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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의 전쟁 - 두번째

nulpurn |2003.10.16 09:29
조회 231 |추천 0

 

내가 가장 길게 금연을 해 본 것은 몇 년 전에 했던, 정확히 한 달의 기간 동안이다.
그 때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끊어야 된다는 결심을 하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막연히 '담배를 한 번 끊어 보면 어떨까?' '끊을 수 있을까?' 라는 단순한 생각과 호기심, 그리고 내 의지에 대한 일종의 시험에서 나온 발상이었고 행동이었다.
하루를 보내고 이틀을 보내며 그 가능성이 보였다. 일주일을 보내며 조금 힘이 든다는 걸 느꼈고, 2주 째는 많은 시간 참느라 고생을 했다. 사탕도 물어보고 과자도 입에 넣어 보고, 음료수에 커피에 되는 대로 먹고 마시고 했다.(그 결과 몸무게가 불어 버렸지만...)
'아하~ 이렇게 쉬운 것을 사람들은 왜 어렵다고 하는지 참!' 이런 생각을 3주를 넘기면서 했다. 그런데 4주 째 접어들면서 내게 불현듯 찾아온 방해꾼이 나타났다.
'왜 끊어야 하지?' 라는 애매한 의문과 '아직 나이도 있는데 벌써 이럴 필요가 있을까?' 라는 자기 당위론을 들먹였고-지금도 의문이다. 이 생각이 왜 들었는지. 잘 나가고 있었는데-'뭐 마음만 먹으면 이까짓 거 지금처럼 끊을 수 있지 않겠어' 라는 그야말로 단순 무식한 안일한 생각과 한 번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자신감, 즉 예행연습 쯤으로 보게 되었다.
해서 한 달을 채우기 이틀 전에 서서히 나를 옭아매고 이끌었다. '정확히 한 달을 채우고 다시 피우자' 라는 생각이 말이다.

 

위에서 '정확히 한 달'이란 표현을 쓴 것은 그래서이다. 한 달이 지난 그 다음날 사무실에서 옆 동료에게 한 개비의 담배와 라이터를 빌려 출근과 동시에 일을 저질러 버렸다. 조금의 망설임은 있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무시해 버렸고 박력있고 과감하게, 폼나게 피웠다.
한 달이라는 기간으로 인해서인지 처음 담배를 필 당시처럼 머리가 띵해왔다. 그러나 그 다음에 찾아온 행복감, 그리고 또 한번의 생각, '이 좋은걸 왜 끊으려고 했지' 라는 자책성 질책!.
그 때 이후로 꽤 많은 시도를 했고 또한 도전을 해 보았지만 길어야 2주를 버티지 못했다. 시도하게 된 동기야 많다.
누군가로부터 들은 담배의 해로운 이야기를 듣고서(지독하리 만치)-특히 이주일씨가 몰고 온 금연 열풍에 의해.
누구 누구는 끊었다는 얘기와 누가 시도했는데 실패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오기로,
담뱃값이 오름에 따라 열 받아서,
첫 금연 시도의 실패에 대한 또 한번의 도전 등등.. 담배와의 전쟁에 대한 나의 몸부림의 역사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의지가 약한 건지, 아니면 정말 끊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지, 그도 아니면 이미 끊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는지...

 

담배가 몸에 좋지 않다는 말은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애연가도, 담배를 피지 않는 이도...
하지만 피부에 와 닿질 않는다.(아마 주위에 누군가가 담배에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걸 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하루는 누군가로부터 이걸 보면 담배를 끊을 수 밖에 없다고 하며 내게 보여 준 적이 있었다. 뭐 TV나 사진 등으로 찍은 폐(담배를 핀)를 보여 준 것은 아니었다. 그는 티슈를 한 장 꺼내더니 필터에 대고 한 모금 피운 다음 그 티슈를 내게 보여 주었다.
그 때 본 티슈에 묻어 나온 니코틴, 조금은 충격일 수 밖에 없었다.-지금도 생각만 하면, 그 니코틴이 내 폐에 쌓인다니...
하지만 이도 잠시 뿐, 알면서도 보았으면서도 피우고 있다.
왜냐구?
글쎄 당해보지 않았다는, 그래서 괜찮다는 미경험상의 안도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딴엔 그로 인해 끊어야 된다는 의지보다는 피우고자 하는 유혹이 더 강하기 때문은 아닐련지.

