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국의 치우천왕(蚩尤天王)과 황제헌원(黃帝軒轅)간의 전쟁에 대해 실제 사연을 요약하면 대충 이러했다. 대륙을 지배하고 있던 천손민족(天孫民族) 구리국의 치우천왕께서 천하를 다스리고 있을 때 제후국의 소전(蘇澱)의 아들이었던 헌원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치우천왕은 탁록에서 호된 징벌을 하였다.
이후 황제헌원은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거소를 옮겨 다녔으며 10년간의 전쟁에서 벌어진 90여회의 전투에서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마침내 헌원은 태행산맥(太行山脈) 서쪽의 고산지대 척박한 땅으로 도망을 갔다. 그는 그곳에서 미개인들을 교화하며 살게 되었는데 이 미개인들이 바로 화하족(華夏族)이고 그 인연으로 헌원은 화하족의 시조로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이 사마천의 붓에 의해 교묘하게 뒤바뀌어 있으니 고구려의 군웅들은 분노와 어이없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병마원수(兵馬元帥) 강이식(姜以式)이 분기탱천하며 대청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왜 그런 중대한 사실을 이제야 알려주는 것이오이까? 이것은 더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태왕(太王) 폐하(陛下)! 소신에게 개마기사단(蓋馬騎士團) 5천기를 포함한 2만명의 대군을 주시옵소서. 소신이 한달음에 달려가 수괴(隨傀) 양견(楊堅)의 목을 베는 것은 물론, 사마천(司馬遷)의 무덤을 찾아내어 부관참시(剖棺斬屍)한 후에 사마씨(司馬氏)를 가진 사내 놈들의 남근(男根)을 모조리 잘라 버리겠나이다."
대사자(大使者) 고소심(高少心)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 장군은 현실을 생각하시오. 그까짓 2만명의 군사로 어떻게 수나라의 수백만 대군을 상대할 수 있단 말이오? 수나라는 고구려보다 영토가 큼은 물론이려니와 인구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사실을 모르시오?"
그러자 강이식의 날카로운 눈빛이 고소심의 얼굴을 찔렀다.
"보자보자하니까 네놈은 자꾸 우리 고구려를 낮추고 적국인 수나라를 높이는 황망한 말을 늘어놓는구나. 네놈은 아무래도 고구려인이 아니라 수나라의 간자(間者)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네놈을 붙잡아 형틀에 묶어놓고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매를 쳐야겠다."
강이식이 팔소매를 걷고 고소심에게 달려들려 하자 평원태왕(平原太王) 때에 무공(武功)을 세워 이름을 날렸던 온달(溫達) 장군의 아들인 도성(都城) 수비대장 온준(溫俊)이 그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병마원수! 참으시오. 태왕께서 주재하시는 어전회의에서 난동을 부리시면 안됩니다."
강이식은 온준의 만류로 겨우 이성을 되찾고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러나 그의 눈매는 여전히 고소심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하하!"
영양태왕(嬰陽太王)이 큰 소리로 웃으며 강이식을 바라보았다.
"강 장군, 사마천이 사기를 쓴 건 수백년 전 일이오. 그 일을 갖고 지금 사마씨들을 모조리 내시로 만들겠다는 건 너무 한 일이오. 나중에 수를 정벌하러 갈 일이 생기거든 이 점을 유념하시오."
"명심하겠사옵니다, 폐하."
강이식의 커다란 외침이 들린 후 영양태왕은 천천히 중신들을 둘러보았다.
"사마천이 단군조선에 관해서는 어떻게 기록해 놓은 줄 아시오? 은나라의 스물일곱번째 임금인 무을왕(蕪乙王)은 황음무도한 짓을 좋아해 천신을 농락하다가 어느 날 황하와 위수로 사냥을 나갔다가 벼락에 맞아 죽었다고 되어있소."
이번에는 분노한 자들보다 웃음을 터뜨리는 자들이 더 많았다. 사마천은 은나라의 무을이 단군조선의 신하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군사를 모아 반항하다가 단군조선의 군대에 공격을 받고 응징을 당한 사건을 교묘하게 비틀어놓았던 것이다. 그 비틀어놓음이 하도 어이가 없으니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세상에서는 천자(天子)를 자칭한 존재는 위대한 단군(檀君) 밖에 없었소. 은나라의 무을이 단군의 명을 따르지 않다가 응징을 당한 것을 이렇게 교묘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오!"
