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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에서 (2)

찬바람 |2003.11.08 03:20
조회 1,363 |추천 0

그동안 내 생각으로 하루종일 보냈다면
지하철로 출근 하면서부턴 다른 사람들의 삶도 엿볼 수 있어
내게 지하철 경험은 새로운 영감이 됐다.

 

며칠을 지하철로 출근 하다보니 하루하루 새롭게 발견되는 것에 이제 막 걸음마
시작한 아이처럼 모든 게 신기하기만 하다.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처음 엔 안보이던 열차 안의 TV도 보이고 또 출입문에만 붙어 있는 줄 알았던 노선표가 천장에도 붙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예전에 그리 많던 잡상인들이
이젠 희귀해 졌다는 것도 알게 되고 어쩌다 마주친 잡상인도 그 파는 종목이 일상에 필요한 건전지 같은 것들로 바뀌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만큼 이젠 사람들이 순수하지 않다는 것인지 아님 불필요한 호기심이 없어 진 건지...

 

얼마 전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어디서 열차를 갈아타야 되는지 머리에 입력이 안 돼 매일 노선표에만 시선을 집중한 체 가던 어느 날
갑자기 빈자리가 세 군데나 생겨 버렸다. 오호~! 앉자~~~ 잽싸게 앉아 보려 했건만
이미 문이 열리자 마자 번개처럼 들이닥친 사람들에게 자리를 빼앗겨버려 애써 앉으려 하지 않은 냥 다음 칸으로 어색하지 않게 이동을 했다.(ㅜ.ㅜ)
그런데 다행히도 다음 칸에 빈자리가 있었다. 기쁜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자리에 앉아
사람들의 신발을 관찰했다. 며칠 지하철을 타며 신발 모양과 그 신발을 신은 사람의 느낌이 같다는 것을 파악했다. 등산화를 신은 사람은 정말 산사람 같고 먼지 가득 쌓인
구두를 신은 사람은 정말 먼지를 가득 뒤집어 쓴 듯한 모습이란 걸(ㅎㅎ이 관찰력)
그렇게 신발과 사람 얼굴을 관찰할 즈음 어느 역에 정차한 열차의 문이 열리며 내 옆자리가 비었다. 그때 열차에 오른 백발 성성한 할아버지가 갑자기 엇~! 하는 괴성을 지르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빤히 쳐다보시는 것이 아닌가..순간 당황한 나는 혹시
내가 아는 분인가? 혹시 친척 중에 한 분이신가? 하고 고민을 하는데
그 할아버지 "자네 뭐야? (기타를 가리키며)이건 또 모야?" 하시는 게 아닌가?
너무 당황스러워 나도 모르게 " 저요? 전 가순 데요 이건 기타고요 " 하고 말해버렸다.
순간 열차 안의 모든 시선은 할아버지와 나에게로 집중이 됐다. 지하철 안이 이렇게
고요할 수 있구나 그때 첨 알았다.

 

내 옆의 빈자리에 앉으신 할아버지는 약주를 한잔하신 듯 입가에 술 냄새를 풍기며
자리에 앉으신 순간부터 나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놓으신다. 정말 소리나는 기타냐?
이름이 모냐? 못 들어 본 이름인데 TV에서도 못 봤는데 하며 계속 질문을 하신다.
나는 " 앞으로 TV에서 보게 되실꺼에요 ^^;;; 이 기타 소리나는 거예요.."하고
답을 했다. 모든 시선은 우리 둘에게 쏠린다. 앞에 앉으신 중년 신사는 모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웃음을 띄우며 바라본다. 할아버지 왈 " 오호 그래? TV에 나온다고? 그럼 싸인 받아야겠네"하며 당신의 명함을 꺼내 한 장은 나를 주고 한 장에 싸인을 해달란다.
ㅋ~~~ " 아직 싸인 해드릴 정도로 유명하지 않은데요.. ^^;; " 이마에 땀이 맺힌다.
" 아~ 미리 싸인 받아 놔야지...집에 가서 울 아들내미들 한데 자랑할 겨 자네 TV나오면 허허" 하고 웃으신다. 좋은 일이 있으셨는지 얼큰하게 취하신 할아버지에게 싸인을 해드렸다.

 

그 이후부턴 할아버지 자신의 파란 만장 했던 과거를 나에게 풀어놓으신다.
자신이 소시 적에 한 주먹 하셨다고 15사단에서 태권도를 가르치시고 그 전에는
김두환 이 정재를 자신의 동생들이 (할아버지 표현으로) 밟아 놨었다고... 그러다 5.16이 일어나며 서대문 형무소에 잠시 계셨었고 그런 후 군에 강제로 끌려 가셨었다고 그래서 15사단 철책선 앞에서 태권도를 가르치셨다고...." 그런데 야인시대에는 그런 게 안나와~! 그래서 내가 지금 회고록을 쓰고 있어..."  오늘도 그때 그 동생들이 형님 술 한잔하시죠 해서 기분 좋게 마셨다고 이젠 은퇴했지만 아직도 그때의 그 동생들과 모임을 갖는 다고 아무도 모르게 그러면서 내 팔을 잡으시는데 음...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의 완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힘이 전해온다. 그러면서 나에게 동생이라 호칭하신다.
" 동생...이젠 나도 늙었어....전에 같았으면 그냥 빠바박 했을 텐데. 이젠 힘이 없어.."
내가 볼 땐 아직도 혈기가 넘치시는 것 같은데 당신은 이젠 지는 해 라 하신다.
"동생...꼭 성공하고 언제 한번 이 형 사무실에 찾아와 술 한잔하게..그리고 자네들이 잘해야 돼 그래야 이 나라가 살어...그러니까 늙은 사람들 타면 자리 빡빡 양보하고.. 알았지? 열심히 혀.." " 예...형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여의 나루 역에서 나는 내렸다.

 

만약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옆에 앉으셨어도 그렇게 편안하게 술 주정이라 하면 술 주정을 하셨을까? 하루종일 직장에서 시달린 체 퇴근하는 사람이었다면 댓구도 없이 불쾌해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늘 지하철에 익숙한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다행히 내겐 없었나보다.
한편으론 비하인드 역사를 좋아하는 내게 야인 시대 시절의 숨겨진 비화를 들려주신
할아버님이 고맙게 느껴진다. 무거운 기타를 들고 서서 다니는 게 조금 힘들지만
나에겐 색다른 경험이고 여행인 지하철이 내 시야를 넓게 한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신밧드의 모험이라는 어릴 적 만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
촌스러워 그런가? 외모는 굉장히 도시틱 한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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