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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단테 2-2

Rhodanthe |2003.11.10 18:14
조회 97 |추천 0

30살의 남자.

오후 무렵에 어머니와 동생을 보내고 나와 임 실장만이 집에 남아있다.

여지없는 적막감. 바람도 불지 않는지 2중으로 된 섀시를 뚫고 들려오는 강변북로의 차량의 요란한

행렬소리가 공기를 타고 12층까지 올라온다.

간간히 들려오는 임 실장의 슬리퍼 소리가 큰 집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시켜주고 있었다.

혼자서 멍하니 앉아있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임 실장은 거실에 있는 TV를 켜두고 가버린다.

오늘도 여느날과 다름없는 정치권 뉴스부터 흘러나온다. 신당 창당과 지방 보궐 선거로 인한 여야의

치열한 신경전에 관한 내용이 10분 내내 흘러나온다.

지겨워질 무렵쯤에야 경제뉴스가 흘러나온다.

중국의 가전제품이 세계시장을 무섭게 장악해 나가고 있다는 뉴스와 함께 한국의 주요 가전 제품들이

중국 제품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비관적인 뉴스가 흘러나오자 어느샌가 나타난 임 실장은

혀를 차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번엔 그 반대로 삼성의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가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희망적인 기사가

나오고 인텔과 삼성의 메모리 시장 쟁탈전에 대한 기사가 특집으로 나오고 있다.

"역시 존경스러워. 삼성"

갑작스레 들려온 말에 나는 그만 놀라고 말았다.

"놀랬잖아요. 거참"

"어휴! 놀라셨어요? 죄송합니다"

기어들어가는 그의 말을 듣자 되려 미안해진다.

여전히 뉴스에서는 삼성의 비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뉴스가 이어지고 있다.

 

'삼성은 인텔과의 비메모리 전략적 제휴를 정리하고 독자적인 비메모리 계열인 프로세서 제품군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프로세서 제조업체인 AMD는 향후 세계 비메모리 프로세서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삼성과의 전략적인 제휴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뉴욕 나스닥 시장에선 AMD의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기대치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복병은 남아 있습니다. 이미 일본의 반도체 합작사인 엘피다사는 대만계 반도체 업체인 Cyrix사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기술연구와 생산라인 통합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향후 삼성의 진로는 그리 순탄하지 않을 전망입니다. 보도에 강일권 기자입니다.'

 

뉴스보도가 끝나기가 무섭게 임 실장은 내게 질문을 던져온다.

"이번 기회에 인텔 CPU 제고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좀더 지켜봅시다. 아직은 인텔계열 제품을 찾는 업체가 많은니깐"

솔직히 내심 불안한 마음을 감출길이 없다.

이 뉴스로 인해 인텔 제품이 받을 타격도 배재할 수 없었다.

한국땅에서 삼성이 가지는 이미지는 상상 이상이다.

그동안 삼성과 인텔의 합작으로 인한 제품 생산이라는 명분으로 인해 인텔의 시장 점유율은 70% 항상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번 제휴 결렬로 인해 인텔계 사용자들은 상당수 삼성계열 제품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충분했다. 게다가 삼성과 AMD의 전략적 제휴는 또다른 복병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생각이 복잡해 지고 있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즈막히 임 실장을 불렀다.

"부르셨어요?"

"다름이 아니라, 충남 태안 땅 시세가 어떻게 되죠?"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했는지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작년에 매입당시 가격이 평당 120만원이구 지난주 시세가 평당 220만원입니다"

"요즘 그 동네 작전세력 들어가 있어요? 왜 그렇게 올랐어요?"

다소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질문을 내어뱉자

"저도 이상해서 한남동 한 회장님께 물어봤더니 대치동 오 사장이 그동네 땅을 쓸어 모으고 있다고 하네요"

"오 사장은 또 누구예요? 처음 듣는 이름인데....."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고 한동안 부산쪽에서 무역을 하던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부동산 개발쪽 일을 한다는 소문만 들립니다."

제법 냉담한 어투가 들려오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네요. 자칫하면 투기꾼으로 몰려 세무조사라도 들어올지 모르니 내일 중이라도 빨리 처분하세요. 가격 따지지 말고 급처분 하세요."

내가 들어도 차갑고 템포빠른 목소리가 그를 몰아세운다.

"하지만, 지금 정도로 세무조사가 들어올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우선 한남동 한 회장님과 상의를 해 보는건 어떨까요? 그 분도 2만평 사둔게 있다고 하시던데......"

자신없는 그의 말이 끝내 흐려지며 말끝을 잇지 못한다.

"이쯤되면 한 회장님도 이미 매각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을겁니다. 욕심 너무 부리지 말고 이쯤에서 매각 하는게 좋을겁니다"

단호한 내 말투에 놀란 임 실장은 말대꾸도 없이 얼른 방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는듯 말소리가 거실까지 세어나온다.

몇 분이 지났을까 문 여는 소리가 들려오고 실바람을 일으키며 내 앞에선 그가 느껴진다.

"사장님. 사장님 말씀대로 내일중으로 급처분 해야겠습니다.  한 회장님도 주중에 매각할 생각이라고 하

십니다. 지금 세무서쪽 움직임이 느껴진다고 하십니다."

"그럴테지. 땅을 그모양으로 뻥튀기를 시켜놨으니 누가 가만히 있겠어요? 그만 손털고 나옵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장님. 참! 내일 안산에 간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느닷없는 그의 말이 심장을 관통하고 있다.