태왕은 이어 몇 개의 표현을 더 예시했고 그때마다 군웅들은 분노하거나 실소를 터뜨렸다. 특히 기자(箕子)가 조선을 세웠다는 표현에서는 모두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제후국 중 하나인 번조선(蕃朝鮮)에서 생긴 일을 그런 식으로 기록해놓았으니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영양태왕의 음성이 급격히 높아졌다.
"서토인(西土人)들의 역사는 우리 조상들의 강역을 동쪽으로 밀어내며 동진해 온 것이라 할 수 있소. 고구려는 한때 그들의 동진을 저지하고 배달국과 단군조선의 전성기 영역을 회복하며 천하의 패권을 쥐었소. 하지만 오늘날 이렇게 줄어들고 말았던 것이오."
그는 깊은 한숨을 한번 흘려내고는 다시 말했다.
"만약 우리가 더 줄어들고 끝끝내 그들의 기세에 굴복하고 만다면······."
태왕은 연자유의 손에서 사기(史記)를 빼앗더니 바닥에 세게 내팽개쳤다.
“이 따위 책들이 천하를 뒤덮게 될 것이고 그들의 교묘한 문장은 점점 더 심해져서 우리의 후손은 선조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게 될 것이오.”
중신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들었다.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그들의 전신을 휘감아왔다. 태왕은 깊게 심호흡을 들이킨 후 목청을 부르르 떨며 말을 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수나라의 뜻에 우리의 미래를 맡기려는 방책은 절대로 택할 수 없소. 고구려는 어차피 사방이 전선인 상황에서 태어나 역경을 딛고 성장했던 것이오."
을지문덕이 고개를 끄덕이며 태왕의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수나라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고구려는 백제, 신라를 견제하면서 수나라에 강력히 맞서 싸워야 합니다."
대대로(大對盧) 연자유(淵子遊)가 비장한 표정으로 입술을 떼었다.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 영락제(永樂帝)께서 구축하셨던 광대한 영역이 오늘날 이 지경으로 쪼그라든 이유는 왕족 및 귀족들의 대립 때문이었습니다. 태왕위 계승을 둘러싼 내전, 대대로 자리를 놓고 벌어진 내전 등 그 수많은 집안 싸움이 고구려를 이 꼴로 만든 것입니다."
그 말이 나오자 참석자 모두들 비통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는 자도 간간이 있었다. 지난 백수십여 년의 세월을 생각하면 고구려인으로서는 가슴이 찢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한스러운 것은 복속 상태였던 백제, 신라가 독립해 나간 부분이었다.
백제는 원래 막강한 해상강국인데다가 고구려와 견원지간이었기 때문에 고구려의 힘이 조금만 약해져도 이탈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신라는 국세가 약해 스스로 고구려에 추종하던 나라였는데 이제는 버젓이 한 지역의 맹주로 발톱을 세우고 있으니 고구려인으로서는 고개 숙여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자유는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좌중을 천천히 쓸어본 뒤 음성을 최대한 높였다.
"그러나 귀족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똘똘 뭉치고 복속민인 말갈과 거란을 잘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과거의 전성기를 재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수의 침공에 맞서 싸운다는 논리에 머물러선 안됩니다. 우리는 아예 수를 멸망시킬 것을 목표로 싸워야 합니다. 수를 멸망시켜서 중원 대륙을 여러 나라가 난립하던 과거의 상황으로 몰고 가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두려움에 찬 백제, 신라를 확실하게 흡수하고, 나아가 중원대륙 전역과 머나먼 서역까지 영토를 차근차근 확장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강이식이 손바닥을 마주치며 힘차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온준과 연자유, 을지문덕이 뒤를 따랐고 곧 참석한 전원이 뜨겁게 박수를 쳤다.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수나라와의 불화를 염려하고 전쟁을 반대했던 고소심과 도병리 등도 가만히 있기가 어색했는지 남보다 더 열심히 손바닥이 벌게지도록 박수를 쳤다. 영양태왕은 중신들의 반응에 흐뭇한 미소를 입가로 피우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과연 우리에게 수나라와 전쟁을 하여 이길 수 있는 가능성과 방책이 있습니까?"
누군가의 목소리에 모두 시선을 한곳에 집중시켰다. 대성왕(大成王) 건무(建武)였다.
