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읍니다.
전 32살이며 한집안의 가장이며 어머니하고 여동생하고 같이 살고 있읍니다...
물론 예쁜 딸이 하나 있죠 올해 6살이랍니다.울 오리(마누라 호칭)는 올 28이구여..
넘 빨리 결혼 했나여....ㅎㅎ
참 글구 이번달부터 막내두 같이 삽니다...대가족이죠...
막내는 올 20살이랍니다.대학다니구여....
둘째는 지금 결혼해서 혼자 열심히 살고 있져...듬직한 동생이랍니다...
아버지는 지방에 혼자 살고 있구여....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린 것은 다름아닌 아버지 때문에 고민고민 하다가
어렵게 몇자 적어 보겠읍니다.
저의 아버지는 저 어릴적 부터 술,여자,노름을 좋아했답니다..
아니 원래 태생 이었나 봅니다..
돈을 벌면 술집에 다 갔다주고 어머니를 폭언,폭행하고 당연히 집안 살림은 어려웠죠..
지금 제 나이에 먹을것 없어서 굶어 본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거라 생각 합니다
그래서 어렸을적 소원이 커서 돈 마니 벌면 먹는것은 쌓아놓고 먹는거 였답니다.. 특히
베지밀 실컷 먹는거 하고 계란 삶아서 실컷 먹어보는거 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어리긴 어렸나 봐요......
물론 빚은 두말 할 것 두 없고요.....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여자를 데리구 집에 들어오더라구요....첨엔 누군지 몰랐죠
어렸을때라 거기까지 밖에 기억 않나네요...기억하고 싶지도 않구....
그래서 어머니가 저 초등학교 2학년때 집을 나갔습니다.
아직두 기억에 생생한데 비오는날 밤에 보따리 하나들구 옆집에 잠깐 갔다 온다고
하시며 나갔는데 저와 남동생,여동생은 그런가보다 하구 기다렸지만 그 후론 오지 않으셨죠..
몇 년동안.....
첨에 며칠동안은 그냥 지냈는데 날이 갈수록 어머니가 그리워져 저희 3남매는
가끔가다 펑펑 울었지요....저는 그때마다 애들 다그치면서 엄마 곧 돌아올거라고....
울지말라고..... 저도 혼자 엄마가 보고싶어 무지 많이 울었습니다.....
그 몇 년 동안 저희들은 할머니 손에 키워졌고 어머니가 3년뒤에 돌아 오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거론하고 싶지 않네요....
그리고 다음해에 막내가 태어나고.... 저하고 12년 차이 납니다...
그 다음해에 아버지가 서울로 돈 벌러 간다고 올라가셨습니다..
어머니,저,남동생,여동생,갓난아기를 두고 .........
그런데 할머니 마저 서울 첫째 작은 아버지 한테 가야 한다고 하셨답니다...
어머니가 할머니 붙잡고 애원을 했다 하더군요..
지금 00아빠도 없고 먹고 살기도 막막하고 어머니마저 가시면 않된다고...
아이들을 봐달라고 돈은 어머니가 벌어오겠다고....
그런데 할머니는 올라가셨고 철딱서니 없는 3남매와 1살도 않된 막내....
이렇게 시골에 남겨두고......
막막하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네요...
그렇게 되고 나서 어머니는 뭐가 됐던지 닥치는 데로 일을 하셨습니다...
시골이라 벌이가 없었을 뿐더러 막내가 아기라서 더 힘드셨죠...
모내기하는데 막내 논두렁에 놓구 일 하시다가 울면 젖 주시고....
또 일하고 등등 그 기억들이 넘 생생하게 납니다... 챙피해서 전 늘 멀리서만
봤거든요......갑자기 어머니 생각을 하니까 눈물이 나네요......
막내 태어날때 제가 어머니한테 이런말을 했습니다....
우리집 앞으로는 다른집보다 10년은 더 뒤떨어져 살거라고...
가끔가다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그 어린나이에 어떻게 정확하게 꽤뚫어봤냐고......
그 후론 벽돌 공장에서 블록 찍어내는 일을 4년 정도 하셨습니다...
그 일을 그만두시고 단무지 공장에서 올해 3월 까지 일을 하셨습니다..
그 힘들게 버셔서 울 4남매 고등학교를 졸업시키고 둘째 전문대, 막내 현재 4년제 가르키셨습니다...
