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뽀리미성 (-bbo-ry-@hanmail.net)
죄송해서 할말이 없어요........
※ 6 6 편 ※
수업이 시작하자마자 앉아서 생각했다.
내가 한국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들을 찾아보려고 곰곰히 노력해보았다.
오빠한테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가자는 얘기를 들었을땐 그저 장난이라고만 생각하고 말았는데
수업에 집중은 안되고 칠판을 보자 쓸데없는 생각들이 스쳐가면서
미국에 같이 가는 생각과 함께 내가 한국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려고해도 내가 한국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이모와 이모부 아진이... 그리고 윤환이..?
윤환이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스웠다. 그리고 서글펐다.
예전같았으면 당연히 윤환이가 제일 첫번째 이유였을텐데...
그리고 이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막아줬을텐데...
그런데 지금 윤환이 생각을 하자 섭섭함보다 실망감이 더 커져서 마음 한구석을 쿡쿡 찌르는 거 같았다.
내가 미국에 간다고 하면 윤환인 대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서운해하겠지..? 그래도 오랫동안 같이 했었는데 서운해할거야. 아마도.
휴.. 역시 집중이 안되면 칠판 위에 나의 생각들을 그리는 버릇은 정말 하루 빨리 고쳐야 할 것 같다.
이런 서글픈 생각들만 자꾸 떠오르니 말이다.
그렇게 수업시간이 흘러가고 정말 요근래 일주일은 무언가 허무하게 지나가는 거 같았다.
그냥 요새 나른한 계절이다보니 이렇게 힘이 빠지는 것 같다. 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 어느 4월보다 더욱더 힘든 것 같았다.
가방을 매고 오빠와 같이 집으로 걸어왔다.
"오늘따라 수업시간 내내 멍하게 있는거 같구."
"어? 뭐라구?"
"뭐야. 대체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거야. 혹시 내가 아침에 한 말 때문에?"
잔뜩 기대하는 눈초리로 나에게 묻는 오빠.
"아침에?"
"미국."
내 말에 오빠가 짧게 대답했다.
"아 맞다. 요새 내가 정신이 좀 없어! 시험기간이라서 그런가봐."
"그래..?"
하지만 오빠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 눈빛인거 같았다.
"시험공부 해야지. 중간고사!"
"같이 공부할까? 이래뵈도 내가 너보다 한 살많아. 꽤나 도움이 될 수도 있을걸?"
"전혀 그렇게 되지 않을거 같은데? 그냥 오늘은 혼자 가서 해볼래. 모르는거 있으면 전화하면 되지."
내 말이 끝나자 한참 침묵이 흐른 다음에 아파트단지에 도착하자 오빠가 나에게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하구. 모르는거 있으면 전화해. 알았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려고 하자 오빠가 말했다.
"그런데... 그런데 말야. 니 사촌오빠란 사람이랑..."
"현이 오빠..?"
"응.."
"현이 오빠는 갑자기 왜..?"
"현이란 사람이랑도 같이 공부해보고 그런적 있는지 궁금해서 말야."
"그게 왜 궁금한건데..?"
"만약에 그런적이 있다면 나랑도 하고 만약에 그런적이 없다면 나랑 처음으로 하고."
오빠의 말에 한동안 할 말을 잃은채 오빠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가 원래 좀 쫌팽이야."
"응. 그런거 같아."
내가 곧바로 대답했다.
"근데 오빠랑 나랑 닮은거같아."
"뭐가?"
"나도 아직 현이오빠 질투하고 있거든."
"니가?"
"응."
"니가 왜..?"
"오빠가 사랑한 사람이 그 언니라서..."
"........."
"죽어가면서까지 지키던 사람이 그 언니라서..."
"........."
"죽기 직전까지 내 생각은 안하고 간 거 같아서
만약에 오빠가 정말 내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그렇게 죽어선 안됐잖아.
어떻게서든 살아서 그 언니를 사랑하더라도 내 옆에서 사촌오빠로라도 있어줘야하는거잖아."
눈물이 그새 고였다. 오빠가 말했다.
"미안. 얘기 꺼내는게 아니였는데..."
"이만 갈게. 그리고 나 현이오빠랑 같이 공부한 적 없어.
현이오빤 공부랑은 거리가 좀 멀었고 내가 공부같이 하자고 하기도전에 빨리 떠나버렸거든."
그리고 오빠를 뒤로한 채 집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엘레베이터에 올라타서 펑펑 울었다.
집에 와서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정말 아직 멀었어. 연은수. 이렇게 매번 현이오빠 얘기에 눈물이나 흘리고.
진짜 한심해. 한심해. 한심해.
내 자신을 탓하면서 침대에 얼굴을 파묻은채 펑펑 울었다.
또 몇시간을 울었을까. 이젠 지겨울때도 됐는데... 눈물은 감정이 없나보다.
