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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군 남면의 지명 유래

hanolduol |2006.11.10 11:12
조회 114 |추천 0

남면은 고려 충열왕 17년에 군명을 "주진(朱陳)에서 도원(桃源)으로 개칭할 때 무릉리 증산에 읍터가 있었다 하며 조선시대에는 남상면남하면 이였던 것을 광무 10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시 남상면은 무릉리 현재의 증산에, 남하면은 낙동리 현재의 음지촌에 각각 면소재지를 두었던 것을 남상면과 남하면이 합친 후에는 유평리 음지촌에 면사무소를 개설하였다고 한다. 그 후 1936년 수해로 면사무소가 유실 여러 차례 이전 끝에 1958년 8월에 지금의 위치에 개설 하였다 한다.

 

ㆍ 별어곡 (鱉魚谷 - 문곡1리)

조선 중엽부터 불리어져 왔으며, 동·서·남으로 무릉면을 두어 사통오달(四通五澾)의 교통중심지인 면소재지로, 옛날에는 법정리인 문곡리 밖에 없었으나 현재 5개리로 분할되어 있다.

 

ㆍ 자미원 (紫味院 - 문곡3리)

문곡1리에서 분구되어 자미원은 3, 4리로 분구되어 있다. 마을 이름의 유래는, 조선시대에 원(院)이 새재 밑에 있었기 때문에 그 명칭을 붙여 자미원이라 하였다.

 

ㆍ 한치 (汗峙 - 유평2리)

부락끼리 통하는 길이 급경사가 지고 너무 험하여 통행하는 사람마다 땀을 흘리게 된다 하여 '한치'라 불리어 온다.

 

ㆍ 낙동리 (樂洞里))

본 고장은 남면 소재지에서 약 8㎞거리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날 관곡창고인 남창(南倉)이 있었기 때문에 남창이라 불리며, 약 62년전 낙동이라 고쳐 불리게 되었다. 낙동이란 지명은 여민동락(與民同樂)의 뜻으로, 주민의 순후상교(淳厚相交) 하였음을 표명한 뜻이라고 한다.

 

ㆍ 거칠현동(居七賢洞 - 낙동1리)

이 고장에 거칠현동과 백이 산이 있으니, 이씨조선이 건국되고 고려가 나라를 잃게 되자, 고려의 충신인 채미헌 전오륜, 수은 김충한, 도충제 고천우, 존암 이수생, 황의용 신안, 변귀수, 김한 등 칠현이 불사이군의 절개를 지키어 이곳에 숨어살았다. 이들은 매일 산정에 올라 고도(古都)를 망배하며 통곡하고 망국의 한을 한시로서 달래니, 이 시가 인근에 전해져서 '정선아라리'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이 7현이 살던 곳을 거칠현동이라 이르고, 이들이 고사리를 뜯으며 소요하던 산을 백이산(佰夷山)이라 이름하여 전해온다.

 

무릉도원(武陵桃源 - 무릉1,3,4리)

정선선(증산-구절리)의 종착역인 증산을 일컬어 무릉리라 부른다. 옛날의 군 소재지였다.

무릉도원은 중국의 명승지를 비유하여 이름한 것인데, 냇물을 따라 떠내려오는 복숭아꽃을 보고 옛선비들이 인가가 있다고 생각하여 하천을 따라 올라가 자리잡은 이곳이 무릉리이다. 무릉리는 면내에서도 가장 넓은 지역이며 삼한시대부터 문인들이 이곳에 모여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무릉리는 옛 무릉군이라 칭할 때 군 소재지가 본 부락에 있었으므로 무릉리라 불리어 온다.

 

ㆍ 선평 (仙坪 - 낙동1리)

선평마을은 맑은 샘물이 마을 가운데서 솟아나고 경치가 좋아 옛날 신선들이 모여 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ㆍ 수령 (首嶺 - 광덕1리)

원래는 모이재가 변하여 머리재(首嶺)라 불린다. 닭이 모이를 쪼아 먹는 형국이라 하여 모이재라 하였고 닭이 알을 품는 동지봉이 2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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