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님들의 리플을 꼼꼼히 읽으며 부부문제는 어느 한쪽의 이야기만으론 옳고 그름을 논할수 없다는
어떤님의 말씀에 동의를 하며 용기를 내어 떠올리기 싫은 과거의 기억들을 좀더 떠올리려 합니다.
하지만 저도 글을 올리며 많은님들의 말씀처럼 " 이혼해라 ! " 이런 말들을 기대했던건 아닙니다...
그저 답답하고 네이트에 자주 방문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고민이 다른님들에겐 어떻게 느껴질까만이
궁금했던 겁니다...또한 이혼이란 결정에 많은 두려움을 느낍니다...어머니의 긴 투병생활,남성으로
이루어져 끈끈하지 못했던 가족애,아직 부모의 이런 상황들을 모르는 두 아이들,............이 대목에선
눈물이 나려하는군요....저 바보같지만 아이들 때문이라도 이혼 못할것 같습니다...
저만 그냥 고통 받아도 참고 살면 적어도 두아이에게 부모의 멍에만은 남기지 않을것 같은
저만의 착각이기도 하지만요....일단은 저만의 관점에서..저의 생각이지만 아픈 기억을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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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참으로 착하신분이었지요...( 물론 우리의 어머님들이 다 그러시지만 )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만나셨지요...
아버진 솔직히 썩 좋은분은 아니셨습니다...하지만 지금 저도 나이를 먹고보니 이해는 됩니다만...
6.25 당시 부모를 다 잃으시고 작은 아버지,고모까지 아버지께서 혼자 수발하시느라
남을 믿지 못하고 혼자만의 결정을 존중하고 조금은 독불장군식의 외로운 분이셨지요.
제가 성인이 된 최근에야 알게된 사실이지만 아버지에겐 한번 이혼하신 과거가 있더군요.
그 이혼후 저의 어머니를 만나시고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어머닌 아버지를 만나신거지요.
하지만 아버진 재혼후에도 같은 분이셨지요....절대로 어머니를 믿지 못하고 모든 결정은
당신만이 하시는....그런 분이셨지요...저 초등학교때 기억 납니다...
어머니는 163..정도에 몸무게 35-40....이런 앙상한 분이셨지요...
왜 그랬는지는 지금 이해됩니다...항상 결정 못내리고 가슴에만 한을 묻어 버리시는 그런분...
남에게 피해를 받아도 말씀 못하시고...그냥 그냥 당신만이 참고 사시는분...우리 어머니..
저도 아마 어머니의 성격을 조금 받은듯 합니다...
저 초등,중,고때 기억납니다......그 당시 참고서..공책.문구....필요하면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실때쯤
안방의 화장대에 종이에 얼마가 필요하니 얼마 주셔요..라고 꼭 메모하여 남기던 기억...
조금 기분이 좋으시면 아버지께선 결재(?)해 주셨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화가 되어 제게 돌아오지요.
" 그 책 사서 모하냐 ?" " 빌려서 봐라" ...................이런 상처로 제게 돌아오곤 했지요...
그즈음 어머닌 건강에 계속 문제가 생기셨지요...절 낳으실때쯤인가 ?....결핵을 앓으셨지요...
기억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의 어린 나이때쯤엔 결핵이 무서운병이었습니다..
씰우표를 기억하는 분들도 아마 계실듯 하네요...
어머님 그 병으로 한쪽 폐를 잃으셨습니다....말라 붙었다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계속되는 합병증까지.....어머닌 점점 건강을 잃어 가시고 계셨지요...
그런 몸으로도 어머닌 저의 삼형제에게 많은 신경을 쓰실려 했지요
경제권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어떻하든 세아들 뒷바라지에 힘들어 하셨지요
계속되는 입.퇴원도 그때쯤인가 하네요...병원에서도 저희들 걱정......큰아들인 제게는
"엄마가 어찌 될지 모르지만 혹여 잘못되면 누구누구에게 얼마를 꾸었으니 부탁한다"
라는 말씀으로 저의 가슴을 아프게 하신분이었지요..
당신을 위해선 한푼 써보시지 않고..........................................................
