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I.. love you,♪ and I.. need you♬
Nelly I..♪ love you, I do.♬.♬ neeeeed you ♪♪"
넬리의 딜레마가 또 다시 나의 아침을 알려준다.
그나마 내 핸드폰이 유일하게 재기능을 할 때는
모닝콜을 때려 주는 바로 이 시간.
난 다행히 아침잠이 없는 터라 일찌감치 일어나
항상 내가 앉는 18번 단골 지정석에 앉을 수있다.
이건 표면상 이유이고 진짜 이유는 이 시간에 일어나지 않으면 아침밥은
없기 때문에 악으로라도 일어나야 한다.
아버지는 회사가실 준비를 웬수같은 동생은 학교갈 준비를
난 도서관에 갈 준비로 다들 바쁘지만 그 바쁜 와중에서도 게중 나만
웬지 모를 한가함과 여유로움이 가득하다.
아.. 이것이 구속받지 않는 삶인가?
스스로 다시금 자유인의 삶을 만족해 보지만
나의 자유를 방해하는 엄마의 외침으로 난 거의 쫓겨나다시피
집밖으로 나오게 된다. 나오기전 담배값과 점심값을 꼭 챙겨가는 순발력!
여기서 도서관의 거리는 좀 되는 편이라 버스를 타야하지만
냉정하신 나의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줄 차비도 아깝다며
아랫집이 이사갈때 버렸던 자전거를 주워다가 나의 교통편으로
친절하게 마련해 주셨다. 정말이지 눈물이 날 듯한 어머니의 사랑.
뭐 점심이랑 담배만이라도 어디랴.
이렇게 따뜻한 봄날엔 자전거를 타며 여유롭게 도서관에 가는 것도
나름 폼나는거 같기도 하고 말이다.
양쪽 귀에 이어폰을 꼽고서 난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젠 오르막을 오를땐 힘들다.
오르막을 오르면서 항상 생각하는건 담배끊자. 끊고 만다 이지만
그 생각은 0.001초에 불과 할 뿐이다. 이 좋은걸 왜 끊으랴~
오르막과 내리막을 몇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도서관에 도착.
도서관에 도착하면 시간은 항상 7시에서 7시30분.
30분이 넘는 경우는 대부분 아침에 점심값을 안 주려는
어머니와의 사투를 벌이다 온 경우이고 늦잠을 자거나해서
늦은 적은 거의 없는거 같다.
도서관에는 항상 나보다 먼저 와 있는 두 사람이 있다.
둘 다 불행히도 남자지만.
한 명은 작은 키에 배가 뽈록나온 30대 초반의 아저씨.
오늘도 스크랩되어 있는 어제 신문을 보시면서
혼자 신문에 대고 열심히 중얼 거리신다. 신문과 대화를 하시는 신기한 분.
한참을 중얼 거리시다 다 본 신문은 언제나 처럼 한 장씩 찢어 버린다.
뭐 다행히 그 신문은 어제 신문들이라 찢어도 상관없지만
내 언젠간 꼭 물어 보고말리라.
어디서 온 외계인이기에 이렇게 우리나라에 관심을 갖는 것이냐고.
그리고 또 다른 한명은 벌써 본지가 3년째인 내 또래의 남자.
내가 3년을 봤다면 최소 3년이란 소린데..
사법고시라도 준비하는 것인지 아무튼 매일 보면서 서로 한심한 눈초리만 보낼 뿐이다.
이놈은 참 정이 안가는 것이 가끔 보면 자기 자리 옆에 남자가 있을땐
연신 퍼질러자고 들락날락 거리면서 자기옆에 여자가 앉으면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학구파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런 놈들은 특히 조심해야할 대상이란 걸 난 알고있다.
어쨌든 모닝 커피 한잔을 마신 후,
자리로 돌아와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또 다시 바리케이트를 치고
이런 저런 잡다한 메모를 적고선
어김없이 찾아오는 졸음에 난 곤히 단잠에 빠지게 된다.
잠 들기전 난 문득 지난 주 시험이 생각이 났다. 정확히 일주일 전이었는데..
...
갑자기 모든 세상이 색깔이 없어진 흑백이 되었다.
젠장 내가 갑자기 색맹이라도 된것인가? 될것이면 군대 가기전에 될것이지.
그러더니 몇 번 눈을 깜박거리고 떠보니 서서히 제 빛을 찾아가고 있었다.
칠판은 검푸른색으로 창밖의 하늘은 푸른색. 구름은 하얀색.
내 앞에 시험지는 회색.
어라라..? 칠판..? 시험지..!!??
내 손에는 컴퓨터용 싸인펜이 들려져 있었고
내 앞에는 쌩뚱맞게 왠 시험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주위 광경도 낯이 익고..시험 감독관도 많이 본 사람이고.
그러면서 쳐다보기도 싫지만 어쩔수 없이 들여다 본 시험지는
아니나 다를까 이건 지난 주의 행정고시가 아니던가?
문제도 토씨하나 틀리지 않았다.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는 심장을 억지로 달래며
서서히 눈을 칠판으로 돌렸다.
