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얼이 수북이 담겨 있는 우리의 옛시조, 읊으면 읊을수록 겨레의 멋이 흘러넘치는 우리의 옛시조. 이것에서 그 '겨레의 얼'을 조용히 되새겨 보는 것은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대개가 문학적 가치, 교육적 가치라는 면에 편중되어 있었으나, 지금 소개하는 것은 내버려지다시피 되어 있던, 이른바 '잡스러운 것'을 소개한다. 거기에는 또 다른 소박하고도 진솔한 겨레의 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우리의 문학인 옛시조에 대하여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된다면, 더한 다행이 없다고 생각하며 소개 한다.
푸 른 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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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자고 간 그놈
간밤에 자고 간 그놈 아마도 못 잊겠다
와야놈의 아들인지 진흙에 뽑내듯이 두더지 영식인지 꾹꾹이 뒤지듯이 사
공의 성녕인지 상앗대 지르듯이 평생에 처음이요 흉측이도 얄궂어라
전후에 나도 무던히 겪었으되 참맹세 간밤 그놈은 차마 못 잊을까 하노라
와야놈 : 기와장이를 낮추어 하는 말인데, 진흙을 잘 다루는 재주를 가진 놈일 것이다.
성녕 : 솜씨. 손재주.
간밤에 자고 간 그놈, 어찌나 그 재주가 좋던지..... 암만 해도 잊을 수가 없다. 기와장이의 아들놈인지 진흙을 이겨대듯이, 두더지 아드님인지 꾹꾹 뒤지는 그 솜씨, 능숙한 뱃사공의 솜씨인지 상앗대질 하듯이..... 평생에 그런 맛 처음이라, 아이 망측하고 얄궂어라!
수사가 투박하면서도 박진감이 넘치지 않는가.외설로 흐르기 쉬운 이런 제재를 기발한 비유와 익살이 넘치는 표현으로 잘 처리하여, 결코 상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취할 만하지 않은가. 중장`종장이 다 파격이니 사설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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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 색을 믿고 오는
꽃아 색을 믿고 오는 나비 금치 마라
춘광이 덧없은 줄 넌들 아니 짐작하랴
녹엽이 성음자만지면 어느 나비 오리요
꽃아! 네 아름다운 모습을 믿고 날아오는 나비를 오지 말라고 거절하지 말아라. 너희들의 한 시절인 봄이 영원한 것인 줄 아느냐, 머지 않아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여름이 와서 녹음이 우거지고, 나뭇가지에 열매가 열게 되면(봄이 가버리면), 어느 나비가 찾아오겠느냐? 그때는 오라고 불러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의 꽃은 물론 아리따운 아가씨를 비유한 것이다. 너의 아름다움도 한때요, 너를 보고 모여드는 총각들도 지금이지, 때가 지나가 버리면 거들떠보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 아니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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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여든에 첫 계집을 하니
반여든에첫 계집을 하니 어렷두렷 우벅주벅
죽을뻔 살뻔하다가 와당탕 드리다라 이리저리
하니 노도령의 마음 흥글항글
진실로 이 자미 아돗던들 길 적부터 할랐다
40이 다 된 노총각의 첫정사가 아주 사실적이면서도 상당히 박진감 있게 그려져 있다. 이런 종류의 도색 내용의 것은 대개 엇시조나 사설시조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종장의 마무리가 주제의 표현을 약간 상스러운 듯하면서도 익살스럽게 해주었다. 여기서 웃음보가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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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자고 여기 왔노
어디 자고 여기 왔노 평양 자고 여기 왔네
임진 대동강을 뉘뉘 배로 건너왔노
선가는 많더라마는 여기 배 타고 건너왔네
예시조를 도학자적인 점잖고 딱딱한 말만 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오히려 전혀 반대되는, 자유분방하고 해학적이며, 좀 상스럽기까지 한 내용이나 표현이 의외로 많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엇시조나 사설시조에 그런 것이 많음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 시조 문학이 대중적이고 표현 범위가 광범위함을 알 수 있게된다. 이 시조도 그런 것 중의 하나라 하겠다.
평양엘 가서 기생집에서 자고 오지 못하면 한량축에 못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거기에 빠져서 온 재산을 날려 버린 이야기는 너무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돈만 아는 평양 기생이 아니었다. 정이 들면, 의기가 통하여 잘 보이기만 하면 뜻밖의 호강을 누리는 수도 허다하였다. 그만큼 평양 기생은 한낱 웃음이나 파는 속물이 아니었다. 영리하고 인정있고 의리 굳고, 호기 넘치는 기질을 다분히 가지고 있던 그런 평양 기생이었다. '명기'의 이름이 결코 아깝지가 않다.
