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키는 전당포에서 두자루의 칼을 약간의 동전과 교환했다.
동전은 금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그 무게가 정확하게 찍여 있었고 가짜를 예방하기 위한 것인지 동전 전체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돈이라면 가짜를 만들기 위해 도금을 한다고 해도 실제 돈과 거의 비슷한 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무도 가짜를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스파키는 동전을 오늘 다 써버릴 생각으로 다시 도시 안을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걷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장이 보였고 그 주변에 상점으로 보이는 곳과 식당으로 보이는 곳도 눈에 띄었다.
그는 식당으로 다가가서 앞에 늘어놓은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자 곧 젊은 여자급사가 쪼르르 다가왔다.
"어서오세요. 주문하시겠습니까?"
"그냥 마실것이 좀 필요한데."
"뭘로 드릴까요? 지금은 버닝타임이니까 시원한 레몬쥬스 어떠세요?"
"정말 레몬으로 만드나?"
"진짜는 조금 비싸구요. 합성쥬스는 5가린입니다."
급사의 말을 들은 그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다.
"이거면 되나?"
"아, 그건 10가린짜리네요. 이 도시에 처음이신가요?"
"그런 셈이지."
"그럼 진짜를 드세요. 20가린입니다. 조금 비싸지만 진짜는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때가 있거든요. 지금 마침 조금 남았어요. 드릴까요?"
스파키가 대답도 하기 전에 급사는 바로 동전 두개를 집어들더니 활짝 웃었다.
"좋아. 그걸로 줘."
"네. 감사합니다."
급사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더니 테이블 위의 작은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테이블 가운데에서 기둥이 솟아오르더니 그 위에 달린 주먹만한 구체에서 옅은 빛이 나와 넓은 지붕을 만들었다.
그 빛은 햇볕을 차단해 주는 기능이 있는지 뜨거웠던 몸이 차갑게 식는 느낌이 바로 들었다.
스파키는 얼굴을 덮었던 천을 치우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역시. 혼자 움직이는 것이 편하군."
곧 여자급사가 노오란 액체가 담긴 커다란 잔을 가져왔다.
그 안에는 상큼한 향을 풍기는 레몬쥬스와 함께 커다란 얼음도 같이 들어있었다.
"얼음이군. 여기 냉장고도 있나?"
"네. 그건 저희집의 자랑이죠. 얼음은 이 도시 안에서도 열군데 정도밖에 없어요. 그럼 편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스파키는 얼음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그러자 얼음이 잔에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내고는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올랐다.
손가락에 닿는 느낌도 시원했다.
400년만에 보는 얼음이다.
그는 잔을 들어 조심스럽게 진짜 레몬으로 만든 쥬스의 맛을 보았다.
진짜였다.
합성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진짜에 완벽하게 가까운 맛이다.
그는 시큼한 향에 기분좋게 얼굴을 찡그리며 잔을 들어 쭈욱 들이켰다.
한번에 반쯤을 마신 그는 갈증만 해소하고는 비싼 쥬스를 다시 내려놓았다.
언제 다시 맛을 볼지 모르니 천천히 음미하고 싶었다.
주변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바쁜 일이 있는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큰 지붕을 만들어서 자신과 늘어놓은 물건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며 장사를 하는 사람들과 물건들을 구경하며 흥정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잠시 모든 것을 잊고 머리를 비워보는데 그 행복은 금새 끊기고 말았다.
뒤에서 누군가 다가오더니 스파키를 향해 손을 뻣었다.
하지만 스파키는 바로 옆으로 일어서며 몸을 뒤로 돌렸다.
놈이 뻗은 손은 스파키의 머리가 있던 자리를 지나 아직 반이나 남아있는 비싼 쥬스가 담겨있는 잔을 치고 말았다.
귀한 얼음이 바닥에 떨어졌고 쥬스는 테이블 위를 퍼지며 달렸다.
잔이 구르며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스파키가 얼른 잡으며 놈에게 말했다.
