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꽃 이야기

아이스크림 |2003.11.10 21:06
조회 436 |추천 0





§.수 국 .§


수국은 범의귀科 꽃으로서 종류는 만수국,산수국,미국수국
나무수국 중국수국 등등 여러가지 존나게 많다고 보믄된다.


학 명 은  Hydrangea macrophylla Seringe for. otaksa Wilson

영 명 은 Japenese Hydrangea , House Hydrangea

한자로는 자양화(紫陽花), 마리화 이며
꽃나무의 높이는 보통  1~1.5m 정도될끼다.

원산지 는 중국 이지만 수국이 울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확실치는 않으나  오래 전부터 우리 나라 정원에 식재되어온 관생목이다.
잎은 손바닥만한 크기에 관상가치가 있으며 꽃은 담녹색에서 홍색, 홍색에서 자색으로
변하여 색깔이 아름다우며 많이 필 때에는 200여 송이까지 피어 대단히 탐스럽다.

이꽃은 주로  정원, 공원에 심으면 적당하고 주택정원에는 꼭 심을직한 나무이다.
이꽃과 유사종으로 외국에서 도입한 붉은색 수국이 있다.

요즘처럼 지루하고 눅눅한 장마철에 피는 수국은
몇날몇일 계속되는 끈끈한 장맛비 속에서 감상하기 좋은 꽃이다.

이놈이건 처음에 청색으로 피었다가 점점 색이 변해서 청자색이
되었는가 하면 다시 연한 분홍색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수국을 변덕스럽고 지조없는 꽃이라고 하지만 수국에 얽힌
야그를 듣고보면 존나게 슬픈 꽃 이라 할수있다.

그럼 왜 이놈은 카멜레온 맹키로 수시로 색깔을 바꿀수가 있는가?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저멀리 존나먼 옛날옛날로 돌아가보좌..

옛날옛날 존나먼 옛날에 압록강 주변 삭주지방 에는 고려건국과 함께 생겨난
무국적 (無國籍 ) 의 양수척 이라는 유랑부족 집단이 있었는데
이들은 패망한 백제의 농민 또는 병사들의후손이었다.

고려 태조가 일찌기 백제를 쳐서 멸망시켰을 때, 포로로 잡혀왔던
수많은 백제병사 와 그식솔들을  후환을 두려워한 나머지 멀리 압록강
근방으로 귀양을 보냈던것이다.

이들은 호적도 없었고 세금도 없었고 상전이나 나라에서 돌봐 주지도 않는
노예 보다 더 못한 신분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의지할 집도 없었고 농사를 지어먹고살만한 땅도 없었기에
이들은 계절과 수초를 따라 이동하며 남자들은 사냥을 해서 고기는 먹고
가죽은 팔고 다녔으며 여자들은 노래와 춤과 몸까지 파는 창기노릇을 했다.
한마디로 유랑걸식하는 사당패로 보만 될끼다.

그 유랑민들 중에 자운선 이라는 빼어난 미모를 가진 처녀가 있었으니
그를 탐내는 인근고을 수령방백 들과 양반들 그리고 거란족들 까지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고자 오만가지 애를 다 썻다 한다.

자운선은 그녀의 빼어난 미모를 바탕삼아서 수많은 동족들의 양식들을
해결했으니 그 부족에서 그녀는 여추장 다운 대접을 받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해 이지방에 당시 끗빨이 존나존 지영 장군이 사또로 부임을 하여서
그녀를 강제로 첩으로  삼아 농락을 하는것에 그치지 않고 양수척 부족들을 모조리
호적에 올린다음 그부족을 대표한 부족장으로 자운선을 임명하여서  인두세 (人頭稅 )
까지 가혹하게 징수를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징수한 인두세는 사또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쓰여졌고
양수척 부족들도 그때부턴 그녀를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 그년이 제 몸을 팔아서 지혼자 호강하면 그만이지 왜 우리들 까지 괴롭히느냐? "

또는.. " 부족을 팔아서 호의호식 하는 그년은 찢어죽여야 한다 "

는 등등.. 사또인 지영 장군의 위력에는 감히 반항을 못했기에 그들은
이처럼 동족인 자운선을 저주하고 욕을 했던것이다.