뱃삯이 엄청나게 비싸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생의 배'를 타 본 것이 몹시도 자랑스러운가 보다. 물에 떠다니는 배와 사람의 배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지만, 우연히도 발음이 같고 다같이 '타는 것'이라는 데 묘한 공통점이 있다. 별로 독창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구수하게 잘 어울리는 것이 느껴져서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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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에 떨어진 매화
춘풍에 덜어진 매화 이리저리 날리다가
남ㄱ에도 못 오르고 걸렸구나 거미줄에
저 거미 매환줄 모르고 나비 감듯 하더라
바람에 불려서 떨어지다가 거미줄에 걸린 매화 꽃잎. 얼핏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그것이 이 시인의 시상을 흔들었다. 시인의 눈에는 무심코 굴러가는 가랑잎 하나에도 감동의 불이 붙는 법이다. 그래서 그 아무 것도 아닌 가랑잎에 인격이 부여되고, 생명이 불어넣어지고, 그 속에 새로운 우주가 창조된다. 매화인 줄도 모르고, 크게 먹을 것이나 되는가고 열심히감아싸는 거미. 거기에는 무슨 사연이, 무슨 비유가 들어 있을 것만 같아 쉽게 지나칠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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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옛 등걸에 - 매화 -
매화 옛 등걸에봄철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피엄직도 하다마는
춘설이 난분분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매화나무의 늙고 낡은 등걸에도 새봄이 돌아오니, 예전에도 그렇게 소담스럽게 꽃이 피던 가지인지라, 이 봄에도 다시 예쁜 꽃이 필 것 같기도 하지마는 그러나 봄눈이 하도 어지럽게 휘날리어 날씨가 몹시 불순하니, 필지 말지 하구나! 젊었을 시절에는 매화같이 아름답던 나였지만, 이제늙어가는 신세가 한탄 스럽기만 하구나!
시커멓고 우툴두툴한 줄기에 야들야들한 분홍꽃이 앙징스럽게 무수히 달려 있는, 늙음과 젊음이 공존하는 매화도를 머리에 떠울리면서, 이것을 인생과 결부시켜 보는 일도 전혀 뜻 없는 일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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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고 검고 키 큰 구레나루
얽고 검고 키 큰 구레나루 그것조차 길고 크다
젊지 않은 놈 밤마다 배에 올라 조고만 구멍에 큰 연장 넣어 두고 흘근할적
할 제는 애정은 커니와 태산이 덮누르는듯 잔 방귀 소리에 젖먹던 힘이 다
쓰이노매라
아무나 이 놈을 다려다가 백년동주하고 영영 아니 온들 어느 딸년이 시앗
새옴 하리요
여러모로 상상할 수 있는 사설시조다. 정말로 미워서 하는 소리냐, 좋아서 괜히 해보는 넋두리냐. 또 고상한 말을 몰라서 이렇게 썼을까, 짐짓 이렇게 상말로 익살을 부린 것일까. 원래 이런 종류의 행동이란, 또 음담패설이란 마구잡이로 상스럽게 해야 제맛이 나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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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건너 괴음채각 중에
저 건너 괴음채각 중에 수놓는 저 처녀야
뉘라서 너를 농하여 넘노는지 세미옥안에 운화는 흐트러져 봉잠조차 기울
어졌느냐
장부의 탐화지정은 임불금이니 일시 화용을 아껴 무슴하리요
괴음채각 : 홰나무 그늘 밑에 있는 아름다운 집의 안.
임불금 : 마음대로 금할 수 없다. 자연의 섭리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가 없다는 뜻
저 건너 큰 홰나무 그늘에 보이는 저 집 안방에서 수를 놓고 있는 저 아리따운 처녀야, 누가 너를 희롱하며 놀았기에 아름다운 얼굴에 쪽진 머리가 다 헝클어지고, 비녀가 다 기울어졌단 말인가. 아서라, 탓할 것 없다. 장부가 미인을 탐내는 것은 인간의 상정인데, 청춘 시절 한때의 아리따운 얼굴을 아껴서 무엇하랴. 내어 맡기고 서로 즐겨 보는 것도 좋지 않으냐.
'쪽진 머리가 흐트러지고, 비녀가 삐뚤어졌다'는 표현으로써, "너를 농하여 넘노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에로틱하면서도 난하지 않은 데 호감이 간다. 그러나 '처녀'와 '봉잠'은 모순이다. 비녀를 꽂았으면 쪽진 머리요,쪽진 머리라면 이미 처녀가 아닐터이니 말이다. 처녀는 머리를 땋아서 늘어뜨리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그런 것 따질 것 없이 '장부의 탐화지정은 임불금'이니, '일시 화용을 아끼지 말라'는 주제를 음미하라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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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밭에 들어 콩잎 뜯어 먹는
콩밭에 들어 콩잎 뜯어 먹는 검은 암소 아무리 이리타 쫓은들 제 어디로 가
며
이불 안에 든 님을 발로 툭 차 미적미적하면서 어서 가라 한들 날 버리고
제 어디로 가리
아마도 싸우고 못 말릴손 님이신가 하노라
소는 콩을 몹시도 좋아한다. 콩밭에 들어가서 그것을 뜯어먹고 있는 소는 고기 반찬을 본 고양이와 같다. 결사적으로 뜯는 판이니, 아무리 내쫓아도 막무가내다. 그것과 진배없는 것이 한 이불 안에 든 님이다. 발로 툭 찬다고 나갈 것이냐, 어서 나가라고 민다고 떨어질 것인가. 밀어내려는 사람도 정작으로 나가버리면 서운해서 더 못 견딜 것이다.