"볼일이 있나?"
놈은 하마터면 앞으로 넘어질뻔 하더니 겨우 중심을 잡으며 스파키를 노려보았다.
"네가 그 이상한 무기를 사용한다는 놈이냐?"
스파키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함께 몰려온 놈들 중 아까 스파키와 일전을 벌인 놈이 아직도 한쪽귀를 부여잡고는 소리쳤다.
"그 자식이 맞다니까. 내 스탤스기도 놈이 망가트려 놓았다구! 당장 놈의 목을 끌고 와."
놈은 다시 스파키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다가왔다.
"우리 동료를 건들다니.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구나. 나랑 같이 가자."
"가서?"
"죽지 않을 만큼 혼이 나야지."
"그럼 내 쥬스는?"
"미친놈......."
"내가 너희들을 이기면 쥬스값을 변상할텐가?"
"크하하하하. 상황판단을 못하는 놈이군. 좋다. 뭐 어차피 한동안은 물도 마시기 힘든 몸이 될테니 약속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푸하하하하."
스파키가 놈의 거대한 덩치를 지나쳐 먼저 가자 멀찍이 떨어져 있던 패거리들이 그의 몸을 둘러싸며 걸었다.
놈들은 그를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으로 이끌었다.
그리곤 다시 스파키의 주위를 둥그렇게 에워싸며 노려보았다.
스파키도 멈추어 서자 귀가 잘린 놈이 눈에 핏발을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이봐. 헤머! 놈을 아주 가루로 만들어라."
"나한테 명령하지 마."
"젠장..... 좋다. 저놈을 죽여주면 네가 탐내던 목걸이를 주마."
"뭐? 정말이야? 그거 나 줄거야?"
"그래? 이 미련한 놈아. 그러니 어서 놈을 족쳐! 어서!"
"크하하. 그것만 있으면 쥴리아를....... 헤헤....."
갑자기 전의가 불타오르기 시작한 헤머는 눈 앞에 보이는 검은 머리칼의 사내에게 팔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두 팔로 그를 감싸려고 한 그의 계획은 우습게 무산되면서 동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런.... 썅......"
"그렇게 느리면 아무리 힘이 좋아도 소용없다."
스파키가 웃으며 훈시를 하듯 말하자 헤머는 머리가 하얗게 비며 화가 치밀었다.
"크앗! 죽인다."
"와라."
헤머가 다시 팔을 앞으로 뻗으며 스파키에게 달려들었고 스파키도 이번엔 피하지 않고 놈의 손을 맞잡으며 응해주었다.
"잡았다."
"헤헤. 헤머와 힘을 겨루다니. 미쳤군. 헤머! 손부터 부셔라."
확실이 헤머라는 놈의 힘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스파키는 헤머라는 놈이 힘을 쓰는 것과 동시에 약간의 전력을 쏟았다.
그러자 놈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빼려고 했지만 이번엔 스파키가 그의 손은 잡았다.
"벌써?"
"으캬캬캬캭!"
겨우 2초만에 헤머는 입에 거품을 물며 뒤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놈이 전기를 쓴다. 조심해."
귀가 잘린 놈이 소리치자 다른 놈들이 전부 무기를 꺼내들었다.
"놈을 죽이면 그 목걸이를 주겠다."
놈이 다시 말하자 다들 눈에 광채를 띠며 달려들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스파키가 먼저 행동을 시작했다.
먼저 귀가 잘린 놈쪽으로 잽싸게 달려가서는 전력을 실은 손바닥으로 따귀를 갈겼다.
"철썩!"
"끄옷!"
녀석은 옆으로 구른 다음 그대로 널브러져서 일어서지 않았다.
놈이 뻗는 것과 동시에 스파키는 주변에 있는 두놈에게도 전기따귀를 먹였다.
순식간에 세놈이 쓰러지자 놈들은 술렁거렸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스파키가 조용히 말했다.
"그냥 가라. 그리고 다신 날 찾지 마라."
"두목은 도망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죽여라!"
