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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황후와 나

캠통 |2007.11.09 15:06
조회 630 |추천 0

상수 내관 앞으로 내려온 임금님의 어명!

“도희 황후를 모시고 조선의 으뜸 궁궐, 경복궁을 다녀와라”

“예~이”

그 영삼성내 까칠하기로 소문 났다는 도희황후를 모시고 과연 미션을 수행할수 있을것인가? 어리버리 상수내관과 까칠한 도희황후의 ’경복궁에서 가을비에 호되게 혼난 사연’ 속으로 들어가보자!

 **궁궐의 문을 지키는 수문장 교대식!

 임금이 있는 궁궐을 지키는 수문장 교대식 시간이 다가오자 하나, 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모두 카메라를 들고서 엄숙하게 진행되는 교대식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광화문을 여닫고 근무 교대를 통해 국왕과 왕실을 호위함으로써 나라의 안정에 기여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 하여 이미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 교대식을 보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맞춰 기다리기도 하고, 한쪽켠에서는 직접 수문장 옷들을 입어볼 수 있는 체험 시간도 가질수 있다. 교대식을 보고 있으니 그 시대로 돌아간 착각마저 일으킨다.

  수문장 교대식을 보고 사진을 찍다보니 벌써 시간이 한시 반 이다. 우리의 건청궁 예약시간은 두시!! 경복궁 북쪽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건청궁까지 시간에 맞춰 가기 위해 바쁘게 발걸음을 재촉한다. 

** 명성황후 시해, 그 역사적 공간이 살아숨쉬는 건청궁
  

건청궁의 문은 보통 굳게 닫혀있다. 입구에 도착하니 관계자분이 예약 표를 확인하고 입장을 도와주신다. 1회에 30명까지만 가이드분의 설명과 함께 관람이 가능하다. 건청궁을 입장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인터넷 예약이 필수이다. 먼 곳에서 오셨다며 한번만 문 열어 달라고 조르시는 아주머니, 아저씨 모두 거절당하고 돌아가신다.

 

이 곳은 명성황후의 시해장소 로도 유명한 곳으로 순수 공사비만 100억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을미사변 이후 일본인들의 손에 훼손 되었던 건물이 98년 만에 다시 선보이게 된 것이다. 3년간의 복원을 끝내고 이번 달 20일부터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다.

 건청궁의 또 다른 특별한 의미를 꼽자면 아버지 흥선 대원군으로부터의 고종의 정치적 독립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곳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궁궐보다는 일반 양반 저택의 모습을 더 닮아있다. 실제 이곳에서 고종과 명성황후의 생활이 있었던 곳이다.

 

  민가의 안채에 해당하는 곤녕합이다. 왕비가 거처한곳으로 건청궁 경내 오른편에 자리잡은 이곳은 두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남쪽루는 옥호루, 동쪽루는 사시향루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곳의 맞은편쪽에는 일명 ’왕가의 드레스룸’ 이라고 할수있는 왕과 왕비의 의복이 있는 방이 있다. 

 

 장안당 뒤쪽에 위치한 일명 ’전기실’ 이라고 한다. 7칸의 통간의 창고로 되어있는 이곳은 처음 지었을 당시에는 곳간 용도로 1887년 건청궁에 전기가 가설되면서 발전시설을 갖춘 전기실이 되었다고 한다.

 ** 이제 방으로 들어오시게나,

 민간의 사랑채에 해당되는 왕이 거처하는 곳이 바로 장안당 이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곳이 복도각이라고 부르는데 곤녕합서행각을 통해 왕비의 침소인 곤녕합으로 연결이 되어있다. 그 밖에 수십개의 방을 복도로 편히 움직일수 있도록 다 연결이 되어있는 구조이다.

방안에서 우리를 부르는 고종의 목소리가 들리는것 같다. 감히, 올라가보자.

