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에 걸쳐 인류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벗어날 수 없었다.
철학, 윤리, 종교도 그러하였고 법률과 생활 습관도 이런 흐름이었다.
천당과 지옥, 선과 악, 신과 악마, 미와 추, 영혼과 육체, 양과 음, 명과 암, 정과 사, 적과 동지 등과 같이 사람들이 지금까지 즐겨써온 개념과 용어들을 분석해보면 온갖 사물들이 이 같은 이분법에 의해 놀라우리만큼 구분, 비교, 대조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이분법은 제3의 자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일은 그 같은 이분법이란 인류의 정신적 유아기에 형성된 유치한 사고의 틀이라는 사실이다.
이것과 저것 말고도 제3, 제4의 것이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알고는 있으면서도 이를 외면하고 무시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학문이나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아직은 정신적 미숙아일 뿐이다.
파악하지 못했을 경우 그것은 지성과 통찰력의 결핍을 드러낸다.
알면서도 도외시 했다면 그는 집요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거나 그것과의 합리적 관계설정에 자신이 없어서일 것이다.
어느 경우에도 인격적 미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독재주의, 획일주의, 관료주의, 권위주의가 시퍼렇게 살아 활개치는 사회가 있다면 그러한 사회는 아직 미숙한 사회요 어떤 의미로는 야만이다.
왜 그러냐 하면 이러한 사회가 걸핏하면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질러대는 무기가 그 이분법이기 때문이다.
독재자는 명령하고 국민은 오로지 복종할뿐 그 이외의 길은 없다고 으름장을 놓을때 다양한 목적과 목표, 수단과 방법을 전면 부정하고 하나의 목표와 방법만이 채택될때 민중의 참여와 공헌없이 정치인과 관료들이 모든 일을 진단할때 하나의 권위와 권력으로 인하여 여타의 그것이 사이비라 배척될때 이분법은 모든 미숙한 사회의 전가의 보도가 되어 자기의 코드에 맞지 않는 것들을 사정없이 베어 넘긴다.
시쳇말로 성숙한 사회란 민주적인 사회이다.
민주적이라 함은 이것이나 저것만을 인정하고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제3, 제4의 것도 인정하고 긍정하며 포용하는, 말하자면 획일화나 양극화를 지양하고 오히려 다양성과 다양화를 지향함을 의미한다.
민주사회에 있어서는 편견이 아니라 관점이 있을 뿐이다.
사물을 보는 자기 나름대로의 어떤 입장이 있어 거기서 사물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공정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성숙한 민주사회에서는 어느 한쪽을 지나치게 두둔하거나 다른 쪽을 여지없이 부정하는 일은 없다.
더욱이 유치한 이분법이 행세할 여지는 없다.
그것은 민주사회가 지니는 성격상 그러하다.
그 사고가 성숙하였기에 정의와 자유, 평등의 이념 아래서 어떤 대상을 이편, 저편으로 구분하면서 편벽되게 이쪽을 좋아하고 터무니없이 저쪽을 싫어하고 미워하지 않는다.
제2, 제3, 제4의 입장을 이해하고 관용하며 대화와 타협을 시도한다.
현대사회의 특징을 어느 사회학자는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적 혼재"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솔직히 우리 한국사회 역시 여기서 제외되지 않는다.
이분법적 사고와 다각적 사고가 혼재하고 있다.
우리의 사회가 좀 더 성숙해 지려면 우리는 먼저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헌 옷 벗듯 벗어던져야 한다.
여러가지 입장과 가치의 다양성을 긍정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터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