놈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다가 한 놈이 지르는 소리에 사라진 용기를 쥐어짜며 덤벼들었다.
스파키는 하는 수 없이 양 손에 눈에 띄지 않을만큼의 전력을 일으키며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뒤에서 달려오는 놈부터 처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바로 몸을 돌리며 놈이 휘두르는 주먹을 흘리고 바로 복부에 주먹을 꽂은 다음 잠깐 머물렀다.
놈의 몸 속으로 들어간 전력이 효과를 발휘하는 동안 다시 몸을 돌린 그는 옆에서 놀란 눈을 하고 있는 놈의 턱을 날려버리고 다시 뒤로 몸을 굴리며 그의 뒤를 노리던 놈의 턱을 발로 차버리고 넘어지는 놈을 쫒아가서 머리에 손을 짚었다.
곧 놈도 몸을 떨더니 축 늘어졌다.
하지만 놈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려들었다.
스파키는 이런 식으로 하기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한번에 해결하기로 하고 순간적으로 전력을 올리며 사방으로 뿌렸다.
그러자 바로 그의 몸에서 가느다란 전력의 줄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나머지 놈들의 몸을 휘감고는 바로 사라졌다.
그 짧은 순간만으로도 놈들은 전부 거품을 물고 기절하거나 기절한 상태에서도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휴우~"
움직이는 놈이 있는지 확인한 그는 얼른 자리를 피했다.
이정도면 다신 나타나지 않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도시 안쪽으로 몸을 움직였지만 그건 사건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는 몰랐다.
귀가 잘린 놈이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한시간이나 지난 다음이었다.
같이 왔던 놈들은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헤머는 손에 화상을 입고는 눈물을 흘리며 입으로 손바닥을 후우 후우 불고 있었다.
"이런 미련한 놈. 힘만 세면 다냐?"
"스텔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히익!"
스텔스는 일어서려다 말고 다시 주저앉았다.
두목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아주 화가 난 상태라는 것을 금방 알았기 때문이다.
"누가 너더러 부하들을 끌로 다니라고 했나?"
"두, 두목.... 그게....."
스텔스가 무어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날아온 무지막지한 손바닥에 뺨이 찢어질 듯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어이쿠!"
"무슨 일인지 사실대로 말해라. 안그러면 네 특기대로 다신 보이지 않게 해주마."
"자, 잠깐. 잔깐이요..... 사실대로 말할께요...."
스텔스는 얼른 정신을 차리며 품속에서 귀를 주고 얻은 수확물을 내밀었다.
"우선 이걸......"
"뭐냐?"
"방금 우릴 이렇게 만든 놈한테서 얻은 것입니다. 근데 제 귀가 이렇게 되서.... 복수를 하려다가......"
"놈은?"
"저.....그게........"
두목이 다시 커다란 손바닥을 위로 치켜올리자 스텔스는 기겁을 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히익! 노, 노, 놓쳤습니다."
"뭐? 놓쳐? 헤머까지 저지경을 만들어 놓고 놓쳐? 그리고 다른 놈들은 왜 저모양이야? 본부까지 비워두고."
"정말 대단한 무기를 사용하는 놈이 있습니다. 저희가 가진 무기로는 상대가....."
"우선 다들 데리고 본부로 돌아가라. 놈은 오늘 밤에 찾겠다. 물론 네 잘못에 대해서도....."
"예, 예, 알겠습니다."
스텔스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동료들을 깨우는 사이 두목은 방금 스텔스가 건네준 칼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곤 눈이 커졌다.
이 칼이 자신의 손에 들려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오늘 그는 꼭 이 칼의 주인을 만나야 한다.
스파키는 놈들과의 싸움에서 적지 않은 전력을 사용했지만 전혀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덕분에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왔다.
그의 모습이 나타나자 캔이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걱정했습니다."
"캔이 있는 덕에 내가 편하군. 수고했다. 여자들은?"
