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9. 8(일)
미국 그것도 Washington에서의 첫 밤을 뒤척거리며 새고 시차 적응이 안돼 묵직한 몸을 채근하며 07:00시경 New York으로 향하는 57인승인가 하는 묵직한 버스에 올랐다. 흑인 운전사 뒷자리에 낯선 뚱뚱한 흑인여자가 앉아있다. 처음에는 수습 중인 운전사인 줄 알았는데 그 운전사의 부인이란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트럭 운전사들의 아내가 남편을 휴게소 주변의 여인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어쩌다가 동승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양 길가에 병풍처럼 늘어선 숲과 그 틈새를 장식하는 그림 같은 집들과 농장, 어쩌다가 나타나는 마을과 도시들을 눈요기하며 미국의 넓음을 탄하기를 몇 시간, 정오 무렵 드디어 맨해턴 남쪽의 고층 빌딩 숲이 시야에 들어온다. 연구에 일가견 있는 ㅈㄱ이 운전사에게 지도를 빌려 열심히 연구한다. 지도 보는 취미가 나와 공통점.
11:00경 휴게소에 들러 처음으로 미국 달러를 사용해보았다. 이럴 땐 돈 쓰는 것도 관광의 하나다. 주말 덕에 스피디하게 링컨 터널을 지나 맨해턴 섬에 들어오며 형형색색의 인간들도 함께 구경하며 지나는데 웬 한글간판들이 우리를 반긴다. 그 중 한식당 Empire Korea 앞에 내려, 머리를 들어 보니 눈부시게 빛나는 탑 Empire State Building이 우리를 압도하듯 맞는다. 공화국에 웬 Empire? 그러나 금강산도 식후경. 우선 한식으로 위를 채우고 지척에 있는 그 빌딩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순식간에 86층 전망대. 일망무제! 靑天 一物之下 萬物之上! 가이드의 설명이 없더라도 맨해턴 섬의 곡선 윤곽과 직선 도로, Central Park, 멀리 자유의 여신상까지 첫눈에 알아본다.
보자! 동쪽으로 멀리 East강과 그 너머를 잇는 다리들과 섬이 보이고, 가까이는 뽀죽한 스텐레스 스틸 첨탑이 독특한 크라이슬러 빌딩과 시티코프만 빌딩이 높이를 다투고 UN 빌딩이 낯익다. 북쪽으로 링컨 센터, 65,000 인구의 도시 속의 도시 록펠러 센터 빌딩군 너머로 커다란 직사각형의 Central Park의 우거진 숲이 과연 the Oasis of N.Y.답다.
서쪽으로 멀리 Hudson강 너머의 뉴저지 시가와 다리, 펜실베니아역이 있고, 강에는 하얀 항적을 길게 끌며 질주하는 모터 보트의 엔진 폭음이 지척인 듯 요란하다. 남쪽으로 가까이는 워싱턴 광장, 월 스트리트, 세계무역센터 폐허 공간이 식별되고, 멀리는 남동쪽으로 브룩클린섬, 남서쪽으로 스테틴 섬과 자유의 여신상의 윤곽이 뚜렷하고 바다에는 유람선, 요트 등이 한가롭다. 9.11을 설명하는 가이드가 아니면 그저 평화롭고 넉넉해 보인다.
이 세기의 마천루 Empire State Building은 1931년 아스토리아 호텔을 헌 자리에 최신공법으로 불과 2년만에 완공하여 대공황의 우울한 분위기를 일신하고 Empire로서의 미국과 N.Y.의 위상을 확립하고자 건축되었는데 크라이슬러 빌딩이 다투어 솟아오르자 첨탑을 얹어 443m의 세계기록을 반세기 동안 누리게 되었다. 기술도 시대도 발전하였지만 인간의 허영은 바벨탑 시대나 다를 바 없다.
자유의 여신상을 찾아 남행하는 버스 차창 너머로 9?11 테러의 현장 World Trade Center의 폐허가 보이고 주변 건물에 대형 성조기와 ‘America remember Sep.11?이라는 글귀가 쓰인 검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이 자리에 가장 높은 건물이 있었다니... 만일 그 사건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쌍둥이 빌딩의 존재를 믿지 못할 것 같다.
이틀간 워싱턴과 뉴욕을 돌아보면서 가는 곳마다, 심지어 시골의 외딴 집, 도심 아파트의 먼지 낀 창문에도 성조기가 펄럭이는 것을 보았다. 미국인이 국기를 잘 활용한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9?11 테러 1주년이 다 되어 추모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 같았다. TV에서도 희생자 가족, 동료와의 인터뷰가 자주 나왔고, 워싱턴의 한식집에서 본 교포신문에도 한인회 주관 9?11 희생자 추모 음악회 기사가 있었다.
미국과 대립하던 소련이 해체되고 미국과 미국 문화가 일방적으로 세계를 주도하면서 이에 대한 반발과 저항도 끊이지 않고 있다. 외교, 군사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드물지 않은 견제를 분명히 하는 가운데, 무력 저항은 이슬람 세력이 주축을 이룬다. 팔레스타인, 이라크를 선두로 리비아, 이란이 저항과 반발을 계속하는 가운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지하드(성전)가 테러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다. 9?11 테러는 이러한 지하드의 보다 조직화되고 국제화된 방식으로 그 참상은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 넣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 악순환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는 언제나 나올지...답답하고 무겁다. 그러나 어쩌랴! 맨해턴의 하늘과 바다는 무심하리만큼 맑고 푸르른 것을...