 여기 계단이 세개가 있다. 이 계단의 비밀은?! 바로 상수내관이 당당하게 서 있는 저곳은 오직 왕 만이 오를수 있는 계단이다.(조선시대 같았으면 벌써 상수내관은 용서 받지 못했을 행동을 저지르고 있다.) 왕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고, 내려올때는 왼쪽 계단으로 내려와야 한다는것이다.


왕의 사랑채가 그대로 재연되고 있는 이곳, 사극에서 많이 봐왔던 그 모습 그대로다. 방의 갯수는 아주 많지만 크기는 크지 않다. 그 시절에는 가구도 없고, 사람들도 작았기 때문에 방이 크지 않았던 이유라고 한다.

이곳은 보통의 복도보다 높이가 한 단계 높게 있는 마루 같은곳인데, 고종이 이곳에서 장관을 즐겼다고 한다. 지금은 사람이 많아서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그 시절엔 아주 멀리 있는 곳 까지 보이는 최고의 장관을 자랑한다고 한다.

이곳이 명성황후의 시해장소로 가장 유력하게 추정되는곳이다. 명성황후의 죽음에 대해서도 많은 추측과 가능성이 있지만, 이곳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옆으로 보이는 창으로 궁녀들을 떨어뜨려 죽이기도 했다고 한다.

명성황후의 평판이 어찌 되었든 그녀는 조선의 국모였고, 한 나라의 국모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사과도 없이 역사를 왜곡하기만 하려는 일본의 태도는 건청궁의 비극을 더 아프게 한다.  이런 역사를 아픈 기억으로 묻기만 해서는 안되고, 다시는 이런 쓰라린 역사를 쓰지 않도록 역사의 현장을 복원하고, 보고, 느끼며 끊임없이 노력하는것이 우리의 역할일것이다.

** 경복궁에 구슬프게 비가 내려요-♩

관람이 끝나고 도희황후를 기쁘게 하기위한 상수내관의 화려한 목춤쇼가 벌어진다.

"아 보고만 있어도 속상해 지는구나! 다음 코스로 모셔라!"

"예~이" (-_-)

12개 띠의 작은 동상을 그냥 지나칠수 없지!

러블리똘은 85년 소띠! 상슈사마는 84년 쥐띠! (저 포즈는 뭔가?)

왕과 신하들이 모여 정치를 의논하던 모습을 재연해놓은 모습이다. 왕의자리 뒤에 화려한 일월곤륜도에 자꾸만 눈이 간다. 지금은 휑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건청궁을 나서면서 하나,둘 떨어지던 빗방울이 어느새 마구 쏟아 지기 시작한다. 연인들, 가족 단위로 경복궁 나들이를 온 사람들은 모두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거나 우산을 꺼내드는데...

우리의 상수내관 아무런 준비없이 그냥 오셨다. 비가 쏟아지는데도 경희루에 가서 사진은 찍어야 경복궁에 왔다고 말할수 있다며 나를 재촉하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황후고 뭐고 없이 나를 막 부려먹기 시작한다.

 경희루는 지붕 용마루 긴급 보수공사 및 동절기 관계로 관람을 중지한 상태이다. 상수내관 상당히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비를 맞게 하면서 사진을 찍는데. 지붕 한쪽이 공사중이라 보기 안 좋다며 나를 가리개 역할로 마구 쓴다.

(흑. 오빠 나 오늘 황후 시켜준댔잖아.ㅜ_ㅜ)

 금방 그칠듯 말듯 하더니 금새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보며 혹시 명성황후님이 오셔서 슬픈 마음을 보여주고 가신걸까?

 조선의 ’마지막’ 왕과 황후의 숨소리가 살아있는 그곳!  

 

건청궁의 복원과 함께 우리 나라는 아픈 기억으로 100년을 맞이 하게 된다. 무조건적인 반일 감정이 아닌, 역사를 바로 보고 평가하며 조금더 성숙된 역사 의식이 절실히 필요한때 라고 생각한다. 

 

  

 

"나는 영삼성의 국모 ....이고파요"

 

(*) 그날 이후 우리는 지독한 감기를 앓고있다. 마이 아파.

 

글/김도희

사진/배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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