세월은 흘러 그처럼 가혹하게 양수척 부족과 자운선을 학대하던 지영 장군은
서울로 영전해 간 뒤에  왕실을 모반하는 행동을 하다가 최충헌 (崔忠獻 ) 장군
형제에게 잡혀서 삼족을 몰살 당하고 말았다.

그 뒤에 삭주지방에 사또로 부임한 최충헌도 역적의 첩 이었던 자운선 이었지만
그냥 한눈에 삐용간 나머지 그날 바로 색정을 일으켜서 (꼬치를 발딱 세워?)
자신의 애첩으로 삼고 말았다.

자운선은 또다시 최충헌의 애첩이 될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제 노래와 춤을 추어서 생활할 자유마저 없었다.
동족인 양수척 부족 에게 저주받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운선은 새로운 영감이된 최충헌에게 동족들의 인두세를 면제해 달라고
애원 했지만  자신의 사복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최충헌 역시 그녀의 애원에
콧방귀도 안뀌었던 것이다.

" 고얀년..역적에게 바치던 인두세를 내게 왜 못 바치겠다는거냐? 고얀 큼큼 "

그뒤로 얼마후 최충헌이 서울로 돌아가자 새로 부임한 사또의 첩 노릇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
계속되는 동족들의 저주와 따가운 눈총을 뒤로 한채...

그때 마침 고종 3년에 거란족이 고려를 침공을 했는데
거란병은 압록강을 넘어서 삭주지방을 석권해 왔었다.

그러자 조상대대로 고려 장군 들의 학대를 받고 저주해 오던 양수척 부족은
적군인 거란군과 합세하여 조국에 활을 쏘게 되었다.

그들은 방랑을 하면서 산천 의 요해를 샅샅이 알고 있었으므로
고려국 지리에 서툰 거란족의 길안내역 으로 통역으로 최고의 성과를
올려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침략해온 거란족 보다는 고려의 양수척에 대한 부족정책 과
자신들을 학대하던 지방관리를 저주하는 증오심이 강했기 때문에 용감하게
조국의 군대와 맞서서 싸운것이다.

삭주가 거란족 손에 넘어가자 양수척 부족들은 우선 동족을 배반한
자운선을 잡아서 불에태워 죽여버렸다.
이러니 예전부터 미인은 박명 이라꼬 카는기다.
여자가 재주많고 너무 잘생기면 밸로 존게 아니래니깐...떱~

먼 훗날 그녀가 불타죽은 자리에 이름모를 꽃 들이 한웅큼씩 피어났는데
여러가지 색깔로 피어아는 이 꽃을 가르켜 사람들은 자운선의 넋 이라고
했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야그가 전해져 온다.











§.과꽃 .§

꽃말: 아름다운 추억, 추상



옛날 백두산의 깊은 산골에 어린 아들과 함께 사는 추금이라는 과부가 있었다.

추금은 남편이 죽은 후 남편이 가꾸어오던 꽃을 열심히 키웠다.

그리고 꽃이 필 때면 먼저 저 세상으로 가버린 남편을 그리워하며
이 꽃들을 바라다보곤 하였다.

그러니 아직은 탱탱하고 싱싱헌 젊은 과부를 눈독 들이는
개 같은 놈이 어딜간들 없을소냐? 큼큼...

어느 날 마을의 매파(중매쟁이)가 추금에게 재혼할 것을
존나게 졸라대기 시작하였다.

끊임없는 매파의 설득을 받고 이 젊은 과부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였는데,
사실 님시바 20대 과부는 수절을 해도 30대 과부는 수절을 몬한다는 야그가
있었듯이 이 과부댁도 30대의 한창 피어나는 꽃봉오리 같았던 지라
알것 다알고 맛볼것 다 맛보았으니 우째 밤이 외롭지 않았겐노? 큼큼..
밤마다 허벅지 를 공업용 미싱으로 두루루룩~ 박아도 모자를 판이제 암먼..

