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몇 달 전 세계 이 곳 저 곳으로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스물 한 살(?)ㅋㅋ 청년입니다. 제가 여행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해드립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터키 여러 도시를 돌고 마지막 시리아라는 나라로 넘어가기 전 날 일어난 일입니다.
제가 머문 곳은 안타키아라는 터키의 국경 도시였는데, 그 날따라 저렴한 호텔들은 모두 만실이었고,
하룻 밤 묶을 숙소를 구하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배낭여행객 주제에 비싼 숙소는 감히
엄두도 못냈고, 밤은 점점 더 어두워져서 이제는 노숙이라도 해야될 판이였습니다.
정처없이 시내에서 불빛이 잦아드는 외곽으로 멀어지는데, 어디서 조금은 후질근해 보이는 숙소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들어갔는데, 다행이도 방이 있었습니다.
가격도 아주 저렴해서 바로 방을 잡았습니다. (우리 돈으로 몇 천원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노숙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뻤지만 숙소 시설은 정확히 숙소비에 비례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잠을 잘 수 있다는 게 어디겠습니까.ㅋㅋㅋㅋ
저는 기쁜 마음에 짐을 풀고 밖에 바람을 쐬러 방을 나섰습니다.
그 때, 2층 베란다(?)에서 이 쪽(중동)사람으로 보이는 사람 하나가 슬픈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습니다. 외모를 좀 더 설명하자면 두 팔은 터질 듯한 근육으로 무장됐고,
짙은 눈썹을 가지고 있으며 면도칼따위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모양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기분은 생각도 안하고, 제가 방을 구했다는 안도감에
"Hi~!"
하면서 반갑게 말을 걸었죠.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가려는데, 불러서 이것 저것 얘기를 하고 싶어하더군요. 저도 그렇지만
그쪽도 영어는 별로라서 의사소통은 별로 되지 않았습니다. 주로 바디랭기지로 했구요.
그가 하는 얘기는 대충 이랬습니다. 그의 나이는 26이다. 왜 여기 왔냐니까, 자기가 사는 이라크
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dead한다. 총쏘고 싸우고 자기는 그런 게 싫어서 캐나다로 가고싶어서
도망왔다. 엄마가 엉엉 우셨다. 근육이 울퉁불퉁한 이라크 사람이 총이 어쩌고 죽음이 어쩌고
하니까 조금 무서우면서도 그가 참 안됐다고 여겨졌습니다.
그와 ㅂㅂ하고, 그래도 조금은 무서운 것 같아서 방에 문을 잠그고 있었는데 그가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잠시고민하다가 문을 여니
"뭐 좀 먹을래?" 합니다.
저는 "배불러"라고 바디랭기지로 표현했습니다. 그러고 혼자 있는데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그에게 갔더니 그가 아이스크림을 아냐고 묻더군요. 그리고는 아이스림을 먹으러 가잡니다. 저도 알겠다고 했지요. 이 때가 이미 11시,12시를 넘긴 시간입니다.
막상 나서긴 했는데, 불빛도 없는 외진 거리를 단둘이 지나가니 조금 무서워졌습니다.
이런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그는 전화기를 붙잡고 알아듣지 못하는 아랍어로 통화하며 뭔가 지시하듯이 계속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제는 아이스크림이 뭔가 암호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차라리 아이스크림이라는 나이트
클럽이였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아이스크림을 아냐고 물었던 건 무슨 의미일까 하고요.
가다보디 어쩐지 익숙한 길인데, 이 골목만 꺾으면 저도 알고 있는 유명한 아이스크림집이였어요.
마음속으로 '여기서 꺾어라 제발.'하고 제가 먼저 꺾었는데, 아니라고 더 가야한다는 군요. ㅜㅜ.
하는 수 없이 그를 더 따라 갔는데, 어쩐 일인지 제가 아는 그 유명한 아이스크림 집에 도착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알고 있던 길보다 더 빠른 지름길이었나 보더라구요. 그 가게 앞에 서더니
저에게 다시 묻습니다.
"Do you know Ice-cream?"
정말로 이라크에서 온 이 울퉁불퉁한 근육의 청년을 저에게 아이스크림을 소개해주러 온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아무 대화없이 그가 사준 여러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퍼먹었습니다.
별로 먹고싶은 생각은 안들었지만 먹어야만 할 것 같더라구요.
다 먹고 가게를 나오는 데 그가 묻습니다.
"Ice-cream Good?"
저는 그에게 아이크림을 처음 먹어 본 사람 처럼 "굳"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동안 그가 이라크가 현재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마음이 동요되더군요.
같은 시대, 같은 세계에 있으면서도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아픔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순수함에서 이라크의 아픔이 전해지는 듯 했습니다. 적어도 어떤 이라크인의
아픔이.
그가 숙소에 오자마자 다시 "아이스크림 굳?" 묻길래, 마지막까지 제가 아이스크림을 알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숨기기로 했습니다. 그와 헤어지고 이번에는 방문을 천천히 닫으며
이라크에는 아이스크림이 있을까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도 저를 봤을 때,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그가 사준 아이스크림은 정말로 맛있었습니다. ㅎㅎ
-여기까지가 이라크 청년과 저의 에피소드 입니다.ㅋㅋㅋㅋ 재밌게 보셨나요.
이 에피소드는 최근에 발간된 제 여행 책 [당신의 스무살]의 일부 내용을 다시 풀어썼습니다.ㅋㅋ
추천도 많이 해주시고,
재밋게 읽으셨으면 제 책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