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귀거래사 (新歸去來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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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을 가거나 사람 사는 곳이면 충돌이 있게 마련이지만 시골사람들이 낯선 사람에게 느끼는 경계심이란 좀 별나다 할 정도로 강한 반감 비슷한 경계감이 있었다. 비록 이곳이 내 고향이라 해도 그들과 나 사이에 교류도 없었으니 타인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우리 집이 자리 잡은 동네 이름은 옥수골이다. 마을은 허씨들로 구성된 혈족 마을이다. 그러다보니 자연 타성인 나는 그네들이 보았을 때 미운 오리털이 될 수도 있다 싶어 조심하며 행동했다. 물론 나 이외에도 타성이 몇 있기는 하다.
마을 부녀회 모임 날이면 인사를 하기 위해 맥주도 한 상자 대접하고 마을 어른들이 동구나무 그늘에 모여 놀기라도 하면 막걸리 몇 통을 대접하기도 하며 그들과 친하기 위해 나는 작은 정성이지만 공을 들였다. 그러나 그들이 볼 때 역시 나는 그들의 일가가 아닌 도시에서 굴러 들어온 타성바지인 것이다.
집수리가 끝나고 주변 정리가 원만히 끝나 갈 무렵 내 생활 패턴대로 다시 먼 길을 떠났다. 그것은 내 보금자리가 시골에 있다 하여도 어쩔 수 없이 경제적인 모든 문제는 내가 하는 사업의 특성상 도시에 기대어야만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략 한달 정도의 여정이다.
벚나무 열매를 아실 것이다. 버찌라고 말하는 까만 열매는 어릴 적 심심한 먹거리이기도 했다. 내 친구 악동들은 버찌 열매로 짝지의 고운 옷에 살짝 비벼 얼룩지게 만들어 기어이 울음이 터지도록 만들어 놓고는 낄낄거리기도 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입에 넣어 오물거리다 보면 달콤하고 씁쓸한 그 맛도 특이하지만 입술과 혓바닥은 어느새 까맣게 변하고 만다.
우리 집 벚나무는 별스레 버찌가 많이 열렸다. 어릴 때의 향수를 느끼며 나는 버찌를 입안에 넣어 오물거려 보기도 한다. 맛 또한 아련히 추억에 젖은 그 맛으로 변함이 없다.
한달 여 만에 귀가를 하니 그 잘 생긴 벚나무가 쓰러져 있지 않는가. 나는 기절 일보직전이 되었다. 아내의 말로는 그때의 내 모습은 완전히 얼이나가 있었다했다. 한번 생각해 보라 수십 년 된 아름드리나무가 쓰러졌다면 기분이 어떠하겠는가? 진정하고 가만 살펴보니 나무 밑동에 누군가 톱으로 절반정도를 쓸어 놓았다. 그것이 바람 부는 날 견뎌 내지를 못하고 쓰러진 것이다.
누가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만약 나한테 감정이 있다면 사람을 못살게 굴거나 말로 하면 될 것을 수십 년 자란 나무가 무슨 죄가 있다고 해악을 끼쳤을까? 온통 의문 투성이었다. 혹시나 싶어 마당에 있는 나무들을 꼼꼼히 살펴보니 굵은 감나무 한 그루는 날카로운 칼로 나무둘레를 벗겨 놓았고 잘생기고 풍성한 무화과나무도 드릴로 구멍을 내어 놓았다. 이럴 수가 있을까? 분명 앙심을 품은 해코지가 분명하였다. 나는 그날 울분을 참지 못하여 많이 취했다.
다음날 죽마고우 친구를 불렀다. 친구와 곰곰 생각하며 원인 분석을 해 보니 결론은 하나, 이 집이 몇 년간 비어 있었을 때 과수에서 수확하는 과일과 마당을 밭으로 가꿔 먹은 곡식이나 채소를 우리가 이사 옴으로 인해 수확하지 못한 것에 앙심을 먹었을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친구는 그냥 눈감고 넘어가자, 신고식 톡톡히 치렀다고 생각하고 언성 높이지 말고 그냥 지나치자 하였다. 그러기로 했다. 하지만 섭섭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고 벚나무 쓰러진 그 자리가 그렇게 넓어 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날 슬픈 노래를 불렀다. 상처받은 감나무의 마지막 유언이 아니기를 바라며 소생의 희망을 빌고 또 빌었다.
푸 른 바 다
Stay with me till the morning / Dana Winner

Fifty Five Birds, Wolverton, Buckinghamshire, England, 1991

Fifty-Four Sticks Calais, France, 1998

Ten and a Half Trees
Peterhof, Russia,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