사람의 몸이 참 신기하더군요....한쪽 폐를 잃어 한쪽 공간이 생기니 신체 내부의 장기가
이동을 하더군요......점점 한쪽폐가 움직여 어머니의 식도를 점점 눌러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그런 증상이 나오더군요....건강할줄 알았던 한쪽 폐도 지쳐가며 제기능을 상실하더군요
당시 집에는 어머니 퇴원시 쓰시는 산소호흡기가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김치와의 악연이 시작된것이지요...
친척분들이 신경써주신다고 김치,,,오징어 무침,,,새우볶음....오뎅...이런 밑반찬들을 보내주시죠.
저 지금도 아무리 진수성찬이라도 오징어무침....오뎅 이런데 젖가락이 먼저갑니다..
그 당시에 입에 맞는 반찬들이 그런것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 입맛이 살아있지요
김치.....우선 남자끼리 가끔 밥을 집에서 먹다보니 도마위에 올려 칼로 자르고(?) 힘들더군요
그러다보니 마른반찬으로만 식사하고 김치는 그냥 냉장고에...
김치...너무 오래 그냥 두어 그런가요?.....시다못해 노린내가 나더군요
담아있던 플라스틱통은 아무리 퐁퐁으로 설겆이를 해도 그대로 그 냄세를 간직하더군요
한두번의 경험이 아니라 그 냄세를 계속 장시간 반복하여 느끼다보니 (사양해도 보내주니)
정말 김치가 싫어지더군요......
설렁탕 - 병원 근처에는 참 식당이 많기도 하지만 메뉴는 거의 다 그렇고 그렇습니다...
특히 중환자실은 오전 7시-7시30분.....오후 8시-8시30분이라 ....오후시간은 그렇고해서
남자들끼리 오전 면회는 꼭 같이 다니곤 했지요...면회후 병원 근처 식당을 찾으면
그시간엔 거의 설렁탕 또는 해장국이지요....정말..정말..무슨 맛인지 모르고 많이 먹었습니다.
다른것을 먹지.왜 설렁탕만 먹었냐구요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주문하니..그냥 먹었지요
돈도 없는 학생이고 한끼라도 해결을 해야 했지요.
어머니는 병원에 계신대 다른것 먹겠다고 해서 아버지 심기 건드리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먹자......배가 고프니 이런식이었지요....참..질리게 먹었습니다.....
96년 어머니는 떠나셨습니다...제게 갚아야할 금액을 적어놓은 수첩을 두시고...
어떤 어머니 몇만원...어떤 어머니 몇만원.....두동생들의 동기들의 어머니시더군요
아버지에게 달라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꾸어 동생들 뒷바라지 하신거더군요
피눈물이 나더군요.....제가 91년도부터 직장생활을 하며 어머니가 퇴원만 하심 여기저기
모시고 다니고 효도 해야지란 기대를 저버리시고 어머닌 중환자실에서 떠나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 (?) 때부터 시름시름 하시며 병원을 들락날락 하시다
거의 20여년쯤을 병원에서 보내시다 가신거지요...
억울했습니다....직장 생활을 하던 터라 아버지에게 의지않고 어머니께 맛난 음식도
사드리고 용돈도 풍족하게 드리고 싶었는데.....
어머니가 가신후 저의집은 완전 암흑이었습니다...
퇴근후 컴컴한 집에 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 제방으로 직행이죠
아버지는 집에 계시면 안방에 문을 닫고 계시니 알길이 없고 막내는 군대 둘째는 마침 지방대라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생활을 하는셈이지요....식사 ?....물론 각자 해결
아버지는 시장하심 혼자 나가 드시고 저도 물론 그런식이지요.
퇴근후 가끔 들리는 기사식당에서 아버지를 마주친적도 많지요....
그런 생활을 하던중 어느날 문득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tv에서 가족끼리.오손도손 식사하고 웃고...너무너무 부러웠습니다...
딩동...초인종을 누르면 누구세요 ?..문을 열어주고 보글보글 된장찌개가 준비 되어 있는
식탁에서 가족끼리의 식사...............................................저의 꿈의 전부였습니다...
독립 !.......................................일단은 이집을 떠나야 겠다............
이렇게 살다간 나도 폐인이 된다.,.....이런 생각이 들었지요..........................
이렇게 저의 길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