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인생 모험기를 적어봅니다. 그냥 웃어주시길^^
1979년 29살 2008년 계란한판 입성...폭죽이라도~~~
173-53kg 딱좋은체격 ㅡㅡ;
부산에서 태어나 여러곳을 거쳐 현재는 인천에 거주하며, 사업구상을 하는 남자 = 결국에 백수 -_-
3살때
한글과 알파벳을 다 알고, 성경책과 찬송가를 제목만 알고 찾을정도로 영리한 아이였음. 현재는
알파벳도 가물가물합니다. 한글도 마찬가지...
유치원때(7살)
미술과 주산1단을 했지만, 그림은 그리지도 못하고 주산은 7급이나 되려나 몰겠네요.
초등학교 (때는 국민학교였음;;;)
1989년 6월24일4시
첫사랑 여자친구가 캐나다로 이민. 이별로 가슴앓이를 했음 ㅠㅠ3일동안 울었네요.
10년뒤에 강화초등학교 뒤에 고궁에서 만나자는 약속을했음 (저는 까먹음;;)
1990년 6월
다친다리를 6개월동안 참음 -_->>>미련곰탱이임;; 결국 1년동안 깁스신세
덕분에 목발 달인등극 목발 2개로만 걸어다님...
아버지의 남들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심. 돈줄넘들은 다 사라지고 채권자만 나타남...힘들나날이였음 당시나이 13세
집에 도둑이 들어 아버지사진과 장농을 제외하고 집의 샷시까지 전부 가저가버림 ㅡㅡ;
미췬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뿐이 안들었어요.
1992~1994(중학교)
방황하며 비행청소년들과 멋지게 어울림으로 어머니께 맘고생시키고 성적이 바닥에서 허우적 허우적...
3학년때 맘잡고 돈을 먼저 벌기로 결심해서 상고진학을 함.(결국 공부 못해서 갔음)
1995~1997(고등학교)
공부 열심히 했음 1등은 아니였지만 꾸준한 전교상위권에서 놀음...(은행가려고 열심히했음)
고3(IMF)
은행과 증권회사를 가려고 원서를 기다리고 있었네요. 그런데 IMF라는 신용위기로 은행 줄줄이비엔나로 사라지고,
1학기때 원서도 다른애들 줘버렸는데 후회가 막심하네요.
1997년 12월12일 무역회사(외환부)입사를 해서 열심히 했어요 (FUBU같은 옷취급)
20살(무역회사근무) iMF시절
1998년 5월 4일경 윗상사 여과장이 바람나서 잠수타버림 ㅡㅡ; 5개월 된넘이 서류하느라 죽을맛이였저...
환률 2000원이던시기;; 은행가서 네고도 하고 재미났었네요.
1998년 4월
13년정도 된 x랄친구넘이 돈과 핸드폰등 300여만원을 가지고 잠수. (제월급 80이였는데ㅡㅡ;)
1999년 1월1일 오토바이사고...(폭주아니에요.)
검문이 많은날이라 부평역에서 현대백화점까지 가달라는 친구들의 부탁으로 현대백화점 앞에서 사고로 슈퍼맨이 되어
날아가서 전봇대에 다리가 걸림(고3때 운전면허취득)
대략 진단이 1년이상 나왔음.
(골반천장관절 동반분리. 우측대퇴부 분쇄골절, 신장손상, 폐손상)대충 이정도로 맛이갔음
몸무게 35킬로까지 다이어트했네요. 사람이 귤을 못까서 눈물이 흘리고 우울증에 걸렸던 시기에요.
귤을 못까 먹는다는게 이해가 가시는지요... 고무공을 주더라구요. 운동하라고 ㅠㅠ
퇴원후에 손바닥이 터지도록 목발을 하고 돌아다님
2000년 3월 두발로 걷게 되었음(병원에서 못걷는다고 했으며, 걷더라도 장애가 있을거라고 함)
*2000년 5월~10월 (지인이 투자하여 청바지 장사함)
아픈다리로
판매부터 사입부터 하루에 2-3시간 자면서 일함. 열심히 일하고도 월급30만원 받음 ㅠㅠ;
참으로 어이없는 생활의 연속이었어요. 인테리어부터 다 혼자서 처리...
2000년 8월(첫사랑과의 연락이 됨)
캐나다에 사는것을 알았지만 가방끈이 짧은관계로 영어로 캐나다 영사관에 메일을 보냈으나
한글로 답장이 오는 엄청난 충격이 왔어요.
영어를 적어놓고 하이 헬로로 답변이 올줄 알았으나,
'알루'????? 아 젠장 이게 무슨말인가 알고보니 불어랑 영어랑 같이 쓰는 나라였네요.
