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마냥 놀고 먹고 할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오늘은 지금 이력서들고 예전에 거래처회사쪽으로 직접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몇군데 돌지 않았는데 벌써 오후시간이 되었다.
혼자만의 점심을 먹고 이번에는 제일전자로 갔다.
정사장은 여전히 마음좋은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그래 앉지..자네 소식은 들었어..회사에서 안좋은일이 있었다고.."
"네에..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자네가 뭐가 죄송해? 내 언제 박이사 그런일이 일어날줄 알았어..
쯧쯧..돈이 많으면 뭐해..돈이 인격을 만들어주나? 그래 요즈음 뭐해?"
"여기저기 일자리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래..힘들지?"
"워낙 불경기라서..저기..그래서..."
"박이사라는 사람도 독해..짤린 사람이 그냥 먹고 살길은 남겨줘야지..
사발통문을 돌려서 취업자리를 막아버리네..사람이 그러면 안되지"
고수는 안주머니에서 이력서를 꺼내렸다가 멈추었다.
어째 가는곳마다 탐탁치 않은듯한 눈빛을 보냈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수있었다.
아하~ 그런일이 있었구나..
"이바닥이 넓은것 같아도 거기가 거기라서 다 만나게 되어있지..
더구나 승일그룹이라면 무시하지 못하지.."
"네에..그렇죠"
아마도 고수가 이력서를 내밀면 정사장은 두말 안하고 고수를 받아주었을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앞으로 정사장에게 얼마나 많은 박이사의 횡포가 가해질지는
명약관화가 아닌가?
고마운 분에게 은혜를 갚지 못할 망정 누가 될수는 없지 않은가?
"점심은 먹었나?"
"네에..조금전에요.."
"그래? 그러면 이따가 술이나 한잔할까?"
"죄송해서 어쩌죠?..제가 가볼곳이 있어서...곤란할것 같네요..그냥 지나는 길에
사장님 생각도 나고해서 잠깐 들렀습니다."
"그래 그냥 가면 내가 섭섭해서 어떻게 해..아참 잠깐만 있어"
정사장은 서랍에서 봉투를 하나가지고 와서 고수에게 건냈다.
"이게 뭐죠?
"아는 사람이 줬는데..발레 티켓이야. 내가 발레 볼일이 있나?
차라리 그시간에 잠이나 자고말지.."
충혈된 정사장의 눈을 보니깐 어제도 밤새워서 실험한것 같다.
고수는 봉투를 열어보고
"헉~ VIP석인데요...이것 장당 40만원이 넘는다는데..2장이면 80만원이네요.."
"그러냐? 몰랐는데..그러면 반값만 내라..내가 아는 사람이고 하니깐 싸게 주지.."
"사장님 저 백수인데요..." -_-;;;
"백수도 능력 있으니깐 하는거야...내가 장부를 어디다가 두었더라..
특별히 40개월 할부로 해주지.."
"...."
둘은 하하 웃는다..
고수는 웃으면서 설마 받을까하는 생각으로 웃는데...
역시 정사장은 장부에 기입했다.. (-_-)
"잘가~ 종종 놀러오고.."
"네에 자주 찾아뵙겠습니다.그리고 연구도 쉬엄쉬엄하세요..
건강해칩니다. 그럼 안녕히..."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고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쪽 방면으로는 취업하기는 힘들어질것 같다는 생각에 암담해졌다.
휴~ 어떻게 해야 하나?
무거운 걸음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힘들었다.
'아니다..이건 아니다..내가 누구냐? 최고수아니더냐? 이정도로
의기소침할 내가 아니다..아자아자..힘내자..'
어라~ 배고프네..오늘은 뭘 먹을까?
신김치 있던데...돼지고기 넣고 신김치 숭숭 썰어서 김치찌게해서 한잔해야지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손을 씻으려고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전에 깨진 거울에 꽃무늬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음..이게 무슨 의미냐?