‘4월 7일 행정고시 시험 시간 9~11시’
4월 7일???
난 그럼 일주일 전으로 돌아온 것인가? 아 우선 이딴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문제를 풀고 차차 생각하기로 하자.
다행히도 공부 못하는 것들이 꼭 답은 잘 체크해 본다고
난 시험을 본 날이면 인터넷을 뒤져 그날에 채점을 해 버렸다.
그래서 웬만한 문제들의 답은 거의 외워논거나 다름 없는 상태.
신나게 시험지를 거의 다 풀어 갈 무렵..
다시 한번 세상의 모든 색은 서서히 사라지고 이내 까만 흑백이 되더니
나중에는 새까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곤 다시 눈을 떠 보았을 땐 침에 젖어 있는 내 방석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이거 꿈이구나..좋다 말았네..흐흐.;’
적당히 깬 잠을 다시 청하려고 할 때 내 바지에서는 강력한 진동이 울렸다.
부비적 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한 열람실을 벗어나 전화를 받았다.
“야. 어디냐? 겜방갈까?”
어김없이 방성식. 어라 근데 오늘은 전화가 좀 이르네라고 생각하고는
“아무리 내가 정신 빠진놈이라도 너무 빨리 전화 한거 아니야?”
라고 내심 뭔가 있어보이는 말투로 말하자,
“너 어딘데?”
라고 뻔한걸 묻는 내 한심한 친구.
“어디긴 어디야. 도서관이지.”
그러자 내 머리를 강하게 후려 내리치는 그 놈의 한마디..
“시험도 붙었단 놈이 뭐하러 도서관에는 갔어. 헛소리 그만하고 겜방으로와라.”
통화시간 58초..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서 있는데
갑자기 아까 그 놈의 후려내려친 한마디 때문이었을까
너무 한자세로 오래 자서 머리가 마비증상이 온것 일까..
깨질듯한 두통이 날 마구 압박해왔다.
그리곤 마치 영화를 24배속해서 보는 듯한 화면이
내 머릿속에서 빠르게 스쳐갔다. 신기하게도 난 그 모든 장면들을
일일히 기억하고 볼 수 있었고 그때의 대화 내용도 모두 생각이 났다.
시험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서 채점해보니
이건 거의 합격이 확실했고 일주일 동안
난 가족들에게 떵떵거리며 그동안 못 받은 용돈 받아서
친구들과 실컷 술먹고 노래방가고 겜방을 들락날락 거린 모습들.
멍한 정신에 대충 가방을 싸고선 집에 돌아오자
평소엔 이렇게 일찍오면 잔소리 하시던
어머니께서 아무 말씀 안하시곤 부처님보다 인자한 미소로 날 맞이하며
“우리 공무원 아들 점심 드셔야죠?”
라고 말씀 하셨다.
혹시나 꿈일까 있는 힘껏 두 볼을 꼬집어 보았지만 역시나 꿈은 아니었다.
먹는둥 마는둥 점심을 먹고선 집을 나와서 생각해 봤는데..
이게 현실이라면 내가 시험에 떨어진게 꿈이란 말 밖엔 되지 않았다.
‘그래 그거 밖에 없잖아. 난 시험에 붙은거였어.’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미 붙은 시험이지만
막 붙은 것처럼 동네에서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르며 게임방으로 달려가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을 만났다.
그렇게 저녁때 까지 게임을 하다 자주 가는 싸고 맛있는 시장 한켠
막걸리 집으로 우리 셋은 발걸음을 옮겼다.
“너 같이 공부 안한 새끼도 시험붙는데 나도 한번 볼까? 공무원?”
“종수야. 형님이 안한 것처럼 보였어도 다 할껀 하고 니들이랑 놀았다.
그리고 형님의 운빨은 죽여주잖냐. 으하하하. 마셔~“
“그래, 아무튼 다시 한번 축하하고 첫월급 타면 거기 한번 쏘는거다?”
응큼한 방성식 녀석..흐흐흐
“걱정하지마. 첫월급 니들한테 올인한다.
이모~저 시험 붙었어요~축하해주세요~”
“에이 저번에도 와서 몇 번이나 같은 말 했으면서.
아주 두 번 붙으면 우리집 거덜내겠네.”
“아..그랬어요? 너무 좋아서. 하하하”
언제부터 틀어져 있었는지 모르지만 막걸리집의 한켠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텔레비전에서는
5년간 준비하던 공무원 시험에 떨어져
일가족과 동반 자살한 30대 가장의 이야기가나오고 있었다.
난 혼자 혀를 끌끌차면서 안타까워했지만
이내 종수의 건배소리에 술잔을 들고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몇 번이나 막걸리를 원샷 한 우리셋은 오랜만에 얼큰하게 취했고.
언제나 처럼 각자의 술 버릇이 나온다.
지는 애인 한번 못 사귀어 본놈이 나랑 종수 지난 애인들
얘기하면서 좋아라 하는 방성식군.
꼬일대로 꼬인 혀로 갖은 욕은 다 해가면서 술 남겼다고 지랄 하는 종수군.
그리고 이러나 저러나 마냥 좋은 나.
