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55년생 양띠 입니다.
4남4녀의 막내아들이구요!
저는16년전 이혼하고 2년후재혼한 사람입니다.
이혼 사유는 무모님 모시는 문제로 가끔 의견 충돌이?
저의집은 시골입니다.
처음에는 큰형님께서 모시다가 조카들이 커가면서 교육문제로
서울로 상경 하셨어요!
그당시 저는 나이가 좀어려서 상황판단을 좀못했그던여!
큰형님 상경이후 가족회의가 있었는데 누가 부모님을 모시냐의 토론장
이었습니다.
다들 언듯 대답들이 없드라구요
시간이 몇시간즘 흘러 결론을 내지 못하고 부모님 의견을 존중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얼마후 어머님 말씀 나는 막내하고 살았으면 하시고 저를 빤히 처다보시는 겁니다.
그당시 부모님 연세가 모75세부80세 연로하신 나이였었습니다.
그런상황에서 애엄마한테 그래 우리가 모시자 하는겄도 도리가 아닌것 같아서
일단은 일주일후에 답변을 드리기로 하고 집으로 다들 갔어요.
그당시 우리아이 나이가5살이였어요
면소재지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하고 있었거든요
애엄마하고 5~6년을 살면서 그리잘해준겄도 없고 그렇지만 서로가 항상 존중하며
실뢰하면서 그렇게 살던시절 입니다.
그당시 누가 모셔도 모셔야 하는 상황은 분명했습니다.
안모시자니 너무나 큰불효를 하는것 같아서 제입장에서는 애엄마를 설득 또 설득
하는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칠이 지나고 있었어요 그날밤 애엄마가 오늘저녁은 외식하자고 하면서 가게문을
일찍 닫자고 그순간 저는 굉장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긴장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드디어 식당에 자리를 같이 하였습니다.
음식 주문을 하고 나서도 옆차를 연거퍼 마시고 있는데 애엄마가 먼저 말문을 열었습니다.
여보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거였어요 8남매중에 그래도 우리는 부모님 한데
선택바든 잔식이 아니냐는 거였어요>
저는 태어나서 두번 울었어요!
한번은 아들이 세상에 처음 나오는날 온세상을 다 얻은것 같아서 울었고
두번째는 그순간 이였어요! 저는 하늘을 날것같은 기분이였습니다.
그렇게도 힘들었던 시간을 보내고 부모님을 선택한 아내가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어요~
나또한 아내한태 최선을 다해 잘해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다짐하고 또다짐하고 했어요
어짜피 모실려고 마음을 먹은거 하루 빨리 가계를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가자고 하더라고요
10일후 우리는 시골집으로 이사를 왔어요!
시골집이라야 논농사 조금있는것 뿐 별다른 소득이 없는 터라
살기가 힘들거든여 의논끝에 제가 직장을 잡기로 결정을 하고 얼마후 저는 근처 화물차 운전기사로
취직을 하고 월급은 그리만치는 않치만 일년농사저서 다팔아봐야 감가 삼각비 제하고 나면
2백정도 남는다고 보면 되여 한달 월급은 80만원 받았으니까 부식값은 안들고 하니 용돈말고는
거의다 저축하는 편이였습니다.그런데로 시골에 적응하면서 하루하루가 지나 2년이 흘러가고 있었슴니다.그런데 이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어머님에 건강상태가 점점 나빠지셨어요
제가 아내을 두든하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내가 봐도 지극정성으로 부모님을 모시는것을 피부로 느껴요! 그런데 요인은 형수님들이 시골에다녀가면 문제가 생겨요 못처럼 한번씩오면 손아래 동서가 그래두
부모님을 모시고 계시니 말한마디라도 따듯하게 해주고 가면 어디가 덧나는지 오면 부엌한번 안들어
가면서 방에들어가서 효도는 혼자 다하는냥 나오지도 않아요 그알냥한돈 몆푼드리고 가면 저녘상 앞에
는 항상 설교를 하십니다. 결론인 즉 누가얼마주고 누가얼마조서 최고라는등 제가듣기에도 애엄마
얼굴보기가 미안해서 같이 저녘을 먹을 수가 없을정도로 하세요 사실용돈이 필요 하시면 드리조
그런데 돈이 왜필요하신지 모르겠어요 사실 그렇다고 병원다니시고 하는 경비라든가 이런거 내시는
걷두아니고 노인분 모시고 살면 펴안나게 돈 마니 들거든여 아내몰래 어머니한테들어가서 애엄마한테
그러지 말라고 하면 너희들이 해주는것이 모가있냐는 거야요 결국은 아내도 힘들어 하는눈치였어요
우리 부부사이두 예전같이 안았어요 아내성격은 매우 활발한 편이였어요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지
말을 마니 아끼는것을 알수 있겠드라구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결국은 합의이혼이라는 결과에 맞춤표를
찍어야만 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부모님과 아들하고 네식구가 암혹의 세월속에 살아야만 했습니다.
