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저는 글 쓰는 걸 좋아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때는 그냥 생각나는대로 마구마구 글 쓰다 보면 어느틈엔가 하루가 저물어갑니다.
제가 판에 올린 몇몇 글들을 지금 와서 다시 읽어보니 모두 제가 잘했던 이야기밖에 없네요.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라지만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잘했으면 언젠간 잘못한 것도 있는게 사람인거지요.
이 글은 제가 고등학교 3학년 수능치기 전에 겪은 일에 관한 내용입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부끄럽고 비겁한 행동을 한 날입니다.
두 번 다시 이런 비겁한 모습을 가지지 않겠다고 수십 번 수백 번 절 되새김질하게 만들었던, 가장 잊고 싶지만 아직도 잊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앞으로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이기에 제 싸이에도 올려놓은 글입니다.
지금까지 여기 올린 글들은 웃기기 위해서 오버도 하고 헛소리도 하며 글을 이어나갔지만 이 글은 진지하게 쓰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냥 웃음으로 넘기기에는 내용이 너무 무겁습니다.
제 행동에 대해서 욕하실 분들은 얼마든지 욕하셔도 됩니다.
이건 욕 얻어먹을려고 올린 글이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 시험이 2주도 남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은 밤이 되면 동네 양아치들이나 깡패들이 용지초등학교 옆 체육공원에 모여서 왁자지껄 떠들고 사고치는 동네였습니다.
우범지대는 아니더라도 밤의 어두움이 두려움이 되어서 나타나는 곳이지요.
수능 한달정도를 남겨두고 저는 뒤처진 성적을 따라잡으려고 수업 마치고나면 매일 밤 2시까지 도서실에서 공부하고 밤 늦게 혼자 집에 갔습니다.
사건을 겪은 그 날도 도서관 문 닫는 시간인 늦은 밤 2시까지 공부를 하고난 후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누나를 집까지 바래다 주고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용지초등학교 사거리 근처에 왔을 때 였습니다.
여자가 우는 소리와 남자들의 핍박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군요.
무언가 해서 보니까 사거리 어두운 곳에서 남자 3명이 여자 2명을 둘러싸고 협박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좋지 않은 일만은 분명했습니다.
내가 지나가야만 하는 길이었고 이 길에는 그 사람들과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남자들은 덩치도 컸으며 한 눈에 봐도 질이 안 좋은 부류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느낌으로는 그 사람들이 고등학생도 아니었던 거 같네요.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온갖 잡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갔습니다.
‘저 사람들은 서로 아는 사람들인가?’
‘왜 여자들이 한밤중에 밖에 나와있는거야?’
그 와중에 어떻게 싸우면 될지 가늠도 해봤습니다.
‘뛰어들어가면서 한 놈을 먼저 치고,
흠...한 녀석 때리고 나면 죽어라고 맞아야겠네.‘
3명 다 만만한 덩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저히 이길 자신은 들지 않더군요.
한 명이라면 먼저 쳐버리고 운이 좋으면 바닥에 눕힐 수 있겠지만 세 명인 상황이었기에 한 명을 쓰러뜨린 이 후에 남겨질 상황을 감당할 자신은 도대체 나지가 않았습니다.
‘수능도 얼마 안 남았는데 혹시라도 맞고 병원가게 되면 재수해야 하는거 아니가.’
두려웠습니다.
저는 이기적인 놈이고 겁 많은 놈입니다.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기에 혼자서 스스로의 생각을 합리화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이미 난 그들 앞에 도달했고 나에게 일말의 도움이라도 구하는 여자들과 눈이 마주
쳤습니다.
지금이라도 기회가 닿는다면 그 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미 손댈 수 없는 과거입니다.
저는 그 순간 제 인생에서 가장 부끄럽고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저를 간절히 바라보는 여자들의 시선을 피했습니다.
그냥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그 여자들의 흐느낌을 뒤로한 채 괜히 그 남자들이 시비라도 걸까봐 걸음을 빨리해서 그 곳을 지나쳐 버렸습니다. 이길 자신도 없는데 괜히 맞아서 병원에 실려가기라도 하면 수능은 어떻게 치고 누가 날 책임지겠냐? 라는 생각으로 저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옷을 벗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이런저런 잡념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군요.