우리 셋은 주량이 어느정도 되는 편이고
서로 지는걸 지는걸 싫어하는 성격들이기에 언제나 술을 마셨다하면
끝장을 보고 만다. 그러다 여러번 싸움도 하곤 하지만
다음날이면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모두 잘 지낸다.
하도 기분이 좋아서 우리 셋은 주위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마음 껏 떠들며 마셔댔다.
그때, 한 참 전부터 우리 테이블을 쳐다보던
건너편의 인상 더러운 3명의 사내가
시비조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이. 좀 조용하지? 이 집 전세냈냐?”
멘트 날리는 꼬라지 하고는..이미 내가 중딩때 써먹던 멘트잖아.
“어. 여기 우리가 고등학교때부터 전세 냈는데? 이모한테 물어봐.
우리땜에 두 달동안 장사 못한 적도 있거든. 푸히히“
술 쳐 마셔도 할 말은 다 하는 종수다.
기가 죽어야 정상인데 그러지 않고 더 기어오르는 우리가 아니꼽게 보였는지
그놈들은 갑자기 쌍욕을 해대며 죽일듯한 기세로 우리를 째려 보았다.
그 바람에 주방에서 일하시던 이모님이 우리들을 말렸고,
불같은 종수는 세 놈중 제일 힘 있어 보이는 놈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리 지가 뛰고 난다지만 지금 술도 많이 마셨는데.
연신 죄송하다고 이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예전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나는군..
막 1학년에 되어 서로가 낯설었던 그 때.
종수와 성식과 난 나란히 앉게 되었고
나중에 집도 서로 가까운걸 알곤 금새 친해지게 되었다.
막 고등학교에 올라오면 이미 전에 다니던 중학교에서 왠만큼
알아주는 애들 아니고서야 다들 그냥 똥양아치 수준이었는데.
우리반에서 그나마 제일 인상 더럽고 힘 좀 써 보이는놈이
지 꼬봉 몇을 데리고 한창 대장이냥 하고 다니고 있었다.
우리 셋도 그놈이 참 꼴 보기 싫었지만 우리에겐 아무 피해도 주지 않았기에
그냥 그려려니 하고 지내던 때 사건은 터진 것이다.
그 인상 더럽던 친구와 그 밑에있던 두 명의 꼬봉들은
점심에 도시락은 싸가지고 다니지도 않고 매일같이
숟가락 하나 들고선 이 자리 저자리를 다니며 거지새끼마냥
밥을 얻어(?)아니 뺐어 먹고 다녔었다.
그 전날이 아버지 생신이었던 터라 내가 꽤 맛있는 반찬을
많이 싸가져 왔던걸로 기억하는데 느닷없이 그놈이 마구 먹어대기
시작하더니 아예 지 꼬봉들이랑 우리셋의 밥상에
눌러 앉는 것이었다.
종수는 그놈에게 가라고 했지만
오히려 화를 내며 쌍욕을 해대자 종수는 그날 내가 알던 사람중
가장 무서운 사람으로 변했고 눈 깜짝 할세 그 인상 더러운놈을
피투성이로 만들어 버린적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상황은 이미종료된 상태였다.
우리에게 쌍욕을 해 대던놈은 길바닥에 누워있고 종수는
다른 한켠에서 참 폼 안나게 손가락을 목구멍에 쑤/셔가며 토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거야?”
“무~얼~ 어.뜨케 데 냐?나오자 마.자 웩..한방에 가는데.
입만 사른새키..웩...“
선방 한방에 끝난 듯 해 보였다.
나머지 두 놈은 더욱 더 살기를 우리를 째려 보았지만 우리에겐 종수가 있다.
아하하하..근데 이놈 술먹고 뻗었다. 젠장.
그래 간만에 몸좀 풀어보자 하는 생각으로 싸울 준비를 하는데
이놈들은 실컷 째려보다 그냥 가버리는 것이었다.
성식이와 나는 회심의 미소를 날리며 뻗어있는 종수를 일으켜 세웠고
입가에 가득 묻어있는 소화가 되다만 음식물들을 마땅히 닦을길이 없어
눈에 보이는 현수막으로 대충 닦아 주었다.
찌꺼기는 닦이긴 했다만..입에 묻은 시커먼 먼지들은 어쩔 것인가.
성식과 난 쓴웃음 지으며 종수를 집으로 데려다 줬다.
그리곤 성식과 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고 험한지..
돌아오면서 내내 생각했다.
'다신 술 먹지 말자 먹지 말자..'
그리곤 집에 어찌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
.
.
그런데 잔뜩 취해 집에 막 들어갔을 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만이 기억난다.
“쯧쯧..무슨 높은 벼슬 했다고 허구헌날 저 모양이야.
저 새끼 지가 무슨 사법고시라도 붙은 줄 아나 보네.
내일부터 저 놈 돈 쥐여 내보내지 말어.“
.
.
.
그리곤 아마도 난 방바닥에 있는 힘껏 내 몸에 쌓여있는 노폐물을
꺼내 놓은 것 같다. 온 가족이 보는 앞에서..
하지만 내 속은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