술과 향락 속에 빠저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무렵 아들이 7살이 되어 유치원에 가게되엇고 그렇게 또1년
이 흘러 졸업을 하게될무렵 친한친구로 부터 중매를 할태니 선을 보라는 것이였어요 물론 저는 사양을
했구여 용기가 안났어요 두렵기도하고 새로운 생활을 보장할수도 없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너무도 무섭기도 하고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술을사들고 저의집으로 찾아와서 술을먹게 되었조
아마도 꽤나 취기가 오를무렵이었다. 친구가 중매문제를 다시금 꺼내면서 하는말이 사실은 자기처재
라는 겁니다. 처가집 인적사항을 털어놓는데 1시간정도는 이야기 한거 같해요 딸만4명중 막내라는
거뎠다.부모님은 6학년때 불이의사고로 두분다 한날 한시에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이야기 였다.
그 후 큰언니가 데려다 어려운 살림에 고등학교까지 가르쳤다는 이야기 그이후 직장을 다니다.
결혼을 했는데 결혼한지 17개월만에 불치의 병으로 사별 하고 6개월된 아들이 있다는 것이다.
부모님도 일찍여이고 남편과 사별도 하고 처재가 불쌍하다고 하면서 우는것이 아닌가 나또한 우는 친구
를 보면서 같이 울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우리 처재는 부모님을 일찍여인 탓으로 시부모님을 친
부모인양 잘모실거라는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것이아닌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새벽역에야 친구는 집으로
돌아갔다 가고 난 몆일은 고뇌의 날을 보내 야만했다.분명말하건데 저생각은 무어라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분명 연민 아니면 그사람이 살아온 그길 참으로 그렇게 힘든삶을 살아온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내머리를 자꾸만 어지럽게 하고 잇었다.하지만 결론은 내려야 했다. 결국은 친구의 간곡한
부탁을 뿌리칠수밖에 없었다. 그에 행복을 보장할수 없기 때문이다.그렇게 해서 나는 마음을 추스리고
직장을 다시다니고 하면서 어느정도 정리가 되갈무렵 우치원에 다니는 아들 졸업식이 다가왔다.
졸업식을 앞둔 유치원에서는 모그리 행사가 많은지 유치원에서 엄마을 오라는 것이 아닌가.
아빠가 가기도 모하고 해서 그날 밤에는 안가고 졸업식날 가기로 하고 아픈마음을 쓰러내니고 있엇다.
그러던중 아들이 들어오는것이 아닌가 부모님두 안가고 해서 기분이 나빠야 하는 아들이 굉장히
기분이 좋아보였다.어린아 한테 물어보기도 모하고 해서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를 하고있느라니 할머니
방에서 할머니 하고 소근소근 이야기를 하는데 어느아줌마가 와서 준비물 하며 엄마가 해야할 역활을
다해졌다는것이아닌가 처음에는 그래두 시골이다보니 우리의 사정을 아는 학부모가 챙겨 주었으려니
하고 누가 도와졌는지는 알아야 나중에라도 인사치레를 할거 같아 아들에게 물어보기로하고 내방으로
불러 누구엄마니 하고 물었더니 유치원 햑부모가 아니라는 것이아닌가 그순간 내머리를 스치는 예감이
하두 이상해서 원장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고 전화를 들었다. 선생님 저 누구아빠예요
안녕하셨어요 차자뵙지도 못하고 죄송합니다.하자 죄송하긴요 그렇지 안아도 애 작은엄마가 몆번와서
고생많이 하고 가셨다는게아닌가 참으로 이상한 일이아닐수가 없었다.전화를끈고 생각해봐도 도무지
감이 안왔다.그날밤 잠이오질안았다.순간 혹시 친구처제라는 생각이 들엇다.하느수 없이 친구네 집에
가서 확인하려마음먹고 친구네로 같다.대문을 열고 들어 가니 친구부부하고 모르는 여인과 아주어린
아이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방으로 황급히 들어가는 것이아닌가.내예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엇다.