(막내는 현 재학중 형편상 휴학계 제출)
너무 어머니 애기만 했나봐여.......
그 힘들고 어렸웠던 기간동안 서울로 돈벌러 간 아버지는 생활비 제대로 한번 보내준
적이 없었지요.... 명절때에도 내려오지두 않구 .....
제가 집안에 장손이라 제사는 꼭 우리집 에서 지냈습니다.
지금 생각 해보면 그때 그 어머니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서울에 올라갔다 오신적이 있었죠......
생활은 제대로 하나 어떻게 살고 있나...등등 궁금 하셨으니까...
그런데 그 후로 며칠동안 아무 얘기를 하지 않으시더라고요....
며칠 후 저 한테만 애기를 하셨는데.....
여자랑 동거를 하고 있더랍니다...자식들은 먹을 거 없어서 겨울에는 굶고 있었는데...
아버지한테 배신감을 무지하게 느꼈을 거라 생각 합니다....
그러더니 저한테 하신말씀이 “난 너희들밖에 없으니까 커서 꼭 성공해라...
그리고 아버지같이 무능하게 살지 마라....”그러시더라고요 그때 제 나이 16살이었습니다.
전 울면서 알았다고 했죠.....그리고 커서 나중에 호강 시켜드린다고 꼭 꼭 약속했죠
그날 어머니하고 펑펑 울었습니다....
그 해 겨울방학에 우리 온 가족이 서울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란 사람은 볼 수가 없고 잘 때도 없고......
그때 우리 잔 곳은 다름 아닌 파출소에서 잤죠.... 뜬 눈으로 동생들 껴안고 그렇게 ....
방도 아니고 창고 비슷한 곳에서.... 사실 그때 전 부모님 원망 많이 했습니다.
그땐 아버지,어머니 두분 다 했었죠....넘 추워서 그랬을 겁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서울에 이모님이 계셨지만 시간이 넘 늦었고 울 대식구가
잘 곳이 없었나 봐요....
그때 얼마나 서럽던지...... 그때 생각했죠....당신은 아버지두 아니라구....
아니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나봐요...
제가 고등학교 졸업 할 때두 없었으니까요.....
제딸 태어날때도 오지 않았구요.....우리 딸은 돌때 첨 할아버지 봤습니다....
다행히 공고라서 전 3학년 2학기 때부터 실습생으로 직장생활 했습니다.
그때가 1990년 6월25일 입니다.. 그날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막연한 두려움과 어머니 고생 덜 시켜 드릴려고 용기도 내보고.....
그러면서 아버지하고 같이 살게됐죠...
물론 그때도 여자가 있었지만 못 들어왔죠.... 저 때문에....
사실 지방에서 올라와 숙식을 해결 할 데가 없더 라구요....
일말의 한편으로는 그래도 아버지인데 남들보단 낮겠지...하고요...
그리고 쪼끔이지만은 기대어 보고 싶었던 것 도 있었지요
그런데 오래 못가더라고요......그해 겨울이었지요...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빚쟁이들,방세 내놓으라고 볶아대는 집주인....
싸우게 된 계기는 퇴근후 집에 들어 갈려고 현관문을 보니 각목으로
X자로 못질을 해놨더라고요...
옆집에 가서 물어봤더니 주인이 그렇게 하고 가더 랍니다....
하도 기가막혀 집주인 한테 쫒아가 따졌죠...
집을 비운것도 아니고 살고 있는 집에다 그렇게 해놓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집주인 왈 보증금 없어진지 오래고 월세가 밀려서 그랬다고...
그래도 따져 물었죠...입장바꿔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솔직히 눈에 뵈는게 없더라고요....
그때 전 실습생이라 월 14만원 받았읍니다.
전공이 건축이라 설계사무실에 근무 했거든요..
그쪽 계통이 월급 아주 짭니다....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허탈하데요....아무리 아버지이지만 이렇게 무능하고 방탕 할 줄이야...
그날 밤 술에 취한 아버지와 대판 싸웠 습니다
그리고 부자지간의 인연을 끊겠노라고 하면서 그 집을 그 밤에 나와서
사무실에서 잤습니다... 그날 술마시고 엄청 울었지요...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동생들도 보고 싶고...서럽기도하고....
