머지 이승만, 노태우, 전두환 정권이 거의 절반 해서 그들의 책임입니다. 물가는 땅값하고 쌍둥이입니다. 거의 비슷합니다. 한번 올라간 땅값, 물가 내려가지 않습니다. 수출에도 어렵고 관광에도 어렵습니다. 호텔비용 비싸고 물가 비싼데 누가 관광 오겠습니까?
제발 독재가 경제를 살린다 하면 안 됩니다. 독재는 독재일 뿐 잠깐 살리고 오래 죽입니다. 독재자들이 인기 위주의 경제 성장 정책 갖고 그런 무책임한 경제 운영을 하는 결과가 이렇습니다. 집 서너채 혹은 땅 좀 가진 국민은 전체 국민의 5% 정도입니다. 그런 사람들만 살판 나고 집 하나 가진 사람은 본전, 나머지 집 없는 사람들은 살기 어려운 나라로 만들어놨습니다.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 때부터 한국 경제는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김재익이라는 경제 수석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관치 경제는 문제가 있고 시장 경제로 가야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처음에는 미친 놈 취급을 받았습니다. 모진 놈 옆에 있다 벼락 맞는다더니 아웅산 테러로 죽습니다. 그때는 시장 경제가 거의 변두리 학문이였는데 지금은 시장 경제를 공부한 경제학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요. 특히 우리나라는 1997년 IMF 때 시장 경제를 요구 받습니다. 재벌 체제나 관치 경제 청산하라가 대표적인데요 당시 김대중 정부가 너무 충실히 따른 경향이 있습니다. 반항은 필요한 법인데 말이죠.
1998년부터 시장 경제가 유행하면서 지금까지 시장 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재벌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덩치를 키워준 재벌들이 이제 정부가 간섭하는 게 싫은 거죠. 재벌들은 무조건 시장 만능주의에 손을 들겠죠. 그런 재벌들이 보수 언론에 힘을 실어주고 보수 언론은 재벌의 편을 들어 줍니다. 보수적인 경제학계도 전부 시장! 시장!을 외칩니다. 게다가 한번 배운 거 오만데 다 써먹습니다. 경제 뿐만 아니라 교육, 병원 등등 시장에 맡겨야 한다 경쟁을 해야 한다 하며 신났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경제가 시장주의냐. 딱히 그것도 아닙니다. 아직 관치 경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늘 공무원들이 군림하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있고 은행에서 은행장 뽑을 때도 공무원 눈치봐야 합니다. 관치 경제의 나쁜 점은 살아 있고 시장 만능주의의 나쁜 점도 들어와 짬뽕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쪽 발은 관치 경제에 또 다른 발은 시장 경제에 딛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 경제의 모습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보고 고치려 노력하였습니다. 시장 만능주의는 파시즘과 정반대로 우파긴 하지만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시장과 정부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전 정권인 김대중 대통령이 외압에 의해 받아들인 부분들과 거리를 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뭐 좀 하려고 하면 늘 시장 원리에 역행한다, 지나친 분배주의다 이 2가지를 가지고 조중동이 무수히 노무현 대통령을 때렸습니다. 제가 노무현 대통령과 일할 때 1톱3전을 그것도 2번이나 맞은 적이 있습니다. 1톱3전이 무엇이냐 하면 신문 1면 톱과 지면 3면에 기사를 때리는 걸 말하는데요, 신문이 낼 수 있는 최강도의 비판이라 할 수 있겠죠. 노무현 대통령님은 그 기사 보시고 화가 나서 잠을 못 주무셨다고 하셨는데 저는 가문의 영광이다 싶어 그 기사들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정우는 균형발전주의자라서 시장주의를 무시한다는 내용을 재주도 좋지 1톱3전에 어떤 때는 1면과 끝에 사설에서 중간중간에 기사를 넣어서는 5개 면에 나누어서 공격했었습니다. 2008년 미국 금융 위기를 겪고 나서 요즘 조중동이 주춤합니다. 금융위기가 시장 만능주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 예산 구조에 변화가 있었는데요, 복지 예산이 21%에서 28%로 올랐고 경제 예산이 28%에서 21%로 내렸습니다. 이것 때문에 보수언론이 얼마나 공격했는지 모릅니다. 복지 때문에 성장을 무시하고 어쩌고 하면서 말이죠. OECD 국가의 복지 예산 평균이 55%입니다. 미국은 복지후진국, 잔여적 복지국가 즉 남는 돈을 복지에 쓰는 나라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한 50%는 됩니다. 일본도 36% 정도 복지에 씁니다. 선진국 경제 예산 10% 안 넘습니다. 28% 정도면 이제 걸음마 뗀 수준이고 당연히 가야할 방향으로 가는데도 경포대니 뭐니 하면서 난리 쳤습니다. 개발주의 하면 국물이 많이 남습니다. 그게 부패로 가고 정치자금으로 가고 수십년 그렇게 했습니다.
