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네이트에서 지방대생들 무시하는 글들을 상당수 읽게되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저희 아버지 이야기를 잠시 써볼까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돈이 없으셔서 상고를 다녔습니다.
처음엔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셨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자기처럼 머리좋음에도 불구
하고 돈때문에 상고간 아이들을 많이 만나면서 상고에대한 생각이 바꼈다고하셨습니다.
그러다 지방대를 가게 되셨는데.. 사실 서울에있는 대학가려했지만 또 돈문제때문
에 지방대에 가실수밖에 없으셨습니다.대학을 졸업하신 후 더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다 생각하여 유학 갈 준비를 하셨다고합니다. 여기저기 미국 대학에 원서를 넣으
셨지만 당연히 어느곳도 받아주지 않았죠. 그때당시만해도 서울대생들도 유학오기
힘들때였습니다. 솔직히 서울에있는 대학도 못갈정도로 돈이 없는데 무슨 유학이냐
고 생각하시는 분들 있으실꺼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단돈 50불을 가지고
고모한테 비행기값은 빌리고 무작정 미국으로 오셨다고합니다. 받아주는 학교도 없
었던상태에서 말이죠. 제가 생각하기엔 어떻게 보면 대단한 배짱이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험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미국에 와서 자기가 떨어진 대학에
직접가서 자기가 도대체 왜 떨어진건지 물어봤답니다. 학교쪽에선 역시 대학을 들
어본적도 없는곳이라고 무시했구요. 아버지께선 그럼 딱 일년만.. 아니 한학기만
학교를 다녀보게 해달라고하셨대요. 자기가 보여주겠다구요. 이학교에 충분히 다닐
만한 자격이 있다는것을요. 학교에선 그럼 딱 한학기만 청강하라고 특별히 허락하
셨습니다. 외진곳에 아는사람 한명없이 오직 그 학교만을 다니겠다고 미국에 온 아
빠를 불쌍히 여겼나보죠. 어쨋든 그렇게 한학기를 청강하셨습니다. 자리도 맨 뒷쪽
에 의자하나 주지도 않는 학교에서 힘들게 다니셨습니다. 게다가 그 학교가 있는
주가 굉장히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곳이라 몇마일을 그렇게 눈속에서 걸으시면서
학교를 다니셨습니다. 차없이는 다니기 불가능할정도로 먼 거리인데도 불구하구요.
물론 돈이없으니 일을 하실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그릇닦기로 시작해서 정말 안해본
일이 없으시다고 하시더군요. 게다가 미국 군대까지 가셔야하셨습니다. 학교 다니
기 전이였는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그 인종차별 심한 군대에서 학비좀 벌어
보려고 이를 악물고 참았대요. 흑인이랑도 싸움 참 많이 붙었다고.. 그렇게 돈을
버시면서 학교를 다니셨습니다.
참고로 그 대학은 미국에서 경제학으로는 최고의 명문학교였습니다. 1,2위를 다퉜
던 학교죠. 다른학생들은 공부만해도 힘들었을동안에 저희 아빠는 일을 하고나면
새벽에나 들어와 그때부터 공부를 하셨다고합니다. 당연히 시간이 모자르기때문에
밥도 안드시고 공부하시고 길 걸으시면서도 책 읽으시고 정말 쉼없이 공부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학기를 마쳤을때 올 A 를 받으셨습니다. 학교에서도 놀랐대요. 결국엔
받아줬다더군요. 학교다니면서도 한국 유학생들한테 무시받았대요. 다 서울대생이
니 무슨 지방대생이 자기랑 같은 학교를 다니니 자존심 상한다구요. 하지만 그 분
들보다 성적도 잘받아 탑 10으로 졸업하시고 매년마다 뽑는 최고의 TA (졸업반 학
생이 과목을 가르치는..) 상을 두번이나 받으셨답니다. 발음도 안 좋으셨을텐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인정해준거죠.
그런데 졸업하기 전에.. 저희 아버지에겐 또하나의 큰 시련이 닥쳐왔었습니다. 그
때당시에 저희 어머니랑 결혼하셔서 아이를 둘 두셨던때죠. 아직 학생이기때문에
생활비도 모자르셔서 매일같이 일하시고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희 어머
니는 전기세도 아깝다고 저녁에 불도 안키셨대요. 그렇게 힘든 세월을 보내고.. 드
디어 졸업하기 한달 정도 남았었을때입니다. 대학원을 졸업하려면 담당교수한테 무
슨 논문을 대학원 다니는 4년내내 검사를 받고 졸업할때 내야만 졸업하는데…. 저희
아빠 담당교수가 도망가셨답니다… 무슨 일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문제
가 있어서요.. 어쨋든 그래서 저희 아빠는 대학원을… 4년 다시 다녀야하셨습니다.
워낙 중요한 논문이라 그 담당 교수가 통과시키지 않으면 다시 처음부터 써야한다
더군요. 정확히 4년을 다시 다녀야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쨋든 저희 아빠로써는
정말 죽고싶을정도로 힘들었답니다. 정말 자살할 생각으로 낭떨어지앞에 스셨대요.
그런데 차마 죽으시지 못하셨습니다. 저희때문이죠. 저희를 두고 포기하실수 없으
셨대요. 대학원.. 다시 다녔습니다. 남들보다 훨씬 늦게 졸업하실수밖에 없으셨죠.
그때 빚도 산더미 같이 싸였구요. 지금도 갚으시고 계십니다… 10년도 지났는데요.
저같았으면 포기했을텐데.. 정말 얼마나 눈앞이 깜깜하셨을까.. 아이들은 커가는
데.. 빚은 늘어가고..
저희 아버지 지금은 다시 모교로 돌아오셔서 가르치고 계세요. 지방대요. 님들이
그렇게 무시하는 지방대에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미국명문대학에서 여기저기 제의
가 있었는데 다 버리고 모교로 돌아오셨습니다. 지방대 다니신다고 쪽팔리세요? 당
신들은 노력해보지도 않으시면서 주위 환경을 탓하는 바보들입니다. 지방대가 나중
에 발목을 잡을꺼라고 생각해서 아예 포기하셨습니까? 핑계 버리세요. 그 잘못된
생각이 님의 발목을 잡는겁니다. 아직 늦지 않으셨습니다. 대학이 끝이 아닙니다.
이 잘못된 사회가 님의 꿈을 밟아버리게 냅두지마세요. 보여주세요. 아직 님들은
자신의 능력의 백분의 일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지방대 다닌다고 무시하세요? 끝을 보지못하는 바보네요. 학교의 이름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마세요. 지방대에 다닌다고 그사람이 님보다 능력이 없는것이 아닙니다.
개구리는 높이 뛰기위해 잠시 다리를 욺크린다죠? 저희 아빠가 그러시더군요. 지방
대에도 수재들이 있다구요. 당신들이 자만해하고 꿈을 잠시 접어두신 그 순간에도
그 사람들은 자기 꿈을 위해 뛰고 있습니다.
결국 끝엔 자기꿈을 포기하지않고 소중히 간직한 그사람들이 성공을 욺켜지게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