"수나라가 우리를 핍박할 것이라는 얘기를 처음 꺼낸 사람은 바로 저 을지문덕이란 정체불명의 사내입니다. 저 자는 비록 대대로의 아들과 조의선문에서 함께 수련을 한 것 이외에는 내세울만한 이력이 없습니다. 아직은 수나라로부터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으며 설사 수나라가 우리를 침노할 뜻이 있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저들을 맞아 싸울 힘이 없습니다. 저 을지문덕이란 사람에게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만약 수나라와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가 이길 방안이 있는지를..."
고소심이 대성왕의 말을 두둔하고 나섰다.
"그렇습니다. 설마 저 자가 아무런 대안도 없이 조정에 나와 수나라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테니 한번 들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을지문덕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성왕과 고소심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우리가 상대를 이길 방법은 단 하나, 상대의 성격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급한 사람의 단점은 그 급함이며 느긋한 사람의 단점은 바로 그 느긋함이지요."
조정의 군웅과 대신들은 문덕의 말이 무슨 뜻인지 내심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나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었다.
"당신은 농을 일삼지 말고 생각이 있다면 그게 무언지 확실히 말하시오!"
대성왕의 일갈이었다. 그러나 문덕은 입을 꽉 다문 채 중신들의 얼굴에만 눈길을 두고 있었다.
"급한 사람의 단점은 급함이라, 그렇다면 그대는 상대를 더 급하게 만들자는 뜻인가?"
병마원수 강이식이 물었다. 그는 육순의 노년이었지만 기개와 용맹을 두루 갖춘 무인으로 중신과 군사들 사이에 신망이 두터운 인물이었다.
"그렇소."
문덕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적의 조급함을 추궁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소. 지혜를 내려주시기 바라오."
노장 강이식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 을지문덕에게 겸손한 태도로 청했다.
"양견이 우리 고구려를 상대로 군사를 일으키려는 이유는 세가지가 있습니다."
"세가지라? 그게 무엇이오."
"수(隨)는 과거 시황제(始皇帝)가 진(秦)을 통일하고 고조가 한(漢)을 통일한 후 세번째로 천하를 통일했사옵니다. 그러니 양견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 듯하옵니다. 양견은 중원을 통일한 여세를 몰아 변방의 돌궐(突厥)과 말갈(靺鞨), 남으로는 만(蠻)을 호령했사옵니다만 우리 고구려가 조공을 거부하고 대등한 위치를 고수하자 그 노기(怒氣)가 머리끝까지 나 있다 합니다. 그는 이대로 가면 변방의 각국들이 고구려의 뒤를 따라 수에게 복속을 거부할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알겠소. 그러니 고구려를 쳐서 복속시키면 모든 변방의 나라들을 복속시키는 것과 같다는 얘기 아니겠소?"
영양태왕은 문덕의 얘기를 듣고 바로 양견의 분노와 염려, 그리고 계산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하옵니다."
"두번째 이유는 무엇이오?"
"양견은 군사를 정리하고 싶어합니다. 즉 그동안 천하를 통일하면서 흡수한 각국의 군사들을 정리해 자신에게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자들은 전쟁을 통해 정리하고 싶어합니다."
"당연히 그러하겠지. 그러면 세번째 이유는 무엇이오?"
"그것은 시경(詩經) 한혁편(韓奕篇)에 나오는 한후(韓侯)라는 인물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가 고구려를 치려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한후?"
"그렇습니다."
이 생소한 말에는 태왕뿐만 아니라 조정의 대신들과 군웅들도 어리둥절했다. 시경이라는 책 때문에 군사를 일으켜 다른 나라를 공격한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될 법한가?
編作對象原書
유현종 著「대제국 고구려」아침나라編(2001년版)
정수인 著「우리 민족의 자부심 고구려의 역사」새움編(2005년版)
김진명 著「살수대첩」랜덤하우스중앙編(2005년版)
정호일 著「천손왕국 대고구려」우리겨레編(2001년版)
이일우 著「영광, 대고구려」정신문화사編(2004년版)
이언호 著「연개소문」큰방編(2006년版)
서길수 著「동아시아 문명의 중심 고구려」사계절출판사編(1999년版)
한종호 著「마지막 영웅」지문사編(1999년版)
오재성 著「만주는 과거 우리의 역사 무대였다!」국사광복국민운동본부編(2002년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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