역대 독재 정부는 국민이 안중에 없는 정부였습니다. 그러니까 국민들이 각자 살길을 찾아 살아 온 나라입니다. 복지를 안 하니까 교육이나 병원 같은 고급 직업에 일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국민들이 전부 식당, 술집, 게임룸, 미장원, 택시 등등 영세 자영업에 종사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1/3이 자영업이며 선진국 중에는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결국 국가가 국민을 포기했다는 겁니다. 얼마나 무책임합니까? 이렇게 기형적인 나라에 살고 있는데 국민이 잘 알아주지 않았죠. 대단한 일을 해냈는데 우리 국민은 잘 모릅니다. 누가 국민을 진정 생각하는 대통령인지, 시장가서 떡볶이 사 먹지 않고 회의하고 설득하고 했던 그 대통령을 돌아가시고 좀 깨닫는 거 같은데 살아 계실 때 좀 그랬다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의 경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저는 이것이 노무현이 꿈꾼 나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는 평등하고 인간적이며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루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시장 만능주의 외치는 경제학자가 우리나라에 많은데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그렇습니다. 유학가서 시장 만능주의에 대한 챕터가 20정도까지 있다면 한 15정도까지 공부하고 이제 시장 만능주의의 문제점을 배워야 되는데 그 정도에서 그만 빨리 학위 따고 돌아와 버리죠.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는 이론적으로도 많이 연구가 되어 있으며 현실적으로도 성공적인 증명이 많이 되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겨우 한발 뗐는데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워낙 발목 잡아서 제대로 못했습니다.
죽산 조봉암 선생이라고 일제시대 때 좌파 사회주의자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신 분이 있는데 이 분이 해방 이후에 사민주의자로 활동하셨습니다. 이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죠. “시장과 자본, 공산과 독재도 배격한다.”라고. 이승만 정부, 그 친일파로 가득한 곳에서 홀로 독야 청정, 농림부장관 직을 맡으셔서 토지개혁에 앞장섰으나 6개월 만에 뇌물혐의로 쫓겨납니다. 6.25전쟁 때 남측이 김일성과 북한을 환영하지 않은 것이 바로 이 토지개혁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땅이 생겼는데 무슨 해방군이겠습니까? 북한의 인민군이 수도 서울에 붙인 플랜카드에 배신자 조봉암을 처단하라고까지 썼었습니다.
그 조봉암 선생이 50년대에 진보당을 만들었습니다. 만일 김구, 김규식 선생이 조봉암과 같은 판단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보이콧하지 않고 선거에 참여했더라면 6.25가 아마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 합니다. 김일성이 봤을 때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 정권으로 쓸어내야 하는 정권이었습니다. 만약 김구, 김규식이 국회를 구성하고 있었다면 탱크로 쓸어야 한다는 생각까지는 안 했을지도 모릅니다. 6.25전쟁은 우리 민족사의 비극입니다. 당시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고통은 물론이요 지금도 조중동이 단골 메뉴로 써먹으면서 국가와 국민을 애먹이고 있지 않습니까?
조봉암 선생은 52년 선거에서는 표를 얼마 못 받았지만 56년 선거에서는 표를 많이 받았습니다. 56년에도 엄청나게 부정 선거를 저질렀지만 그 가운데서도 조봉암 선생이 이승만을 이긴 곳이 딱 한군데 있는데 그곳이 바로 대구입니다. 최근 보수꼴통 논란으로 시끄러운데 한 때 대구는 그런 높은 정치 의식을 보유한 곳이었습니다. 이승만은 옹졸한 인간이라 진보당 사건이란 걸 조작해서 조봉암 선생을 간첩 혐의로 사형시킵니다. 오래전부터 친한 양명산이라는 사람이 북한의 간첩이며 북한에서 주는 자금을 조봉암한테 전달했다는 이유로 1심 5년을 구형받는데 2심에서는 사형을 받습니다. 양명산이 고문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는데도 이승만에게 과잉 충성하는 판사들이 결국 사형을 구형한 것입니다.