 

담배는 습관이다. 또한 전염성이다.(왜 이런 말을 하냐면 누군가 피우면 자동적으로, 얼떨결에 같이 피우게 된다.)
내 일일 담배 소모량은 반 갑이 채 되지 않는다.(이것도 많이 줄인 노력의 결과이다) 그나마 내가 덜 피우게 되는 경우라면 아무래도 감기(특히 목감기)등 기관지 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다. 또한 말 그대로 담배 피울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쁠 때도 그렇다.
담배를 좀 피운다 싶은 경우는 아무래도 술자리나 그 밖의 모임의 자리에서이다. 술을 못하는 난 안주를 벗삼아 노닐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배부르니까), 그러다보니 손에 가는 게 담배다(포만감에).
그리고 하는 일 없을 때, 무료할 때, 또한 짜증이 나고 그래서 스트레스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일이다.
습관성에서 오는 착각일까?
그렇게 담배를 피우고 나면 어느 정도는 풀려 버리는 것 같다.

 

글 쓰는 걸 직업으로 삼는 작가들이나 또는 신경을 많이 쓰는 전문분야에 있는 이들에게 있어 담배는 기호품이다. 그네들에게 있어 담배는 없어서는 안될 생명줄로까지 불린다.
이 곳 신문사도 마찬가지이다.
90년대 초 만해도 기자들의 기사를 쓰는 모습은 자못 진지했다-지금도 그렇지만, 다만 원고지에 쓰는 것과 자판기 두드리며 치는 모습에서 오는 차이라고 할까?
책상에 앉아 펜을 들고 200자 원고지에 휘갈기며 써나가며 틀리면 꾸겨 바닥에 던져 버리고 다시 새로 쓰고.. 쓰다 막히면 담배 입에 물고 생각하다 인상 벅벅 긁으며 피고 말이지.
그래서 그 당시 편집국은 말 그대로 너구리 소굴이었다고 한다. 지금에야 많이 사라졌지만 당시 90%이상이 애연가요 골초들 이였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런 것이 문명의 발달로 인해 펜 대신 자판기가, 원고지 대신 모니터가 자리를 차지하면서 차츰 바뀌었다.
그로 인해 글 쓰는 방법이 달라졌고, 온갖 자료들이 수북이 쌓여 지저분하던-이건 아마 모르는 사람은 상상도 안 갈 것이다. 그 지저분함을-책상과 책꽃이함이 깨끗해 졌으며 펜과 종이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골초들의 집합소인 편집국이 금연의 장소로 바뀌었다.

 

사무실에 금연을 하게 된 것은 조금은 어이 없는 이유가 한 몫 했다. 당시 고가품이고 매우 귀했던 컴퓨터가 사무실에 처음 들어오고-아마도 처음으로 퍼스널컴퓨터라고 불리었던 286 기종-쓰는데 익숙지 못한 이유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혹은 추측인지 모르지만 담배 연기가 컴퓨터에 안 좋다는 얘기와 재가 키보드에 들어가면 못쓴다는 A/S 기사의 말을 듣고 난 후 바로 금연 조치가 내려졌다고 한다. 그것이 사무실 금연의 최초 이유이자 모티브가 됐다.(뭐 나중에야 깨끗해진 사무실 환경을 보고 알아서들 금연을 해 주었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 그 많던 애연가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우스운 얘기지만 한 손엔 펜을 들고 남은 한 손으로야 담배를 들었지만 이제는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는 그게 되지 않는다나? 양손을 이용해야 하는 이유 때문이란다.
하여튼 나도 담배를 피우는 입장이지만 사무실 금연은 찬성하는 쪽이다.(내게 조금은 불편하지만, 그렇지만 건물 내 금연은 좀...)
......

 

요즘은 계단 오르내리기 귀찮고 해서 이 기회에 담배를 끊어 볼 요량으로 일부러 담배를 가지고 다니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주머니에 담배가 없으면 그만큼 덜 피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하지만 이도 실효성은 거의 없다.
손을 내밀면 쉽게 주는 사람들이 주위에 너무 많은 까닭이다. 불까지 붙여 주면서. vv
또한 친한 사람들이 모두 담배를 피우는 이들이라 그런 것도 같고, 이상하게도 있는 것 보다 없을 때 담배를 찾는 일이 많이 생긴다. 핑계이겠지만..
전쟁이라면 필히 승자나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형태의 전쟁이든지 간에...
없으면 구분이 될 때까지-승자와 패자로-하는 것이 전쟁이다.(휴전도 전쟁의 연장이지 끝은 아니니까)
패배로 끝이 날지 승리의 기쁨을 맛볼지 아직은 모르지만 현재 난 전쟁을 하고 있다. 이 담배와의 필연적인 전쟁을 말이지.

 

음.. 담배 연기가 화면 가득 퍼져 오르기 시작한다. 허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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