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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서 그냥 마구 쏟아냅니다

Marine |2008.01.09 13:14
조회 751 |추천 0

올해 이제 25살이 되었네요

살면서 부모한테 매한번 맞아본적 없고, 갖고싶은거 먹고싶은거 입고싶은건 대부분 갖고 살았네요

넉넉한 집안 아니지만, 엄마,아빠,남동생,나, 이렇게 크게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게 살았는데

19살때부터 인생이 변했네요

 

우선 어렸을적 얘기를 하자면...

엄마랑 아빠는 저 어렸을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아니 일방적으로 아빠가 엄마를 사랑했고

엄마는 아빠를 싫어했죠. 결혼도 사실 제가 생겨서 어린나이에 하게 되었고, 집안에 반대도 많았고

천성이 게으른 우리 아빠, 결혼할때까지 일자리 하나 없고, 가진것 하나없이 결혼해서

우리엄마 유별나게 우는 저를 등에 업고 공장에 다녔으니깐요

 

3남4녀중 막내인 우리 아빠.. 그런데도 달동네 단칸방에서 할머니를 모셨습니다.

애는 울고, 엄마는 공장다니면서 집안일 도맡고, 아빠는 하루종일 누워서 자고, 할머니는 아프면

죽어야지 하면서 한탄만 하고 유독 식탐이 많아서, 냉장고 텅 비었다고 투정말 부리고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 엄마가 번 돈으로 전세로 옮기고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때부턴 보통 가정처럼 살만했죠

그러다가 저 중학교때 당구장을 하나 갖게 되었고, 당구다이랑 공 닦는게 힘들다고 겨우 다이

6개 있는 당구장에서 알바까지 써가면서 일을 하시던 아빠..

아침일찍 일어나서 엄마가 청소다 하고 정리해두면 오후경에 어슬렁 나와서 하루종일

앉아서 티비만 보다가 들어오십니다.

 

그나마 그것도 2년정도 하다가 몸아프다고 못하겠다 해서 때려치고, 또 한동안 일도 안하다가

엄마가 호프집을 하겠다고 하는말에 크게 대판 싸우고, 결국은 하게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많이 바뀐것 같아요.  엄마는 일하면서 다른 남자가 생긴듯 했고

재수없는 사람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아빠 그 이후에 복권방 하다가 몸 아프다고

또 관두고 나서 로또라는게 생기면서 다른곳은 대박 터졌다 하더군요. 우린 빚만 남았구요

 

엄마랑 아빠 저 어렸을적에 택시타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크게 난적이 있대요,

그래서 엄마랑 아빠 허리랑 목쪽 디스크가 있고, 아빠같은 경우는 다리를 절뚝 거립니다

물론 아픈건 압니다. 하지만 정신까지 아픈건 안되는 겁니다. 엄마는 아파도 우리를 위해서

일하셨습니다. 근데 아빠는 아프다고 걸핏하면 일도 관두고 매일 병원에 다니고, 집에는 약이

넘쳐납니다. 무슨 얘기 나올때마다 아빠는 아프니깐.. 부터 말이 시작됩니다.

 

동생이랑 저. 아빠가 아프다고 하면서 다리 주물르라고 시키고, 어렸을쩍부터 아빠 다리랑 발을

주물렀습니다. 무좀도 심해서 누가 발 만지고 싶겠습니까. 그래도 아빠니깐 좋은 마음으로 항상

발을 주물렀습니다. 이렇게만 얘기해서는 어느정도일지 겪어본 사람은 모를것 같구요

이제는 남자친구건 누가 아프다고 말만 하면 짜증부터 나고 싫습니다.. 가장 듣기 싫은 말이구요

두서없이 말이 기네요. 암튼 엄마가 호프집을 하기 시작하면서 진짜 준비를 한것 같습니다

저 중학교때부터 엄마 힘들어. 우리 딸이랑 같이 못살게 되면 우리 딸이 너무 힘들겠지?

