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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럽이 |2006.11.13 23:47
조회 18 |추천 0

식사
 - 김용락
 

봉화 어른이 그림 잘 그린다고 평소 예뻐하시던

어린 딸에게 선물로 두고 간

이태리판 원본 고흐 전집을 뒤적이다가

문득 눈길이 머무는 곳이 있다

노랗게 달아오른 유리램프 불빛 아래서

네 사람의 중늙은이가 등을 구부리고 앉아 있는 그림이다

'식사하는 네 농부'라는 제목이 붙은

소위 고흐의 청색시대 그림인지는 몰라도

침울하고 습한 분위기가 나를 끌어들인다

그 짙은 음영의 골짜기 속에서

요즘 내 생이 떠다니는 것 같다

천장에 매달린 등의 불빛에 비친

아낙네들의 얼굴이 금화처럼 빛나고

식탁 위의 음식물을 집어드는 여인의 손가락이

뱀처럼 차갑게 움직이며 반짝인다

등허리를 정면으로 내어놓은 사내의 근심어린 잔등이

생의 또다른 장면을 스틸처럼 이끌고 가는 그 그림을 보면서

인간들의 식사는 왜 이렇게 언제나 어두워야 할까

눈부신 태양과 바람 아래서

기꺼운 땀을 뻘뻘 흘리며 노동을 이어왔을

인간들의 뜨거운 모습은 하나의 허상일 뿐인가

차가운 식사의 깊은 침묵 속으로 나를 집어넣으면서

나는 오늘 절정으로 타오르는 삶을 다시 목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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