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시작된 비는 저녁을 지나 밤이 되어도 좀체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어느새 훌쩍 자정을 넘긴시간. 이명처럼 맴도는 목련나무 너른 이파리를 두들기는 빗소리. 토닥토닥. 때론 침대 머리맡까지 찾아와가만가만 마른 가슴 두들기는 이 빗소리. 동짓달 긴긴밤. 문풍지 우는 소리에 잠 설치던 아들 녀석 가슴팍을 가만가만 두들기던 어머니의 소리. 계절은 가고 오고 비는 그쳤다 다시 내리겠지만, 다시는 들을 수없게 된 소리. 토닥토닥. 그 소리와 함께 이미 소용을잃어버린 이름 하나. 어머니. 내게 있어 여자의 형상그 첫 장, 첫 구절은 이렇듯 어머니란 이름이다.어린 시절. 경대를 보며 화장하는 어머니 모습은 내게있어 호기심과 함께 언제나 묘한 경외심을 자아내게하는 행위였다. 조심스레 분통을 여닫는 모습이나 쪽진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빗겨내리는 모습하며, 얼레빗에 묻어난 머리카락까지 꼼꼼이 챙기시던그 손길과 표정이 제삿날, 제상 이곳 저곳에 재물을올리는 아버지의 그 엄숙했던 손길과 표정을 그대로쏙 빼 닮았기에, 또한 그건 어쩔 수 없는 여자인 어머니를 늘 중성적인 존재로 그려온 내 인식의 오류를수정하는 것이었기에,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뇌리 깊숙히 각인되어져 어머니란 존재를 떠올릴 때면 으레껏여자라는 형상의 덧칠을 하곤 한다. 나이가 들면서이런저런 인연으로 적지 않은 수의 여자를 만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인연이 다하고 또다른 인연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나는 하나의 형상을 깎아내고 있었다.그 형상 속에는 땅거미 내려앉은 산을 종종걸음치듯오르던 젊은 비구니의 해맑은 눈동자와 당돌하고 영악스러웠던 여자의 긴 생 머리가 얹혀지고, 터질 듯한젖가슴과 엉덩이의 허영이 보태지고, 나뒹구는 소주병에 허무한 담배 연기를 내뿜던 늙은 작부의 붉은 입술이 묻어 있었다. 세월이란 건 비 오는 날에도 까대기에 앉아 끌망치를 다듬는 목수의 바지런한 손길을 닮았는가 왜 그렇게도 바삐 서두르는 것인지... 보편적가치란 깃발을 따라서 내가 사랑했다고 믿었던 여자는모두 떠났고, 텅 빈 겨울 바다에 홀로 선 나는 그동안깎았던 여자의 형상을 들어 차가운 겨울 바다 속으로던져 버렸다. 제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