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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

푸른바다 |2003.10.28 09:39
조회 1,279 |추천 0

 


해리스(Mabel Rollins Harris)

'황금 새벽 (Golden Dawn)'

1935년 유화작품




바가스(Alberto Vargas)

'상속받은 누드(Legacy Nude)'

수채화(Watercolor on board, 56 x 76 cm)

Louis K. Meisel Gallery, New York

 


윌리스(Fritz Willis)

'소풍바구니와 여인(Reclining Redhead with Picnic Basket)'

유화작품 (22 x 31.5 "

Louis K. Meisel Gallery, New York

 

 

수 수 삼년 도 전이든가 아내의 손에 이끌려 처음 미장원으로 머리 깎으러 갔

 

든 날 참 낭패다 싶었다.

 

그 쑥스러움에 삐죽거리며 이발사가 아닌 미용사에게 머리손질을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 나오듯 미용실을 빠져 나왔던 기억이 지금 생각하면 슬몃

 

가벼운 웃음이 나오지만 이제는 용감하고 보무도 당당하게 혼자서 미용실을

 

찾고 단골 미용실도 있다.

 

 

내 어렸을 때는 머슴아이든, 계집아이든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이발소를 이용

 

했다.

 

머슴아이는 버짐 핀 머리를 빡빡 깎는 것이 정석이고, 계집아이들은 뒷 머리

 

아래 약간의 하얀 살갗이 보이도록 깎는 단발머리가 그 시절 표준이었다.

 

어른들의 기준에 맞춘 이발소 의자는 아이들이 앉기에는 너무 깊었기에 이발

 

사 아저씨는 널찍한 판자를 팔걸이에 걸쳐 그곳에 아이들의 키 높이를 맞추고

 

머리 손질을 해 주었다.

 

 

커다란 거울위에는 어김없이 샛노란 초가집이 편안하게 자리 잡은 마당에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른 아낙이 붉은 고추를 말리거나 키질을 하고 있으며, 벼

 

슬 붉은 장닭이 따스한 햇볕에 몇 마리의 암탉과 한가롭게 모이를 쪼으거나 아

 

니면 삽살개 한마리가 게으르게 졸고 있기도 했다.

 

사립문 밖으론 맑고 푸른 시냇물이 편하게도 흐르며, 시냇가에 놓인 나무다리

 

위로 늙은 황소를 몰고 가는 지게 진 농부의 모습이거나 물동이를이고 빨간 댕

 

기를 맨 우리들 누이 같은 처녀의 정겨운 모습을 그린 천편일률적인 풍경화의

 

소탈한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이발소 그림의 원형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그림들은 대중이 모이는 곳은 어련히 한두 점 걸려 있었다.

 

미장원도 마찬가지이고 어른들 심부름으로 막걸리 사러가는 술 도가에도, 일

 

주일에 한 번밖에 영업을 하지 않는 목욕탕 탈의실에도 걸려 있었다.

 

약간의 차이는 보일지라도 분위기는 매 일반인 그림들이 지금 무척이나 아련

 

하게도 그립다.

 

 

위의 그림들은 미국 판 이발소 그림이라 생각할 수 있는 핀업아트이다.

 

미국도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사는 곳이라면 으레 사람들이 보면서 즐거워 해

 

야 할 대중적인 그림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그림들은 보는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편해야 할 것이다.

 

 

누드는 사람이 사람을 보는 것이다.

 

누드란,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그림이다.

 

천지만물 중에 인간의 몸매 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한다.

 

그에 반하여 춘화란, 사람의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성욕을 이끌어 내기 위한 계

 

산적인 의도가 설계된 그림이 아닌가 한다.

 

 

하기야 인간 성행동의 존재방식을 연구한 '에두아르트 폭스'의 명저 '풍속의

 

역사'는 그가 미친사람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수집한 춘화도와 풍속화가

 

그의 저서의 밑바탕이 되었다 해도 가히 잘못은 없을 것이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는 무학대사의 말

 

이 생각난다.

 

물을 먹는 동물에 따라서 생산되는 것이 우유가 되는가, 독이 되는가 하는 것

 

이나 다름이 없다. 

 

 

아무리 이발소용 그림이라 하지만 천박하지는 않다.

 

누드이다보니 독신 남자들의 머리맡에 핀으로 꼽아놓고 외로움을 달래는 인기

 

만점의 그림으로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그림이지만 어디를 보아도 천박하거나

 

외설스럽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않는다.

 

대중 미술이지만 그림을 그린 화가들의 고뇌도 묻혀 있을 것이고 그들의 철

 

학이 내재 된 아름다움이 있다.

 

 

일주일 여 편치않은 몸 때문에 자리에 누워 무료하면 화집을 뒤적인다.

 

나는 그림 그리기에는 문외한이다.

 

학교 다닐 때도 미술 실기는 항상 겁나는 수업이었다.

 

그렇지만 보는 즐거움은 누구의 열정보다도 앞섰다.

 

보는 즐거움은 항상 충만한 영혼으로 내 가슴에 폭폭 담겼다.

 

그런 까닭에 내 책상에는 제법 많은 화집이 쌓여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가는 겸재 정선이다.

 

특히 '인왕제색도'를 처음 보았을 땐 숨이 컥 막히는 전율을 느꼈다.

 

서울 근교 사생을 즐기던 겸재가 75세 때 그린 작품으로 그 화폭의 크기로나

 

화격으로나 노대가 정선의 풍모를 돋보여 주는 대표작이다.

 

청년 시절 내게는 고흐도, 르노아르도, 피카소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편견이었지만 "겸재만 있을 뿐이다."라는 신념을 갖고 지난날

 

나의 숭배 대상으로  자리 잡은 화가 중의 화가였다.

 

 

이렇게 편하게 그림들을 뒤적거리는 즐거움도 아프기 때문에 즐기는 행복이

 

아닌가 싶어 가끔 죽지 않을 만큼 병치레를 했으면 하는 어줍잖은 생각을 하며

 

실소를 한다.

 

어린시절 이발소에서 본 산과, 시내와, 초가집을 연상하는 이발소 그림의 추억

 

이 새곰새곰 아련하기 만하다.

 

 

                                                           푸 른 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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