그러던 어느 여름날 뜰에 핀 하얀 꽃들이 하나 둘씩 갑자기 분홍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추금은 꽃을 살펴보기 위해 꽃밭으로 나갔는데 뜻밖에
그곳에는 죽은 남편이 나타나서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여보 마누라 ! 내가 다시 돌아왔소."

이 과부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쁨에 눈물을 흘리며 남편의 따뜻한 품에 안겼고
이후 이들 부부는 아들과 함께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한다

그러던 어느 해 극심한 가뭄이 들어 모든 풀과 나무가 말라 죽어갔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저마다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났다.

이들을 보고있던 남편은 마누라 에게

"여보! 넓은 만주땅으로 갑시다. 그곳은 가뭄이 들지 않았다고 하니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게요. 그곳으로 가서 농사를 지읍시다."

이렇게 권유를 했고
마누라는 그동안 아끼고 보살폈던 꽃 중에서 흰색과 분홍색의 꽃을
한 그루씩 캐어 소중히 싸 들고 길을 나섰다.

이들 부부가 만주땅으로 가서 정착한지도 어언 10년이 지나 부인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고,
어린 아들도 이제는 어엿한 장정이 되어 곧 결혼도 시켜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뒷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던 아들이 독사에게 물려
갑자기 죽고 말았다.
그러자 시름에 젖은 신랑은
"여보! 여기서 살면 죽은 아들 생각이 더욱 간절할테니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부인도 남편의 뜻에 따라 아들의 시신을 뜰의 꽃밭에 묻어주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이미 늙어 다시 자식을 낳을 수는 없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금실이 더욱 좋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마누라는 나무를 하러 가는 남편을 따라 길을 나섰고
이들 부부가 산에 이르러 나무를 하고 있을 때, 절벽 위에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송이가 마누라의 눈에 띄었습니다.

부인이 그 꽃을 몹시 갖고 싶어하자 남편이 아내를 위해 그 꽃을
꺽어 오려고 절벽을 기어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그만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뿐것이어따...


"앗사람살려어~~!"

그때서야 써글노메 마누라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 무렵 "엄마! 엄마!" 부인은 자신을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났는데 산속에 있어야 할
자신이 뜻밖에도 자신의 방안에 누워 있던 것이었던 것이다..

과부는 그제야 자신이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알아 차렸따.

과부는 곧 뜰로 나가 꽃을 살펴보았는데 밤 사이에 하얀 꽃이
분홍색으로 졸라 많이 변해 있는게 아닌가?

이에 과부는...

"흔들리는 내 마음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 죽은 남편이 꿈에서나마
일생을 같이하며 죽었구나!"

그뒤 과부는 그동안 매파로 인해 흔들렸던 자신을 반성하고 마음을
더욱 굳게 하였고 나중엔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 무과 시험에 응시시키기
위해 한양으로 보냈으나,

얼마 후 만주 지방의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부인을 납치해 갔고 오랑캐
두목은 ' 그 과부댁을을 첩으로 삼으려 했떤거시다
쓰벌놈들 오랑캐 주제에 보는눈은 이써가꼬 그 과부댁을 그냥 두질
안했던 것이다.

한편, 과부의 아들은 무과에 급제하여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찾았으나
어머니가 오랑캐들에 의해 납치되어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분노한 아들은 병사들을 이끌고 오랑캐의 진지로 숨어들어가 어머니가 갇혀
있는 곳을 급습해 어머니를 무사히 구출해 내는 쾌거를 이루었따.

이때 과부는 아들에게
"이곳은 꿈속에서 너의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집이다."라고 말하고,
뜰로 나갔다가 자줏빛 꽃이 무수히 피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가꾸어오던 꽃과 똑같은 이 꽃을 캐어 품에 안고
고향으로 돌아와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 후 이 꽃은 과부를 지켜준 꽃이라 하여 '과꽃'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전설따라 삼십쎈티 여씀돠잉~

그리고 몇마디 더 썰을 풀자믄 과꽃은 '추금 · 당국화 ·추모란 '
이라는 아름다운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카드라~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