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9:20) ○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 나무를 심었더니
(창 9: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창 9: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창 9:23)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창 9: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창 9: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창 9: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창 9: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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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에피소드에 대한 목사의 설교를 대충 요약하면....
노아가 만취해서 옷벗고 퍼진 것은 노아의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이 세속적이 되어 환락을 즐긴 것과 같다. 노아가 실수하고, 죄를 범한 것이다. 헌데, 이런 아비의 실수를 막내아들인 "함"은 용서하지 못하고, 형들에게 가서 고자질하였다. 그러나, 효자인 두 아들, "셈"과 "야벳"은 아비의 실수를 용서하고 효도하였다. 십계명을 보아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 4계명 바로 다음에 나오는 계명이 부모한테 효도해라라는 것이다. 고로 효도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정도 였던 것 같습니다.
효도하면서 살아라... 뭐 좋은 말입니다. 당연한 말이고....
근데, 위의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뜯어보기로 하지요....
인용된 바이블 구절은 물론 실제로 있었던 사건은 아닙니다. 일종의 전설이고, 신화의 일종이지요.... 그리고, 제가 보기엔 인용된 구절의 핵심은 "효도"가 아닌 듯 싶네요....
바이블의 구조 속에서 노아의 세 아들인 셈, 야벳, 함으로 상징되는 세 계통의 인맥에 대한 나름대로의 신화적 정당성을 나타내기 위한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세 아들에 대한 기독교적 설명을 인용하여 보겠습니다.
<셈>
뜻 : 높은 지위
노아의 장자(창5:32, 눅3:36).
히브리인의 조상이 되었으므로 존경하여 항상 함과 야벳보다 먼저 부른다. 98세시에 부친을 따라 방주에 들어가 홍수를 피하고 방주에서 나온 후 그 부친이 술에 취하여 나체로 누운 것을 야벳과 같이 옷을 덮어 하체를 가려준고로 축복을 받고600세에 별세 하였다 (창7:13, 9:20, 27, 11:10-11).
<야벳>
뜻:확장함
노아의 차자(창5:32, 6:10, 7:13, 9:18, 10:1, 대상1:4).
그 자손이 팔레스틴 서빙과 북방에 거주하여 아리안 인종의 조상이 되었다 (창 10:2-5,21).
노아가 취하여 나체로 잘 때 합당하게 행하였으므로 축복을 받아 광대한 판도를 가지고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창9:20-27).
<함>
뜻: 검다,덥다
(1) 노아가 500세 이상이 되어서 낳은 막내 아들(창5:32,6:10,9:10,9:24).
(2) 결혼은 하였으나 아직 자식이 없었는듯 하다(창7:7,벧전3:20).
(3) 부친이 술에 취하여 나체로 누어있는 것을 보고 흉을 보았다.
노아가 깨어 그것을 알고 저주하기를"그 형제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하"하였다 (창6:1,7:13,9:18-25).
(4) 그의 자손은 앗수르 바벨론 가나안 시돈 애굽 리비아 등지에 거주한다 (창 10:6).
(5) 고대에는 상당한 문명국으로 알려졌으니 그중에 앗수르와 애굽의 문화가 가장 발달 하였고 전 세계를 지배하였고 두로와 시돈은 상어국으로 유명 하였다 (6) 중세기 이후에는 쇠약하여 열등국으로서 열강의 식민지가 되어 오랫동안 압박을 받 았다.
(7) 시78:51,105:23에 함의 땅이라함은 애굽을 가르킬 것이다.
바이블적 세계관에서 "홍수" 사건 후에 근동세계의 세 조상이 되는 셈, 야벳, 함은 각기 다른 신화적인 계보를 이어갑니다.
셈과 야벳은 홍수라는 세계 파멸이라는 "신"의 정죄 속에서 살아남은 인간 중... 바이블적 세계에서 그 애비 "노아"에게 그 생존의 정당성을 부여받게 됩니다. 그리고, 함은 그 애비 "노아"에게 저주를 받음으로 인해 바이블적 세계에서 정당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노아의 아들, 세명이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라는 것은 물론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이블적 세계에서는, 다시 말해... 이집트와 고대 근동의 세계에서는 이들이 인류의 조상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들 중 두명은 신화적 정당성을 인정받아...그 계보는 계속적으로 그들의 신 "야훼"의 이야기 속에서 이어가게 되고, 저주받아 신화적 정당성의 확보에 실패한 "함"의 계보는 비주류로 밀리게 되고.... 모세의 이집트 탈출에서 보듯이.... 선택받은 민족 이스라엘을 핍박하는 역할을 떠맡게 됩니다....
제가 보기엔 "효도"라는 주제와는 거의 상관이 없는 인용구인 듯 싶은데... 효도라는 주제로 둔갑되는 군요...
그럼, 같은 관점으로 비판하면...
아비의 실수를 고자질 했다고... 아비에게 저주 받는 장면은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지...우리들의 부모님이 자식이 실수 했다고 책 망은 할 망정... 저주까지 내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좀 우습지요??(^^) by 오디세이 이러한 말도안되는 허접한 바이블을 믿는 기독교에의해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도 변질될 (변질돼고 있는중..)가능성이 농후 합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