저는 운동하는 거 좋아하고 싸움하는 것도 그리 피하는 성격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뭔가? 하는 회의감이 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허구헌날 싸우고 애들 때리는 걸 자랑하고 다녔는데 막상 주먹을 써야하는 순간에는 주먹 한번 쓰지 못하고 도망 온 겁니다.
저를 바라보던 여자애들 눈이 계속 제 머릿속에서 아른거리고 떠나질 않았습니다.
울면서 흐느끼는 소리가 귓가에서 떠나가질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미칠 거 같았습니다.
저 자신이 이렇게 초라해지는 느낌은 처음이었습니다.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 순간도 이 느낌을 잊지 못 합니다.
수십분을 갈등하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체육복을 입고 부엌에 가서 식칼을 챙겨서 신문지에 말고 운동화를 신은 후에 집을 나왔습니다.
주먹으로 하면 이길 자신이 없었기에 식칼로 한 놈 허벅지라도 찔러버리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뒷감당이야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방 사거리에 뛰어나갔는데 아무도 없더군요.
여자들이 어디로 끌려간 건 아닐까 하는 걱정과 함께 조금 더 빨리 나왔어야 한다는 후회가 저를 아프게 했습니다. 어떻게든지 찾기 위해서 학교 화장실, 체육공원, 아파트 지하주차장 등 이곳저곳을 다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너무 늦게 나온거 같았습니다.
1시간정도 주변에 어두운 곳들을 다 찾아다녔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여자들이 너무 걱정되었고 비겁한 제 모습이 지워지지가 않더군요.
잠시만 생각해봐도 제 심정을 알겁니다.
도움을 요구하는 그 여자들의 시선을 제가 피했을 때 그 여자들이 느낀 감정이 어떠했을까요?
저 자신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제가 싫었습니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 같은 머저리가 수능 따위를 잘 쳐서 어디 쓰겠냐는 자괴감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결국 밤을 세워버렸습니다.
예전에 아는 여자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고 충분히 들어 마땅할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쯤 그 여자애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각이나 해봤냐는 말과 경찰에 전화 한 통만 했어도 끝났을 일이었다는 질책이었습니다. 제 얼굴로 베개 던지더군요.
아무런 할 말도 없었습니다. 경찰에 전화하는 건 생각지도 못 했으니까요.
저의 숨기고 싶고 지우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를 모든 분들이 보시는 이곳에 다시 올리는 이유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절대 저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순간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평생 지고 가야할 죄책감과 자괴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만약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맞아죽더라도 어떻게든 여자애들을 구해줄거라고 다짐해 보지만 이미 끝나버린 일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스스로 노력했습니다.
항상 죽을만큼 두렵고 겁났지만 제가 용기를 내야 할 순간이 오면 절대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술 먹고 행패부리는 아저씨랑 싸웠다가 경찰서 가서 조사받고 합의금 준 적도 있고 길에서 술 취해서 주변 행인들에게 난동부리는 덩치 큰 학생을 상대하면서 경찰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번 적도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큰 덩치를 막아서며 시간을 끌었는지 지금도 그 때 일 생각하면 오줌이라도 지릴 정도로 오싹합니다.
여기 올린 글처럼 여자분이 살려달라고 해서 뛰어나갔다가 고자 될 뻔한 적도 있고요.
하지만 제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 이런 행동에 대해서 지금까지 후회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주변 상가 사장님들에게 바른 생활 학생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으니까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꼭, 반드시 용기를 내셨으면 합니다.
남을 도와주기 힘들다면 적어도 내 여자가 위기에 처했을 때라도 목숨을 걸 수 있는 남자다움은 가슴에 지니길 바랍니다.
지금 당장의 두려움에 굴복하지 마시고 앞으로 겪게 될 수치심을 걱정하셨으면 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을 도와주다 큰 곤경을 겪을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난처해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차피 후회할 일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행동을 한 후에 후회하셨으면 합니다.
행동을 하셨다면 적어도 저처럼 이렇게 후회하는 삶을 살지는 않으실 겁니다.
저에게 욕 얼마든지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야지 지금 제 결심 안 흐트러지고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갈 수 있을 듯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