그 당시엔 저희 집엔 전화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전 야간에 맥주집 아르바이트를 했죠....
잠자리는 아는 사람마다 몇 개월 씩 붙어 살고요....
자꾸 제 얘기가 나오네요.....죄송합니다....
그 다음해 인가 아버지는 빚이 정리가 않 되니까 대전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
도망을 가서도 여전히 똑같은 생활들 .... 어디서 여자들을 그렇게 잘 만나는지...
작은아버지들 왈 그게 형님의 업보랍니다....말도 않 될 기가 막힌 일이지요...
대전 도망가고 다음해인가 그 잘난 울 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신다고 모셔왔답니다..
그때 같이 살던 그 여잔 복도 지지리도 없는 여자였나 봅니다..
사실인즉 첫째 작은아버지가 할머니를 부려 먹을대로 부려먹고 돈 한푼 않 드리고
둘째 작은 아버지댁으로 쫒았답니다..그것도 도둑 누명 씌워서...
할머니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사람은 울 어머니 였는데....
저희 작은아버지들(4형제) 중 첫째 작은 아버지는 저희 어머니하고 웬수 지간이지요..
알고보니 형(울 아버지) 한테 준 돈만도 엄청 나더라고요....
사실 제 작년에 카드값 때문에 아버지한테 몇백 보냈거든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한테 더 심하게 했나봅니다.. 그래도 전 용납이 않돼 더라고요...
몇 번을 대들었습니다...
“한번만 우리 어머니 모욕했다간 작은아버지고 나발이고 없다고”...
그런데 그때 더 웃긴 것은 우리 어머니 한테는 형수님이라고 한번도 않한
첫째 작은아버지가 그 여자 한테는 형수님!!형수님 이러는 거에요...
저는 미친 개xx라고 했죠...
친척들 중에 그렇게 부르는 사람 모조리 다요...
글구 대전에는 절대 연락 않하고....
그래서고 대전에 계시는 할머니도 미워서 대판 싸우고 지금은 서먹서먹 하죠
대전에 그여자가 6번째 였을 겁니다....제 기억으로는
작년이었습니다....어느날 갑자기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들어오더라고요....
불긴한 마음에 전화를 받았죠....
병원인데....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갔다고.....중환자실에 있다고....
그런데 오래 살지 못 할 것 같다고...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고요....그래도 이유라도 알자고 그랬더니
간경화 말기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내려갔는지 모르겠지만 내려갔습니다...
바보처럼 혼자 엉엉 울면서 내려간거 밖에 기억에 없네요...
담당 주치의 말로는 회복이 어렵다고 하더군요.....
며칠 더 두고 봐야 한다고... 그렇게 싫고 밉던 아버지가 이대로 가시면
난 어떡해야 할 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제 평생 소원이 아버지랑 같이 낚시 한번 가는 거였는데 말이죠...
밤을 세워가면서 지난 얘기좀 해 볼려구 했었는데...
왜 그렇게 살아 왔어야만 했는지......
다른 가정에서는 넘 흔한 일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저 한테는 유일한 소망이었거든요
그런데 다행히도 의식이 돌아오고 퇴원까지 할수 있게 됐답니다....
제 소원을 들어 줄려구 하늘이 도왔구나 라구 철 없는 생각을 했죠...
물론 병원에서는 술,담배 다시하면 죽는다고 했으니깐요
그때 아버지하고 같이 사는 여자에게 제가 첨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도대체 뭐가 좋아서 같이 사냐고 물어 봤더니 불쌍해서 같이 살아 주고
있답니다..그전에 그만 살자고 했더니 죽어 버린다고 하면서 협박을 했더라나요
참 우습더라고요 우리를 위해서 죽을 마음을 다 했으면
아니 우리 어머니를 위해서 그런 마음 이었으면 지금 쯤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 사건 이후로 할머니는 다시 둘째 작은 아버지댁으로 가셨고 둘이만 살게됐죠
물론 병원비는 저하고 동생이부담하고 울 어머니도 주셨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않돼 보였는지....아님 미운사랑이 남아 있었는지......
올봄에 저희 어머니를 모시게 됐습니다...
핑계는 맞벌이를 해야 되는데 딸을 돌봐달라고요...