농림부 장관 재직 당시 뇌물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판사였던 사람이 이 때 조봉암 선생의 변호를 맡습니다. 조봉암 선생이 손가락이 몇 마디 없으신데 독립운동하다 감옥에 잡혀 들어갔을 때 동상으로 잃으셨지요. 이것을 본 그 분이 자기는 판사 되려고 열심히 공부만 했는데 선생의 손을 보니 부끄러워서 자신이 어떻게 이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겠나 하는 심정에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나섰다고 합니다. 사형장으로 가는 아침 담벼락에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것을 보고 향기를 한참 맡은 조봉암 선생은 태연히 사형장으로 갑니다.
“이승만은 소수의 특권 계층을 위한 정치를 했고 나는 다수의 서민 계층을 위해 정치를 했다. 나처럼 정치 보복으로 죽는 사람이 앞으로 없었으면 좋겠다” 라 하셨다 합니다.
지금도 다수의 국회의원이 조봉암 선생의 명예 회복에 서명하지만 아직도 신원 회복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제시대 때 온갖 나쁜짓을 다하고 이승만 정권에서 온갖 더러운 짓을 도맡아 했던 김창룡이 김구 선생과 나란히 국립묘지에 묻혀 있습니다. 그거 아무리 파내라 해도 안 파냅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대구 출신입니다. 학교 다닐 때 데모도 하고 노동운동도 하는 거 지켜 봤습니다. 데모도 그냥 한 게 아니고 주동자로 열심히 활동하고 노동 운동 때문에 전기 고문도 당했습니다. 광화문에 이승만 동상 세우자 그러더군요. 자꾸 공부를 할수록 이승만이 존경스럽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 되면 큰일입니다.
얼마전에 이재오도 박정희 생가를 찾아가 절을 하며 박근혜 입맛을 맞췄다 하지요? 국영수 위주의 교육이 큰 문제입니다. 교육부 장관도 대구 출신인데 대구 출신 인물이 많긴 합니다. 역사를 몰라서 우리 국민이 이렇게 판단을 못하고 우리 나라가 발전을 못하고 있는데 더 국영수 중심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이 한국 현대사를 제대로 알게 되면 굉장히 발전하게 될 겁니다. 국민들이 아직 눈을 못 뜨고 있는 이유는 한국사를 안 가르치고 은폐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치부가 드러나기 때문이죠.
죽산 조봉암 선생이 꿈꾼 나라가 노무현 대통령이 꿈꾼 나라와 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상식을 가진 나라에 살아가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언제 정의가 숨쉬는 나라가 될지 생각해 봅니다.
이상으로 오늘 제 이야기를 마치고 질문 받겠습니다.
질문)이상원(선각)
5학년 후반, 꼴통 나이라 박정희가 경제 살렸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박정희가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어땠을까요?
답)지금보다 성장률은 낮았겠지만 훨씬 정상정인 경제가 되었겠죠. 땅값, 물가 낮고 서민들이 훨씬 살기 좋고 미장원, 술집 대신에 고급 일자리가 많이 생겼겠지요. 소득 2만불의 이런 나라가 아니라 소득은 만6천불 정도에 그런 나라가 낫지 않을까요? 앞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훨씬 더 컸을 것입니다. 그게 오히려 소득 3만불로 가는 지름길이었을지도 모르죠. 늦게 가는 거 같아도 나중에는 더 빨리 성장이 일어났을 겁니다. 더구나 우리 국민은 애살이 많아서 다른 나라는 택도 없는 잔업까지 해가며 납기일 맞추어내지 않습니까? 우수한 국민성으로 훨씬 더 발전할 수 있는데 이렇게 지지고 볶고 싸우고 부패하게 된 것은 독재자들의 유산입니다. 그걸 잘했다고 하면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친일과 애국의 구분이 없습니다. 독재정권이 가치를 전도시켜놓은 것이지요.
