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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파란등만 있을 뿐이다.

은하철도 |2003.07.19 18:12
조회 864 |추천 0






오직 파란등일 뿐이다




낮설은 사람으로부터 내 친구의 행방을 찾는 전화가 왔다.

냉정하게 친구의 소식을 모른다고 잡아 떼었다.

친구는 사업이 실패하여 채권자들을 피하여 잠수한 것이다.



"재기를 한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힘들어."

초췌한 모습으로 나를 찾았던 그의 말이었다.

꼼장어 타는 연기 속에서 나누는 소주잔에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오 십대인 것이다. 사회의 끝부분에서 서 있었다.

명퇴와 강퇴의 칼날이 목을 스친 사람들이다.

펜을 썼던 사람은 컴퓨터를 쓰는 사람들에게 밀려난 것이다.



우리는 핸드폰의 벨소리 하나도 바꿀 줄 모르는 오 십대다.

땀에 젖은 손아귀로 틀어 쥐었던 세상은 내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 시대의 여가수는 애절한 목소리로 안녕을 고하고 있었다.



"막내 딸이 등록금을 낼 때가 된 것 같은데... 맞지?"

혀가 풀려가는 취기 속에서 내가 먼저 그에게 말을 꺼냈다.

픽 하고 웃는 그의 주름진 눈가에 찬서리가 내리는 듯 했다.



왁자지껄하며 젊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들어왔다.

빈 탁자를 찾는 그들의 눈초리에 나는 뜨끔했다.

사방을 둘러 보았다. 이제 우리는 일어서야 한다.



우리는 제주도 남쪽 먼 바다의 마라도까지 밀려갔다.

그 섬의 남쪽 절벽 위에서 전설의 이어도를 찾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도만이 넘실대는 바다는 전설만을 던질 뿐이다.



비틀거리며 가로등 아래에 선 나는 주머니를 뒤척였다.

물품대금으로 받은 수표 몇 장을 꺼내었다.

"이 돈은 안 갚아도 되는 돈이야. 딸 등록금 해~"



친구는 쭈빗하는 몸짓으로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늘진 얼굴을 옆으로 흔들며 마지 못해 손을 내밀었다.

"갚을 날이야 있겠지..." 돌아서며 던진 그의 말이었다.



파란불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순간 빨간불이 들어왔다.

나는 화가 난 목소리로 빨간등에 대고 손가락질 했다.

인생에 빨간등은 없다. 오 십대라도 파란등만 켜 있을 뿐이다.



글 / 은하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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