남녀란 음과 양이요, 음양은 서로 끌어당기고 서로서로 어울리어 새로운 '합'을 창조하는 것이며, 이것은 바로 조화의 법칙이므로 남녀의 정은 싸우고 말려도 안되는 거런 것인가보다. 수다와 익살이 밉지 않아서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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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네 오려논이
각시네 오려논이 물도 많고 거다 하데
병작을 주려거든 연장 좋은 나를 주소
진실로 주기곧 줄 양이면 가래들고 씨 디어 볼까 하노라
성관계의 표현은 예나 지금이나 노골적, 직설적으로 하여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서 상스러운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하는 것은 점잖지 못한 짓이다. 이 시조를 보라. 참으로 멋진 은유다. 그리고 철저한 은유다. 얼른 봐서는 머슴이 소작을 청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각시네"의 한마디에모든 것이 다 드러났다.
그렇게 깨닫고 보니, 문장 전체가 다 그 이야기다. "오려논"도 그렇고 "물도 많고 거다"는 것은 여성 쪽이요, "연장 좋은 "것은 남성 쪽이다. 소작이 아니고 병작인 데'함께 즐기는' 뜻을 포함시켰으며, "주기곧 줄 양이면"이라는 말에 가슴 설레임이 노출되어 있다. 또 "씨 디어 볼까"라는 말은 자연스러우면서, 털끝만큼도 책잡힐 틈을 주지 않고 할 말을 다하였다. 시원할 것이다. 저절로 나오는 웃음은 익살에서 오는 것뿐만이 아님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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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남진 그놈 자총
민남진 그놈 자총 벙거지 쓴 놈
소대서방 그놈은 삿벙거지 쓴 놈 그놈 민남진 그놈 자총 벙거지 쓴 놈은 빈
논에 정어이로되
밤중만 삿벙거지 쓴 놈 보면 샐별 본 듯하여라
민남진 : 본 남편
자총 벙거지 : 자줏빛 말총으로 만든 벙거지. 여기서는 다음의 '삿벙거지'와 아울러 남자의 성기를 상징한 말.
정어이 : 허수아비. '정의아비'라고도 하였다.
밤중만 ; 시조 종장 첫머리에 많이 쓰이는 일종의 감탄사로서 '한밤중쯤에'의 뜻.
샐별 : 샛별. '샐별 본 듯하다'는 눈이 번쩍 뜨인다. 정신이 펄쩍 난다는 뜻이다.
본서방과 사이서방의 그것을 자총벙거지와 삿벙거지에 비유하여, 자총벙거지는 빈 논의 허수아비(별볼일 없는 것)인데, 한밤중에 그놈의 삿벙거지를 보면 눈이 번쩍한다는 소리다. 이런 에로티시즘의작품은 대개 이런 식의 은유적인 사설시조로 되어 있다.
우리 겨레는 예부터 이런 구수한 자료들을 많이 마련하였고, 도 그것을 즐기엇다. 여기에는 그 빙산의 일각이 소개되었을 따름이다. 물론 우리 문학의 해학성을 엿보기 위한 노력의 일단이다.
한손에 가시 쥐고 - 우 탁 -
한손에 가시 쥐고 또 한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백발이 되어 늙는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서는 도저히막을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쉬우면서도 적절한 비유로 재치있게 표현하였다. 말하듯이 술술 나오는 노래에 인생 철학이 담겨 있다. 백발을 싫어하는 , 늙기를 억울해 한 것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쳐들어오는 백발을 가시와 막대로 막아 보겟다는 익살이, 함께 읽는 이로 하여금 미소짓게 한다.
가시와 막대로 늙는 길과 오는 백발을 막아 보려 하였다. 이 얼마나 어린애 장난 같은, 또 엉터리 같은 비유나 표현이 조금도 역겹지가 않고 오히려 미소를 자아내게한다. 그것이 이 시조의 작품 가치이다. 동심으로 돌아가면 늙지 않는다던데.......
* 위에 소개한 '탄로가(한손에 가시 쥐고)'는 우리 문학사에서 중요한 장을 차지하는 시조다. 고려 말 역동 우탁이 우리말로 지은 최초의 시조이기 때문이다.
그림과 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 시조를 말미에 삽입한 것은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있듯이 모든 생명은 유한 하기 때문에 아름다움도 언젠가는 시들 것이다. 물론 젊음이라 표현할 수도 있다. 이성과 판단이 또렷할 때 인생의 진로와 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사유를 하고자 탄로가를 따로 넣었슴을 밝힌다.
Stay with me till the morning / Dana Winner
푸 른 바 다 2003, 11,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