질문)김효진(즐거운이름)
도표상에서 우리나라가 관치 경제와 영미식 모델사이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셨는데
앞으로는 북유럽식 경제 모델 쪽으로 가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이것이 해결되어야 북유럽식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면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답) 멀지요. 상식이 통하는 나라로 가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국민의 5%가 자기네들끼리만 잘 사는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다가올 통일을 생각해 보았을 때도 북한에게는 북유럽식 경제 모델을 제시하는 게 더 잘 받아드려 질 겁니다. 영미식 모델에게는 알러지가 있을 테니까요. 스웨덴 같은 나라로 만들자 하면 잘 먹히겠지요. 소련도 개혁 하면서 관련 경제학자들을 스웨덴으로 많이 보냈습니다.
토양이 너무 척박합니다. 다른 나라 보다 우리나라는 좌파가 약합니다. 독재자들이 싹을 싹 잘랐죠. 빨갱이라고 고문하고 매도하고. 김문수, 이재오 같은 인간도 전향해서 저러고 있지 않습니까?
대신 노동운동, 시민운동, 농민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이런 것들은 상당히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봅니다. 좌파는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겁니다. 좌파의 가치를 살려내는 시민운동들이 활성화되고 이런 운동들이 국민들을 설득해 내고 국민들에게 새로운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계몽 이런 게 중요하다고 보고요, 저 또한 이런 외부 강의는 같은 맥락에서 해달라고 하면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하려고 합니다.
경대에서 강의를 하지만 저는 수강생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500명이고 많게는 800명까지 들은 적도 있지만 저는 많이 올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강의 때 마다 이승만, 박정희 특강을 하는데요, 강의 평가서를 보면 경제관련 내용 평가 보다 ‘깜짝 놀랐다. 모르던 걸 알게 돼서 너무 충격적이다.’라는 내용이 많습니다. 대구 경북이 어떤 곳입니까? 집에 가면 부모님, 조부모님 다 박정희를 존경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하지요. 집에가서 이런 이야기로 토론하면 가정불화만 일어나니 부모님, 조부모님께 잘해드리고 단 너와 비슷한 젊은 사람이 술집에서 택도 아닌 소리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끝까지 토론해서 그 놈을 설득해내라 라구요. 한 학기에 500명이 30년째 가정 화목을 유지하며 전국에 흩어져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면 노무현이 꿈꾼 나라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난 선거 때 무상급식이 첫째 이슈가 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좌파적인 생각에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주고 호응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다 바뀌고 있는데 대구 경북만 철옹성입니다. 그럼 대구 경북만 바뀌면 우리나라도 바뀌겠구나, 희망이 있구나, 이미 바뀌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보수꼴통이란 말을 공식석상에서 안 했으면 좋았겠지요. 여기 사람이라고 뭐가 그리 다르겠습니까? 다만 대통령 많이 나왔다는 이유로 뭐 하나 좋아진 것도 없는데 괜히 보수가 되었습니다.
교육, 계몽 이런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박영민
독재가 경제 개발에 부작용을 미쳤다라고 하시면서 북유럽이나 서유럽 쪽의 경제 모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식민지였던 나라가 민주주의를 지켜가며 발전한 사례가 있습니까?
답) 그런 경우가 잘 없죠. 언어학의 석학이면서 행동하는 진보의 대변인으로 유명한 노암 촘스키라는 분이 이 비슷한 질문을 강연에서 받았습니다. 2차 대전 이후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제대로 한 나라가 있습니까 라고 누군가 물었는데 그는 한국을 들었습니다.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참 어렵습니다.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사이에 끼여서 잘 해야 합니다. 너무나 지도자 복이 없습니다. 오백년 조선 왕조에 세종과 정조 2분 정도를 좋은 지도자로 꼽을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 괜찮은 대통령, 노무현 밖에 없다고 봅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훌륭하시긴 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박정희 기념관 짓자고 한다든가 하는 게 대표적이죠. 반대 서명 운동도 하고 성명도 발표하고 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점에서 흠을 잡기 힘듭니다. 아주 훌륭한 대통령이지요. 우리 민족의 잠재력은 워낙 뛰어나서 지도자가 왠만하면 세계적으로 약진할 수 있는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고개를 절레절레) 학교에서 제대로 안 가르칩니다. 직무유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헌법을 누더기로 만들면서까지 계속 해먹으려다가 30년을 망쳤습니다. 역사를 모르는 것은 눈을 감고 거리를 걷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독일은 민도가 높은 나라인데도 히틀러를 따랐죠. 국영수 중심의 교육, 이거 정말 심각합니다. 민주시민을 양성해야죠.
