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9. 17(화)
07:00 호텔을 걸어 나와 지대가 다소 높은 인근 마을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시가지가 멀리 희미하게 보인다. 큰 저택이 있길래 다가가니 안내판이 붙어 있다. 전형적인 커다란 하얀 목조 옛 농장 저택으로 2층의 좌우 날개 부분엔 흑인 노예들의 방이 있었고, 가운데 부분엔 주인 가족의 방이 있었다. 이 북부에도 남북전쟁 이전엔 흑인 노예가 있었다...
가방 고리 부분 하나가 고장나 고칠 방안이 막연하던 중 방짝 김대진 단원이 한참을 고생하여 응급 처치는 하였으나 아무래도 불안하여 09:00 무렵 이웃 K-MART에서 여행 가방을 하나 샀다. 09:40 호텔을 출발, 다섯 번째(?)로 조지 워싱턴교를 건너 맨해턴, 브롱크스를 순조로이 지나 남쪽으로 꺽어 10:30 무렵 롱아일랜드섬 남단에 있는 John. F. Kennedy New York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했다. 13:30 출발이므로 여유가 있다.
먼저 이제 2개가 된 짐을 부치고 밤낮을 함께 하며 정든 가이드와 작별 사진을 찍고 먼저 떠나 보냈다. 소싸움과 감의 고장 청도 사나이인 그가 싸움소 같은 투지로 사업을 성취하길 빌고, 감과 같은 순수한 정서로 역시 순진한 부인, 아들과 더불어 행복하길 빌었다. 연 1회는 한국에 가려 한다는 그가 서울에 온다면 우리는 기쁨으로 맞을 것이다.
우리들은 차례로 출국 수속을 마치고 쇼핑을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먼저 탑승구 앞에 기다리던 일행이 마침 그 자리에 왔던 우리가 탈 KAL기 여승무원과 대화 중 16:00 이전엔 식사가 안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몇 사람씩 차례로 검색대를 통해 나가 간식을 파는 2층으로 올라가 샌드위치와 콜라로 마음에 점 하나 찍고 다시 검색대를 통해 들어 왔다.
비행기 안에 들어가니 또 오른 쪽 창가 좌석의 행운이 네 번째 이어진다. 무려 성공률 80%! 어릴 적부터 또뽑기, 보물찾기에 늘 인연이 없었는데 이번에 한번에 보상해주나 보다... 미국에 갈 때와 달리 좌석을 한 줄씩 건너 띄어서 앉혔다. 손님이 적은 모양이다. 내 왼쪽 하나 건너 좌석에는 ㅅㅇ이 앉았다. 젊은이 뺨치는 에너지로 여행을 즐기고 남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여 누구나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왕언니다.
13:30 마침내 KAL기편으로 John. F. Kennedy New York International Airport를 뜬다. 미국을 떠난다. 공항 부근의 석호, 갯벌과 배의 하얀 항적이 그려지는 바다도 잠깐... 비행기는 북서진한다. 높은 고도와 옅은 구름으로 지상을 내려다보기는 어렵지만, 커다란 호수는 뚜렷이 구별된다. 아마 5대호 중 가장 작다는 그러나 광대한 Otario 호일 것이다. 무수한 호수와 숲 위를 날아 한참 시간이 흐르니 대지에 서리가 내린 듯 빛이 희끄므레하다. 땅이 얼어 있음에 틀림 없다. 정면 항로 스크린도 영화로 바뀌었다. 여승무원이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이 스크린 시청과 안면을 방해하니 창문 가리개를 내려 달라고 한다. 그러나 가끔 손으로 빛을 가리면서 살짝 지상을 내려다 본다. 이런 기회가 자주 있겠는가?
얼마를 지나다 보니 가로로 뻗은 해안선과 그 북쪽에 놓인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북극해? 이 항로가 알래스카 북극해안을 따라 가는가? 지금 북극해는 얼지 않았는가? 그보다 남쪽의 육지는 얼어 있는데...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고 영화나 체조를 하는 스크린을 보고 지도책을 보고, 시차 적응을 위해 잠을 자지 않으려 했지만 잠시 눈을 붙여도 보고, 영어 회화책을 놓고 읽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잠시 나오는 스크린에 오츠크해를 따라 남서진하는 붉은 항로가 보인다. 아래에 펼쳐진 육지는 흰 빛이 점점 옅어지고 해안선은 끝없이 하얗게 이어진다. 해안선이 사라지더니 푸른 바다다. 분명 동해다. 고도가 11,000m에서 7,000m로 낮아졌다. 울릉도가 사진처럼 선명히 눈에 들어 온다. 울릉도부터는 서진한다. 수 많은 하얀 항적들이 울릉도 쪽으로 향한다. 오징어 배는 저녁에 출항하나?
아주 잠시 후 동해안의 해안선, 고속도로, 논밭, 강릉이 보이더니 다른 논밭과 색이 달리 하얗게 빛나는 지역이 있다. 누군가 말하길, 태풍 루사가 몰고 온 홍수에 매몰된 논밭이란다. 그러고 보니 그런 색이 여기 저기 보인다. 하루 800mm의 기록적 강우량은 기록적 홍수 피해를 가져 온 것이다. 조금 더 가니 안양 부근의 수도권 주택 밀집지역과 도로들이 보이고 시화 방조제가 보이더니 안전 벨트를 착용하란다. 16:00경 무사히 착륙한다. 아니 시계바늘을 한 시간 뒤로 아니 11시간 빨리 했으니 17:00경 도착. 9월 17일 낮에 출발, 14시간 밖에 안 지났는데 9월 18일 오후 늦게 도착.
어느 일행에게 핸드폰을 빌려 우선 아내에게 도착을 알리고 짐 찾는데 한참을 걸린 다음, 모두 모여 일일이 악수로 작별한다. 9월 27일 금요일 서대문역 부근에서 재회할 것을 약속하며...가방 2개를 끌고 배낭을 메고 기다리다 공항버스를 탔다. 석양에 영종대교와 김포 들판을 쾌속으로 달려 왔으나, 시내로 들어오면서 서행, 강남 지역에 들어오면서 지체...
같은 비행기에서 내려 같은 공항버스를 탄 여인과 함께 종점인 가락시장 앞에 내렸다. 짐 때문에 전화하기 어려웠는데 그 여인이 버스 속에서 핸드폰하던 것을 생각해 내고 용기를 내어 그 여인에게 핸드폰을 빌려 달라니까 초면에도 빌려 주었다. 참! 핸드폰 아니 셀률라 폰이다. 아내가 차를 가져 와 짐을 싣고 21:00경 집에 들어 와 딸들과도 다시 만났다. 내일이 추석이니, 전 시내가 교통이 밀린다고...
기관장에게 도착을 보고하고 짐을 풀어 아내와 두 딸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 딸들의 니트웨어 스웨터는 숙녀용이라 컸다. 그러나 평소 칭찬이 귀한 아내가 한마디 한다 :
‘황소! 눈 많이 좋아졌다!’
00:30분경 황소! 아내와 잠 들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