"네, 그럴겁니다"

짧막한 나의 대답.

"혹시 또?"

너무나 짧은 대답.....나의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그의 말투.

"요즘 알아보고 있어요? 소식듣기가 힘드네요"

"채널을 최대한 돌리고 있습니다. 강 실장이 내일중으로 보고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래. 궁금했다. 미치도록 궁금했다.

어찌 살고 있는지.....무얼하고 살고 있는지...... 잘 살고는 있는건지......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보니 분주하다. 언제 일어났는지 임 실장은 새벽부터 소란을 떨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기상 후 가장 먼저 임 실장을 찾는 것이 나의 버릇이라면 버릇이다.

방문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들어오라는 말을 꺼냄과 동시에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몇 시나 되었지요?"

내가 가장 먼저 묻는 질문중에 하나다.

"5시 31분입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 역시 늘 습관적인 대답이다.

"아침부터 왜 이렇게 분주하세요?"

"태안 땅 매각때문에 서류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전쪽 거래처 계약장부 확인 좀 했습니다"

"거래처 계약 장부를 왜 집까지 들고와서 그러세요? 회사에서 할 일을......"

"검토할게 좀 있어서요. 검토하고 주중에 플랜을 다시 짤려구요."

임 실장이 나간뒤 출근 준비로 분주하다.

늘 6시 30분에 출근하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 버렸다. 마포대교 하나만 건너면 회사다.

다른 사람들처럼 출근전쟁을 치르는 일도 없이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회사가 있기 때문이다.

 

주말을 보내고 이틀만에 출근하는 회사. 아직 출근한 직원이 많이 않아서인지 분위기는 차분한듯

느껴진다. 21층에 위치한 내 사무실, 혼자 쓰기엔 너무나 큰 공간이다.

그러나 얼마나 큰 지는 알지 못할 일이다. 바닥의 카페트 색상이 무엇인지, 창문 밖으로 무엇이 보이는지, 벽면 색상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림자처럼 내 옆을 지키고 있는 임 실장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크 소리가 들린다.

"사장님, 임형규 비서실장님께서 30분 후에 보고 드릴 것이 있다고 방문하신다고 하십니다."

얼굴도 모르는 비서실 박 양.

"그러도록 하세요. 임 실장님 오시면 그냥 들여보내 주세요"

"네"

그리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더이상 그녀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 세상은 많이 변해 버린것만 같다. 나 역시 오랜 시간동안 내 모습을 벗고 타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것은 아닌지...... 오랫동안 들려오지 않는 그녀의 소식. 무얼하고 지내고 있는지 알수가 없다.

    내가 없어도 잘 살아가고 있을 그녀. 나를 잊어주길....... 행복하게만 살아다오. 나를 잊고서....... 」

 

"사장님!"

불현듯 나를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고만다.

내가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노크 소리도, 문이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한 것 같다.

"무슨 생각을 그리도 하시길래 노크 소리도 못 들으세요?"

그가 묻는다.

"아닙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좀 하느라......"

말끝을 흐려버렸다.

"안산 갈 준비 다 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안산갔다가 태안땅 매각 문제로 한남동에 가야될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럽시다."

 

회사 건물 현관에 세워진 나의 승용차를 타고 약간의 미동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시원하게 달린다.

조수석에 앉은 임 실장은 친절하게도 올림픽대로에 진입했다는 설명까지 하며 네비게이션 노릇을

하고 있다.

"차량은 많나요?"

내가 궁금해 하자

"차량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반대면 잠실방향이 좀 많이 막히고 있습니다. 이쪽 길은 시속 70킬로미터

로 달리고 있습니다. 아침 공기가 안 좋은지 마포쪽이 희미하게 보이네요"

친절한 그의 설명이 끝나고

"상암동 DMC센터 건물도 안 보이나요?"

다시 내가 묻자

"형태만 보입니다. 공기가 많이 안 좋은가 봅니다"

그리곤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빠져든다.

 

「 너에게로 가고 있어. 느껴지니? 어차피 만나지도 못하겠지만 그래도 니가 살고 있는.....니가 살아있

    다는 그곳의 공기를 맡으러 너에게로 가고 있어. 잘 살고 있는거지? 아픈곳은 없는거지? 행복한거

    지? 나? 글쎄...... 잘 살고 있는건지...... 왜 이리도 난 눈물겹게 살아가는건지...... 」

 

한참을 달려서야 안산에 들어왔다는 임 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산 어디쯤인가요?"

내가 묻자

"안산 인터체인지 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차는 잠시 멈추어 선다. 아마도 톨게이트인듯 하다.

그리고는 다시 차는 미끄러지듯 도로위를 달리고 있다.

"사장님 우선 어디로 모실까요?"

다시금 입을 연 임 실장.

"중앙동 사무실로 갑시다."

오랜만에 오는 곳이다. 얼마나 변했을까? 아직도 사람들이 북적일까?

"이미 강 실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의 대답이 끝나고 몇 분 되지 않아 차를 멈춰 세우고는

"사장님 도착했습니다."

뒷문이 열렸는지 차가운 공기가 몸을 엄습해온다.

임 실장의 부축을 받고 겨우 내릴 수 있었다.

그의 부축을 받아 건물로 들어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많은 생각이 오간다. 무슨 말을 할까? 내심 두려움이 뒤통수를 후려친다.

다리가 떨려옴을 느낀다. 무슨 소식을 전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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