울 오리는 그것 때문이었고 저는 모셔 드릴 려고요
아직도 시골에서 부뚜막에 불펴고 그나마 연탄 보일러라도 난방을 하셨거든요
옛날 시골집 생각 하시면 될겁니다...세탁기 하나 없이......
제가 해드린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그래서 더 모실려고 했나봅니다..
저도 IMF때 월급이 제대로 나오질 않아 2년동안 고생하면서 벌어 놓은 돈
다까먹고 생활이 않되니 빚만 남더라고요....
넘 고생 하신 분이라 어머니가 젊지만 제가 모실려구 전 빨리 모셔왔습니다..
그런데 사건은 엉뚱하게 여동생이 치더라구요.....
흔히 말하는 신용불량자가 제 여동생 이었습니다...
그 금액두 1억에 조금 못가더라고요...상상도 않가구.....
어머니는 날벼락을 맞은겄처럼 몇날 며칠을 우시고...
식사도 않하고 잠도 못 주무시고.....
어머니는 빚이라면 지겹고 가난도 지겹구 해서 자식만큼은 똑바로 가르킬려고
하셨던 분인데....저 또한 사고도 마니 쳤지요....사회에 반항도 해보고...생략...
그래서 27살인 여동생을 제가 데려오게 됐습니다.....
울 오리는 그게 못 마땅한가 계속 짜증에 신경질에...
첨엔 제가 더 신경질을 울 오리한테 냈지만 지금은 오리한테 미안하더라고요...
지금 생각 하면 적반하장 이었지요... 그 나이에 어머니하고 시동생이라....
여동생은 아직도 손을 놓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나봐요...
당분간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려고요....
그 일이 잠잠 해질 무렵 사건이 터졌습니다... 올 7월에....
대전에서 그 여자가 전화가 오더라고요...그래서 순간 불길한 생각이 또 들더라고요.
혹시 무슨일 있냐고 먼저 물었죠....그런데 아버지가 술 마시고 또 중환자실에서
중태라고 하더라고요... 어이가 없더라고요.....
술 마시면 다신 못 일어 날거라고 담당 주치의가 그렇게 설명을 해 줬것만.....
아무도 몰래 저 혼자 내려 갔다 왔습니다...그런데....이번엔 헛소리를 하더라고요...
주치의 왈 알콜 금단 증상이라고 하더라고요...배에 복수 차오르는걸 잡았으니까..
좀더 기다려 보면 호전 될 거라고요....
병실에 그 여자가 혼자 병수발 하고 있더라고요.....참 기막힌 인생이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길래......
그래서 제가 “이젠 아줌마 인생 찾아 가세요...아버지 깨어나기 전에” ...이렇게 말을 햇죠
그날 이후 그여자는 이틀 인가 있다가 아버지 곁을 떠났습니다..
이래선 도저히 않되겠다고 생각하고 가족회의 끝에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기로 맘 먹고
퇴원하면 곧바로 보내기로 하고 아버지 설득은 제가 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엔 꽤 오래 병원 생활을 했죠...한달정도.... 병원비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사실 퇴원은 제가 보류했습니다...어느정도 건강을 추스르고 나올 수 있게.....
그런데 아버지가 요양원에 죽어도 않 들어간다고 하는 바람에 저는 그럼 여기서 정말로
이 질긴 부자지간의 인연 끊을거냐고 물었죠....그래도 않 간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퇴원해서 아버지 혼자 잘 살 수 있으니까 퇴원만 시켜달라고....
그냥 올려고 했는데 밥이라도 같이 먹고 올라오고 싶더라고요.....
해장국집에 갔죠.....저,오리,우리딸,아버지 이렇게 넷이.....
해장국을 그렇게 먹고 싶었나 봅니다.... 너무 맛있게 드시는 걸 보니
눈물이 날려고 하는걸 억지로 참았죠..제가 바보갔죠....
그리고 돈 10만원을 드리고 이젠 절 그만 좀 힘들게 해달라고 하면서.....
그렇게해서 결국은 대전에 아버지 혼자 남겨둔 채 전 올라와 버렸습니다...
서울 올라와서 전 아무도 몰래 전화를 하곤 했습니다....솔직히 걱정돼서....
퇴원 후 3일정도 있다가 대전에서 또 전화가 왔죠.....
아버지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다닌다고..... 실성한 사람처럼 아니 미친 사람처럼.....