1.고수의 꽃미남 어쩌구 저쩌구하는 말을 듣고 꽃무늬스티커로 응수하면서
자신의 재치를 한껏 뽐내고 있는것이다.
2.죽은 영정 앞에 놓는 조화 대신 놓는거니깐 보면서 즐겨라는 뜻인가?
아무리 봐도 후자인듯...
그래도 고수한테는 비장의 무기가 있지 않은가?
흐뭇한 미소를 띄우면서 부적이 있는 안쪽 호주머니에 손을 대어본다.
"캬아악~ 좋다"
김치찌게에 소주반주로 한잔하면서 고수는 기분이 좋아졌다.
아주 단순한 놈이다..고수라는 놈은..
"내 아무리 회사에 짤리고 갈곳도 없고 오라는데도 없지만
나 최고수는 절대 꺾이거나 흔들리지 않아..
세상이여~ 나에게 도전하라...우와~ 멋지지 않냐?
내가 말해놓고도 감동먹네...
그리고 김치찌게는 왜 이렇게 맛있냐? 예술이네..
누가 끊였는지 몰라도 앞으로 대성하겠네.흐흐..
그런 의미로 최고수씨 한잔 받으세요..네네 감사합니다.."
고수는 혼자서 말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두병을 다 마셨다.
혼자서도 잘해요...혼자서도 잘 놀아요..혼자서도 잘 마셔요.
기분좋게 알딸딸한 상태에서 침대에 누웠다.
많이 돌아다녀서 피곤해서인지 금방 잠들었다.
한참 자고 있는데
꿈속인지 현실인지 어디선가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익~ 끼이익~끼이익~
사인펜으로 유리를 긁는소리 같기도 하고
스치로폴로 긁는 소리 같은소리인가?
아무튼 무지 더럽게 소름끼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귀를 막아도 계속 되는 소리에 고수는 벌떡 일어나서
소리가 나는 창가쪽으로 가서 창문을 활짝 열고
"죽일려면 빨리 와서 죽여..이런식으로 괴롭히지 말고
어짜피 회사짤리고 나도 막가는 인생이야"
어이~ 고수 너무 막가는것 아니야?
기분나쁜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자 다시 잠자리에 들면서
"까불고 있어...별것도 아닌게..."
정말 별것도 아닐까?
잘자고 있는데 누군가 발로 차는 느낌이 들어서
눈을 떠보니
그 여자귀신이 이번에는 입에 칼을 물고 공포영화에서 교과서처럼
나오는 푸른조명을 받으면서 발로 차면서 고수를 깨웠다.
헉~ 이런 젠장 엿됐다...
순간 술이 확 깨면서..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러나 항상 후회는 뒤에 온다고 했던가?
그냥 자는척할까?
그러기에 이미 눈을 뜨고 있으니 너무 늦지 않았는가?
눈뜨고 잔다고 하면 믿어줄려나?.
"아니..나오라고 진짜 나오시면 어떻게 해요?
그런데 칼은 왜 물고 계신가요?
혹시..저..저를 죽일려구요?"
여자귀신은 고개를 끄떡끄덕 했다.
"저기여...저두 알고 보면 정말 불쌍한 놈이거든요.
한번만 이번 한번만 그냥 넘어가주시면 안될까요?"
고수는 최대한 불쌍하게 보일려고 갖고 있는 모든 역량을 다 발휘했다.
그러나 여자귀신을 고개를 설레설레 하면서
입에 문 칼을 손에 쥐고 고수쪽으로 다가왔다.
다급해진 고수는 안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내서 귀신에게 보였다.
그러자
귀신은 "까아악~ "하고 머리를 감싸고 사라져 버렸다.
"뭐..뭐냐? 부적이 통하잖아..그놈의 무당놈이 영 돌파리는 아니네..
오백원 더줄걸 그랬나?"
솔직히 반신반의하던 부적이 통하자 도리어 어리벙벙해졌다가
바닥에 떨어진 칼을 보고
고수는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깊이 내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