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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아름세상 |2003.10.27 11:58
조회 20,048 |추천 0

제 아들이 재작년 고1때 쓴 생활수기 글입니다.
부끄럽지만 감히 여러분 앞에 올립니다.


나의 아버지 ----------------------------------------


내가 초등학교 6학년 4월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그전에 왠지 피곤해 하시는 엄마의 모습이 가끔 보였지만
큰 병은 앓지는 않았다.

 

어느날 갑자기 교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ㅇㅇ병원에 빨리 가 보라는 것이었다.
순간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놀라 한달음에 달려갔다.

 

엄마는 응급실에 누워 계셨고
주위에는 사람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많이 모여 있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겁이 났다.

 

엄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건가...
기운이 빠져 보이는 아빠가 다가와서 손을 잡는다.
그런데 아빠의 손은 그날따라 차갑게 느껴졌다.

 

엄마 곁으로 가니 코에다 뭔가 끼우고 이상한 기구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산소호흡기였고
상황이 아주 심각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컴퓨터 화면에는 그래프가 나오는데
올라갔다 내려가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내려갈때 마다 의사가 달려와 가슴을 누르곤 하더니
나중에는 뭔가 충격을 가슴에 몇번 주는 것이었다.
그게 마지막으로 하는 전기충격이었다는 것을 그 당시는 몰랐다.

 

컴퓨터 화면의 그래프는 오르내림이 점점 작아지더니
잠시 후 삐- 소리와 함께 애타는 기대를 저버리고
수평선만 그리며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아빠의 표정이 굳어진다.
숨을 거두는 순간을 느낄 겨를도 없이
엄마는 이렇게 숨을 거둔 것이다.


의사가 우리를 부르더니 마지막 얼굴을 보라한다.

감기 싫은 눈을 감은 듯 엄마의 얼굴은 편치 않아 보였다.
우릴 두고 가는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왔을까.


나는 순간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쏟았다.

싸늘한 엄마의 얼굴에는
우리에게 보여주던 미소는 사라지고 없었다.

엄마의 얼굴에 손을 대어 보았다.


따뜻한 체온은 간데없고 차디찬 엄마의 몸은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어 있었다.

뒤를 돌아서서 울고 있으니 아빠가 다가온다.


애써 울음을 참는듯한 아빠였지만
벌겋게 충혈된 눈가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리고는 "상현아, 울지 마라. 네가 울면 아빠가 슬퍼진단다. 우리 울지 말자"
하면서 나의 손을 꽉 잡는다.

 

나는 목에까지 치밀어오는 울음을 억지로 참았다.
그게 아빠를 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잠시 후 엄마의 몸위에 하얀 천이 씌워지자
나는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끝내 터뜨리고 말았다.

 

뒤로 돌아서서 아빠에게 한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아빠! 결혼 하지마."
그러자 아빠는 나의 손을 꽉 잡아준다.

이렇게 엄마는 하늘나라로 갔다.


무서운 병이 엄마를 우리로부터 빼앗아 갔다.

엄마가 떠나자 우리집엔 썰렁함이 감돌았다.
아빠, 나, 동생.
처음에는 엄마없는 집이 겁이났다.

 

어쩌다가 아빠가 늦게 돌아오신다고 전화오면
나는 바로 집으로 오지않고 동네 오락실에 가서 놀다가
우리집에 불이 훤히 켜져 있는것을 보고는 그때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러면서 친구집에 있다 왔다는 등 적당히 둘러 대었다.


아빠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했으며 한동안 그리 지냈다.

요즘은 아빠가 밤에 늦게 돌아오신다.
아빠가 집에 오시면 청소니 빨래니 설겆이 등
항상 바쁘고 힘들텐데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하고 계신다.

 

새엄마가 계시면 아빠가 좀 편하실텐데
그런데 쉽게 결혼하라고 말 못하는 것은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다.

한번은 아빠가 내게 물었다.
"상현아, 너 새엄마 오시면 괜찮겠니?"
나는 괜찮다고 말했고 새엄마한테는 내가 알아서 말 잘 들으면
잘 해 주실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왠지 새엄마가 있어야 된다고
아빠한테 크게 말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엄마가 돌아가실때 뒤돌아서서
아빠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한것이 철부지였지만 후회가 된다.
그때 그 말을 하지 말걸.


아빠는 지금도 아마 그 기억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빠가 불쌍하다.
그러나 아빠는 우리들 앞에서는 항상 의연하게 보인다.
힘들고 또 가슴이 아플텐데...

아빠가 어떨땐 차라리 힘들어 하고
문득 엄마가 생각나면 눈물이라도 보였으면 좋겠다.


겉으로 태연하기 위해서 속으로 얼마나 가슴을 태울까.

요즘 아빠는 인터넷에 들어가 채팅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나는 언젠가 아빠가 채팅하는 것을 보고
"아빠가 채팅을 하나? 나이가 몇살이고?" 하고 주제넘게 나무란 적이 있다.
아빠는 웃으면서 "아빠는 하면 안돼?"
하고는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요즈음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컴퓨터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하고 있다가도 아빠가 올 시간이면 컴퓨터를 끄고는 공부를 한다.

내가 일부러 비켜주는 것을 아빠는 모른다.


아빠는 내가 공부할게 많아서 컴퓨터 사용을 안 하는 줄만 알지만
사실은 내가 아빠 돌아올때나 집에 있을때는
아예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생각이다.
아빠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사실은 비켜주는 것이다.
앞으로도 눈치채지 못하게 할 생각이다.

사실 아빠는 많이 외로우실거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고
집에 오시면 그 나이에 싱겁고 썰렁한 이야기를 곧잘한다.

아빠의 썰렁함 때문에 여름철은 시원하게  보낼수 있어서 좋다고 말하니
"허허허" 하고 웃으신다.
그 웃음 뒤에는 왠지 쓸쓸함이 있는 듯 했다.

 

추석날 아빠랑 동생이랑 사촌형이랑 엄마 산소에 갔다.
시골 큰 아버지 댁에서 걸어서 한 5분 거리다.
거긴 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소가 있고 그 밑에 엄마가 누워 계신다.

 

항상 밝게 지내려고 하는 아빠였지만
엄마 산소에 갈때는 왠지 내 생각일까 표정이 무거워 보이는 듯 하다.

산소에 도착해 준비한 음식을 놓고 술잔에 술을 붓는 아빠의 모습은
당당하게만 보였던 평상시 모습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언제부턴가 나는 아빠가 엄마 제사때나 산소에서 술잔에 술을 따를때
아빠 얼굴을 살짜기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아빠의 속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술을 따르는 아빠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차분하게 꿇어 앉은 아빠의 모습과는 다르게
눈망울엔 액체가 고여 있었다.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같이 엎드려 엄마께 절을 올린다.
전에는 특별한 감정없이 절을 올렸는데
오늘은 내가 엄마께 뭔가 말씀을 드려야 할것 같다.


"엄마! 아빠에게 좋은 새엄마 한분 데려다 줘. 아빠가 불쌍해."

두번 절을 끝내고 일어서서 아빠의 눈을 보았다.
애써 감추려는 눈망울에 아직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빠에게 간절히 말하고 있었다.
"아빠, 힘내라."

돌아서서 바라보는 엄마의 산소엔 따뜻한 가을 햇살이
곱게 내리고 있었다.


(이 글을 보시고 아빠는 어떤 감정을 가질지 모르겠군요.
아뭏든 아빠가 지금처럼 건강하고 밝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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