이런말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엄마 괜찮으니깐 엄마 좋은곳 가서 편히 살아 라고 말해줬구요

일 안하고 아프고 게으르다고 해서 아빠가 싫었던것만은 아닙니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늦는날엔 자는 저를 깨웁니다. 어린나이고, 크게 충격 받을 나이였는데,

그래서인지 아직도 그기억들은 생생합니다. 저를 깨워서 엄마 올때까지 못자게 하고 마루에

앉아서 기다리게 합니다. 엄마도 젊었고 가끔 모임도 있고 한두번 늦을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12시 넘은날은 기다리다 못해 저한테 한쪽을 잡으라고 하고 내가 보는데서 엄마옷을

가위로 짜르기 시작합니다. 많은 기억은 아니나 몇번 그랬던 기억이 생생하게 나네요

저 고3때 드디어 우리 집이라는게 생겼습니다. 좋은동네는 아니였지만 신축빌라였고

집도 크고 엄마랑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나중에 안 얘기지만 대출을 받기위해

아빠가 신용불량돼고 1억정도의 빚이 있다고 그러면서 위장이혼을 했다고

이제 법적으로도 남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내가 고3 수능 끝나고 몇일후 엄마가 그러데요. 엄마 이제 그만하면 안될까? 라고요..

그때 바로 느끼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이제 편히 살라고 말하고 2일후 엄마는 모든 짐을 챙겨서

사라졌습니다. 그게 제나이 19살때구요.. 저보다 2살 어린 제 남동생 달래느라 저 울지도 못하고

그래서 몇일이 지났습니다. 엄마랑 싸움만 하면 맨날 다같이 죽자고 약사오고, 기름 사오고 하던

아빠이기에, 처음 몇일간은 동생하고 밤새 무서워서 잠도 못잤었네요

자기 신용불량 만들어놓고 호프집하던 돈 빼서 도망간 여자라면서 찾으면 죽인다고 혈안이 되서

몇달을 그렇게 찾아다니데요.. 사실 우리엄마 집명의도 엄마꺼였지만. 우리가 편하게 살라고

단 한푼도 안갖고 나갔던겁니다. 난 다 아는데 제 앞에서 거짓을 지어내면서 엄마욕을 하더라구요

 

그리고 그렇게 몇달이 지나고 전 대학을 포기하고 바로 취업을 했습니다.

알바로 시작했지만 죽기살기로 일했던것의 보상인지 큰회사였는데 거기 회장님 눈에 띄어

비서및총무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외부에서 보기에 어린나이지만 좋은 대접 받으면서 다녔구요

그치만 실상은 새벽부터 나올때도 있었고 보통 9시부터 저녁 10시 퇴근이 평균인 회사였습니다

한달에 2번 쉬는것도 힘들었구요, 회사분위기가 가족같이 편한데 그러다보니 막말도 오가고

상무님 지금은 사장님이시지만 문제 하나씩 생기면 2~3시간씩 직원들 일으켜 세워놓고 쌍욕을

하셨습니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았고, 일과 당시의 남자친구 때문에 친구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살던 때였습니다. 그러다 내 유일한 의지가 되는 남자친구가 군대를 갔고, 정말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일만 하며 살았죠. 일의 압박과 스트레스에 못이겨, 하루하루 술이 없으면

잠을 잘수 없었고요, 집에 들어올때 마시고 들어오지 않으면 꼭 소주 한병씩은 사갖고 들어왔거든요. 어린나이에 술맛도 모르는게 알콜중독 어쩌고 한다고 하실 분 계실테지만. 저에겐 술이 유일한

친구였고 의지할 곳이였습니다. 그렇게 겨우 잠들어서 살짝 자고 있으면 아빠가 들어와서 깨웁니다

내일 저 옷을 입을껀데, 빨아야 하니깐 빨래 해놓고 자라고, 또는 밥 없으니깐 밥하라고.

지쳐 쓰러져 잠든 저를 깨웁니다. 니가 살림 안하면 누구보고 하라고 할꺼냐고..

 

하루에 잠 2시간정도 자면서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크게 돈을 많이 벌고 하지도 않았는데..

나중엔 몸이 많이 쇠약해졌고, 매일매일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조금 지나니 돈이 꽤 모이더군요. 근무시간에 비해 진짜 적게 벌었다 하실분

있지만 한달에 120만원 벌면서 보험 떼고 남은돈 110만원 정도에서 꼬박꼬박 90만원씩

적금을 부으며 살았더니 돈이 꽤 모이더군요.돈 모으는 재미로 견딜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물론 아빠는 몰라요. 내 월급날이 월중행사 같은거였죠. 아빠한테 욕먹는날..