전 바로 내려가서 확인을 했습니다....제가 볼때엔 정상으로 돌아와 있더라고요..
하루에 주기적으로 이상한 행동을 하나보더라고요....
제가 말을 걸고 뭘 물어봐도 정확하게 대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안심하고 올라왔죠...그러길 세네번 ....
횟수가 거듭되니까 짜증이 나더라고요....그래서 화내면서 알아서 하시라고
하고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라는 사람 제 바로 밑에 동생한테 돈을 조금씩 달라고 해서
썼나 봅니다...전 벌어서 쓴 줄 알았는데....
동생이 힘들어서 미치겠다고 하더라고요....전 그걸 왜 이제야 얘기 하냐고
했죠.... 형도 힘들까봐 그랬다고 하더군요....
동생한테 고맙기도 하고 아버지가 웬수 같기도 하더라고요...
젊었을때 그렇게 방탕하게 살더니만 나이 먹어서 혼자 몸 하나도
제대로 살지 못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더라고요.....
10월달에 어머니한테 아버지가 전화를 했다합니다.....
전 몰랐지요....
왜 아무 말도 없이 방에만 계시고 식사도 하지 못하고 그러시는 줄........
며칠 후에 절 부르시더니 저한테 얘길 하시더라고요...
아버지가 이혼을 요구해 왔다고.....
저는 그 순간 이 사람은 인간도 아니다 라고 생각했죠....
그래도 어머니는 젊었을때 사랑을 아직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저 아버지한테 전화를 하지 못했습니다...아니 않했습니다...
통화하면 욕이란 욕은 다 할 것 같아서......
우리 어머니 이혼 못 해준다고 하니까 “왜 내 인생에 도움이 않 되느냐”고
오히려 따져 물었답니다....
그날 이후 전 나 한테는 그 흔한 낚시 한번 가는게 넘 큰 욕심 이었구나 하고
하늘을 원망해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나쁜 놈이지만 이젠 돌아가시면 편안하게 보내 드릴 것 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 저한테 아버지가 계속 전화 합니다....
“너 힘들게 생활하는 것 알지만 내 생활비 좀 부쳐줘라 한달에 얼마씩...
너 혼자 힘들면 동생하고 보태서 보내주라“하십니다..... 서글퍼지더라고요...
자식은 어떻게는 살아 볼 려고 하는데......도대체 양심이 있는건지.....
통화 할 때마다 전 한마디도 않 합니다....
그래도 듣고 있냐고 만 묻고 혼자 할 말 다하고 먼저 끊습니다...
오늘 아침에 전화 오는걸 않 받았습니다....
두 번째 또 오길래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 이웃집 아저씨더라고요.....
다짜고짜 그래도 자식인데 아버지 저렇게 혼자 두면 어떡하냐고...그리고 생활비도
좀 보내줘야지...라고요..... 참 기가 막혀서.....
그래서 전 또박또박하게 대답했죠....
그 사람은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 밖에 없다고....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요...
그러자 그 아저씨 그래도 자네 아버진 아버지야...그러시더라고요
제가 또 대답 했죠....전 아저씨한테 아무 불만없고 화내기 싫으니까 이만 끊으라고....
끊고 나서 담배한대 물었습니다....하늘을 보면서.....
“세상을 살아 갈려면 도대체 얼마나 큰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것 일까”
신은 인간이 참을 수 있을 만큼만의 고통 준다고 하던데 나한테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아직은 약한가 봅니다...
이글을 쓰는 도중에 동생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계속 돈 좀 달라고 전화 한다고 미치겠다고....
전 절대 보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동생은 알았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고 나니 삶이 서글퍼집니다....
오늘 하루가 너무 우울한 하루 였습니다...
제가 너무 두서 없이 글을 올려서 죄송합니다....
끝까지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고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인생을 저보다 더 오래 사신 분들이나
저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계신 분들의 진심어린 충고 부탁 드립니다...
지금 전 어머니 생각 밖에 나지 않네요....
저 우리 어머니 모시고 보란듯이 성공 할 겁니다...
그리고 그냥 같이 산다고 만 해도 힘들 것 같은 울 오리한테 미안하네요...
제 좌우명은 “마지막에 웃는자 가 되자”인데 웃을 려면 아직 멀었나 봅니다 .....
지금 전 “꿈에는 부작용이 없다” 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오늘 하루를 정리 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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