전 자신있게 여보세요..... 저보다 많은것을 기억하고 첫사랑의 부모님과 첫사랑
너무 기분좋고 어릴때 느낌 그대로 였어요.
*2001년 1월15일~3월15일 (핸드폰장사시작)
위에 지인의 사촌이 핸드폰 지점 팀장이라서 시작했네요. 부평에서 면목동까지 출근
전에 하던 판매원이 한달에 13개를 팔았는데, 저는 한달에 150대를 판매하여 대기록 수립
2달동안 290대 판매하였으나, 사촌이 돈을 받고 달아나버림
대리라는 사람도 200만원가량 선취득하여 도망을 갔음 ㅡㅡ; 2달동안 40만원 받은게 전부
팀장이 내이름으로 서류위조로 200만원가량의 사채까지 씀
2001년8월~10월 (앙카볼트 조립공장에 들어감)
진정한 노가다인듯했음. 점심시간에도 차들어오면 물건나르고 하면서 ㅠㅠ
20-40km짜리 마대를 하루에 천개이상을 날라야 하는 죽노동이였저.
70평되는 공장을 다 뒤집어서 보기편한상태로 바꾸어놓고 퇴사함 월급 70만원 ㅡㅡ;
2001년11월~2003년7월(3M대리점,삼화폐인트대리점)
첨에는 배달만 하면서 지내고, 나중에는 사장는 놀고 제가 다하게 되었네요.
3M은 가정용품이기에 참으로 좋은제품이 많았던거 같네요.
폐인트는 무겁지만 그래도 머.. 앙카에 비해면 천국이저. 이때는 신나냄새가 나쁘지 않았는데 지금은 지독하저.
2002년 6월25일(월드컵4강 독일전)~12월28일 처음여자사귐. 결말 내친구와바람났음
오랜동안 친구로 지내던 여자와 사귀게 되었어요.(24살때 처음 사귐 -_-)
밥안먹으면 밥사다줘, 술먹고 아프면 약사다줘, 인삼에꿀 만들어줘, 옷사줘.
하지만 제가병원에 입원하자마자 제옆에 있던친구넘이랑 썸씽이..
부산으로 도망가는것을 12월28일날 2시간늦게 출발하고 대구에서 목격했음. 너무나 행복해 보였기에
그냥 돌아옴. 나중에 여자는 돌아왔지만 남자넘은 5년지난 지금까지 끝...
여자는 못받아주저.^^
*2003년 7월 (좋아하던 여자와 친구랑 자빠짐)
페인트 대리점 옆에 회사 아가씨 연상이였으나, 서로의 아픈과거로 인해서 속사정을 터놓고 지내다보니
정들고 주위에서는 사귄다고 소문이 났어요.
친구들이랑 4명이서 술먹는데 그 여자랑 친구랑 사라짐.(MT)
그 충격으로 부평 한바닥에 저는 술먹고 지나가는사람이랑 3:1로싸움. 상대가 3명이기에 피투성이가 되고 손가락
인대끈어짐. 하지만 상대는 코뼈랑 손가락 골절;; 간판으로 내려찍어서;; 도망왔지만 ㅈㅅ해요;; 나도 아픔;
지금 그래도 여자랑 친구는 애낳고 잘살고있음(2007년3월까지 연락하다가 지금은 연락안함 밑에나옴 그 이유)
2003년 8월~12월 하우스전전...(저는 도박안하고 구경만했음)
지인 신용카드 절도로 2천만원 가량의 빚을 떠안음. 채무자는 배째라.
2천만원밖에 안된다는 이유로 혐의는 인정되지만 구속은 안되었음
2004년3월~2005년3월 (청계천의 전기용품대리점)
3M사장님의 소개로 1년동안 일을 했네요. 하지만 월급이 제때 안나오고 퇴근시간도 지맘대로라서 그만두었음
평일7시퇴근 토요일3시퇴근. 하지만 평일10시 토요일10시ㅡㅡ;
*2005년5월~8월 (선배이자 친구사촌의 통닭과 돈까스전문점)
없는돈에 카드로 조금 빌려주었는데, 돈까스 소스90프로가 야채라는 말을 아시나요. 정말 좋습니다.
하지만 장사를 하려면 3개월이상은 봐야 되여. 자리잡고 그러려면 며칠장사안된다고 아침마다 술먹고 그러다보니
망했네요. 근데 내돈은?????