질문)신재호(신조협려)
강연 잘 들었습니다.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저도 경대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데 수강생 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수강생 수에 제한을 두지 않아도 500명씩 수강하는 수업은 잘 없습니다. 그만큼 교수님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잘 모르시는 것 같아 드리는 말씀인데 경북대의 자랑이십니다.(웃음)
일단 가벼운 질문 하나, 평소 거리 다니실 때 이렇게 뵈면 오늘 강연 모습과는 달리 힘이 없어 보이십니다. 염색도 안 하시는데 조금 젊게 해서 다니시는 건 어떨까 하구요, 무거운 질문 하나 드리면 북유럽식 사민주의는 분배 아니면 복지로 대표되는데 일반 시민들에게 이 분배와 복지의 가치가 개인과 사회에도 분명 이익이 된다고 어떻게 잘 설명하면 좋을지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 원래 약골입니다 병치레도 많이 했고요, 결석도 밥 먹듯이 했습니다. 지금도 보다시피 강골과는 전혀 거리가 멉니다. 흰머리가 많은데요, 집사람도 염색 가끔 권하는데 제가 계속 완강하게 자연주의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는 미장원 아줌마도 염색 안 하는 게 낫다고, 조화가 잘 되어 있다고 하셔서 그 말 믿고 안 하고 있습니다.
복지나 분배를 하면 성장에 발목 잡는다고 참여정부 내내 공격했습니다. 청와대 일 마무리하고 나오면서 글을 한편 썼는데 복지와 분배가 성장에 발목 잡는다는 걸로 공격하면 그걸 방어할 만한 뭔가가 없는 것 같아서 제가 물러나면서 시간이 생겨서 긴 글을 썼었습니다. “분배와 성장은 동행” 이라는 제목으로 제가 좋아하는 가수 최성수의 동행이라는 노래처럼 분배와 성장을 마치 모순, 양자택일 형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를 가지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한번 보시면 좋겠고요. 잘 몰라서 하는 보수 언론의 농간이지요.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자기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겁니다. 실제로 북유럽이 영미보다 성장률이 높고요, 이론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연구, 증명되고 있습니다.
질문)김인동(한나라당박멸)
토지공개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참여정부 때 정책에 접목하실 생각해 보신 적 없는지 궁금합니다.
답) 올림픽을 전후해서 땅값이 많이 올랐죠. 그 때 토지공개념으로 접근한 게 주택보유상한제, 개발이익환수제, 토지초과이득세 이 3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덕분에 투기도 잡히고 김영삼 정부 들어서도 안정이 유지가 되었는데 김대중 정부 때 위헌 판결 받으면서 셋 다 사라집니다. 사실 판결문에도 보면 위헌이라기보다 헌법 불합치로 좋은 법이지만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으니 보완하는 게 좋겠다는 내용으로 판결이 나와 있습니다. 그 때 없앨게 아니라 손질만 했으면 투기, 폭등이 안 왔을 텐데 IMF 빨리 졸업하기 위해서 부동산을 많이 키웠고 각종 규제 다 풀고 세금 감면 등 지금 이명박 정부처럼 모든 걸 다 풀었습니다. 이 토지공개념 3법이 거추장스러웠겠죠. 큰 실수입니다. 민주 개혁 정부로서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사실 김대중 정부에서 한 겁니다.
역대 대통령 중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훌륭하다고 했는데 이런 점에서 저와 코드가 잘 맞았습니다. 눈빛만 보고도 뜻을 알 수 있을 정도였고 약골임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줄 모르고 일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잘 살리는 게 좋고 참여 정부 때의 종부세가 사실은 토지공개념에 가까우면서도 3법을 뛰어넘는 더 우수한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걸 결국 이명박 정부가 죽였죠.
질문)양선봉(선봉장)
오늘 좋은 강연 감사드립니다. 부지런한 대통령 모신다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모를 동지로 보고 이명박 대통령은 참모를 부하로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리더쉽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리고요, 윈칙과 상식을 노무현 대통령님이 말씀하셨는데
요즘 공정한 사회에 대해 불공정한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함께 분노했던 사람들, 공통된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끼리 왜 뭉쳐지지 않을까요?