친구하고 소주몇잔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친구가 하는말 우리처제가 유치원에 같다 왔다는 것이다.그 순간 어떠한 말을해야하고 어떠한 행동을 해야하는지 참으로 몸둘봐를 모르는 상황이였다.
그렇게 아무말 없이 쓰디쓴 소주잔에 침묵만 흘러가고 있었다. 필현 이것이 인연이 아닐까 그런생각두
하면서 새벽녘에야 아무말두 못한채 집으로 오고 말았다.오늘이 유치원 졸업식이라 준비하고 유치원으로 향했다.다들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나 본인은 쥐구멍이라도 잇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였다.
모든 부모가 다행복한걷은 아닌가보다.벽모서리에 기데어 행사모습을 보고 있느라니 내모습이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이 아닌가.다른 부모들 하는 모습이 너무도 행복해 보이지 않은가.켐코드에 추억들을
담느라 분주이 음직이고 하는수 없이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내옆에 서있는분이 어제그분이 아닌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나오고 말앗다. 얼마가 흘렀을가 행사가 끝나고 박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참으로 줄겁고 행복해 보엿다.거의 다나왔을 무렵그여인은 우리아들손을 잡고나오는 것이아닌가.
다른 부모들은 우리만 처다보는거 같아 어떻게 표현을 해야할지모르지만 좀 그런기분 이였다.
그날 우리는 점심을 같이하게됬다.
많은 대화는 없었지만 나또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그렇게 시간은 흘러 꽃피는 봄날 동민들의 축복
속에 사무관대하고 연지곤지 쪽도리 쓰고 예식아닌 구식 혼례식으로 두번째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나는작은하들을 안사람은 큰아들을 더업이 사랑하면서 살아오고 있다.
작은아들은 지금명문고등학교 2학년이고 큰아들은 군제대하고 대학1학년이다.7년전 어머님이 중풍으로 쓸어지시고 6년동안 간병하면서 실은소리 한번안한 우리집사람 하늘에서 내린 천사가 아닌가
생각 합니다.이몸죽어 다시태어난다면 나만나서 고생신킨거 다음 세상에서는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
할까요!2002년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같은해 겨울 아버님도 향년 94세로 어머님 따라가쎴어요
부모님 다돌아 가시면 그간 고생도 많이 했고 하닌까 세계일주나 하면서 여생을 보내자고 했어요
그런데 이게 거짓이 되고 말앗어요 약속을 못지키게 생겼어요 아버님 장례치르고 콘디션이 않좋아
서 병원가서 진찰을 해보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랍니까?
좋지않은 결과가 ......
조직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보러 오라고 해서 가보니 암이라는거야요
왜 우리집사람은 행복을 영위할 자격이 없나요 지난3월 수술을 하고 다음달에 복원수술합니다.
이제는 우리 형제들도 우애있게 잘들지네고 있습니다.
풍지박살난 가정에 시집와서 모든형제들 다 화합하게 만들엇어요
지하에 계신 아버님이 돌아가시기전 형제들 한테 유언하셨는데 모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작은에미 너무 고생을 많이 시켜서 미안하니까 나죽으면 삼오제날 상청을 내라고 하시는 거야요
여기는 시골이다 보니 동래 눈치도 보이고해서 보통 100일에 상청을 내는것이 보통입니다.
우리 집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행복하게 해줄수있을가요!
좀가르처 주세요?
형편없는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좀 나아진거 같아요
모든분 다들 행복하시기 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