맨해턴 남단 Battery Park에서 빤히 바라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섬을 한바퀴 돌고 1920년대까지 이민국이 있었다는 Ellis섬을 힐끗 보면서 되돌아 왔다. 하늘에는 I LOVE N.Y.라는 비행운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건국 100주년을 축하하는 프랑스 국민의 선물로서 세워져 전쟁과 기아, 그리고 압제에 시달리는 유럽인들에게 자유와 희망의 상징이었다.
드보르작은 오스트리아의 압제에 신음하는 조국 체코를 염두에 두고 New World 교향곡을 미국에 바쳤고 시실리의 콜레오네 마을에서 마피아의 폭력을 피하여 탈출한 소년은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뉴욕에 입항한 후 그 역시 뉴욕 마피아 콜레오네 패밀리를 이루어 영화 Godfather의 모델이 되었다. 영국의 압제와 감자 기근에 시달리는 아일랜드인들은 뉴욕에 정착하여 거대한 성 패트릭 성당을 세웠다. J.F.Kennedy는 그 한 후손으로서 Jackie와의 결혼식을 여기서 올렸다. 어찌 그 뿐이랴! 세계 각국에서 반정부 활동가, 정치인, 난민들은 대부분 미국 망명을 희망하고 있다. 심지어 반미 운동가조차...
May Flower호 이래로 미국은 압제와 가난으로부터의 자유(해방)의 상징이었고 American Dream의 창구는 오랫동안 뉴욕이 맡아왔다. 몰려드는 이민들이 품는 American Dream은 광대한 국토와 자원을 개발하는 에너지원이 되었고 그 성취과정을 통해 국민통합을 이루게 하였으며 마침내 세계 초강대국으로 등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America No.1은 Empire로서 상대국가, 상대 문화에 대한 강요로 나타나 세계 각지에서 군사적, 문화적 충돌을 야기한 것도 사실이다. 사소한 예로, 우리 나라의 보신탕에 대한 문제도 문화상대주의적 입장에서 이해하면 적어도 간섭은 하지 않으련만...
Manhattan 남단의 Battery Park는 옛날 포대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도 포대 성벽은 그대로 남아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는 유람선 선착장 사무실로 쓰인다. 그 이웃에는 뉴욕 재향군인회가 만든 한국전 참전 기념탑이 있는데 태극기가 새겨져 있고 꽃이 바쳐져 있다. 미국인은 국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 온 시민이 기린다. 미국인은 잊혀진 전쟁 한국전쟁도 한국의 경제부흥과 함께 자기들의 보람으로 재인식하고 참전희생자를 기리는데 우리에게는 6?25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되어 가고 있으니....
이어 증권가 Wall street를 지나, 19세기 초에 증기선을 발명하여 Hudson강에 띄운 Robert Fulton의 이름을 딴 Fulton Fish Market에 내렸다. 건물은 뉴욕에도 이런 게 있나 싶을 정도로 아주 낡았는데 아직도 어시장으로 사용하고 있단다. 그 건물 앞에는 산뜻한 건물이 상가 겸 식당으로 쓰이고 앞 마당에서는 1인 쇼가 벌어지고 있었다. 무심코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웃길래 보니 내 뒤에 그 광대가 따라오며 뭔가 장난을 친 모양이다. 물가에는 커다란 범선이 매여져 있는데 놀랍게도 1930년까지 화물을 운반했으며 1000톤이라 적혀 있다.
이어 China town 거리를 지난다. 이 거리는 뉴욕 시청이 시 건설에 동원된 중국인들에게 노임을 주지 못하게 되자 이 지역 땅으로써 보상하게 됨으로써 형성된 것이란다. 중국인 노무자 쿠리(苦役)가 미국 태평양철도 건설에 기여하였고 그 연유로 미국 서부 지역에 차이나 타운이 생겨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기는 금시초문이다.
버스는 이어 예술인 거리 Soho, 극장가 Broadway를 거쳐 세계 최대의 인공 공원이자 뉴욕의 오아시스 Central Park 남쪽 입구에 닿았다. 늘씬한 말이 끄는 4륜 마차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주변에는 호텔, 트럼프 빌딩 등 고층 건물이 즐비한데 한 시간의 자유관람 시간이 주어졌다. 공원에 들어가니 작은 못에 오리가 헤엄치고 사람들이 개를 끌고 조깅을 한다. 재빨리 나와 티파니 보석상 등 각종 물품의 세계적 명품점이 모여 있는 거리를 훑는데 이미 가게 문은 닫혀 있고 쇼 윈도의 조명만 켜져 있다. 성 패트릭 성당의 웅장한 모습 아래 노숙자들이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일본의 공원에도 노숙자가 있던데, 어디나 마찬가지...?
허드슨 강을 건너 New Jersey에 있는 식당 Meson Madrid에서 저녁 식사를 포도주와 함께 즐겼다. 풍성하다는 점에서는 ‘만족’의 식사였다. 그 랍스터라는 걸 첨 먹게 되었으니... 식후 허드슨강가 Hamilton Park에서 맨해턴의 야경을 즐기면서 소화도 시켰다. Hamilton은 조지 워싱턴의 부관이었는데 능력이 뛰어나 본인이 거듭 일선에서 전투지휘를 하겠다고 간청했지만 워싱턴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전후 주의 자치권 강화를 주장하는 Jefferson 등에 반대하여 연방정부의 강화를 위해 정력적인 활동을 펼쳐 오늘날 미 연방정부의 초석을 놓았다. 대통령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인물이나 여자 문제로 결투를 신청 당해 이 언덕에서 권총 대결 끝에 죽었다고 한다. 센트랄 파크 공원에서 본 검은 옷과 남자의 빵떡 모자 차림의 가족이 여기에서도 휴식한다. 추측컨대 유대인 같은데 맞는지?
식당에서 가까운 호텔에 들어오니 이름하여 Raddison Hotel, 아내에게 전화카드를 써 전화하고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