답) 그 두 사람의 리더쉽은 큰 차이를 보이는데요, 저는 사실 대통령이 되기 전, 정치인 노무현을 만난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정책 공약 관련한 회의에서 인사드리고 총 4시간 정도를 만났는데 대통령 되신 후에 제가 발탁이 된 것을 저도 놀라고 제 주위도 다 깜짝 놀랐습니다. 가까이서 뵀을 때 겸손하고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그 어느 대통령도 이런 사람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책 실장 제의를 받고 사양했었는데 몸이 안 좋아서 그 중책을 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실제로 청와대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당시 서울시장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했었습니다. 국무회의에 다른 시장, 도지사는 참가하지 않고 관례로 서울시장이 참가했는데 이것은 지방자치의 원칙에 맞지 않으며 서울시장만 예외를 두는 것은 다른 시장, 도지사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하여 정중하게 다음 국무회의부터는 참석 안하셔도 된다고 이야기해서 서울시장은 참여 정부 때 국무회의에 안 들어 왔었는데 요새 오세훈 시장이 거기 다시 들어가 있더군요. 거꾸로 다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왠만하면 말을 놓는 버릇이 있더군요.
마지막 국무회의 하고 떠나면서 악수를 했는데 “그동안 수고했어.” 라고 말을 턱 놓더라고요. 대통령이 된 후에 TV로 봤는데 청와대로 김경문 두산 야구 감독을 초대한 자리에서 초면에 “수고했어.” 라며 말을 놓더군요.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말을 놓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건 인격의 차이겠지요. 노무현 대통령은 성격이 좀 급하고 말이 많은 것이(웃음) 결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데 또 보면 성질이 급하니까 화도 버럭 내고 고함을 지르기도 하다가도 또 좀 있으면 풀립니다. 자기가 먼저 사과하고 이런 식입니다. 속에 담아 두지 않는 거죠.
이명박 대통령은 듣기로 비판하고 안 좋은 소리를 하는 참모는 다시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고를 쪼매 듣고는 자기가 이내 말을 한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이 많아서 그렇지(웃음) 끝까지 듣고 자기 의견을 말하며 중간에 자르는 법이 없습니다. 비판하는 참모를 내치는 일이 없습니다.
인품의 차이고 그릇의 차이죠. 모처럼 우리는 괜찮은 지도자를 모셨는데 그 진가를 몰라 본 겁니다.
질문)전은숙(봄산에)
미장원 아줌마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머리 근사하시니까 염색 안 하셔도 됩니다.(웃음)
사저에서 대통령님 뵀을 때 오늘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거의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OECD 국가 중 복지 예산이 가장 낮았는데 꼴찌 탈출한 건 다행이지만 그래도 30% 못 넘긴 게 아쉽다라고 하셨습니다.
질문드리면 이승만, 박정희 특강 하신다고 하셨는데 노무현 특강 하실 계획은 없으신지요.
그리고 대구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는 게
대구시가 인천과 강원도에 이어 개인부채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낙후된 대구 경제를 어떻게 부활시킬 수 있을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답) 감사합니다. 봉하에서 그렇게 말씀하셨군요. 진보의 미래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죠. 복지를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한다고 했는데 보수들이 너무 공격해서 고정도 밖에 못한 게 제일 아쉽다 하셨습니다. 사실 그거 늘리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외부는 말할 것도 없고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찮았습니다. 이제까지 경제 부처가 힘이 있었습니다. 오랜 관행이였죠. 예산 편성권 자체가 기획재정부에 있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기획재정부, 산업자원부는 반대할 수 밖에 없죠. 대통령이 주재하면서 참모 수석들과 예산의 우선 순위를 가지고 하루 종일 회의 했습니다. 토론하고 설득하고... 그전에는 예산을 그렇게 짠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과 수석, 기획재정부 장관 몇이서 밀실에서 짰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구요. 이런 거 하나하나 생각하면 기가 막히죠.