다 썼다고 했거든요 항상..  아빠는 내가 돈 벌면 항상 자기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전 아빠한테 돈을 받아본적이 없거든요. 차비가 떨어져서 1만원 주세요라고 하면

있으면서도 없다고 하더라구요. 분명 있는거 봤는데... 맨날 내가 돈 안갖다줘서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고 하면서 아빠는 맨날 술도 사드시고 외식도 많이 하고.. 무조건 좋은것만

드시고 사시는 분이라. 내 핸드폰 망가져서 잘 쓰지도 못할때 아빠는 글씨가 작다. 잘 안터진다

별의별 이유를 들면서 핸드폰을 자주 바꾸고.. 고기는 한우가 아니면 안먹는사람이고..

 

너무너무 밉고 야속해서 매일매일 밖에서 술마시고 들어오는 길에 사고나서 죽길 기도도 했어요

너무 내가 나쁜거란거 알지만.. 너무 미워서..

우리엄마 일하면서도 살림부터 해서 모든거 뒷바라지 해주셨고, 유독 엄마랑 친구처럼 친하고

어리광도 많고 웃음도 많던 저였습니다.

그런 제게 닥친 상황은 너무 힘들었어요. 더 힘든 사람 많은거 알지만 사람은 이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힘든줄 아는 존재이니깐요. 저도 제가 너무 힘들었어요

어쩌다 친구들 싸이를 들어가면 학교생활도 하고 친구들끼리 모여서 놀러도 가고 한 사진들이

있는데 전 그런게 전혀 없었으니깐요.. 그렇게 20대 초반을 다 보냈네요

 

그 힘든 회사 그만둘 무렵부터 다 잃었어요. 아빠는 일을 안하셨으니깐, 나중에 돈이 좀

필요했었는지 결국 그 집을 팔고 또 전세를 오가며 이사를 다녔고, 팔고나서 1달후에 그동네

뉴타운재개발 된다고 엄청 뉴스에서 쏘아대더군요

그때 그집 가지고만 있었어도 3억정도 벌었을꺼예요.그렇게 말렸었는데 내말을 안듣더니

그래서 집도 잃고, 차도 대포차를 산게 걸려서 차도 잃고, 아빠한테 다른여자가 생기면서는

생활이 많이 변했어요. 다 잃었지만 그때처럼 괴롭히지는 않네요. 아직도 밉고 싫은 사람이지만

면역이 된건지 그래도 견디면서 살고 있어요.

 

엄마랑도 연락하고 지내고, 엄마는 재혼해서 애기까지 있구요, 새아빠는 저를 친자식처럼 생각해주시고, 그집에 가면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근데 밥먹고 집에 갈께 하고 나와서 택시타는 길은

정말 미친듯이 시리더군요..

그리고 아저씨가 초혼이고 나이도 어리고 아저씨를 위해서 엄마랑 저는 다른사람에게는 거짓말을 합니다. 난 엄마의 조카라고... 그래서 사람들 있을때는 고모라고 부릅니다. 엄마한테 고모라고 하는기분은 진짜 말로 표현도 못하겠네요..

 

그래도 최근 1년 반사이에는 많이 변해서 웃기도 잘 웃어요

예전엔 잘 웃지도 않고 눈물도 없었거든요..

아직도 내 월급날은 월중행사이지만. 그래도 예전보단 많이 편해졌어요. 새벽에 깨우진 않거든요

못다한 얘기가 너무 많은데, 그런걸 다 쓰자면 밤새야 할것 같네요..;

내 방을 뒤지고, 동전 열씨미 모은 저금통을 가져가고, 정말 작다면 작은일이지만 정말 많거든요

그땐 거의 매일 일기도 썼는데, 지금도 가끔 그 일기를 보면 눈물이 나고 분노가 치민답니다

 

제목처럼 답답한 마음에 막 쏟아부었더니 정말 글이 핵심도 없고 결론도 없고 두서도 없네요..;;

그래도 봐주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속풀이를 하네요

누구에게도 말할수가 없잖아요..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 못하고 아파도 아프단말 못했거든요

저만 믿고 의지하는 동생이 있어서 더 그러고, 힘들다고 하면 아파할 엄마때문에도 그렇고..

 

회사도 옮기고 지금도 편히 살고있진 않고 누구나처럼 힘들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더 많이 힘들고 괴로우신분 많겠지만. 그냥 이런저런 사람도 있다 생각하고 욕음 삼가해주세요

본인이 아닌이상 모르는거잖아요. 섣불리 상상도 못하는거잖아요 남의 고통은요..

그냥 열심히 살고 있으니깐 앞으로 좋은일만 생기길 빌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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