2005년8월~2006년2월 (한정식관리및 매니저, 프랜차이즈 연요리 전문점)
2가지 일을 병행했네요. 구미에서 소개로 만난 대범한 여자사장과 한정식집을 오픈하였고 인테리어 비용을
7천에 끝내고 총 1억 2천이 들어갔습니다. 88평이고요. 국회의원과 구미의 고위층 인사들이 오셨는데요.
치고빠지기 작전으로 부동산과 작업을 했지만, 역시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배가 가네요.
여사장의 욕심으로 무용지물이 되고 결국 여사장은 빚을 지게 되었답니다.
1억8천에 매매할려고 했어요.
프랜차이즈 연요리 전문점으로 시도중 저는 비서였어요. 투자도 받고 인테리어도 선정하고 상권까지 분석했지만
사장이 알고보니 게이였던지라, 그돈을 가지고 날라버렸네요. 순식간에 대학교수부터 저까지 힘들었어요.
저는 신용불량자위기까지 왔구요.
2006년5/25~6/16 17년만에 첫사랑과의 만남
17년만에 만나도 어릴때 그 느낌이였어요.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하면서 놀러다니고 행복했습니다.
결혼할남자도 있고 잘살지만 그느낌만은 잊지 못할거 같습니다.
마음속에 묻어두고 슬플때 기억하려 합니다.
*2006년12월~2007년 4월 리니지 사무실
청바지장사때 지인의 투자로 사무실을 했습니다. 물론 리니지를 하고 있었고요.
75법사, 72기사, 72요정,71요정, 71다엘 이걸로 작업을 해서 돈도 많이 만지고 했지만, 나가는것을 막지못해서 망했습니다.
전부 렙업만 시켜주고요. 저만 2-300만원의 손해를 감수했지요. 같이 감수하기로 했던사람이 모른척하더라구요.
10원까지도 적는 가계부까지 있는데 말이저.
*2007년 4월(위에 지인이 피시방을 하겠다고 합니다.) 입지선정과 인테리어
위에 지인과 참으로 악연이저. 피방을 하겠다고 해서 인테리어부터 자리선정과 컴퓨터셋팅까지 알아봐서 다 해주었습니다.
보증금 1000 월세70만원에 45평 역주변과 빌라촌과 아파트 주위 학교들이 있어서 정화구역 205m자리였어요(총6300)
참으로 답답합니다. 업자가 먹거리까지 알아봐줘야 하나요. 자기 미리 알아보고 싼곳을 찾아야지요.
업자가 해준다고 청소도 안하고 제가 타일한장 수세미로 밀었고 인테리어할때 가서 음료수 사주고 밥사주고
그래야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주니까요.
숟가락으로 떠줄때까지 기다리니 할말이 없더라구요.
첨에는 저한테 관리를 맡기고 한달에 얼마씩 주기로 했으나 인테리어가 끝나가고 영업이 다가오니
저한테 야간에 일하고100만원 준다고요.
저도 인테리어 업자한테 돈받았습니다. 물론 이야기 안했지요. 업자가 5%로를 준다고 합니다. 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자기들이 준다는것을 제가 안받을건 없지요. 그래서 100만달라고 했더니 300준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화장실(cGV화장실 밑에 위에 뚤린것이였는데 그걸 벽돌로 막고 해서 추가됨 ㅡㅡ)추가공사로
200정도 받았네요.
참으로 이건 아니다라는생각이 드네요.
결국 그날 가다가 집에가는 택시안에서 교통사고를 났어요. 3주가량 입원했지만 전화해서 몇주나왔냐고 하고
지금까지 한통의 전화도 없네요. 누가 너무한지요.
저의 악연이 이렇네요.
* << 이것이 악연입니다.
전부 친인척 관계입니다.
친구와 그 누나들과
친구사촌2명(핸드폰과, 돈까스)
이제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락도 안하고요.
저한테 남은건 배신감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와 몸의 상처뿐입니다.
잔고가 없는 통장도 있네요.
30살이 되는 나이이지만 대학도 가고싶고 해서 공부를 합니다. 기본적인 것부터 하렵니다.
임대아파트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지만 항상 희망을 생각합니다.
나이드신 어머니께서는 일하시는데 저는 사고휴유증이 점점 커지는 바람에 이러고 있어요.
(골반이 기형이 온다고 하니...)
정말로 한심하저?
400으로 시작한 주식도 첨에 모르고 해서 마이너스지만 천천히 가렵니다.
저의친척이야기도 하고싶지만 너무 길어서요. 저희큰집은 저희아버지 재산을 빼돌리고 지금은 잘살고 있네요.
수십억도 아닌 100억이상의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요. 항상 죽는소리만 합니다.
이런넘도 있습니다. 악연과 일이 안풀리는 세상을 사는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해요.
모두 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모든일이 잘되기를 기도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