"아리아는 돌아오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쟌느가 옆에서 돌보고 있습니다. 자꾸 잠꼬대를 해서요."
"잠꼬대?"
"네. 스파키 당신을 부르며 몸을 심하게 떨더군요. 하지만 쟌느가 손을 잡아주자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
스파키는 아리아의 상태를 보기 위해 가려다가 그만두었다.
"자. 이건 선물이야."
스파키는 캔에게 두툼한 종이뭉치로 보이는 것을 꺼내놓았다.
"이건 뭡니까?"
"안경하고 자네가 쓸 칼이야. 안경은 동생에게 주고 칼은 캔에게 어울릴 듯 해서 말야. 너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스타일은 전투시 긴 칼이 오히려 방해가 되지. 무기는 있어야 하니까."
"아...... 감사합니다."
캔이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본 스파키는 얼른 벽에 달린 줄을 당겼다.
곧 종업원이 달려왔고 스파키가 주문을 했다.
"저녁은 조금 있다가 가져오고 혹시 레몬쥬스가 있나?"
"있긴 합니다만 합성쥬스입니다. 진짜는 사과쥬스가 있습니다만....."
"그럼 그걸로 갖다줘."
"네. 알겠습니다."
종업원이 나간 다음 스파키는 다시 호출용 줄을 당겼다.
"네. 다른 것이 또 필요하십니까?"
"그냥 물도 좀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종업원이 나가는 모양을 유심히 관찰한 스파키는 입맛을 다셨다.
저 남자는 이 호텔의 종업원이 아니다.
방금 주문을 받고 나간 사람이 자신이 줄을 당기는 것을 알고 바로 다시 왔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는 먼저 주문한 것을 가져와야 하고 그 동안에는 다른 사람이 달려와야 한다.
그리고 말하는 투나 걸음걸이만 봐도 보통 이상의 훈련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스파키 일행은 지금 감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리코의 말대로 다른 지도층이 모르게 보호겸 감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낮에 보았던 괴물들도 각본에 의한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아리아가 아직 저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무슨 위협이 있단 말인가.....
종업원이 식사를 가져왔을 때 캔이 여자들을 불러와서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가 들어올때 스파키는 4인분의 식사가 한번에 들어온 것을 보고 종업원에게 물었다.
"이걸 둘이서 먹나? 너무 많은데."
"네분이서 같이 드실줄 알고....."
"어떻게 알지?"
"네? 아.... 그거야....."
종업원이 꾸물거리며 바로 대답을 못할때 캔을 따라 여자들이 들어왔고 종업원은 인사를 하며 얼른 사라졌다.
의심은 확실해졌다.
스파키는 그냥 앉아서 조용히 음식을 들기 시작했고 캔과 여자들은 다시 훌륭해 보이는 음식들을 재잘거리며 먹기 시작했다.
아리아와 쟌느는 상당히 가까워져서 마치 친 자매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들의 모습을 캔도 흐믓해 하며 바라보았다.
동생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는 감사한 마음을 품었다.
이런 작은 행복이라도 계속 지켜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생각이다.
쟌느도 아리아처럼 피부가 하얀 색이었다.
오빠처럼 붉은 머리칼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얼굴이 더욱 창백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활짝 웃으면 그 창백함은 순식간에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변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갈때 누군가 노크를 했다.
"누구요?"
캔이 묻자 문이 열리며 리코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식사중이시군요. 좀 있다가 올까요?"
"아닙니다. 들어오시오."
"시내 구경은 잘 하셨습니까?"
"그런대로."
스파키가 물을 마시며 일어서자 리코가 가까이 다가와서 조용히 말했다.
"대통령께서 기다리십니다. 나누고자 하는 말씀이 있으신데 괜찮습니까?"
"좋습니다."
"여자분들은 여기 두시고 당신과 저 캔이라는 남자분만 오셨으면 합니다. 바로 건너방에서 기다리겠습니다."
"..........."
리코가 나간 후 스파키는 캔을 데리고 여자들에게 금방 올테니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는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