대구 경제는 매우 어렵습니다. 소득이 낮은 건 여기가 제조업, 공장 이런 걸 할 수 없는 구조니까요. 고급 서비스업으로 가야 되는데 말하자면 교육, 병원, 복지 이런 쪽이죠. 벤처기업이나 새로운 기술, 아이디어를 가지고 하는 산업을 유치해야 하는데 그런 걸 하기에는 대구가 가진 보수성 때문에 잘 안 들어오죠. 역사적으로 형성된 보수가 경제의 발목까지 잡고 있는 실정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지도자가 나오지 않는 이상 힘들다고 봅니다. 대구 살 때는 그런 걸 못 느꼈는데 외부에서 있어보니 대구가 죽어가는 도시라는 암담함을 느꼈습니다.
질문)이상현(녹색지구)
참여 정부 후반기부터 지금까지 이슈가 되는 것이 FTA문제고
교수님께서는 FTA 에 대해 반대 입장으로 친노 좌파로 불리시는데
FTA 문제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답) FTA 일반에 대해서는 반대를 하지 않습니다. 왠만한 나라와 FTA 맺는 건 불가피하고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된다라고 보고, 대신 천천히 준비하면서 수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다. 한국은 지금 FTA 지각 국가로서 아무데나 막 넣고 있는데 이것은 굉장히 위험하고 부작용이 심할 것입니다. 미국하고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투자자국가제소제 그걸 가지고 미국이 상당히 재미를 보고 있거든요. 한국 같은 약소국은 당하기 쉽습니다. 호주가 그것의 독소를 알고 빼고 맺었습니다. “호주하고도 뺐으면서 우리하고도 뺍시다.” 한마디만 하면 될 텐데 감히 미국이라는 상전에 그 한마디 못하는 게 지금의 우리나라 외교 통상부입니다. 그건 주권상실로 갈 위험이 있습니다. 재협상하자 하면서 받아 줄 것 받아 주고 그거 빼고 하자 하면서 할 말하고 그거 안 되면 국회에서 폐기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질문)채원근(해송)
오늘 경제 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많이 말씀하셨는데
제가 생각했을 때 우리나라는 뛰어난 문화를 개발해서 먹고 살면 좋을 거 같습니다.
또 외교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로 자원 외교를 하면 좋을지 말씀해주십시오.
답)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하면 질문하신 분이 섭섭할테니까...
우리나라 사람이 문화적인 소질이 굉장히 뛰어난데 그런 쪽으로는 잠재력도 있고... 노벨문학상도 충분히 자격이 있거든요. 김지하의 저항시도 받을 뻔 했는데 못 받았고 태백산맥 이런 것도 충분한데 못 받았죠. 소위 한류가 드라마 중심으로 가고 있는데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몸값이 오르니까 드라마 제작비가 많이 뛰고 그러다 보니 좋은 작품이 안 나오죠. 그런 한류는 생명이 짧고.... 뭐 아는 게 없어서 이 정도 하겠습니다.
자원 외교는 더구나 잘 모르겠는데..(웃음)
한겨레 경제면에 월요일마다 칼럼을 쓰는데 오늘 칠레 광부에 관해 썼습니다. 소련에서는 한때 광부가 최고의 소득을 올렸으며 의사보다 임금을 더 많이 줬습니다. 목숨을 건 직업으로써 일리가 있는데 자본주의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이번에도 사고가 날 징후가 있었는데 내려가다 보니 사고가 난 것이잖습니까? 광물 자원값이 너무 올랐습니다. 자원값의 폭등은 2005년 최고를 달리다가 2008년 금융위기 때 잠시 떨어졌다 다시 폭등하고 있습니다. 자원이 자꾸 고갈되는 것은 자연적 이유도 있고 중국이 고성장하면서 세계의 자원을 엄청나게 끌어다 씁니다. 구리 시장에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10% 정도였는데 지금 40%가 넘었습니다. 한국도 자원외교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우리는 중국만큼 할 여력은 부족하고 외교적으로 우리가 좀 더 국제 사회에 발언권을 키워야 하는데 이것은 경제만 가지고는 힘들고 주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너무 미국 눈치보고 미국 추종이 심합니다. 한미 군사 합동 작전을 서해에서 자꾸 벌이는 것, 안 좋습니다. 그런 게 모이고 모여서 결국 한국은 2류 국가 대우 밖에 못 받습니다. 우리가 1류 국가로 대접 받으려면 우리 스스로가 국격을 높이고 대통령부터 마인드를 바꿔야 합니다. 역대 정부가 너무 친미 위주로 흘러서 미국이라면 껌뻑 죽습니다. 얼마나 미국 눈치를 보는지.. 이정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