이렇게 끝없이 흘러내리니 말이다.
전화벨이 울렸고 부은 눈으로 핸드폰을 쳐다봤다.
율이오빠겠거니 하고 봤는데 모르는 번호였다.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혹시... 연은수...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남자 목소리.
"네. 제가 연은순데요?"
-어.. 저기 나 기억하지? 태환이라고.
"현이오빠 친구... 맞죠?"
갑작스런 태환오빠의 전화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응.. 기억하네?
"당연히 기억하죠. 현이오빠 친구라곤 아영이언니랑 태환이오빠밖에 잘모르거든요."
-그래..? 그런데 목소리가.. 울었어?
"네? 아.. 조금요."
-왜 울었어?
"그냥 슬픈일이 있어서요."
-그래? 아직도 현이때문에 우는줄 알고 놀랬잖아.
"........."
내가 대답을 못하자 오빠가 말했다.
-그냥 말해본건데 진짠가보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하신거에요.."
-할 말이 있어서..
"할 말이요?"
-봤으면 하는데...
태환이오빠가 할 말이 있다는 말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현이오빠 얘기라도 하려는걸까. 혹시나 현이오빠가 살아있을때...
휴.. 연은수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또 혼자서 앞서 나가는 생각이나 하고 있고...
이러다가 태환이 오빠 얘기 듣고 크게 실망해서 그 날밤 또 울거 뻔하잖아.
"무슨 말인데요? 꼭 만나서 해야되는 얘기에요?"
-전화로 하면 나도 편하겠지만... 도무지 전화론 할 얘기가 아닌거 같아서...
"........"
-내일 시간되니?
"내일요?"
-응.
"돼요. 그런데 너무 갑자기라서..."
-갑자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야. 내일 저녁에 잠시 볼까?
"네. 저녁에 연락주세요."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걸까.
휴. 기대하지 말자. 기대하지 말자. 별 얘기 아닐거야.
전화를 끊고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자 또 다시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시험기간인데 침대에 누워서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고 진짜..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서 욕실로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다.
그새 퉁퉁 부어버린 내 눈. 이 상태로 공부가 되기나 할까.
씻고 나와서 바람이나 쐴 겸 놀이터에 가려고 엘레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레베이터가 천천히 내려갔고 고개를 푹 숙인채 나의 발 끝만 쳐다봤다.
딩 동.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와 동시에 내리려고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리고 곧바로 머리를 쿵 박았다. 너무 세게 박아서 정신이 없었다.
"죄송해요. 앞을 못보고.. 1층인줄 알고.."
횡설수설 변명을 했다. 그리고 한쪽 눈을 찔끔 떠서 부딪친 사람을 쳐다보았다.
정말 말도 안돼. 윤환이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첫만남이 떠올랐다. 그 때도 1층인줄 알고 내리다가 윤환이의 발을 밟았었는데...
왜 또 갑자기 울컥하는 걸까. 엘레베이터 문이 닫히고 점점 작아지는 숫자들...
윤환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층에 도착해서 문이 열리고 열리자마자 부끄러워서 재빨리 내렸다.
그리고 최대한 빠른걸음으로 걸어나왔다.
멈춘줄 알았던 눈물이 또 다시 흘러내렸다.
윤환이때문에 우는게 아니야. 아까 부딪친 머리가 너무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는걸뿐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 왜 이렇게 답답한걸까.
제발 윤환이가 못봤기를... 아직도 울고 있는거 알면 헤어지길 잘했다고 생각할거야.
더 지치기전에 헤어지길 잘했다고 생각할거야.
그런데 누군가 뒤에서 내 손목을 잡았다.
돌아볼 엄두가 안났다. 고개만 푹 숙인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윤환이겠지. 내가 말했다.
"놔줄래.. 부탁이야."
하지만 놔주지 않았다. 그리고 들리는 윤환이의 목소리.
"왜 아직도 울고있냐."
"...........니가 상관할 일 아니잖아."
그리고 세게 손목을 빼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날 돌리는 윤환이.
나의 퉁퉁 부어버린 눈과 윤환이의 눈이 마주쳐버렸다.
정말 싫은데... 이렇게 울고있는 모습 보여주는거 정말 싫은데..
무언가 말을 하려는 윤환이.
그러다가 내 두 손목을 세게 잡고 있던 윤환이의 손에서 힘이 풀린다.
내 손목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눈물도 아래로 계속 떨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윤환이.
그런 윤환이를 뒤로 한 채 빠르게 걸어가는데 윤환이가 아주 조용히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렇게 울라고 보낸 줄 알았냐..."
잘못들은거야. 분명히 잘못들은걸거야.
아니, 못들었어. 난 못들은거야. 방금 윤환이 말 못들은거야.
............
하지만 내 마음과는 달리 다리가 멈춰섰고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윤환이와 조금은 멀리 떨어져 서로를 마주하고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