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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믿고있어도 이런일이 생기네~

사이로 |2008.05.26 01:21
조회 97 |추천 0

쇠고기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을 무렵이던 지난 8일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쇠고기 협상이 타결됐을 때 사실 한우농가 대책을 놓고 논란이

빚어질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광우병 얘기로 가더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직후 “소비자들이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미국산 쇠고기 협상과 관련한 결정을 내릴 때 대통령이 ‘5000만

소비자’들의 반발 가능성에 대한 보고는 받지 못했거나 아니면 귀담아 듣지 않았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정책결정에 필요한 각 분야의 정보들이 청와대 내에서 ‘소통’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국사회가 총체적 소통(疏通)부재의 ‘늪’에 빠져 있다. 정부와 국민, 권부 및 정부내부, 사회

각 주체들 간의 ‘소통’부재의 양상들이 쇠고기 협상을 전후로 한꺼번에 터져나오고 있다.

이런 위기상황은 이미 우리 사회내부에서 축적되고 있었던 만큼 ‘시간문제’였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소통부재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심엔 정치의 ‘실종’이 자리잡고

있다.

 

 쇠고기 협상이 졸속으로 끝난 것은 우선 최종결정권자인 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보고가

올라가지 않았고 그에 따라 적절한 상황판단을 내릴 수 없었던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권력내부의 소통부재는 최상층에서 결정한 방침이 그대로 관철되는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수차례에 걸친 전문가 협의과정에서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에 대한 우려가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이번 협상에선 위로부터의 지시만 수직으로 내리꽂혔

을 뿐 하위레벨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된 흔적은 찾기 어렵다.

 

우리 협상단은 미국의 강화된 동물성사료금지 조치가 공포되는 시점에 30개월 이상 쇠고기

를 수입하겠다고 합의했지만 우리 측 협상단은 미국이 동물성사료금지 조치를 어떻게 강화

할 것인지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통상전문가는 “위에서 시키는 지시에만

따르면 된다는 생각에서 디테일한 부분을 따져보지 않은 것 같다”며 “소통이 아닌 상명

하달식 의사결정 구조 속에 실무관료들의 책임의식이 실종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협상결과가 여론의 거센 비판을 불러왔지만 정부는 한동안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불신을 키웠다. 홍보로 메워질 사안은 아니었지만 뒤늦게라도 국민과 소통하려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졸속협상’에 대한 비난여론이 빗발치는 한편에선 광우병과 관련한 각종 설(說)들

이 광범위하게 유포됐지만 농림수산식품부 홈페이지에 홍보자료가 올라온 것은 협상타결

19일 뒤인 지난 6일이다.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에 대한 기자설명회

를 열며 진화에 나섰지만 전국적으로 수만명이 참가하는 촛불시위에서 재협상 요구가 터져

나오는 등 사태는 수습불능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사태수습 과정도 구태의연했다. 중고교생들의 촛불시위 참가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자

교육감과 일선교사들을 동원, 학생들의 감시에 나섰을 뿐 학생들을 광우병 불안에서 벗어나

게 해줄 수 있는 체계적인 설명은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청와대와 정치권 간의 소통

부재에 따른 불신도 심각한 상황이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19일 쇠고기 파동 등과

관련한 국정쇄신안을 보고하기 위해 이 대통령과 만났지만 쇄신의 ‘쇄’자도 꺼내지 못했다.

 

이 대통령과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간의 20일 회동도 ‘불발’로 끝났다. 이미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던 데다 여야 정치권과 대통령 간 ‘거리’가 상당 수준에 달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상하 간 소통 시스템은 작동을 멈춘 지 오래다.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 관계자는 “비서관들은 상층부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비서관이나 행정관들이 이전까지는 활발하게 건의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별 소용이 없는

분위기여서 요즘은 안 한다”고 말했다.

 

 세대 간 소통단절은 쇠고기 파동을 계기로 극적으로 표출됐다. 학생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광우병 괴담이 상당 부분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면서 한때 ‘정보의 바다’였던 인터넷이 소통

장애의 원인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인터넷상의 과다하고 부정확한 정보가 판단력이 흐린

10대들을 파고들면서 정부 및 정치권을 비롯한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소통의 부재는 ‘신뢰의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 이번 사태를 ‘홍보’나 ‘커뮤니케이션’차원

으로 좁게 해석할 경우 근원적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와

정치권뿐 아니라 사회전반적으로 심해지고 있는 소통부재 현상에 대해 근원적인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인식의 공통분모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첫 단추를 끼울

주체는 대통령과 정치권이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임혁백(정치외교학) 고려대 교수는 “새 정부 일각에는 경제성장만 하면 환경, 먹거리, 보건·

위생은 가볍게 생각해도 된다는 성장만능론이 자리잡고 있고 이런 사고가 국민과의 소통을

거치지 않고 실행에 옮겨지면서 화를 불렀다”며 “대통령이 국민, 정치권, 시민단체들과 만나

의견을 충분히 듣는 게 사태해결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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